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계약 적용한 행정의 가능성은 이미 증명됐다

공공분야 블록체인 현장 르포_#4: 스웨덴과 네덜란드의 행정 자동화 실험

등록 : 2018년 10월 17일 06:40 | 수정 : 2018년 10월 16일 19:08

“우리가 진짜 해냈어요! (We actually did it!)”

매트 슈넬(Mats Snäll) 스웨덴 토지등기소(Lantmäteriet, Swedish Land Registry) 최고디지털책임자(CDO)는 자신의 강연을 이렇게 시작했다. 지난 6월 28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블록체인 엑스포 유럽 2018’에서 매트 슈넬은 ‘블록체인과 토지 등록-새로운 신뢰기계?(Blockchain and the Land Register – a new “trust machine?)‘ 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부동산 중개인과 은행이 부동산 거래를 하는데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해 거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6월 28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블록체인 엑스포 유럽 2018’에서 연사로 나선 매트 슈넬. 사진=전명산

 

스웨덴은 2년 동안 두 번의 프로토타입을 거쳐 드디어 블록체인상에서 스마트 계약을 통해 실제 부동산 데이터를 거래하는 첫 사례를 만들어냈다. 판매자와 구매자, 부동산 중개인, 등기소 직원 등 부동산 거래 관련자들이 스마트폰 앱에 로그인 해  실시간 거래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덕분에 수 주에서 수개월 걸리던 부동산 거래 시간을 몇 시간 내에 할 수 있게 됐다.

스웨덴이 개발한 부동산 거래용 앱. 2018년 6월 스웨덴은 이 앱을 통해 첫 실제 부동산 거래를 완료했다. 이미지=매트 슈넬 제공

 

필자가 2017년 각국 정부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을 조사할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개념증명(PoC, Proof of Concept) 혹은 프로토타입 단계였다. 그동안 블록체인으로 토지 정보를 관리하는 프로젝트, 법정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고 운영하는 프로젝트, 소규모 투표 시스템을 넘어 스마트 계약 기반의 투표 시스템을 구축하는 모델, 은행간 금융 거래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RTGS 모델 등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진행돼 왔는데, 2018년에 이르러 드디어 블록체인 위에서 실제 행정 데이터를 처리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스마트 계약 기반의 행정 서비스를 운영하는 또 다른 사례를 만났다. 네덜란드 정부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마를로스 폼프(Marloes Pomp)가 소개한 블록체인 기반 산모 지원 프로그램(Maternity care program)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모든 산모에게 가정 방문 산모 도우미 서비스를 지원한다. 네덜란드의 모든 시민은 의무적으로 민간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이 보험에 산모 지원 비용이 포함돼 있다. 보험료를 낼 수 없는 경우엔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산모 지원 서비스에서 소외되는 이가 없도록 한다.

그런데 정부가 민간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산모에게 비용을 지원하는 과정이 다소 복잡하다. 산모 도우미가 집에 방문해서 청소 등 여러가지 일을 하면, 도우미가 몇 시에 와서 몇 시까지 일했다는 걸 산모가 종이 서류에 확인해 준다. 이 확인서를 산모 지원 기관(Maternity care office)에 제출하면 해당 기관이 정보를 보험사에 넘긴다. 몇 주 뒤 보험사가 산모 지원 기관에 비용을 지급하면, 다시 기관이 도우미에게 돈을 준다.

산모가 도우미 방문 시마다 서류를 작성해 기관에 제출하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도우미 입장에서도 노동력을 제공하고 몇 주 뒤에야 돈을 받는 건 불합리하다.

마를로스에 따르면 최근 네덜란드의 세 개 시가 산모 도우미 비용 지원 과정에 블록체인 기술을 시범 도입했다. 복잡한 과정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산모는 앱을 통해 도우미가 일한 시간을 그때 그때 기록한다. 그러면 이 정보가 블록체인에 기록된다. 비용은 다음 날 바로 지급된다. 종이가 사라졌고, 보조금 지급에 걸리는 시간이 수 주에서 하루로 줄어들었다. 종이에 기록하고 종이를 제출하러 가는 번거로움도 없어졌다. 행정 시스템 자동화로 편의성이 비약적으로 제고된 것이다

이 서비스는 네덜란드 보험사인 VGZ와 네덜란드의 국가 건강관리소(National Health Care Institute)가 공동 운영한다. 보험사와 산모 도우미, 산모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지난 3월에는 이 서비스를 받은 첫번째 ‘블록체인 베이비’에 대한 소식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마를로스는 현재 세 개 시에서 운영 중인 이 프로그램을 연말엔 점차 더 넓은 지역에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다른 여러 종류의 보조금 지급에도 블록체인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정부 보조금을 바우처(일종의 교환권이나 쿠폰) 형태로 받는 경우, 소비자가 상점에서 바우처를 제시하면 기존에 점주는 정부에 관련 문서를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해당 문서의 유효성이 확인된 후에야 법정화폐가 점주에게 지급됐다. 반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고부터는 점주가 정부에 문서를 보낼 필요 없이 스마트 계약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바우처의 유효성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블록체인 기반의 정부 보조금 관리 서비스는 사우드호른시를 포함 3개 도시에서 제공되는데, 연말에는 암스테르담을 포함 총 15개 도시로 확장될 계획이다

아직까지 소규모 시범 운영 단계이지만, 블록체인 및 스마트 계약 기반 행정 시스템의 현실 적용 가능성은 이미 증명됐다. 위에서 언급된 사례들이 보여주듯, 블록체인 기술은 실시간 데이터 검증 및 처리로 행정 처리 속도와 사용자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더 나아가 사람의 손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던 지금까지의 행정 시스템과는 다른 형태의 행정 시스템, 즉 규칙과 절차를 스마트 계약에 내장한 자동 행정 시스템을 정착시킬 수 있다.

물론 블록체인 상에서 작동하는 스마트 계약 기능이 넘어야 할 관문은 여전히 많다. 당장 대규모 서비스 제공이 가능할지도 불확실하다. 비교적 많은 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이 이제 막 개발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 문제도 풀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산모 도우미 서비스의 경우 누가 언제 어떤 서비스를 받았는지가 블록체인에 모두 기록된다. 마를로스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자신의 데이터를 지워달라는 사용자의 항의나 요청은 없었다. 그럼에도 유럽 개인정보 보호법(GDPR)을 준수하면서 대규모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블록체인 상에서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다루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보안 문제도 넘어야 할 산 가운데 하나다. 물론 정부 프로젝트들은 통상 서비스 오픈에 앞서 보안 점검을 철저하게 하기 때문에, 해킹 사건이 쉽게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스마트 계약 기능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보다 안전한 개발 방법론을 자체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더리움의 뒤를 잇는 ‘3세대 블록체인’으로 분류되는 퍼블릭 블록체인 프로젝트들 가운데 많은 수가 안전성을 담보할 새로운 구조의 스마트 계약 개발 환경을 구축하려 애쓰고 있다. 예를 들면 테조스(Tezos)는 OCaml이라는 형식 검증(Formal verification) 언어를, 에이다(ADA)는 Haskel이라는 형식 검증 언어를 사용해 스마트 계약의 보안성을 확보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보스코인은 웹 온톨로지 언어(OWL,Web Ontology Language)와 타임드 오토마타 언어(TAL, Timed Automata Language)로 스마트 계약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새로운 구조를 개발 중이다. 카데나(Kadena) 프로젝트는 기존의 스마트 계약 소스를 수학 로직으로 변경해 코드의 논리적 오류나 버그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개발 환경 상에서 코드의 안정성이나 무결성을 확보하려는 이러한 작업들은 상당히 도전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시간도 제법 오래 걸릴 것이다. 이 외에도 블록체인 외부에 존재하는 데이터의 무결성을 담보하는 방법, 프라이버시 데이터를 다루는 방법, 대용량 데이터를 다루는 방법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블록체인 기술은 민간 영역뿐 아니라 공공 영역에서도 중개업자의 존재를 없앨 것이다. 그 때쯤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무엇보다 정부의 행정 처리 속도가 매우 빨라져 있을 것이다. 기존에는 직급을 따라 올라가며, 혹은 여러 부서나 관계 기관을 거치면서 여러 사람이 서류의 진본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면, 앞으로는 그러한 과정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처리될 것이다. 자연히 더 적은 인력을 갖고도 기존과 같은 행정 처리가 가능해 질 것이다. 기술 성숙으로 이런 변화에 속도가 붙는다면, 행정 시스템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유지관리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을 중심으로 다시 짜일 것이다. 이는 곧 인구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 방대한 공무원 조직이 대폭 축소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국가 행정 시스템의 대부분이 사람 손이 아닌 프로토콜을 통해 자동 구현되는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블록체인이 아니더라도 IT 기술을 활용한 자동화 프로세스 도입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됐다. 정부 역시 그 흐름을 피해갈 수 없다. 아직은 맹아 수준의 초기 형태일 뿐이지만, 블록체인이 행정 시스템에 가져올 변화는 시간 문제일 뿐이다.

 


전명산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사회학과 대학원을 중퇴했다. 블로그 기반 미디어인 미디어몹의 기획팀장, SK 커뮤니케이션즈 R&D 연구소 팀장, 스타트업 대표 등 20년간 IT산업 영역에서 일을 했다. 현재는 한국 첫 블록체인 프로젝트 BOScoin의 CSO로 재직 중이다. 2012년에는 원시사회부터 21세기까지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분석한 ‘국가에서 마을로’를 출판했다. 2017년에는 블록체인 기술의 사회적 의미를 분석한 ‘블록체인 거번먼트’ 한글본을, 2018년에 이 책의 영문본인 <Blockchain Government>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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