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작은 호가가격단위: 개인 투자자가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

[2018 Year in Review] 댄 코리 팩텀 캐피탈(Pactum Capital) CEO

등록 : 2019년 1월 7일 07:00 | 수정 : 2019년 1월 6일 23:02

코인데스크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이 지나온 2018년을 돌아보고 새해를 전망하는 전문가들의 글을 모아 ‘2018 Year in Review’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을 쓴 댄 코리는 암호화폐 파생상품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금융 서비스 기업 팩텀 캐피탈(Pactum Capital)의 CEO입니다.

 

2018 year in review

 

많은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이 훌륭한 가치 저장 수단이자 디지털 황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거의 모든 속성에서 황금과는 엄연히 다르다. 금은 장기적으로 가치를 보유할 수 있는 수단이다. 반면에 비트코인의 가치는 안정적이지 않고, 시장은 조작에 취약해 보인다. 당장 거래소에서 호가가격단위(tick size)만 놓고 봐도 비트코인과 황금은 전혀 다르다.

호가가격단위란 매매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최소 가격 단위를 뜻하는 말로, 호가가격단위가 10원이면 현재 8,500원인 주식을 거래가보다 싸게 사는 주문을 넣을 때 8,490원에 구매가를 지정할 수 있다. 반대로 호가가격단위가 500원이면 8,500원에 거래되는 주식을 사겠다는 구매가는 8,000원보다 높게 할 수 없다.

비트코인의 호가가격단위는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대개 지나치게 작다. 금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자산보다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의 호가가격단위는 매우 작은 편이다. 사실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몇 달러에 불과했을 때나 100달러를 넘어섰을 때는 호가가격단위가 작아도 문제 될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1,000달러가 넘어간 뒤로는 문제가 생겼다. 가격 변화를 좇아가며 시세보다 아주 조금 낮거나 조금 높게 주문을 내는 전략으로 BBO(Best Bid Offer)를 독식해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가상의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비트코인이 개당 $3500.03에 거래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비트코인을 $3500.00에 달러에 구매하겠다는 지정가 주문을 넣는다. 이때 자동화된 거래 시스템은 이른바 페니 점프(penny jump)를 해서 사람이 낸 주문보다 1센트 더 비싼 $3500.01에 주문을 넣는다. 그러면 사람보다 시스템 거래자의 주문이 먼저 처리된다. 시스템이 인간의 주문을 가로채 가는 셈이다. (비트코인의 호가가격단위가 1센트가 아니라 1달러라면 $3,500.00보다 비싼 주문은 $3,501.00에 낼 수밖에 없으므로 시스템이 주문을 가로챌 수 없다)

지정가 주문은 체결되지 않으면 (스프레드를 줄여가며) 가격을 조정해 다시 내야 하므로 트레이더에게 손해다. 결국, 자동화된 암호화폐 거래 시스템은 사람이 내는 주문보다 늘 우위를 점하고, 아주 근소한 차이로 항상 인간을 앞서게 된다. 여기서 근소한 차이란 결국 호가가격단위로 수렴하게 돼 있는데,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이 문제다. 비트코인을 대량으로 거래하는 이들은 시스템화된 알고리듬을 사용하지만, 대부분 개인 투자자들은 수동으로 직접 거래가를 지정하거나 간단한 봇을 통한 주문 정도만 처리한다. 호가가격단위가 지금처럼 작으면 BBO 경쟁에서 늘 시스템화된 알고리듬이 인간을 앞지를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 거래소 오더북에 1페니 주문이 갑자기 생겨났다 없어지는 모습. 1센트를 더 높이거나 낮춰서 내는 주문으로 보는 손해는 거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출처: 코인베이스 프로(Coinbase Pro)

 

비트코인 시장에서는 다른 금융 자산 시장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 일어난다. 자산을 구매하는 이들은 대개 최대한 낮은 가격에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자산을 구매하려고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보통 반대다. 호가가격단위가 작다 보니 실제 가격보다 아주 조금 더 비싼 값에 조금만 사려는, 혹은 실제 가격보다 아주 조금 싼 값에 조금만 팔려는 주문이 쏟아진다.

 

이전의 연구

해외 거래 시장과 주식 시장에서 호가가격단위가 변하거나 호가가격단위로 실험을 했던 선례가 있다.

외환 시장에서 통화에 대한 호가가격단위를 0.0001 ~ 0.00001핍(pip, 두 통화 사이의 가치 변화를 나타내는 측정 단위)으로 조정해봤더니, 주로 컴퓨터 알고리듬으로 거래하는 거래자들이 일반 거래자들보다 훨씬 많은 이득을 챙겼다. 기본적인 기능만 수행하는 봇과 일반 거래자들은 더 작은 소수점까지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시하는 호가가 알고리듬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출처: Journal of Banking and Finance, Vol. 85, 2017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도 소형주(small cap stocks)를 대상으로 호가가격단위 관련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 그 결과 거래량은 늘었지만, 체결되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들쭉날쭉해졌다. 거래량의 증가는 대량 주문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수백만 달러어치 거래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고액의 거래가 있다고 해도 대부분 장외 거래로 진행되고 현물 시장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암호화폐의 호가가격단위가 1센트보다도 더 작다고 생각해보라. 고빈도거래(high frequency trading, HFT)를 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갈 것이고, 일반 투자자는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반대로 호가가격단위가 커지면 일반적인 개인 투자자들에게 유리할 것이다. 호가가격단위가 클수록 대형 거래도 더 자주, 쉽게 일어나고, 일반 투자자들도 이득을 볼 수 있다. 반대로 호가가격단위가 작아져 가격을 조금씩 올리고 내려가며 주문을 낼 수 있게 되면 일반적인 개인 투자자들은 손해를 피할 수 없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해야 할 고민

호가가격단위를 조정하는 일은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보고 고민해볼 만한 문제이며, 암호화폐가 정말로 금융의 새 시대를 열 만한 자질을 갖췄는지 실험해보는 데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암호화폐라고 호가가격단위가 늘 작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시카고 상품거래소(Chicago Mercantile Exchange, CME)가 비트코인 선물 상품을 취급하며 호가가격단위를 5달러로 정한 적도 있다.

호가가격단위를 크게 설정하는 데 대한 반론도 물론 없지 않다. 우선 기존 은행과 마찬가지로 비효율을 키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스프레드가 높아지면 별로 하는 일도 없는 중개인들의 수익만 올려주는 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얼핏 특별한 기능이 없어 보이는 스프레드에도 사실 중요한 목적과 기능이 있다.

이상적인 거래소란 매입가(bid)와 매수가(ask)가 가능한 한 거의 차이가 없으면서도 거래가 계속 이뤄지는 데 필요한 유동성은 계속 공급되는 시장일 것이다. 여기서 최적의 스프레드에 관한 별다른 규정은 없다. 그런데 지금 비트코인을 보면 호가가격단위가 1센트로 아주 작으므로 최고 매입가(best bid)와 최저 매도가(best offer)에서 거래가 체결될 만큼 유동성이 공급되지 않는다. 대신 1센트만 높이거나 낮춰 가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어오려는 주문만 계속 들어왔다가 철회되기를 반복할 뿐이다. 호가가격단위가 작으면 오히려 실제 거래가 덜 일어나고, 전체적으로 거래소의 효율이 낮아진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트코인의 호가가격단위를 지금의 1센트에서 50센트, 혹은 1달러로 높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좀 더 공정한 거래의 장이, 반대로 지금 1센트씩 호가를 높였다 낮추며 가격을 조작하고 있는 대형 투자자, 기관들에는 불리한 거래의 장이 열리게 될 것이다.

왜 주요 거래소들도 여전히 비트코인의 호가가격단위를 높게 조정하지 않고 있는 걸까? 2019년에는 이 질문에 대한 속시원한 답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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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뉴스페퍼민트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