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의원들이 블록체인 입법을 위해 서울에 모였다

국제 블록체인 정책 컨퍼런스: 한국, 핀란드, 에스토니아, 대만, 일본 의원 참가

등록 : 2018년 10월 11일 18:29 | 수정 : 2018년 10월 11일 18:52

1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글로벌 블록체인 정책 컨퍼런스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스트리미 제공

 

세계 각국의 국회의원들이 서울에 모여 블록체인 관련 법과 제도 마련에 대해 논의했다. 대한민국 국회와 핀테크산업협회가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국제 블록체인 정책 컨퍼런스(GBPC 2018, Global Blockchain Policy Conference 2018) 현장이 그 무대. 국내에서 관련 정책 컨퍼런스가 열린 적은 많지만, 국회의원들이 주도해 여러 나라의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한 데 모여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일본, 핀란드, 에스토니아, 대만의 국회의원과 업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의원들은 블록체인 정책의 공감대 형성과 교류를 위한 글로벌 협의체를 결성했다. 협의체는 시장 동향 및 정책 방향 공유, 인적 교류 등의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하고, 글로벌 정책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컨퍼런스를 주최한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에 따르면 가이드라인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겼다.

  1. 암호화폐, 가상통화 등으로 혼용되는 용어를 ‘디지털 자산’으로 통칭하고, 각국의 입법례와 정책 가이드라인을 살펴 블록체인과 ICO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마련한다.
  2. ICO 정책적 허용의 기준과 원칙을 제시한다. ICO 기업의 참여자 보호 의무를 명시하고, 디지털 자산의 성격과 펀딩의 형태에 따라 차별화된 규정을 적용한다.
  3. 디지털 자산 거래소 신청 자격 및 의무를 규정한다. 고객확인, 의심거래 보고, 고액 현금거래 보고 등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 조달, 불법 가격 조작 방지를 위한 감시 시스템을 도입한다.
  4. 각국의 제도적 환경을 고려해 규제 샌드박스 및 특구 지정 등을 검토한다.

 

정 의원은 “지난 2월 암호통화 거래에 관한 법률안 발의 과정에서, 암호화폐 관련 정책은 비단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공감대와 공조가 필요한 문제라고 판단했다”고 협의체 구성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정책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배경에 대해서는 “각 국가의 법 체계와 제도 환경이 서로 달라 실제 적용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지난해 암호화폐 광풍을 겪은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 발전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최소한 이 정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신산업을 국가 정책과 제도가 억압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으고 각국의 상황을 소개했다.

마츠다이라 고이치 일본 중의원 의원은 “일본은 2017년 4월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빠른 시기에 자금결제법을 제정해 ICO를 허용하고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런데 올초 일본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체크가 대규모 해킹 공격으로 5600억 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도난당하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지금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ICO를 하려는 기업에겐 일본 암호화폐 거래소 면허를 요구하는 등 엄격한 방향으로 법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ICO의 의의와 목적, 그리고 이념을 고려해 규제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블록체인 및 산업 자율규제조직(SRO)을 위한 의회 연합을 이끌고 있는 제이슨 수 대만 국회의원은 “입법을 하는 사람들이 블록체인 산업이나 커뮤니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규제를 할 경우 기술이 가진 가능성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만 규제를 지나치게 늦게 해도 문제다. 그래서 지난 5월 블록체인 및 산업 자율규제조직(SRO)을 꾸리고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수 의원에 따르면 대만 정부는 신기술・신산업 분야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일정 기간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마련했다. 또 수도 타이페이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라이프 스타일을 실험할 수 있는 특구를 만들어 시민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더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나카타니 카즈마 일본 중의원 의원은 “일본에서도 규제 샌드박스 법안이 가결돼 식품 유통 이력 추정, 신재생에너지 매매 등 분야에 다양한 실증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보스포럼을 주최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쉴라 워렌 블록체인 총괄은 법 제도 마련을 위해 여러 나라가 협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국가들이 고립을 생각하기 쉽다. 혼자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청중에게 고양이를 품에 위태롭게 안고 있는 고릴라 사진을 보여주며 “규제는 고릴라와 비슷하다. 고릴라는 힘이 매우 세기 때문에 악의가 없이도 고양이를 꽉 눌러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 산업을 분리해 보는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나왔다. 대만의 수 의원은 “입법기관이나 정부는 암호화폐와 그 근간 기술인 블록체인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블록체인은 분명 발전을 가져오는 기술이지만, 2017년 한 해에만 170건에 이르는 프로젝트의 ICO가 진행되는 등 투기적 열기가 집중되는 것을 보면 우려가 된다. 기대치가 너무 높은 상황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시장을 안정시킬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즈마 일본 의원은 “소비자를 보호하면서 암호화폐를 포함한 블록체인 산업 진흥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