출처=markus/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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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등 금융소외층이 가상자산 폭락장에서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기사들이 영미권 주류 매체에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7일 ‘크립토 폭락장이 흑인·히스패닉을 더욱 뒤처지게 만들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로 “유색인종 투자자들에게 빠른 부를 약속했던 크립토 자산이 폭락해 기존의 금융시장 자산 격차를 벌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백인 중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는 17%였던 반면, 히스패닉은 26%, 흑인은 2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지난달 조사자료를 인용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 ‘크립토 폭락장이 미국 흑인 투자자들 사이에 반향’이라는 기사에서 또다른 자료를 인용해, 40살 이하 투자자들 사이에서 흑인은 38%, 백인은 29%가 가상자산에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가상자산을 최고의 투자처로 꼽는 비율은 흑인이 전체 평균의 2배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결국 두 기사의 요지는 흑인·히스패닉의 가상자산 투자 비중이 높았기에 폭락장 투자 손실도 더욱 컸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왜 가상자산에 열광했을까?

 

부동산·주식 차별받던 흑인들이 꿈을 갖기 시작했다

블룸버그는 이들 소수자 집단이 은행 등 전통 금융 시스템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데 한계를 느끼던 중, 진입장벽이 낮은 가상자산이 등장하면서 전통 금융 밖에서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여졌다고 분석했다.

역사적으로 미국 흑인은 원래 백인보다 주식시장이나 금융기관을 잘 신뢰하지 않으면서, 보험이나 채권 등 저위험 상품에 투자하는 보수적 투자 성향을 보여왔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흑인을 차별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상자산은 달랐다. FT는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부자를 꿈꾸지 못했던 흑인들이, 현존 경제 시스템 밖에서 작동하는 가상자산에서는 부의 축적이 가능하다는 꿈을 갖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흑인 커뮤니티에서는 가상자산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안 된다는 포모(FOMO, 소외공포감)가 형성됐다.

일부 흑인 유명인사들도 이런 흐름을 부추겼다. 영화 제작자 스파이크 리는 지난해 가상자산 ATM 운영사 코인클라우드 광고에 출연해 “올드머니는 우리를 내려찍고 구조적으로 깔아뭉갠다. (반면 디지털 자산은) 긍정적이고 포용적(inclusive)이다”라고 말했다. 가수 제이지(Jay-Z)는 지난해 트위터 최고경영자 잭 도시와 함께 브루클린에 금융 교육시설인 비트코인아카데미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이들은 고위험 투자 상품을 위해 이름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질적 효용이 없었다고 하기는 힘들다. 금융 자동화가 제한적인 미국에서 블록체인 기반 가상자산은 훨씬 저렴하고 편리한 금융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브룩스 비트퓨리 최고경영자(CEO)는 “소수자의 가상자산 이용률이 다른 이들보다 높은 것은 은행의 자금이체보다 스테이블 코인 전송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라며 “부자가 아닐 때 앞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금융 시스템의 진입장벽이 모두 사라지고, 모든 시스템이 (은행보다) 더 저렴하고 더 빠르다”고 말했다.

출처=Jeremy/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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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베이스, 임원은 수천억대 돈방석...직원은 해고"

문제는 폭락장으로 자산 불균형이 심화하는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됐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크립토 폭락이 격차를 벌리다…돈있는 이들은 괜찮을 것’이라는 기사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오래 전부터 갖고있던 소수의 업계 거물들은 지난 2년 상승장에서 막대한 부를 쌓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완충장치를 갖게 됐고, 일부는 일찍 차익을 실현해 가상자산 관련 상장사에 투자하거나 부동산·주식을 사들였다”며 “반면, 이미 가격이 급등한 팬데믹 시기에 물밀듯이 진입한 아마추어 투자자들은 평생의 저축을 쏟아붓거나 가상자산 관련기업에 일자리를 구했지만, 지금은 잔고 탕진과 실직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로 코인베이스를 들었다. 코인베이스가 가상자산 가격이 상승세를 타던 2021년 4월 증시에 상장하면서, 이후 코인베이스의 최고위급 임원 6명은 8억5000만달러(1조1143억원) 어치의 지분을 현금화해 거부가 됐다. 3억달러(약 3932억원) 어치를 매각한 브라이언 암스트롱 CEO는 로스앤젤리스의 부촌 벨에어에 1억3300만달러(약 1730억원)짜리 저택을 구입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반면, 코인베이스는 6월 한달에만 전체 임직원의 18%에 해당하는 1100명을 해고했고, 채용 예정이던 수천명의 구인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한때 360달러에 육박했던 주가는 50달러대 초반을 맴돌고 있다. 블록체인에 열광했지만 충격을 흡수할 자산 여유가 부족한 흑인과 히스패닉에게 이 같은 ‘피해’는 더욱 가혹하다. 지난해 자료를 보면, 흑인 성인의 43%, 히스패닉 성인의 40%는 연소득이 일반적으로 미국의 가계소득 빈곤선으로 여겨지는 2만5000달러에 미치지 못한다.

출처=Sara/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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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외층 대안 '기대', 그러나 더 큰 피해 안겨

앞으로 주목되는 것은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자산(암호화폐)의 중요한 효용이자 미덕으로 거론되는 ‘금융 포용성’(financial inclusion)의 가치가 유지될 것인지다. 블록체인 기술은 탄생의 바탕 자체가 미국의 주류 금융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도 송금과 결제가 가능하게 하려는 비전이었다. 그렇기에 이 기술은 미국 인구의 4분의1에 이르는 금융 소외층(unbanked 또는 underbanked), 곧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를 가질 수 없는 저소득층과 이민자 등을 위한 대안 금융으로 발전할 것이란 기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위에서 거론한 주류 매체 기사에서 보듯, 이 같은 희망을 품고 투자했던 금융소외층이 현재로서는 되레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셈이다.

아직은 ‘기대’와 ‘희망’이 크다. FT는 다수의 흑인 투자자들이 손실 위험에도 불구하고 가상자산 투자를 거두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투자 포트폴리오 일부를 가상자산으로 구성하는 선에서 위기를 관리하면서 새로운 기술의 세계를 적극 뒤쫓고 있다.

블룸버그는 가상자산 투자자 중에서도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디지털 자산이 미래의 화폐’라는 믿음이 강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의 고소득층이 돈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것처럼, 나중에는 접근성이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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