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탈릭 부테린, 댄 래리머와 헤어진 이유

[인터뷰] 카르다노 이끄는 찰스 호스킨슨 IOHK CEO_1편

등록 : 2018년 10월 1일 10:53 | 수정 : 2018년 10월 2일 11:51

사토시 나카모토, 비탈릭 부테린, 댄 래리머.

블록체인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세명을 뽑으라면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이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신원미상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제외하고) 비탈릭 부테린, 댄 래리머의 커리어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찰스 호스킨슨(Charles Hoskinson) IOHK CEO이다.

찰스 호스킨슨 IOHK CEO. 사진=김병철 기자

찰스 호스킨슨 IOHK CEO. 사진=김병철 기자

 

찰스 호스킨슨은 2013년 7월 댄 래리머와 비트쉐어(Bitshares)를 만들었고, 2014년엔 비탈릭 부테린과 함께 이더리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비트코인 탄생 후 블록체인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요 인물 중 한명이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지난 9월12일 ‘이더리움 클래식 서밋(ETC Summit 2018)’을 위해 서울을 찾은 찰스 호스킨슨을 만나 그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그는 현재 카르다노(ADA) 프로젝트를 이끌며 젠 캐시(ZenCash), 스톰(Storm)의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수학자였는데 암호화폐 업계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난 외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 가족 중에 의료 종사자가 많았는데 할아버지와 형제가 의사고 아버지는 물리학자다.

그런데 금융에 관심이 생겼다가, 어쩌다 보니 암호화폐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UDEMY라는 온라인 교육 사이트에 비트코인에 대한 강의를 무료로 올리기 시작했는데 수강생이 8만명을 넘었다.

찰스 호스킨슨의 비트코인 온라인 강의. 이미지=udemy 캡처

찰스 호스킨슨의 비트코인 온라인 강의. 이미지=udemy 캡처

 

내 강의가 인기를 끌자 수천개가 넘는 이메일을 받았고,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제안이 왔는데 결국 중국 투자자 리 샤오라이(Li Xiaolai)가 암호화폐 회사를 세우라며 50만달러를 투자했다.

엄청난 일이었지만, 문제는 당시 내가 어떤 회사를 차려서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잘 몰랐다는 점이다. 나도 막 이쪽에 입문한 상태였다. 그래서 수강생들에게 암호화폐에서 가장 큰 문제가 뭔지 물어봤다.

두가지 종류의 답을 받았는데, 하나는 비트코인의 큰 가격 변동성이었다. 비트코인으로는 물건을 살 수도 없었고 팔 수도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 문제는 신뢰를 얻지 못하는 암호화폐 거래소였다. 당시 마운트 곡스(Mt. Gox) 같은 거래소들이 있었는데, 잘못하면 거래소들이 업계를 장악해버리거나 혹은 무너지면서 투자자들이 돈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컸다.

그래서 나는 ‘비트코인 토크’라는 당시 가장 큰 규모의 온라인 암호화폐 포럼을 만들었다. 거기에 ‘두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는 글을 올렸더니 처음으로 답을 단 사람이 바로 댄 래리머(Dan Larimer)였다.

댄은 비트쉐어라는 아이디어가 있었고, 나는 투자금이 있었다. 그가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서 2013년 7월 버지니아에서 ‘인빅터스 이노베이션(Invictus Innovations)’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을 만나게 됐다. 사실 내가 이더리움 재단에서 있던 건 6개월밖에 안된다. 지난 4년 동안 IOHK를 운영한 게 훨씬 더 긴데도 불구하고, 난 이더리움 재단 전 CEO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어쨌든 나는 우연히 혁신창업가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엔 의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가, 그 다음엔 수학자가 되려고 했다. 그런데 암호화폐를 접하게 됐고 이게 수학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쪽에 들어서고 결국 회사를 창업했다.

2014년 1월 찰스 호스킨슨과 댄 래리머는 비트쉐어를 공동 창업했다.

 

-댄 래리머와 비트쉐어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나?

개발자인 댄이 기술적인 일은 거의 했고 나는 투자, 예산, 인사 같은 사업 부분에 집중했다. 회사에서 누군가 맡아서 해야 하는 일인데 상당한 업무다.

어쨌든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동업자를 고를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사실 댄과 창업을 하기 전에 우린 서로를 잘 몰랐다. 겨우 몇주? 근데 우린 성격이 극단적으로 달랐다.

나는 A, B 그 다음에 C를 말하는 체계적인 타입이다. 반대로 댄은 A에서 D로 넘어가고 B와 C는 ‘나중에 해결하자’는 타입이다. 일처리를 매우 빨리 할수 있지만 문제는 D가 틀렸을 경우다.

댄의 판단이 틀려서 처음으로 돌아간 적이 정말 많았다. 나는 투자를 받은 상태에서 그러는 건 비도덕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댄은 엔젤 투자도 받았고 크라우드 세일도 하면서 (투자자에게) 약속도 했다.

그런데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자 ‘뭐 어때. 다음 거를 하면 되지’라는 식이었다. 투자를 받지 않았거나 오픈소스 프로젝트라면 상관 없다. 그런데 투자자가 있다면 책무가 뒤따른다. 이런 부분 때문에 함께 일하는 게 무척 힘들었다. 그리고 기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활용돼야 할지에 대한 관점 차이로 많이 다투기도 했다.

정리하면 동업자를 정하는 건 정말로 중요한 일이고, 사전에 동업자에 대해 충분히 알아봐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성격은 어떤지, 업무 스타일은 어떤지 같은 걸 다 알아야 함께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다.

물론 서로 잘 안 맞다고 그 사람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무랑 결혼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거다.

이더리움. 이미지=이더리움 사이트 캡처

이더리움. 이미지=이더리움 사이트 캡처

 

-이더리움 재단에서 CEO로서 수행한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나오게 됐나?

내 암호화폐 커리어가 우연히 시작된 것처럼 이더리움도 우연히 만들어진 암호화폐였다.

초기에 이더리움에는 크게 두 그룹이 있었다. 하나는 나와 조셉 루빈(Joseph Lubin), 앤서니 디 이오리오(Anthony Di Iorio), 미하이 앨리시(Mihai Alisie) 같은 비즈니스쪽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기술쪽 사람들인데 제프리 빌케(JEFFREY WILCKE), 개빈 우드(Gavin Wood),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이 있었다. 개발자들은 (암호화폐를) 어떻게 발행, 유통하고 ICO는 어떻게 할지와 같은 ‘토큰 이코노미’에 대해선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오직 ‘우리가 가진 이 쿨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개발해볼까’만 생각했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했고 직원과 개발자를 고용했다면 장·단기 사업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CEO로서) 이 두 그룹 가운데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돈이 없던 초기에는 누구도 의견이 강하지 않아 괜찮았다. 하지만 이더리움 프로젝트가 커지고 유명해지면 달라졌다. 수백에서 수천만 달러를 투자받을 수 있게 되자 모두의 주장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개발자들은 ‘비즈니스 사람들은 아무런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니 쫓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스마트하고 비즈니스는 쉬우니까 개발자들만 있어도 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비즈니스 사람들은 개발자들은 평생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할 거라고 봤다. 투자금을 모두 써버리고 마약이나 하면서 온전한 사업 구조를 구축하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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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핵심 문제는 이더리움 프로젝트를 둘러싼 수백명의 참여자들이었다. 스카이프를 통해 의견을 내는 커뮤니티였는데 명료한 계약 관계가 아님에도 자신들이 이더리움 프로젝트의 창업자나 주요 인사라고 생각했다.

비즈니스쪽에선 이들을 골칫거리로 생각했다. 이들 중 누군가 의견을 낸 게 언론에 그대로 보도되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개발자들은 이들이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뭔가 만들어낼 것이라며 우리 프로젝트의 자산이라고 봤다.

이렇게 두 그룹은 철학적으로 극명하게 달랐다. 그래서 결국 나는 2014년 4월 ‘우리가 크립토 모질라(Mozilla)가 될지, 크립토 구글이 될지 결정하자’며 투표를 제안했다. 영리 기업과 비영리 기업 중에 선택하자는 거였다.

이때 우리는 크립토 구글(영리 기업)을 선택했다. 약간 리플과 비슷하게, 캐피탈 투자를 받고 스타트업 인사들을 영입하고 이사회를 만들어 벤처 회사를 구축하려고 했다. 비즈니스 사람들은 1조달러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며 흥분했다.

하지만 비탈릭은 (자신도 크립토 구글에 투표했음에도)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결국 두달 뒤 공동창업자들은 모두 스위스에 다시 모여 재논의했고 크립토 모질라가 최종 결론이 됐다.

내가 밀려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엄청나게 싸웠다. 나 다음엔 앤서니 디 이오리오가 떠났고, 그리고 조셉 루빈, 미하이 앨리시도 차례차례 모두 이더리움 재단을 떠났다. 그렇게 이더리움은 개발자 중심의 프로젝트로 바뀌었다.

우리가 떠나고 1년 만에 개발자들은 예산 대부분을 써버렸고, 그때부터 비즈니스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어쨌든 나중에 결국 이더리움을 만들어냈고 엄청난 돈을 모았지만 커뮤니티 생태계를 운영하는 부분에서 많은 이슈가 발생했다.

내가 이더리움 경험을 통해 배운 건 이거다. 창업자가 8명이나 있을 수는 없다. 애플에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있고, 구글에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있다. 창업자는 소수여야 한다.

이더리움 창업자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철학과 비전을 이더리움에 담으려고 했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던 이더리움의 모습을 IOHK에 담고 있고, 조셉은 컨센시스(ConsenSys)에, 앤서니는 디센트럴(Decentral), 개빈은 패리티(Parity)에 각자 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비탈릭이 프로젝트의 핸들을 잡으면서 CEO가 됐고 이더리움은 그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비탈릭 부테린. 사진=윤형중 기자

비탈릭 부테린. 사진=윤형중 기자

 

-그래서 지금 당신은 IOHK를 크립토 구글로 만들고 있는 건가?
맞다. 그게 IOHK가 추구하는 모습이다. IOHK에는 훌륭한 연구원, 개발자들이 있고 실제 암호화폐와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카르다노(Cardano)다. 그리고 이더리움 클래식(ETC)도 함께 연구 중이고 아직 공개하지 않은 프로젝트도 있다.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한 사업도 있다. 에티오피아, 앙골라, 우간다에서 투표 시스템, 부동산 등기, 공급망관리에 대한 사업을 테스트 중이다. 이 팀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디지털 ID를 제공해 블록체인 세상으로 데려오고 있다.

암호화폐를 통해 이들에게 마이크로 파이낸스(소액대출), 보험과 같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우리의 비전이다.

과학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피어 리뷰(Peer Review)’를 통해 엄격하게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있고, 도쿄공대(Tokyo Institute of Technology), 영국 에든버러 대학(University of Edinburgh) 연구진과 협업하고 있다.

개발 측면에서는 오픈소스 코드와 실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잘 되고 있다. 직원은 2명에서 160명까지 늘어났고 아르헨티나, 일본 등 전 세계 16개국에서 일하고 있다.

 

<인터뷰 2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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