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 반핵운동가 필 짐머만에게 진 빚에 대하여

등록 : 2018년 7월 17일 14:27 | 수정 : 2018년 7월 18일 15:59

1996년 미 법무부가 필 짐머만에 대한 사건을 종결한 직후 덴버포스트(Helen Davis, Denver Post)에 실린 사진. philzimmermann.com

 

최근 영광스럽게도 암호화 기술의 선구자 필 짐머만(Phil Zimmermann)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짐머만은 암호화 소프트웨어 PGP를 만들어 오픈소스로 공개했던 인물이다.

짐머만이 “pretty good privacy”의 약자를 딴 PGP를 개발하게 된 동기는 다분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이었다. PGP는 실제로 미국이라는 체제를 위협할만큼 위험한 메커니즘인 동시에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생각하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야 할 기술이었다.

이 이야기는 암호화폐 커뮤니티 안에서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다.

때는 1980년대 말. 소련이 무너지면서 소련이 보유했던 핵무기도 이 기회에 폐기해야 한다는 군축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이어졌다. 당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짐머만도 이 운동에 깊이 몸담았고, 칼 세이건, 다니엘 엘스버리와 마찬가지로 감옥에 간 적도 있다. 짐머만은 핵 군축 운동세력 안에서 연설가이자 조직책으로 통했다.

시민적 자유를 누구보다 옹호했던 짐머만은 인류의 역사는 곧 다른 이와 신뢰를 쌓아 비밀을 공유하고 정치적인 동기를 바탕으로 연대해 조직을 만들어 온 역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사적인 대화를 원하고, 제삼자 누구도 엿들을 수 없는 완벽하게 비밀스러운 대화를 꿈꿔왔다. 짐머만은 바로 이러한 근원적인 자유를 국경을 넘어 단둘이 소통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확대하고자 했다.

그는 군축 운동을 조직한 경험을 바탕으로 표현의 자유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정립했다. PGP는 특히 반(反)핵무기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들을 위해 개발된 기술이었다. 그는 2년 동안 자산을 여섯 번이나 저당 잡히고 돈을 빌려 PGP를 개발했는데, 하도 은행에 가서 입씨름을 한 덕분에 은행에 가서 처지를 설명하고 대출을 연장하거나 추가로 받는 데 도사가 됐을 정도였다. 어쨌든 그는 끈질기게 개발에 매달린 끝에 PGP를 완성했다.

그때만 해도 미국 정부는 강력한 암호 기술을 지닌 소프트웨어를 군수품으로 분류해 미국 밖으로 수출하거나 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렇다. 암호 기술이 미사일이나 전투기, 최신 무기와 같은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이상주의자였던 짐머만은 용기를 내 이 법을 정면으로 어겼다. 법보다 위에 있어야 할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직접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가 말한 인간의 권리란 바로 사적인 대화를 보장받는 것, 즉 표현의 자유였다.

미국 정부는 즉각 짐머만에게 범죄 혐의를 적용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짐머만은 지금 와서 보면 그 당시 정부와 싸웠던 것이 일종의 훈장처럼 남아 이후 자신이 하는 일의 소중한 발판이 되기는 했지만, 그때는 너무나 힘들었고 변호사들과 함께 어떻게 해서든 감옥에서 풀려날 길을 찾고자 정말 몇 년을 마음 졸이며 고생했다고 술회했다.

법리 공방

한 콘퍼런스 행사에서 MIT 출판사가 짐머만에게 PGP 사용 설명서를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써서 책으로 내자는 제안을 했다. 짐머만은 즉각 이렇게 답했다.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MIT 출판사에서 두 번째 책도 같이 내주겠다고 약속해주시죠.”

도대체 무슨 소리였을까? 짐머만은 앞서 필 칸(Phil Karn)에게 일어났던 일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브루스 슈니에(Bruce Schnier)의 책 <응용 암호학(Applied Cryptography)>을 수출하려던 칸은 먼저 미국 국무부 무역통상본부에 책을 수출해도 되는지 문의했다. 책에는 암호 알고리듬에 관한 설명과 함께 여러 가지 코드가 예시로 들어 있었고, 암호학 분야에서는 사실상 교과서나 다름없을 만큼 유명한 책이었다.

국무부도 의아한 일이었다. 왜 책을 수출하면서 원자재 수출에나 필요한 수출 허가서를 받으려 하는 걸까? 국무부는 미국에는 책을 수출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답변했다. 책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는 확인도 하지 않았다. 미국 수정헌법 1조인 표현의 자유에 따라 출판, 언론의 자유도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고, 책도 물론 여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어 필 칸은 국무부 무역통상본부에 책에 나온 것과 똑같은 코드를 담은 파일을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 마찬가지로 수출해도 되는지 물었다. 국무부는 이번에도 고민 없이 답을 내놓았다. 다만 결론이 달랐다. 책은 내용도 보지 않고 수출해도 좋다고 했던 국무부가 플로피 디스크는 그 안에 담긴 파일이 국가 안보상 수출 금지 품목에 포함된 암호 기술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칸은 이렇게 명백한 모순을 고발했고, 끝내 법정 공방에서 이겼다.

짐머만이 MIT 출판사 관계자에게 두 번째 책을 언급한 것도 바로 칸에게 일어났던 일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짐머만이 생각한 두 번째 책은 바로 PGP의 코드만 담은 책이었다. MIT 출판사도 동의했다. 이 책에는 PGP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이용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겼다. 각종 코드와 생성 파일, 구성 파일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다 담았다.

그리고 짐머만과 MIT 출판사는 필 칸이 했던 대로 수출 허가를 신청했다. 책은 수출해도 좋지만, 코드는 수출할 수 없다고 답했던 정부는 금세 자신들이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수출을 금지하면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법정 공방을 다시 벌여야 하고, 패소하면 앞으로 암호 기술 자체를 규제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반대로 짐머만이 암호 코드를 빼곡히 담은 책을 수출해도 좋다고 허락하면 결국 힘 한 번 못 써보고 짐머만의 완승으로 상황이 종료되는 셈이었다.

짐머만과 MIT 출판사는 외통수에 빠진 상대방의 답변을 느긋하게 기다렸다. 법리적으로 빠져나갈 틈이 전혀 없는 완벽한 덫이었다. 정부는 끝내 답을 내리지 않고, 슬그머니 조사를 종결했다.

짐머만의 유산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암호 기술과 관련 제품은 계속 발전했고, 이제는 인류의 산업과 경제 전반에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고 있다. 짐머만은 PGP 이후에도 중요한 암호 기술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스마트폰이나 데스크톱 컴퓨터의 메시지 프로그램에 필요한 음성 암호화 기술에 널리 쓰이는 ZRTP 개발을 비롯해 중요한 기술 표준을 제정하는 데 이바지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암호 기술과 코드를 미국 정부의 손아귀에서 해방시켜 이상주의로 무장한 프로그래머들에게 넘긴 데는 그의 용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오늘날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의 삶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PGP가 세상에 나온 이듬해인 1992년, 암호 기술 무정부주의 선언이 나왔다. 우리에게 주어진 암호 기술을 국가와 중앙은행에 맞서 인류를 해방하는 데 사용하자는 내용이었다. 이어 1993년에는 사이퍼펑크(cypherpunk) 선언이 나왔다. 디지털 화폐에 관한 수많은 아이디어가 싹트는 데 밑거름이 된 철학이 여기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퍼펑크는 궁극적으로 비트코인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컴퓨터의 역사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을 그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던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일이었다.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내가 충실히 옮겼다고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 소개한 이야기라면 그럭저럭 PGP의 중요성과 기술을 통해 자유와 해방을 꿈꾼 운동이 남긴 유산에 관한 핵심은 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아미르 타키(Amir Taaki)는 비트코인을 응용한 첫 번째 알트코인 립비트코인(libbitcoin)을 만들었고, 일렉트럼(Electrum), 다크월렛(Darkwallet) 등 암호화폐 지갑을 만들어왔다. 이밖에 프라이버시나 탈중앙화 기술에 관한 일도 여러 가지 맡았다. 현재 바르셀로나에서 혁신적인 기술 관련 프로젝트에서 일할 수 있는 해커를 훈련하는 해커 양성소를 준비하고 있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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