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Luis Argaiz/Unsplash
의심하는 부엉이. 출처=Luis Argaiz/Unsplash

나는 원래 의심이 많다.

예를 들어,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뭘 얻고 싶은 거지?’라는 의심이다. 의심이 생기면 곧바로 ‘그러면 안 된다’고 속으로 되뇌지만 어쨌든 즉각적인 반응은 그렇다.

그러다 2021년 가상자산(코인) 시장에 입문했다. 본격적인 투자를 한 건 아니고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을 두게 됐다. 당연히 이번에도 첫 반응은 의심이었다.

사실 블록체인 업계에선 ‘의심’이 그리 유별난 반응은 아니다. 한 달에도 수십 건씩 사기, 범죄 소식이 쏟아지는데 의심하지 않고서는 ‘눈 뜨고 코 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수사국은 가짜 가상자산 사기 앱으로 인해 244명의 피해자가 4270만달러(약 562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가상자산 시장을 향한 의심이 더욱 깊어진 건 5월 테라 사태 이후였다.

테라 사태 이후 거시경제 침체와 함께 크립토 겨울의 찬바람이 불어 닥쳤다. 그리고 셀시어스, 쓰리애로우 캐피탈(3AC) 등 주요 가상자산 관련 기업들의 파산 신청이 이어졌다.

이렇게 주요 가상자산 기업들이 무너지니 어떤 프로젝트를 접할 때 ‘이거 스캠 아냐?’하는 의심이 깊어졌다.

일례로 지난 6월 가상자산 가격 정보 사이트인 코인360에 EGX(이글X)라는 코인이 '위임 비잔틴 장애 허용(DBFT) 코인' 중 BNB(바이낸스코인)에 이어 거래량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걸 봤다.

EGX는 처음 듣는데 거래량 2위라니! 또다시 의심이 불거졌다.

그래서 가상자산 시황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가서 프로젝트 홈페이지와 익스플로러로 들어가 봤지만 프로젝트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코인마켓캡에도 ‘시장 데이터 추적 불가’라고 적혀 있었다.

출처=이글X 웹사이트 캡처
출처=이글X 웹사이트 캡처

이에 코인360 측에 ‘EGX가 무슨 코인이고 검증되지 않은 EGX의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된 것이냐’는 내용이 담긴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답은 오지 않았고 얼마 후 코인360에서 EGX는 사라졌다.

지난해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대체불가능토큰(NFT) 시장도 마찬가지다.

국내 NFT 프로젝트인 메타콩즈에서도 홀더들은 운영진의 프로젝트 운영에 불만을 표하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고 이강민 최고경영자(CEO)와 황현기 최고운영책임자(COO)의 사퇴를 촉구했다. 메타콩즈 홀더들은 황현기 COO 사퇴를 요구하는 거버넌스 제안을 올리기도 했다.

NFT 거래소 오픈시 기준 역대 클레이튼 NFT 중 거래량 1위를 차지했던 메타콩즈에서 나온 의혹이라 덩달아 NFT 시장을 향한 의심도 깊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히 가상자산 시장의 악재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가상자산 약세장이 오면서 시장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모양새라는 생각도 든다.

가상자산, NFT 관계자들을 만나면 주로 블록체인에 대한 낙관론을 피력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특히 이들은 이번 크립토 겨울이 ‘옥석 가리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프로젝트는 ‘옥석 가리기’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의중도 은근히 내비친다.

하지만 이런 무조건적인 낙관론이 정답일까 싶다. 오히려 이번을 기회 삼아 그간 시장 호황기에 묻혀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점들을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해결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크립토 겨울이 찾아온 지 벌써 네 번째다. 이번 겨울이 끝날 때쯤에는 어떤 프로젝트를 만날 때 ‘이거 스캠 아냐?’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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