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10분의 1토막…블록체인은 아픈 만큼 성숙할까

등록 : 2019년 1월 15일 11:49 | 수정 : 2019년 1월 17일 11:09

2018년 블록체인 업계는 폭발적인 팽창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차례로 겪었다. 연초 암호화폐 가격은 최고점을 찍었고, 투기와 사기가 판을 쳤다. 블록체인을 둘러싼 섣부른 찬양과 저주에 가까운 비관이 공존했다. 이내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며 과열된 분위기는 빠르게 가라앉았다. 블록체인 무용론까지 나왔지만, 업계 종사자들은 가격 거품이 꺼지고 비로서 산업이 내실을 다지고 성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 ICO의 몰락과 ‘존버족’의 등장

2018년 암호화폐 시장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거품은 꺼지고 잔치는 끝났다. 연말 암호화폐 전체 시장의 시가총액은 연초 대비 10분의 1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www.coinmarketcap.com)에 따르면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은 2018년 1월 8일 연중 최고점이자 암호화폐 역사상 최고점인 929조원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같은 해 12월 114조원까지 떨어졌다.

암호화폐 투자 열기는 빠르게 식었다. 많은 투자자들이 헐값에 암호화폐를 팔아치우고 시장을 떠났다. 그리고 더 많은 투자자들이 ‘존버’족이 됐다. ‘존버’는 암호화폐를 팔지 않고 오를 때를 기다리며 계속 버틴다는 뜻의 업계 속어다. 영어권에서는 ‘호들(HODL, hold의 오타에서 비롯된 표현)’이라고 한다.

ICO(암호화폐 공개)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었다. 2018년 상반기까지 ICO 열풍이 이어졌지만, 하반기에는 ‘ICO의 몰락’이라는 말이 나왔다. ICO는 블록체인 개발 회사가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해 판매함으로써 사업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뜻한다. 회사 소개와 사업 아이디어를 담은 백서만으로 어렵지 않게 투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2017년 9월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ICO를 전면 금지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 금융위원회 제공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 금융위원회 제공

 

지난 10월에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ICO 허용이 가져올 불확실성은 여전하고 우리가 (ICO로 인해) 겪었던 피해는 너무나 심각하고 명백했다”라며 ICO 허용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재차 확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상반기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싱가포르 등 외국에 법인을 설립해 몇 장의 백서만으로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을 모았다는 이야기가 끊임 없이 돌았다. 너도 나도 ICO에 뛰어들던 시기다.

하지만 ICO로 자본을 모은 대다수 회사가 제대로 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블록체인 전문업체 사티스그룹은 지난 7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전체 ICO의 86%가 사기”라고 평가했다. 대다수 ICO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능력이 없거나 심지어 의지조차 없고, 아예 실패했거나 무산된 프로젝트도 7%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연말에 이르러서는 ICO를 준비해온 다수 프로젝트가 ICO를 유보하거나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 세일’만 진행했다. 규제가 마련되고 시장이 상승장으로 돌아서는 시점을 기다리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는 “ICO라는 거대한 실험의 첫 장은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라며 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누구나 쉽게 프로젝트의 초기 주주가 될 수 없는 토큰 배분 모델을 마련하고, 프로젝트에 진정한 기여를 하는 이들에게만 토큰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야한다”라고 말했다.

 

■ ‘킬러 앱’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딜로이트에서 블록체인 부문을 이끌다 현재 시티즌즈리저브라는 스타트업의 CEO를 맡고 있는 에릭 피시니는 “우리는 블록체인의 가치를 일반 소비자들에게 보여줄 제품을 찾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블록체인에 매료된 일부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대중이 사용하는 핵심 서비스, 즉 킬러 앱이 나와야한다는 것이다.

2018년 킬러 앱은 등장하지 않았다. 에릭 피니시가 “킬러 앱을 표방한 몇 개 앱을 사용해봤지만, 계속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개발자들이 사용자를 실제로 ‘죽이는’ 것을 킬러 앱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평가를 내놨을 정도다.

 

이미지=크립토키티

이미지=크립토키티

 

이는 지난 해 가장 주목받았던 블록체인 서비스들의 사용자 지표 성적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서비스 활성화 정도를 측정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표가 월간활성사용자(MAU)인데, 크립토키티 등 성공 사례로 꼽혔던 블록체인 서비스들의 월간활성사용자조차 평균 3000~4000에 그쳤다. 더구나 월간활성사용자수 상위를 기록한 서비스 중 다수가 암호화폐 발행 서비스이거나 거래 서비스로 일반 대중이 사용하는 서비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직까지 킬러 앱의 등장과 이에 따른 블록체인 대중화는 요원해 보인다. 블록체인 얼리어답터조차 블록체인 서비스를 실제로 사용하는 일이 드문 게 현실이다. 지난 11월 라인이 주최한 개발자 행사에서 이홍규 언체인 대표가 청중을 향해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dapp, 댑)을 사용해본 사람은 손을 들어달라’고 하자 손을 든 사람은 단 2명에 불과했다. 이 대표는 “댑 사용은 얼리어답터에게도 어렵다. 암호화폐 지갑을 소유한 전체 인원 중 0.025%만 댑을 사용한다”라며 “블록체인은 아직 대중적인 플랫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비들러’의 시대…가격 폭락보다 중요한 변화

 

이미지=Getty Images Bank

 

2018년 블록체인 시장은 마냥 겨울이었던 걸까? 업계에서는 불필요한 가격 거품이 꺼지고 사기꾼이 빠져나가 시장과 산업이 성숙해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미국 <코인데스크> 2018년 2분기 블록체인 보고서에 등장하는 “호들러(HODLer)에게는 무척 괴로웠을 시간이었지만, 비들러(BUIDLer)에게는 상당히 생산적인 시간이었다”라는 분석이다. ‘비들러’는 존버족을 뜻하는 호들러에 빗대어 암호화폐를 투자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블록체인 기술 전반을 익혀 유용한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뜻한다.

투기 관점에 벗어나 시선을 넓히면 지난 한 해 블록체인 산업은 더디지만 꾸준히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암호화폐와 ICO를 기존 법률 테두리 안에 안착시키려는 논의가 시작됐고, 기술적으로 주목할 만한 성과가 나왔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 사장 출신으로 기관 투자자들을 상대로 블록체인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옴니엑스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실라 베어는 “비트코인 가격 폭락에도 암호화폐 거래 환경은 계속 개선되고 성숙했다”라며 “그 결과 기관투자자들의 관심도 점점 더 높아졌다. 심지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중 한 곳인)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까지 암호화폐 산업에 뛰어들었다”라고 말했다.

에릭 피니시는 “가격 폭락만 보다가는 진짜 중요한 변화를 놓칠 수 있다”라며 “증권형 토큰, 스테이블코인 등 새로운 토큰들이 등장해 블록체인 커뮤니티에 아직 활력이 넘친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고 전통적인 금융 기관과 새로운 기술 기업들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인프라에 상당한 투자했다는 점에서 이를 토대로 쌓아 올릴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2018년을 평가했다.

기술적인 진전도 있었다. 비트코인에서는 ‘라이트닝 네트워크‘ 기술이 실제로 비트코인 거래 속도를 높여 확장성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게 입증됐다. 이더리움에서도 데이터를 쪼개 저장하는 ‘샤딩’ 기술에 대한 개념증명이 이뤄지는 등 확장성 개선을 위한 연구가 진행됐다.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1월15일치와 인터넷한겨레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