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고?

등록 : 2019년 2월 24일 10:30 | 수정 : 2019년 2월 23일 23:12

“너무 복잡해서 갈피도 못 잡고, 기술적으로 사실상 제자리걸음 아니야?”

블록체인 지지자들이 요즘 가장 자주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이런 종류의 질문일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정체되어 있으며, 이미 너무 복잡하고 비싼데다 효율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결국 블록체인 기술은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하고 사장되리라는 시선이다. 하도 이런 주장이 널리 퍼져 있고, 여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많다 보니 정체주의(stasism)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법하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이러한 정체주의는 지금 이 순간도 가치를 교환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 궁극적으로 실제 세상에 널리 쓰일 수 있는 기술을 만들고자 애쓰고 있는 수많은 엔지니어와 규제기관, 스타트업들의 노고를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블록체인을 지켜볼 만한 가치가 없는 기술로 깎아내린 브루스 슈나이어(Bruce Schneier)의 글도 똑같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슈나이어는 “수학이 곧 법이 되는”, “신뢰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곡해해 엉뚱한 곳을 공격하며,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블록체인 찬성론자들이나 인간의 자주성을 소멸시키는 시스템을 믿고 따른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칼럼의 목적은 IT 보안 업계에서 널리 존경받는 슈나이어에게 싸움을 걸려는 것이 아니다. 슈나이어와 싸움은 건설적인 결론을 내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대신 나는 블록체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독창성과 블록체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새삼 확인해준 최근의 사건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를 토대로 하고 싶은 말부터 먼저 하자면, 블록체인은 절대 정체된 산업이 아니다.

내가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참신한 프로젝트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래의 이야기를 훨씬 광범위하고 창의적인 과정의 한 예시로만 봐주면 좋겠다.

내가 소개하는 사례들이 눈에 띈 이유는 간단하다. 틀에 묶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마주하게 되는 문제는 늘 이를 다른 각도에서 참신하게 바라보고 접근함으로써 해결되곤 한다.

 

Abra: 결제가 탈중앙화되면

가장 먼저 들고 싶은 사례는 아브라(Abra)의 새로운 상품이다. 아브라는 수탁 업무는 하지 않는 비수탁 지갑 서비스로, 투자자들이 주식이나 채권, 상장지수펀드 등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의 가격 변동으로 인해 겪는 위험을 관리하고 줄여주는 서비스다. 이용료는 최저 5달러에 불과하다. 새 상품을 이용하면 스마트계약과 시세 피드, 그리고 자동화된 온체인 거래를 패키지로 묶어 단기적인 가격 변동을 예측해 매수/매도 포지션을 취하거나 프라이빗키나 자산을 위탁하지 않고도 비트코인으로 거래를 정산할 수 있다. 탈중개 투자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활짝 열어젖혔다고 할 수 있다.

제품이 성공을 거두면 규제기관이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아브라가 기존의 상품과 스왑 거래 규정을 기가 막힌 설계를 통해 우회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브라는 아브라 앱을 사용해 생성된 계약이 “실물” 비트코인으로 정산되거나 갱신되고, 아브라는 정산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고객의 프라이빗키를 맡아 보관하지도 않기 때문에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등록할 의무가 없다는 법률 자문에 따라 서비스를 (별도의 승인을 얻지 않고) 운영하고 있다.

아브라가 중요한 이유는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힘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즉 화폐가 아니라 불변의 탈중앙화 정산 시스템으로서의 비트코인을 활용하는 것이다. 전달되는 것이 “상품”이므로, 무기명 증권으로서의 비트코인도 설계에서 핵심적인 부분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브라의 실질적인 가능성은 탈중앙화한 스마트계약을 통한 청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중개인과 변호사, 규제 담당 관리가 각자 몫을 떼어가는 기존의 파생 계약에서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법률, 규제, 중개에 적잖은 비용이 든다. 그러나 합의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네트워크에서는 이러한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참신한 모델이다.

사물인터넷과 대체불가능 토큰이 결합하면 물리적인 상품과 디지털 상품을 막론하고 다양한 자산을 디지털상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아브라의 방식은 효율적인 헤징 메커니즘이자 종합적인 관점에서 투자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게다가 사실상 자산의 종류에 구애받지 않고 거래할 수 있는 자산이라면 적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Arwen: 자산 보관 걱정 필요없는 거래소

물론 기반이 되는 자산을 사고파는 이들을 연결해주고 합당한 가격에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거래소는 여전히 필요하다. 결국, 시장이 형성되려면 투자자들이 만나서 거래할 “장소”가 있어야 하고, 제시되는 “가격”은 참여자들이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암호화폐 자산을 맡아주는 거래소의 수탁 서비스를 온전히 신뢰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데 있다. 거래소는 자주 해킹을 당하고 이중 지불이 발생하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슈나이어가 사람들이 퍼블릭 블록체인을 믿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했던) 보안상의 허점이 생겨났다. CEO가 돌연 사망한 후 거래소 고객의 자금이 묶여버린 쿼드리가 거래소(QuadrigaCX)의 사례에서 극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이 거래소의 “연결” 기능은 지금처럼 활용하면서도 자산을 사는 이에게 보내는 순간까지 직접 보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것이 바로 (커먼웰스 크립토에서 이름을 바꾼) 아르웬(Arwen)의 비전이기도 하다. 아르웬은 암호화폐 거래소 쿠코인(KuCoin)이 베타 형태로 사용하는 테스트넷에 이런 기술을 도입해 시험하고 있다.

아르웬의 기술은 스마트계약, 다중서명 자산 보안, 아토믹 스왑을 한데 모아 놓은 제2 레이어 결제 솔루션이다. 코모도 플랫폼(Komodo Platform) 같은 프로젝트도 라이트닝 네트워크상에서 개발되는 다양한 탈중앙화 자산 거래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폴리매스(Polymatch), 스왐(Swarm), 시커런시(Securrency) 등이 증권토큰 판매(STO)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다양한 종류의 자산이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되고, 실시간 결제 및 정산도 정확하고 안전하게 처리되는 미래를 얼마든지 상상해볼 수 있다.

 

개발은 멈추지 않을 것

이 프로젝트들이 성공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리고 블록체인 기능의 확장성 문제도 여전히 풀지 못했다. 여기에 암호화폐 커뮤니티 일각에는 새로운 기술을 유토피아적인 시각으로 맹신하고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과대광고보다 개발에 집중한다. 이들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작업하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고 반복하고 시험을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개선해나간다. 이들이 바로 온체인과 오프체인 솔루션에 따르는 확장성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사람들이며, 독창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거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작업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 블록체인 산업은 겉보기에만 그럴듯한 과대광고가 판치는 실용적이지 않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인터넷이 14.4 kbps의 다이얼 접속 모뎀에 영원히 머무르지 않았듯, 블록체인 기술이 앞으로도 지금의 상태에서 제자리걸음만 하리라 생각한다면 이는 분명한 오산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욱더 활발히 진화를 거듭해나갈 것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