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를 블록체인으로 해결할 수 있다?

등록 : 2019년 4월 11일 18:00 | 수정 : 2019년 4월 11일 16:55

Is It Time for a Blockchain Brexit?

이미지=Shutterstock

 

거버넌스의 위기가 찾아왔다. 비트코인 이야기가 아니다. 브렉시트, 즉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할 때 블록체인을 하드포크하듯 단번에 완전히 갈라서는 것과 소프트포크처럼 어느 정도 관계는 유지하면서 서서히 분리해가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이 문제는 기술적인 측면보다 둘 중 어느 것이 올바른 방법일지에 대한 판단부터 해야 할 사안이다. 영국은 하드 브렉시트와 소프트 브렉시트라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정치적 상황에 놓여있는데, 나는 블록체인이 이 난제를 해결하는 데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디지털 시대의 경제적 거버넌스를 제대로 구동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영국과 유럽연합 모두에 파국이 올 것이 자명하다. 지금은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브렉시트 기한은 원래 12일로 예정됐으나 막판에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영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여섯 달 뒤인 10월 31일로 연기됐다. 연기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영국과 EU는 아무런 법적 합의도 마련하지 못한 채 그야말로 혼돈 속에서 무질서하게 결별할 뻔했다.

법은 관할 구역 안에서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데, 영국이 하루아침에 유럽연합의 규정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바뀌어버리면 영국과 유럽 사이의 각종 교역과 공급망은 대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이는 그 누구도 바라는 상황이 아닐 것이다.

 

관세동맹 vs 관세 네트워크

바로 이 지점에서 블록체인의 가치가 드러난다. 블록체인은 인터넷에서 구현되는 기술인데, 인터넷 세계에는 국경도 없고, 사법 관할 구역을 명확하게 나누기도 애매하며, 국가와 같은 공동체 의식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에서도 ‘국경’이라는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지금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정치적 교착상태를 푸는 데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브렉시트와 관련해 영국과 EU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가 아일랜드 문제이다. 아일랜드는 길이 500km 국경을 사이에 두고 아일랜드(Republic of Ireland)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로 나뉘어 있다. 지금은 두 나라 모두 EU 회원국이기 때문에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역하고 있지만,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그 순간 둘 사이의 국경은 장벽을 높이고 엄격하게 통제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과거 북아일랜드 독립 문제로 유혈 사태의 악몽을 안고 사는 영국인과 아일랜드인 모두에게 이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등장한 해결책이 당분간 두 국가 사이의 국경을 열어두는 백스톱(Backstop) 조치다.

그런데 백스톱을 설치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영국 본토는 EU와 완전히 분리된 상황인데 영국령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EU 회원국과 동일한 취급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이라는 나라가 아일랜드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두 개의 규제 구역으로 나뉘게 되는 꼴이다.

브렉시트는 말 그대로 영국이 유럽의 관세동맹에서 벗어나 더 이상 EU의 법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국 방침에 따라 상품과 서비스를 자유롭게 교역하겠다는 명분에서 추진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갈등을 부르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관세를 도입하고 국경을 안전하게 통제, 관리하면서 영국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국경에 대한 관점을 바꿔보면 해답이 보인다.

 

시간의 경계

인터넷 시대의 거버넌스에서 지리적 또는 정치적 경계는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의 경계가 더 중요하다. 시간은 형체가 없고 그 어떤 경계보다도 공평하며 엄격하다. 그 누구도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의 경계’를 구현하는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나는 영국과 EU 정부 관계자들에게 이번 난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각각의 경제 활동을 발생 지점이 아니라 시간으로 구분해 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 경제 구성원들이 밑에서부터 만들어나가는 일명 ‘브렉시트 블록체인’을 구축한다면, 브렉시트의 핵심 쟁점이 되는 관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같은 구상이 성공하려면 필요한 것들이 있다. 물품 거래 시 상품 인도의 최종 확정을 위해 정부가 인가한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해야 한다. 이 스테이블코인이 널리 쓰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기업들에 블록체인 시스템을 도입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끝으로, 영국의 프로브넌스(Provenance), 덴마크의 머스크(Maersk), 프랑스의 까르푸(Carrefour) 같은 기업들이 국가간 거래에 사용해 온 기존의 디지털 솔루션을 보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블록체인 기술을 국제 교역에 접목하면, 상품이 국경을 지날 때 자동으로 결제가 이뤄지고 관세도 개별적으로 부과할 수 있다. 시간의 경계는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고, 법정화폐의 가치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기 때문에 정치적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관세를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구체적으로 유로화와 파운드화에 가치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고 처음에는 명목상 관세만 부과해 브렉시트 블록체인을 운영하면 된다. 처음에는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은 ‘관세동맹’의 모습처럼 보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관세 네트워크’의 모습을 갖춰나가게 될 것이다.

 

무턱대고 믿지말고 철저히 검증하라

영국의 EU 탈퇴 협정문에 인터넷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면 다양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이 절차를 과연 제대로 시작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는 5월 13~1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컨센서스 2019 콘퍼런스에서는 국제 거버넌스 기관들이 참가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상황의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축하는 것이 좋을지에 관한 시사점을 논의할 것이다.

아울러 5월 27~31일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국제표준화기구(ISO) 산하 TC207(블록체인 및 분산장부 기술위원회) 블록체인 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도 얻어갈 수 있는 정보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의 고견을 듣고 참고하면 현재 난항을 겪고 있는 브렉시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구상은 그저 몽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영국은 고장 난 기차를 타고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되짚어보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결국 브렉시트에서 드러난 문제의 핵심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거버넌스라고 생각한다.

당장 다음 달에 브렉시트 블록체인이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알았을 때는 일단 멈추고 상황을 살펴봐야 하며, 영국과 EU 관계자들이 위기를 겪으며 낡은 규정을 이번 기회에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면 좋겠다. 새로운 규정이 담아내야 할 핵심적인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다음의 문구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어느 나라의 주권도 이해타산에 침해될 수 없다.”


* 이 글을 쓴 핀다르 웡(Pindar Wong)은 홍콩 베리파이(VeriFi Ltd)의 회장이자 코인데스크의 자문위원이다. 1993년 홍콩에서 처음으로 인가된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를 공동설립한 인터넷 선구자이기도 하다.

번역: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