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은 17세기가 최고? 옛날 보험이 이더리움으로 부활한다

등록 : 2018년 8월 17일 11:25 | 수정 : 2018년 8월 17일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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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을 믿어야 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사람은 못 믿어도 코드는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휴즈 카프(Hugh Karp)의 이 발언은 암호화폐 분야에서는 늘 하는 말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CEO로 있는 넥서스 뮤추얼(Nexus Mutual)은 코드도 믿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혹은 최소한 코드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상품을 실제로 개발하고 있다.

넥서스에서 카프는 상호보험(mutual insurance)을 다시 살려내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상호보험조합은 17세기에 시작되었는데, 이익만 극대화하려는 지금의 보험사보다 계약자의 이익을 더 잘 대변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한다. 여기에 착안해 넥서스를 포함한 몇몇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블록체인 기술을 상호보험에 적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넥서스의 첫 번째 상품은 초현대적 유형의 위험을 보장하는 보험이 될 전망이다. 다름 아닌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에서 발생하는 보안 사고 위험을 보장하는 상품이다.

2016년 당시 시가로 5천만 달러에 달하던 이더(ETH) 360만여 개가 해커의 공격으로 스마트 계약에서 인출된 DAO 해킹 사건을 생각해보라. 아니면, 당시 시가로 3천만 달러에 달하던 15만 개 이상의 이더를 훔친 지난해 패리티(Parity)를 향한 다중서명 버그 공격을 떠올려 보면 보안 사고의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초부터 넥서스는 그러한 “의도되지 않은 코드의 사용”에 의한 금전적 손실로부터 고객을 보호하는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사실, 넥서스 자체도 이더리움에서 스마트 계약으로 운영된다. 카프가 코드를 믿는다는 말은 바로 스마트 계약을 믿는다는 뜻이다. 그가 보기엔 블록체인이야말로 옛날 상호보험의 장점은 살리면서, 사람 간의 불신이라는 단점을 극복할 방법이다.

카프의 이론은 사용자가 변조의 위험이 없는 이더리움 퍼블릭 블록체인에 의해서 보호되는 스마트 계약의 조건을 신뢰하리라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서로 알지 못하는 조합원이 서로 신뢰할 수 있게 되고 조합을 확장할 수 있다. 머지않아 조합원의 의견을 모아 암호화폐를 넘어 다른 종류의 재난으로 보장 영역을 확대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카프는 보험업과 블록체인 기술 분야 양쪽을 섭렵한 덕분에 인슈어테크(Insurtech)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보험계리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뎌 세계적 재보험사인 뮤니크리(Munich Re)의 최고재무책임자(CFO)까지 올랐다. 카프는 비교적 일찍 2014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법무법인 앤더슨 킬(Anderson Kill) 워싱턴D.C. 지사장인 스테판 팰리는 보험업에서 잔뼈가 굵었고, 블록체인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대표적인 인사이지만, 카프와 넥서스에 대해서만은 그답지 않게 낙관적인 평가를 했다.

“(카프처럼) 기술과 보험 전반 양쪽 모두를 잘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넥서스의 상호보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든다. 마치 과거로 돌아가서 옛날 보험을 보는 것 같다. 넥서스는 옛날의 보험 개념으로 돌아가, 적대적 모델이 아닌 공동체에 기초한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백 투더 퓨처?

더 넓게 보면, 넥서스와 몇몇 비슷한 스타트업이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서 재연하려는 옛날 상호보험 모델의 매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상호보험조합은 생명, 재산, 그리고 상해보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계약자의 이익보다 주주의 이해를 우선시하고 최대 이익만을 추구하는 지금의 보험사보다 훨씬 고객 중심적이다.

상호보험조합에서 주식회사로의 전환은 1960년대부터 지속해서 늘어났다. 1990년대에는 유럽에서 보험회사와 은행 간의 장벽을 허무는 법안이 만들어지면서 상호보험조합의 점유율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지난 수십 년간 통계학적 이점, 네트워크 효과, 효율성 개선 등으로 인해서 보험업계에서 권력과 자본이 과도하게 집중된 결과, 상호보험이 대부분 시장에서 틈새시장으로 전락했다.”

이더리스크(Etherisc)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스테판 카피스첵의 말이다.

넥서스와 마찬가지로 이더리스크도 블록체인을 이용해서 오랫동안 계속된 상호보험의 내림세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이더리스크는 이미 이더리움(의 스마트 계약)으로 미리 설정한 조건에 기초한 상품(예를 들면 허리케인이 불면 신청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보험금을 지급)을 개발했고, 아프리카의 소규모 농민같이 지금까지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 보험을 제공하기 위해 탈중앙화한 보험 공동인수를 연구해왔다.

P2P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해킹, 정보 유출, 부패, 부적절한 관리, 혹은 권력 남용 같은 문제점에 덜 취약하다고 카피스첵은 주장했다.

넥서스와 이더리스크의 공통점은 이더리움 블록체인이다. 그렇지만, 이더리움뿐만 아니라 다른 퍼블릭 블록체인에서도 같은 종류의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

딜로이트(Deloitte), 범아시아 보험 그룹인 FWD, 그리고 아직 지정하지 않은 첫 단계 보험 파트너 4개사의 합작 회사인 인미디에이트(Inmediate)가 조만간 싱가포르의 질리카(Zilliqa, ZIL) 블록체인에 둥지를 틀 예정이다.

인미디에이트의 오트베르트 데용 최고경영자(CEO)는 일단 실험적으로 소수의 보험사와 시작하기로 했지만, 목표는 원대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보험을 원래 의도한 대로 되돌릴 수 있다. 그 원래 의도란 바로 어려울 때 서로 돕자는 것이다.”

제2레이어 연구소(Layer 2 Labs)도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옛날 방식 보험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뉴욕에 있는 이 스타트업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험 시장의 토대가 된 17세기 말 런던의 에드워드 로이드(Edward Lloyd)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된 보험자 조합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제2레이어 연구소의 공동창업자 조나단 모한(Jonathan Mohan)은 이렇게 말했다.

“초기의 런던 로이즈 해상보험 조합(Lloyd’s)과 비슷한, 위험을 팔고 사는 탈중앙화한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넥서스와 마찬가지로 제2레이어 연구소도 블록체인 고유의 위험을 보장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모한은 이런 위험을 보장하는 것은 로이즈가 보험이 법의 규제를 받기 전 자발적으로 만든 민간 규제 틀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리버스 ICO’

상호보험이 코드를 이용해서 신뢰를 키우는 사실 외에도 블록체인이 넥서스 같은 인슈어테크 회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토큰화(tokenization)가 자본 조달에 유연성을 더하기 때문이다.

넥서스는 내년 초 토큰화를 계획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개 미래에 특정 솔루션을 더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ICO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대신 넥서스는 지난 4월에 투자받은 80만 유로(약 10억 원)의 종잣돈으로 플랫폼을 먼저 만들고, 이후 실제 스마트 계약을 보호하는 완전한 상품 출시와 동시에 영업을 개시할 예정이다.

넥서스는 영업 개시 후 수일에서 수주 안에 카프가 ‘리버스 ICO’라고 부르는 절차를 거쳐 조합원 권리를 토큰화할 예정이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보험을 공동 인수하는 셈이다.

“어떤 면에서는 ICO라고 볼 수 있다. 가장 큰 차이는 (투자자의) 돈이 보험 공동인수 자금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이 돈은 상호보험이 제공하는 보장을 지원하기 위한 조합원의 자금이다. 조합원은 이 자금을 대고 대신 조합원 권리를 상징하는 토큰을 받는다.”

카프의 설명이다.

넥서스는 영국 보험 시장에서 규제를 받지 않은 “임의의 상호보험”으로 불리는 모델을 우선 염두에 두고 있다. 이 모델은 조합원이 보험금을 지급할 계약상의 의무가 없다.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넥서스는 원래는 규제가 심한 보험 업계에서 빠른 행보를 이어나갈 수 있다.

넥서스는 펀딩이 종료되면, 탈중앙화한 자율조직(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으로서 조합원이 중심이 된 감독 기능을 수행하고, 조합원은 업그레이드나 기타 제안에 투표권을 행사한다. 보험료는 이더나 dai로 알려진 스테이블코인으로 불입되고, 보험금의 지급은 조합원 투표로 결정한다.

넥서스가 자신의 위험 자본을 혹시 있을지 모를 스마트 계약의 보안 사고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카프는 모든 통상적 보안 검사와 감사 이외에 긴급 중단 버튼(emergency pause button)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초기에는 회사 창립자들로 구성된 넥서스 이사회가 이 버튼을 관리하겠지만, 조합원의 투표로 지지를 받은 어느 조합원이나 기존 이사의 결정을 대체할 수 있고, 이사회는 여기에 반대할 수 없다.

또 대형 보험사가 자본을 채권이나 상업용 부동산 저당 증권에 투자하듯 넥서스의 탈중앙화한 자율조직은 보험 공동인수 자금을 운용할 예정이고, 대상은 좀 더 현대적인 투자처일 것이다. 카프는 이더리움에 만들어진 자산을 언급하면서, “어느 ERC-20 토큰에도 투자할 수 있고” 넥서스는 “탈중앙화한 교환 플랫폼인 0x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모든 거래도 자동화”했다고 밝혔다.

카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블록체인인 이더리움이 검증되는 방식을 변경하기 위해 추진 중인 계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조합원은 심지어 투자할 자산의 목록을 변경할 수 있고, 이 경우 자산은 자동으로 밸런스를 조정한다. 그리고 이더리움이 작업증명에서 지분증명으로 전환하면, 우리 자산의 큰 부분을 지분증명에 ‘투자’할 계획이다.”

보수적인 보험 업계에서 가장 놀랄 만한 혁신을 꼽으라면 아마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도입이 될 것이다. 하지만 퍼블릭 블록체인 지지자인 카프 같은 사람에게는 진정한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 어디에 있는지 아주 분명하다.

프라이빗 체인은 보험 회사에, 특히 서로의 연결성 측면에서 많은 혜택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열정과 애정을 쏟을 곳은 바로 퍼블릭 체인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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