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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연재 칼럼 ‘돈을 다시 생각하다’ 95화

[마이클 케이시] 사실상 디지털 지재권은 없다‥NFT는 그걸 위한 발판

2022. 02. 22 by Michael J Casey
NFT.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NFT.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돈을 다시 생각하다(Money Reimagined)’는 돈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거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바꿔놓고 있는 기술, 경제, 사회 부문 사건과 트렌드들을 매주 함께 분석해 보는 칼럼이다.

떠들썩하게 대체불가능토큰(NFT)을 옹호하는 NFT 지지자들과 그들만큼이나 큰 목소리로 NFT를 비판하는 비평가들 사이에 문화적 격차가 얼마나 크게 벌어졌는지를 보면 참 놀랍다.

NFT 지지자들은 NFT를 자유라 말한다. 크리에이터와 이용자들이 기존 인터넷 플랫폼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밝은 웹3 미래로 향하는 티켓 말이다.

NFT 비평가들은 NFT가 후기 자본주의의 병폐를 모두 담고 있다고 말한다. 탐욕으로 가득 차 사기 행위를 부추기고, 악의적으로 환경을 경시하는 특성 말이다.

양쪽 모두 틀렸다.

전자는 낙관론에 빠져있다. 웹3 비전이 보다 넓은 인류의 이익에 부합하려면 그전에 웹3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이 개발돼야 한다. 그런 솔루션들 없이는 초기 기회주의자 몇몇에게만 일시적으로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는 시스템을 만들게 될 것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 기술에 대해 고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가상자산에 대한 여러 잘못된 공격들처럼 가상자산 업계의 현재 모습(이더리움(Ethereum)의 과도한 거래 비용과 제한적인 확장성 등)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거다. 이런 관점은 오픈소스 시스템에서 혁신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에 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며, 수많은 개발자들이 아직 이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책 마련을 시작하지 못했다고 간주한다.

나는 NFT가 크리에이터 중심의 새로운 디지털 경제를 만드는 데 있어 필수 구성요소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플랫폼들이 더 이상 우리의 정보를 캐내지 않고, 예술가나 음악가, 포토그래퍼, 기자, 출판사들이 소비자와 직접 연결돼 있는 경제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NFT는 단지 하나의 구성요소일 뿐이다.

그 위에 무엇을 만들지는 우리의 몫이다. 그 결과물이 우리에게 자유를 안겨줄지, 아니면 악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디지털 현재

새로운 디지털 경제에서 NFT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를 이해하려면 재산권의 현재와 과거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된다(똑똑한 법학자들이 내게 코멘트를 달기 전, 나는 이 말이 NFT가 재산권에 해당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 오히려 나는 NFT가 재산권 구성에 필요한 디지털, 법적 인프라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본다).

먼저 디지털 현재(digital present)를 보자. 지금까지 우리에겐 고유한 디지털 객체를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마치 아날로그 세계에서 집이나 차 같은 물건을 사람이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자산으로 보는 것과 같이, 어떤 대상을 디지털 재산이라 칭할 수가 없었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저작권과 같은 지식재산권의 개념을 인정하고 실행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지재권은 그 자체로 디지털 재산이 되지 않는다. 법에서는 실제 영역과 디지털 영역 모두에서 지재권이 행사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 지재권은 두 영역 바깥에 존재한다.

법은 비디지털 영역에서 집행하는 게 상대적으로 더 쉽다. 책이나 LP판처럼 저작권이 있는 창작물의 경우 재생산이나 불법 복제가 용이하지 않아 지식재산이 아닌 별개의 자산으로 식별이 잘 되기 때문이다.

반면 PDF, MPEG, JPEG 파일의 복제와 공유가 온라인으로 빈번히 일어나는 디지털 영역에서는 이 같은 구분이 불가능하다. 인터넷이 등장한 초창기에 법조계에서 ‘최초 판매의 원칙(first sale doctrine)’을 디지털 파일에 적용하는 것을 포기한 이유가 이것이다. 최초 판매의 원칙이란 예를 들어 중고 서적의 재판매는 허용하되 그 안에 있는 저작권이 있는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판매하는 행위는 금지하는 원칙이다.

핵심은 디지털 재산이란 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디지털 파일을 소유하고 재판매할 권리를 의미하는 디지털 재산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온라인상에서 디지털 콘텐츠 파일의 시리얼 넘버가 될 잠재력이 있는 NFT 개발이 중요한 이유다. NFT는 재산을 식별할 수 있는 체계와 함께 우리가 재산권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도록 다른 솔루션들을 구축할 수 있는 체계를 제공해준다.

출처=Tierra Mallorca/Unsplash
출처=Tierra Mallorca/Unsplash

아날로그 과거

역사를 통틀어 재산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발전에 도움이 됐다.

1215년 영국의 존 왕(King John)이 귀족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칙허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나 1602년 세계 최초의 합자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설립된 것, 포스트 모택동 시대에 중국이 국가 부흥을 위해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 중국 인구의 약 90%(대략 4억7000만 가구)가 집을 소유하게 된 것이 그 예다.

페루의 경제학자 에르난도 데 소토는 재산권과 그로부터 파생된 법집행 가능한 계약이야말로 경제적 발전을 이룬 서구 민주국가들과 그렇지 못한 개발도상국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데 소토의 주장을 통해 ‘재산권을 이루는 하나의 구성요소로서의 NFT’라는 아이디어가 왜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것에 대한 규모의 부가 여기서 창출될 수도 있다.

하지만 특정인이나 특정 계층에 재산권을 부여한다고만 해서 활발하고 역동적인 경제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공평한 경쟁의 장을 이루는 건 말할 것도 없다.

19세기 중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이자 독재자인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 장군은 아르헨티나 원주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비옥한 대초지인 팜파스 땅을 빼앗아 자신의 가족과 그에게 충성하는 몇몇 관료들에게 나눠줬다.

이 같은 대규모 토지 분배는 집행 가능한 재산권에 해당하여 법적인 영향력이 있었지만, 정실주의 정치 시스템을 만들어 오늘날까지도 아르헨티나의 민주주의와 지속 가능한 경제 개발 능력을 저해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식민지 내 ‘비점령’ 지역은 그 소유권을 모두 왕실에서 가져갔다(두 세기 동안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의 토지 소유권을 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처럼 따옴표를 사용했다). 그런 다음 이 토지를 작게 쪼개 처음엔 석방된 죄수들에게, 그 후에는 고국으로 귀환한 해외참전용사들에게 나눠주었다.

수많은 소규모 지주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호주의 농업 경제는 소수의 군사 독재자가 가장 비옥한 토지를 차지한 아르헨티나보다, 필연적으로 생산성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개발자들이 NFT 기술을 확장해 실질적 적용을 위한 방법을 연구함에 있어 NFT와 디지털 재산권 개념과 관련해 배워야 할 교훈이다.

 

구성요소

다시 한번 말하지만 NFT를 보유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재산권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토큰에 대한 통제권과 토큰과 연관된 예술 작품에 대한 권리는 명백하게 다른 별개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스타트업들이 특정 NFT를 이용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만약 이 모델이 성공할 경우 디지털 재산권이라는 급진적인 새로운 시스템을 이루는 하나의 구성요소로서 NFT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울 것이다.

이 같은 솔루션들이 나오는 것은 자본주의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요즘 NFT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미디어 기업들의 경우, NFT로 판매가능한 콘텐츠 목록에 재산권을 만들어 부여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집행 가능한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때도 시스템이 공익에 부합하는 형태로 개발될 거란 보장은 없다. 결과는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

확실한 건 NFT는 사라지지 않을 거란 거다. 재산권 확립을 위한 준비는 진행될 것이며, 그게 얼마나 부당하고 요란스러운 일인지를 불평하는 건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 될 것이다.

더 나은 디지털 세계를 만들고 싶다면 실제 재산권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공익을 위한 개발에 나서야 한다.

영어기사: 최윤영 번역, 임준혁 코인데스크 코리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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