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10년, 그리고 ‘내로우뱅킹’의 가능성

등록 : 2019년 1월 22일 07:05 | 수정 : 2019년 1월 22일 07:17

이미지=Getty Images Bank

코인데스크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이 지나온 2018년을 돌아보고 새해를 전망하는 전문가들의 글을 모아 ‘2018 Year in Review’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을 쓴 마시모 모리니는 세계은행  금융 기관과 유수의 투자은행을 거쳤으며, 블록체인 관련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2018 year in review

 

암호화폐 커뮤니티는 지난 한 해 비트코인 백서 탄생 10주년에 초점을 맞춰 여러 가지를 기념했지만, 사실 2018년은 2008년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래 열 번째 맞는 해이기도 했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함께 시작된 금융위기를 겪으며 사람들은 은행과 금융 기관이 생각만큼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형 금융기관은 고객들이 맡긴 어마어마한 자금을 불확실성이 대단히 높은 금융시장에 투자하면서 정작 자신들만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는 등 이른바 고객을 위한 리스크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 후 10년간 일어난 일을 한 번 돌아보자. 은행이 사라졌나? 상업은행의 자금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글로벌 암호화폐로 대체되었나? 위기를 일으킨 금융 시장은 별도의 신뢰 장치를 마련하지 않아도 되는 스마트계약 네트워크로 대체되었나? 그렇지 않다. 은행은 버젓이 살아남았고 금융시장도 여전히 건재하다.

은행과 금융기관은 블록체인이 기존 프로세스에 안전성과 편리함을 더해주는 마법의 소프트웨어가 아니며, 기존의 화폐를 완전히 대체할 만한 새로운 디지털 황금도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문제는 금융기관이 지난 10년 동안 분산 시스템이나 암호기술과 금융, 합의 알고리듬 등에 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널리 이뤄졌다는 점도 간과해버렸다는 데 있다.

2019년은 과연 이 새로운 개념들이 금융 시스템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은행이 마침내 이해하는 해로 기록될 수도 있다. 지난 10년간 금융시장은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치렀다.

은행은 고객의 예금을 이자를 받고 다른 곳에 빌려준다. 신용을 담보로 돈을 맡아 관리, 운용하는 은행은 전체 경제 시스템 내에서 돈이 순환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은행이 경제 전반에 유동성을 제공하고 가치를 이전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게 할 만한 구조적인 장치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은행은 강도 높은 규제를 받게 되었고, 운영 비용이 늘어났다. 금융 기관의 역할에서 비롯되는, 전에 없던 위험 요소가 새로 불거지면서 투자와 예금을 유치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 결과 은행은 중앙화된 조직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중앙은행을 비롯한 각종 중앙화 기관이 은행을 관리하고, 규제 기관은 채권, 주식이나 파생상품 시장 등 금융 시장을 관리하고 있다. 규제 기관은 모두가 따를 수 있는 투명한 표준을 개발하고 은행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시장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중앙화만큼 손쉽고 좋은 방법은 없다고 믿었다.

중앙에서 모든 것을 관리하고 관장하는 시스템의 폐해도 있다. 한 곳이 무너지면 시스템 전체가 마비된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도 금융 기관이라면 무조건 긍정적으로 높은 평가를 하던 관행에서 벗어났고, 금융업계에서 하던 일의 상당 부분을 인터넷 회사가 맡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 많은 인터넷 회사가 웬만한 은행보다 시가총액이 훨씬 커지게 되었다.

 

암호화폐 이후 10년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등장한 후 지난 10년간 전통적인 금융 분야는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여기에 답하려면 블록체인의 기원부터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저 소프트웨어”에 불과하다는 너무 비판적인 시선도, “낙원으로 가는 열쇠”라는 식의 근거없는 찬양도 배제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암호화폐의 시작은 사토시 백서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현재 실현된 아이디어 자체는 어쩌면 30년도 더 전에 생겨났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비트코인은 완벽을 구현하는 마술이 아니다. 사토시는 인터넷이 가치를 저장하고 이전하는 데 필요한 근본적인 기능 몇 가지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대표적으로 인터넷에서는 이용자의 신원을 드러내게 하고 확인할 수 있는 강제적인 방법이 없다. 그래서 개인이나 법인이 모든 서비스 사용자의 신원을 장악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사토시가 해결의 실마리를 본 문제도 바로 이것이었다.

과거 은행이 더 많은 위험을 떠안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그저 운용하는 자금을 늘리는 데만 온 힘을 쏟고 있을 때 내로우뱅킹(Narrow Banking)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말로는 “협의의 은행” 혹은 “순수은행”이라고도 한다. 내로우뱅킹이 보편화돼 있었다면 지난 10년간 금융 시장에서 발생했던 많은 문제를 피해갔을 것이다. 내로우뱅킹에서 은행은 예금을 유치해 수수료를 얻고, 예금은 단기 국공채 등 안전하고 유동성 높은 자산에만 투자함으로써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는 본연의 역할만 수행한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상업은행이 예치한 예금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전자화폐도 얼마든지 유통,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눈으로 확인했다. 은행(과 중앙의 금융 기관)의 재무제표가 없더라도 화폐가 통용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암호화폐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 신용을 확보하는 데 너무 주력한 나머지 균형을 잃은 은행을 본래의 중개인 역할에 집중하게 할 수 있다. 중개인 역할이란 돈이 있는 사람들의 투자 위험을 관리해주면서 디지털 경제를 운용하는 토대를 제공하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이 방대한 중앙의 장부 없이도 가능해졌다는 데 지난 10년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다.

 

암호화폐, 금융 시장에 어떻게 녹아들 수 있을까?

그렇다. 블록체인 기술은 은행이 본연의 중개인 역할을 재개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중개 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굴러가는 시스템이라는 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다.

오늘날 은행에서 비롯되는 구조적인 위험은 은행의 중개 활동 때문이 아니라 신용을 확보하는 데서 은행이 취하는 “기술적인” 역할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기술만으로는 위기를 피할 수 없지만, 내로우뱅킹으로 돌아가는 데 기술을 활용한다면 이는 위기가 발생해도 퍼져나가는 속도와 범위를 줄이고 막을 수 있다. 내로우뱅킹에서는 전체 금융 시장의 경기가 예금자의 돈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금융 기관에서 분산 네트워크로 관리하는 암호 방식 디지털 화폐를 사용하면 금융 시장의 구조적인 리스크를 추가적으로 줄일 수도 있다.

오늘날 파생상품이나 증권시장의 구조적인 리스크는 지난 10년 동안의 기술 중앙화와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언급했듯 중앙화 인프라 의존도가 금융위기 이후로 크게 증가했다. 은행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려고, 금융 시장 투명성을 증대하려고, 그리고 표준화와 리스크 관리 조율을 돕기 위해서였다.

금융위기 이후 규제기관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중앙화가 유일한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금융시장이 구조적인 위험에 더 취약해질 수도 있더라도 말이다.

10년 후에야 규제기관들은 대안을 발견했다. 스마트계약을 필두로 한 탈중앙화 네트워크도 투명성, 표준화, 네트워크 노드를 통해 자원을 총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던 방식으로 리스크를 관리하고 줄일 수 있다.

아직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는 확장성이나 프라이버시 등의 문제에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지만 탈중앙화 네트워크는 계속해서 기술적인 진화를 거듭해 왔다.

따라서 앞으로의 몇 년은 인식을 제고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초기 암호화폐와 토큰이 금융산업에 빠르고 쉬운 해결방안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기존 사업 모델에 단순히 블록체인 기술을 탑재하는 것도 해결 방안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배운 교훈을 의미 있게 사용하고 금융 시장과 암호화폐를 융합해 새롭고 더 안전한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번역: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