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메이커가 토큰 발행사한테 보상을 받으면 안 되는 이유

등록 : 2019년 2월 15일 07:00 | 수정 : 2019년 2월 14일 17:01

* 이 글을 쓴 에릭 그라벤가드는 아테나 비트코인을 비롯한 여러 디지털 화폐 프로젝트와 레드리프 어드바이저스의 공동 창립자다.

 

나는 오랫동안 시카고의 자기자본 거래 기업들(proprietary trading firms)에 몸담았다. 내가 일한 회사들은 주로 파생상품 거래소의 마켓메이커 역할을 했다. 이들은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 시카고 상업거래소(CME), 시카고 옵션거래소(CBOE) 등 파생상품 거래소에서 옵션 계약과 선물 계약 등 상품을 구매자와 판매자가 거래할 수 있게 하고, (수요와 공급이 안정적으로 만나 가격이 형성되는) 질서 있는 시장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켓메이커의 기능과 역할, 미국 주요 거래소에서 마켓메이커가 따라야 하는 규정, 이를 바탕으로 ICO(암호화폐 공개)와 STO(증권형 토큰 발행)를 포함한 암호화폐 자산에 관한 규정을 어떻게 마련해야 좋을지 포괄적으로 논의해 보자.

 

질서 있는 시장이란?

모든 거래소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주식, 선물, 옵션, 혹은 거래 가능한 어떤 상품이건 간에 자산이 안정적으로 거래되는 ‘질서 있는 시장(orderly marketplace)’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질서란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균형이다. 즉, 구매자와 판매자가 적정가치를 바탕으로 형성된 가격을 기준 삼아 공정하고 공평하게 거래를 진행하는 시장을 질서 있는 시장이라고 부른다. 거래소가 질서 있는 시장을 구현하는 방법의 하나는 적정가치를 토대로 거래 가격을 제시하고 그 대가로 특전을 얻는 마켓메이커를 직접 지정하거나 인가하는 것이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마켓메이커는 장이 열린 내내 자산을 사고팔려는 이들에게 가격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 가격이 붙지 않은 자산은 거래될 수 없기에 시장이 설 수 없고, 자산의 가격이 불안정하면 시장도 덩달아 불안해진다. 마켓메이커가 제 역할을 해야만 거래소는 고객들에게 언제든 합리적인 가격에 자산을 사고팔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

물론 마켓메이커 없이도 장이 설 수 있고, 그때그때 가격이 형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 의무적으로 가격을 제시하고 거래에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는 한 고객들이 자산을 합리적인 가격에 거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지고, 거래소에 대한 신뢰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거래하려는 자산의 적정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AAA라는 주식이 가장 마지막에 거래된 가격이 10원이고, 현재 시장의 유동성이 어느 정도 충분하다면 나는 9.95/10.05원에 시장을 조성하고자 할 것이다. 싸게 사고 비싸게 판다는 기본 원칙을 적용하면 9.95/10.05원이란 곧 AAA주식을 9.95원에 사겠다는 주문과 10.05원에 팔겠다는 주문을 동시에 낸다는 뜻이다. 실제 주식시장이라면 워낙 빠르게 거래가 진행되므로 매도ㆍ매수 호가의 차이를 뜻하는 스프레드가 이렇게 커서는 거래가 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거래가 하루에 한 번이나 두 번만 일어난다면 이런 주문을 내도 실제 거래가 체결되고 시장이 조성될 수도 있다.

거래소 고객은 당연히 마켓메이커를 통해 거래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AAA 주식 100주를 10.01원에 사달라는 식의 지정가 주문을 낼 때도 마켓메이커를 거쳐야 한다. 마켓메이커는 주문받은 거래를 체결하기 위해 시장 안의 다른 참여자들과 내놓은 가격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구체적인 의무

앞서 마켓메이커가 해야 할 일, 즉 가격을 제시해 시장을 조성하고 거래를 체결하는 일에 대해 ‘의무(obligation)’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다만 마켓메이커와 시장에 참여하는 거래자에 관한 규정은 거래소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시카고 옵션거래소 규정 8조 7항(마켓메이커의 의무)은 마켓메이커의 마켓메이킹 의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8조 7항 b-iv

마켓메이커는 옵션 계약의 가격을 공정하게 매기기 위해 거래소가 자산별로 정한 매도ㆍ매수 호가의 차이 요건에 따라 주문을 내야 한다.

8조 7항 d-ii(B)

마켓메이커는 지정된 옵션 계약 상품의 60%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주문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위의 조항들은 시카고 옵션거래소가 마켓메이커들에게 부과하는 의무 가운데 일부로, 규정 전문을 보면 전자 거래와 플로어 거래 규정을 비롯해 옵션 거래소에서 시장을 질서 있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다. 그러나 핵심을 다시 추리면 마켓메이커의 핵심 역할은 거래소가 공정한 가격에 거래를 유치하고 질서 있는 시장을 만들 수 있도록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다.

 

토큰 시장

다른 자산과 마찬가지로 암호화폐 토큰의 적정가치를 파악해 가격을 제시하고 질서 있는 시장을 만들면 토큰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부터 말하자면 현재 암호화폐 토큰으로는 질서 있는 시장을 만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별도의 칼럼을 써야 하므로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최근 토큰을 발매하려는 이들과 토큰 관련 기술자, 토큰 거래소 등이 필자와 필자가 일하는 회사에 토큰 시장을 조성하는 마켓메이킹에 관해 문의해왔다. 증권형 토큰(STO)이든 여느 ICO 방식으로 유틸리티 토큰을 판매하겠다는 계획이든 마켓메이커가 되어주면 거래소나 토큰 발매자가 우리에게 직접 보상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우리는 이 제안을 전부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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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토큰 시장에는 마켓메이커로 참여하지 않았을까? 아니, 참여할 수 없었을까?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 두 가지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윤리적인 문제다. 증권이나 자산을 발행하는 이가 마켓메이킹에 대한 보상을 직접 하게 되면 이해상충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마켓메이킹의 핵심이 적정가치에 최대한 가깝게 주문을 내 적정가치와 거래 가격이 최대한 비슷하도록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것인데, 토큰을 발행하는 이가 마켓메이커에게 보상을 지급하면 마켓메이킹 행위는 적정가치보다 토큰 발행 주체의 이윤에 초점을 맞추게 될 소지가 있다. 우리는 이런 윤리적 딜레마를 겪게 될 것이 뻔한 제안을 수락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자명한데, 마켓메이킹의 금전적인 대가를 직접 누군가에게 받는 것은 증권업계의 규정을 명백히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업계의 자율 규제기구인 FINRA 규정 5250조는 이런 행위를 명백히 금지하고 있다. 금융권의 브로커딜러 대부분은 FINRA 회원이다.

FINRA 규정 5250조

a) FINRA 회원이나 회원과 관련 있는 사람은 증권 발행인이나 판매와 관련 있는 누구에게서도 증권 가격을 제시하거나 마켓메이커 역할을 하거나 그와 관련된 일을 한 대가로 직간접적으로 보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 규정은 보다시피 브로커딜러나 브로커딜러 관계자는 물론 마켓메이킹에 관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증권을 발행하거나 판매하는 이에게 (마켓메이킹의 대가로) 보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증권이 토큰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필자와 필자가 일하는 회사는 이 규정을 철저히 따랐을 뿐이며, STO와 ICO 업계 전체도 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헤지펀드나 개인 투자자 중에는 FINRA 회원이 아닌 이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이들이 자신이 속하지도 않은 기구의 규정을 따라야 하는 의무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공정하고 질서 있는 시장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규정이다.

지금껏 진행한 ICO 가운데 마켓메이커 역할을 한 이들에게 토큰 발매자가 직접 보상을 지급한 경우가 있을까? 필자가 여러 사람에게 들은 사례만 더해도 ICO 열풍이 불었던 2017년과 2018년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지금 당장 멈춰야 하는 관행이다. 누군가 시장에서 거래를 체결하는 것만으로 보상을 받는다면 대중에게 그 시장의 가격이 적정가치를 토대로 형성된 가격이라고 무슨 수로 설득할 수 있을까? 가격이 어느 선 이상으로 유지되면 마켓메이커가 보너스를 받았는지 의심하는 이에게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원래는 이 칼럼의 제목을 필자가 STO 업계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이메일의 제목을 그대로 따온 “마켓메이킹 가격 문의(Market Making as a Service)”로 정했었다. 이메일을 보낸 이는 필자와 필자가 일하는 회사가 토큰을 만들어 판매하려는 이들을 위해 마켓메이킹을 서비스 형식으로 제공할 의향이 있다면 자신이 관심 있는 업체들을 소개해줄 수 있다고 알려왔다. 금융권에 조금이라도 발을 담근 이라면 상상도 못 할 제안을 태연히 해오는 이를 보며, 필자는 특히 초기의 암호화폐 트레이더 가운데는 전통 금융권 경험이 없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동시에 시카고의 마켓메이커 커뮤니티라는 것이 전체 금융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보잘것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암호화폐 업계가 누구보다 발 빠르게 변화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업계라면, 실제로 기존 증권거래소의 규정이나 원칙 가운데 기본적인 윤리 강령, 공정거래, 질서 있는 시장 등 좋은 것들이 정말 ICO나 STO 시장에 적용되고 있다면, 본보기 삼아 가장 먼저 뿌리 뽑아야 할 관행이 바로 토큰 발매자나 판매자가 마켓메이킹의 대가를 직접 지급하는 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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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나 마켓메이커가 될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왜 거래소 고객이나 헤지펀드, 아니면 시장 상황을 잘 아는 트레이더도 마켓메이커가 될 수 없는 걸까?

거래소 규정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다. 이 글의 서두에 소개한 대로 거래소의 기본적인 목표는 취급하는 자산이 안정적으로 거래되는 질서 있는 시장을 만드는 데 있기에 아무에게나 마켓메이커를 맡기지 않는다. 시카고 옵션거래소의 규정 6조 8항은 제목부터 명확하다.

“거래소 고객은 마켓메이커 역할을 맡을 수 없다.”

미국의 거의 모든 거래소에는 아무나 매도ㆍ매수 호가 주문을 동시에 내 가격을 형성하고 시장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시카고 옵션거래소의 6조 8항과 같거나 비슷한 조항이 있다.

 

크립토에선 마켓메이킹을 ‘암호화폐 가격을 올리는 모든 행위’라고 이해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증권시장에선 꽤 다릅니다.📌 텔레그램에서 빠르게 코인데스크 기사를 받아보세요👉https://t.me/coindesk_korea

게시: 코인데스크코리아 2019년 1월 27일 일요일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