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처럼 무너진 FTX…가상자산 ‘빙하기’
사실상 한몸 투자회사 알라메다와 유착
자체발행 토큰 FTT 가격 끌어올렸지만
토큰가격 하락→평가손실→담보 청산
레버리지로 쌓아올린 ‘모래성’ 무너져

불투명한 지배구조·내부 감시망 부재
정책당국 규제 움직임도 급물살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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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이 기자
김제이 기자 2022년 12월7일 17:08

‘겨울잠’을 자던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이 급기야 ‘빙하기’를 맞았다. 세계 3대 가상자산거래소 에프티엑스(FTX)의 파산보호 신청 이후 고객 예치금 유용과 내부 회계시스템 조작,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 업계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불신의 늪에 빠진 탓이다. 

에프티엑스가 미국 법원에 제출한 파산보호 신청서에 따르면 부채는 100억~500억 달러, 채권자는 10만 명을 웃도는 등 가상자산시장 역대 최대 규모로 나타났다. 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는 가상자산거래소가 실제로 파산할 경우 투자자 보호장치는 전혀 없다. 거래소에 자금을 예치한 고객은 상환청구권이 없는 무담보 채권자일 뿐이다.

 

FTX 제국의 모래성은 어떻게 무너졌나

지난해 기준 가상자산거래소 시장 점유율 4%에 그쳤던 에프티엑스가 올해 2위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었던 비결은 대출을 통한 무한 레버리지 확장이다. 국내에서 ‘뽀글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샘 뱅크먼 프리드는 지난 2017년 알라메다 리서치라는 가상자산 투자회사를 세운 뒤, 이 회사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2019년에 거래소 에프티엑스를 설립했다. 즉, 두 회사 모두 뱅크먼 프리드가 최대주주인만큼 ‘한 몸’이라고 볼 수 있다. 알라메다는 지난 5월 테라-루나 사태 영향으로 가상자산 업체들이 파산 위기에 직면했을 때 ‘구제금융’을 지원해 가상자산업계의 ‘제이피(JP)모건’이라는 명성까지 얻기도 했다. 

뱅크먼 프리드는 에프티엑스를 설립하면서 자체 토큰인 에프티티(FTT)를 찍어내 알라메다로 대출해줬다. 알라메다는 대출받은 토큰을 담보로 달러를 빌려 거래소에 입금시켜 토큰을 다시 샀다. 당연히 토큰 가격이 올랐고 알라메다는 장부에 토큰 가격 상승분을 이익으로 잡았다. 이를 홍보하며 새로운 투자금을 끌어들여 다시 토큰 등을 사들이는 과정을 반복하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레버리지가 급증했다. 에프티엑스의 기업가치는 한때 42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가상자산 전문매체 <코인데스크>가 지난달 2일(현지시각) 에프티엑스의 계열사 알라메다의 재무 건전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알라메다의 총자산 중 에프티티 토큰이 40% 상당으로 과도하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세계 1위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의 최고경영자 자오 창펑은 위기관리를 위해 보유 중인 5억8300만 달러 규모의 에프티티를 전량 매각하겠다는 트윗을 올렸다. 바이낸스는 에프티엑스 투자를 통해 에프티티를 대량 보유하고 있었다. 에프티엑스와 사실상 한몸인 알라메다의 유동성 위기는 곧 에프티엑스 고객 자산의 위험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사용자들이 앞다퉈 자금을 인출해 뱅크런이 발생했다. 그동안의 선순환 구조가 순식간에 악순환으로 반전된 것이다. 토큰 가격 하락→대차대조표 자산 감소→평가손실 발생→담보 청산의 과정을 밟으며 에프티엑스의 유동성 위기가 터졌다. 레버리지로 쌓아올린 에프티엑스 제국의 모래성이 허망하게 무너진 것이다. 

자체 발행한 코인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규모를 키우는 사업모델은 발행사가 맘대로 코인을 거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이 크다. 코인가격이 급락하면 담보가 강제 청산되면서 연쇄적으로 파장을 일으킨다. 국내 위믹스재단 역시 자체 토큰인 위믹스를 담보로 대출받아 기업 인수 등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유통량 정보를 기재하지 않아 국내 거래소에서 상장폐지의 갈림길에 놓인 상황이다.

 

코인판의 G2 갈등 시각도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중국계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와 미국 거래소 에프티엑스 사이의 갈등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뱅크먼 프리드는 미국 정치권 로비에 많은 자금을 쏟아붓는 등 정·관계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가상자산 규제법안 작성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자오 창펑은 이같은 로비 활동이 바이낸스에 불리한 내용을 담은 법안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해, 뱅크먼 프리드의 시장 영향력이 커지는 걸 경계하고 있었다. 또 에프티엑스가 최근에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예고하면서,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시장 확장에 나서고 있는 바이낸스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자오는 지난달 6일 ‘기브 앤 테이크’라는 책의 표지와 함께 “주는 자들과 주는 척하는 자들, 받은 만큼만 주는 자들과 받기만 하는 자들, 주는 자들이 이기는 이유”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트윗에 올렸다. 가상자산 백기사를 자처하면서 뒤로는 로비 활동을 벌여온 뱅크먼 프리드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자오는 지난달 8일 에프티엑스 인수 의사를 밝혔지만 하룻만에 철회했다. 에프티엑스는 결국 이틀 뒤인 지난달 11일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무너진 신뢰만큼 빨라질 규제

가상자산업계에서는 테라-루나 사태 이후 또 한 번 신뢰가 무너졌다는 탄식이 나온다. 뱅크먼 프리드는 알라메다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에프티엑스에 예치된 100억달러의 고객 자금을 몰래 사용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테라-루나 급락 사태로 알라메다가 큰 손실을 봤는데 이를 감추기 위해 고객 자산을 불법 대출해 준 것이다. 

뱅크먼 프리드의 후임인 존 레이 3세가 법원에 제출한 에프티엑스 파산 신청 내용을 보면 ‘기업 통제의 실패’ ‘신뢰할 수 있는 재무정보의 부재’ ‘손상된 시스템’ 등의 표현과 함께 ‘경험이 부족하고 정교하지 못한 극소수 개인의 손에 통제력이 집중됐다’고 적혀 있다. 이 사건을 첫 보도한 <코인데스크>의 콘텐츠 최고책임자 마이클 케이시는 “내부자들로 구성된 은밀한 공간에서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는 파괴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휘둘렀다”고 비판했다. 

가상자산 시장이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내부 감시망 부재 등 전통 금융의 폐단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정책 당국의 규제 움직임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로스틴 베넘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은 “현물 거래소는 현재 어떤 연방기관에서도 규제하지 않는다. 만약 에프티엑스가 우리의 감독 아래 있었다면 붕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의회에 거래소를 직접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 기사는 <한겨레> 지면에도 게재됐습니다.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매달 한 차례 한겨레 신문의 블록체인 특집 지면 'Shift+B'에 블록체인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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