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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헬로 블록체인

암호화폐·가상자산·가상화폐… 뭐라고 불러야 할까

2021. 02. 28 by 김병철
김병철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김병철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근로자의 날이 아니라 노동절입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페이스북에서 #노동절챌린지에 참가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비례)이 5월1일을 노동절로 불러야 한다며 시작했고, 캠페인 다음 주자로 이 대표를 지목했다. 캠페인 내용은 간단하다. ‘근로’(勤勞)는 ‘부지런히 일함’을 뜻한다. 반면 ‘노동’(勞動)은 ‘몸을 움직여 일함’으로 좀더 가치중립적인 용어라는 주장이다.

언어는 의식을 반영한다. 상대방이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의 가치관과 위치가 드러난다. 근면하게 일한다는 ‘근로자’라는 용어엔 은근히 사용자의 입장이 묻어 있다. 반대로 노동계는 꾸준히 법적 용어를 노동자, 노동절로 바꾸자고 요구해왔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뿐 아니라 언어도 달라진다.

새로운 산업인 블록체인 업계에도 이런 용어가 있다. 바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상위개념이다. 세계적으로도 아직 용어가 통일되지 않았고 암호화폐, 가상자산, 가상화폐, 디지털자산 등이 혼용된다.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이 개념화된 지 12년밖에 안 된 이유도 있다. 그리고 ‘눈 가리고 코끼리 만지기’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이 용어를 해석하려는 면도 있다.

블록체인 업계에선 주로 암호화폐라고 부른다. 영어 크립토 커런시(Crypto Currency)의 직역이다. 암호화 기술을 적용한 화폐라는 뜻이다. 디지털 파일은 복사가 쉬운데, 디지털 돈이 마구 복사돼서 여러 곳에서 사용되는 걸 암호화 기술로 방지했다는 게 포인트다. 비트코인 개발에 관여한 이들이 암호학에 능통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었고, 뒤이어 이 산업에 뛰어든 다수가 정보통신(IT) 분야 출신이라 ‘암호’에 방점을 찍는다.

가장 널리 사용하는 용어는 가상화폐다. 이것도 영어 버추얼 커런시(Virtual Currency)에서 왔다. 1차 비트코인 투자 붐이 있던 2017년 정부는 가상통화라고 불렀고, 이후 언론은 이와 비슷한 가상화폐를 많이 사용했다.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라며 가상증표라고 불렀다. 여기서 핵심은 ‘가상’이다.

영어사전에서 virtual은 ‘사실상의, 거의 …과 다름없는’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가상은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사실이라고 가정하여 생각함’이다. 비트코인 등이 탐탁지 않은 정부가 줄곧 가상을 선택한 이유다.

변호사 등 법조계는 가상자산을 선호한다. 법률 용어이기 때문이다. 한국, 미국, 중국 등 37개국이 가입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이 용어를 사용한다. 지난해 3월 국회가 이 기구의 권고에 따라 관련법을 개정하면서 이 용어를 그대로 가져왔다. 이번에 주목할 점은 화폐가 자산으로 변한 것이다. 2008년 나온 비트코인 백서엔 화폐(Cash)라고 쓰여 있지만, 이젠 투자자산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디지털자산도 있다. 신규 투자자산으로 보는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금융권이 주로 사용한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인 그라운드엑스(X)와 거래소 업비트도 이 용어를 쓴다. 비트코인 등뿐만 아니라, 앞으로 디지털화될 화폐, 부동산, 미술품, 권리 등을 다루겠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되도록 범위가 넓은 용어를 사용해 금융당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 노력도 읽힌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블록체인이 어떻게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기술이 발전해 중앙은행이 향후 발행할 디지털화폐(CBDC)에 블록체인을 채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비트코인 등이 달러를 제치고 세계통화가 될 수도 있다. 용어 선정에 머리 아프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지금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돈 혹은 자산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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