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이과적 소양과 문과적 감성 모두 요구하는 게 또 있을까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릴레이 기고_#3] 정우현 아톰릭스컨설팅 대표

등록 : 2018년 10월 25일 19:04 | 수정 : 2018년 10월 25일 19:06

오는 10월31일이면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백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가 세상에 나온지 꼭 10년이 됩니다. 9페이지 짜리 짧은 논문이 지난 10년 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비트코인 백서 공개 10주년을 기념해 한국 블록체인계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의 글을 모아 연재합니다. 세 번째 글은 정우현 아톰릭스컨설팅 대표가 보내온 글입니다. 재미사업가인 정 대표는 수많은 블록체인 전문가들을 양산한  2014년 서울이더리움밋업을 공동 조직했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atomrigs’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기술적 변화가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가 있을까?

어떤 관심과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냐에 따라 개인차가 많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현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그 영향력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불과 20여년 동안 인터넷과 10여년 모바일 기술이 초래한 삶의 변화만 해도 막대하지만, 우리는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과 더불어 맞이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적 금융위기의 시기들도 기술적 격동기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우리들의 삶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그랬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그러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삶도 이러한 변화의 파도에 휩쓸려 계획하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도 한 것 같다.

2008년 금융위기는 한참 공격적인 확장을 하고 있던 비지니스의 운명을 갑자기 바꾸어 놓았고, 금융위기를 배경으로 탄생한 비트코인은 몇 년 후 내 삶의 줄기를 다시 한 번 휘젓기 시작했다.

정우현 아톰릭스컨설팅 대표. 사진=정우현 제공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어본 것은 2011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소수 해커들에 의한 취미 수준의 프로젝트로 간주하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3년 봄, 키프로스 금융위기 사태로 인해 비트코인 가격이 폭등하면서 좀 더 살펴보기 시작했다. 주로 무역 또는 해외결제 수단으로서의 기능적 측면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백서와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읽어보기 시작하면서, 이 기술이 미칠 영향력이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막대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코인을 채굴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형식은 다르지만, 금광에서 금을 채굴하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돈을 받고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으로도 보였다. 당시 이미 비트코인은 일반 CPU나 GPU로 채굴할 수 없는 정도의 채굴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비트코인을 포크해서 만든 여러 아류 코인들은 GPU로 쉽게 채굴할 수 있었고, 이러한 알트코인들을 채굴해서 비트코인으로 교환하면 결국 비트코인을 채굴한 것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역사에 있어서 채굴이 가지는 독특한 역할은 단순히 체인을 유지하기 수단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커뮤니티 자체를 만드는 역할을 했고, 참여자들에게 자신들이 네크워크를 유지하는 주체라는 의식을 만들어 주었고, 그리고 법정화폐를 사용하지 않고도 코인을 얻을 수 있는 수단, 코인이 뭔가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PoW(작업증명) 알고리듬이 채굴 해시파워의 중앙화, 에너지 낭비, 느린 블록 생성주기 등의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암호화폐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결정적 역할을 과소평가하기는 힘들다.

비트코인에 대한 연구를 할수록 점점 더 몰입하게 되었고, 이것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탈중앙화 논리가 어떻게, 사회, 경제, 정치 모든 영역에 걸쳐서 매우 강력하게 구축된 독점적 권력과 파워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든 중앙화된 조직과 권력을 전부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 갈수록 독점화되어 가고 있는 자본과 이를 둘러싼 권력구조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비트코인은 매우 신선한 “반항”이었다. 중립적인 기술로서의 수단적 가치보다는, 철학적 인문학적 문제의식으로서 비트코인을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소위 이과적 소양과 문과적 감성이 종합적으로 필요한 이런 대상을 다시 또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매우 매력적인 대상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개별적인 암호화폐의 하나로서 비트코인은 매우 중대한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완벽하거나, 자기 완결적인 기술은 아니라고 보았다. 더욱 많은 개선과 확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고, 그러한 개선의 노력을 가장 잘 체계화한 프로젝트가 이더리움이었고, 그 이후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더리움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나에게 주었던 영향은 내 삶의 중심 축을 흔들만큼 막대한 것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으며, 이를 개발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많은 개발팀과 커뮤니티 구성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비트코인을 통해 처음 바라본 세상에 대한 설레임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지지하는 사람들중에도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때로는 이들 간에 심각한 논쟁과 대립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러한 과정 자체가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생태계의 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릴레이 기고]

#1_김진화 코빗 공동창업자: 사토시 페이퍼 10년, 그리고 ‘래디컬 마켓’

#2_김재윤 디사이퍼 회장: 당신의 블록체인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