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에 캘리포니아 저택 주인이 되는 방법

이더리움 블록체인 기반 국제 부동산 거래 플랫폼 '프로피'

등록 : 2018년 11월 27일 15:09 | 수정 : 2018년 11월 27일 15:53

서울에 있는 김아무개 씨가 샌프란시스코의 주택을 매입하려면 몇 명의 중개인을 거쳐야 할까?

“최대 열다섯 명.”

노홍균 프로피 한국 대표의 말이다.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에서 열린 밋업에서 노 대표는 기존 국제 부동산 거래 시장의 비효율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국제 부동산 거래 비용의 20% 정도가 현지 공인중개사, 법무법인, 공증인 등을 찾는 데 들어간다. 거래가 완료되기까지 길게는 한두 달씩 걸린다. 그런데도 국제 부동산 시장에선 매년 217조달러 어치의 거래가 이뤄진다. 시장 규모도 매년 13%씩 커지고 있다. 기존의 비효율적인 거래 방식으로도 이 정도 규모인데,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는 것만큼 거래를 쉽게 하면 시장 규모를 훨씬 키울 수 있다고 봤다.”

프로피(Propy)는 블록체인 기반 국제 부동산 거래 플랫폼이다. 2015년 미국에서 설립됐다. 프로피는 지난해 암호화폐 공개(ICO)를 통해 150만달러를 모았다. 전 세계에서 6000여 명이 프로(PRO) 토큰 구매에 참여했다.

그럼 프로피 플랫폼을 이용하면 국제 거래 수수료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거래에 걸리는 기간은 얼마나 단축될까? 노 대표는 “거래 당사자가 전체 거래 비용의 0.2~3%만 부담하면 된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 기능을 활용하면 빠르면 이틀 안에도 거래 성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프로피의 거래 원리와 절차. 이미지=프로피 제공

거래의 아홉 단계

프로피는 15단계에 이르던 국제 부동산 거래 과정을 아홉 단계로 단축했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 기능을 활용했다.

① 예약: 우선 프로피 웹사이트에 접속해 매물을 살핀다. 대중교통 접근성, 보행 친화성, 학군, 가구 비치 여부 등을 두루 따져볼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매물을 발견하면 ‘Ready to Purchase’ 버튼을 눌러 구매를 예약한다. ‘Buy with Crypto’ 아이콘이 표기된 매물은 이더리움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로도 구매할 수 있다.

'Buy with Crypto' 아이콘이 붙은 매물은 암호화폐로 거래할 수 있다. 이미지=프로피 웹사이트 갈무리

‘Buy with Crypto’ 아이콘이 붙은 매물은 암호화폐로 거래할 수 있다. 이미지=프로피 웹사이트 갈무리

② 초대: 판매자 측 공인중개사가 거래 참여자들을 프로피 플랫폼으로 초대한다. 여기서 거래 참여자란 1) 판매자 2) 판매자 측 공인중개사 3) 구매자 4) 구매자 측 공인중개사 5) 공증인을 뜻한다.

③ 구매 의사 확정: 구매자와 판매자, 그리고 양측 공인중개사가 구매 의사 동의서에 서명한다. 각 참여의 서명이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기록된다.

④ 공증: 공증인이 계약서를 올리면 구매자와 판매자가 서명한다. 이 서명 역시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저장된다.

⑤ 등기: 판매자 측 공인중개사가 발송한 소유권 이전 등기 서류에 각 거래 참여자가 서명한다.

⑥ 거래 결산: 공증인이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각각 거래 결산서를 보내고, 양측이 서명한다.

⑦ 지불: 현지 법정 통화,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미리 약속한 지불 수단으로 거래 대금을 치른다. ‘직방’, ‘다방’ 등 기존 부동산 거래 중개 플랫폼이 단순히 매물을 소개하는 데 그친다면, 프로피는 플랫폼 안에서 결제까지 가능하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⑧ 추가 서류 서명: 필요시 추가 서류에 서명한다.

⑨ 거래 완료: 모든 서류가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올라가고, 소유권이 최종적으로 구매자에게 이전된다. 블록체인에 기록된 거래 내역은 누구든 볼 수 있다. 다만 계약서, 등기부등본 등 암호화 후 저장된 데이터는 개인키를 소유한 사람만 열람할 수 있다.

노 대표는 “지난해 우크라이나에서 이더리움으로 주택을 거래한 첫 사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열다섯 건의 거래가 프로피 플랫폼을 통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이뤄진 열다섯 건 모두 이더리움과 프로(PRO) 코인 등 암호화폐로 대금 지불이 이뤄졌다. 이 중 열네 건은 프로피가 개념 증명(Proof of Concept)을 위해, 현지 공증인과 공인중개사 등을 직접 섭외한 파일럿 거래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알아서 프로피 플랫폼을 찾아와 미 캘리포니아의 주택을 거래한 사례도 한 건 있다. 노 대표는 “프로피의 개입 없이 첫 거래가 이뤄졌다는 점을 고무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프로피에 따르면 2018년 11월 현재 세 건의 거래가 추가 진행 중이다. 노 대표는 “내년 1분기까지 3천만달러어치의 누적 거래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한 주택이 프로피 플랫폼을 통해 최초로 거래됐다. 우크라이나 출신 개발자 마크 긴스버그가 자신의 아파트를 IT 전문지 <테크크런치>의 마이클 애링턴 창업자에게 판매했다. (사진 왼쪽부터) 나탈릭 카라야네바 프로피 공동창업자,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시자, 마크 긴스버그, 마이클 애링턴 테크크런치 창업자가 주택 열쇠와 등기부등본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프로피 제공

 

이더리움에 남은 거래 기록, 법적 효력 인정될까?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을 통해 이뤄진 부동산 거래가 중개인의 개입 없이 가능하게 하려면 블록체인 상의 거래 기록이 법적 증거 능력을 가져야 한다. 프로피 측은 이를 위해 각국 정부와 업무 협약을 맺고 있다. 지난해 9월 프로피는 우크라이나 법무부와 “법적 분쟁 발생 시 블록체인 상의 거래 기록의 증거 효력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업무 협약을 맺었다. 미 캘리포니아주와 버몬트주에선 관련 입법이 이뤄졌다.

프로피 측은 제주특별자치도의 블록체인 부동산 거래 시범사업에도 기술 자문을 통해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특별자치도의 블록체인 부동산 거래 시범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6월 발표한 블록체인 기술 발전전략의 핵심 추진과제인 ‘6대 공공시범사업’ 가운데 하나다. 국내 시범사업에서는 금융기관의 토지 대장 열람만 블록체인상에서 가능하고, 등기 이전 등 이후 과정은 기존과 같은 방법으로 이뤄진다.

노 대표는 “아직 관련 당국과 업무 협약을 맺지 않은 곳에서 거래하려면 프로피가 현지 중개인을 직접 찾아야 한다. 시간적, 금전적 손실이 있다. 전 세계에 프로피 시스템이 깔려, 프로피 직원의 개입 없이도 부동산 거래가 P2P(Peer to peer, 개인 대 개인)로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현재 프로피는 거래 한 건당 직원 한 명을 붙여 전체 과정을 관리한다. 점차 이 역할을 줄이겠다는 이야기다.

암호화폐 가격 날뛰어도 블록체인 거래 매력적인 이유

중개 수수료와 더불어 부동산과 같은 고액 자산의 국제 거래가 번거로운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환율이다. 거래 시작부터 완료까지 걸리는 기간이 길어, 도중에 환율이 변동할 경우 거래로 인한 실제 손익과 사전에 예상한 손익의 규모가 다를 수 있다.

프로피는 이로 인한 거래 당사자들 간 분쟁을 막기 위해 블록체인에 ‘타임 스탬프’가 찍힌 시점의 환율로 거래한다. 만약 판매자와 구매자가 외환이 아닌 이더리움이나 비트코인, 프로 코인 등 암호화폐로 거래하기로 하면, 외환 환전 수수료 및 환율 변동으로 인한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는 게 프로피 측이 내세우는 장점이다. 표본이 아직 열다섯 건 뿐이긴 하지만, 실제로 판매자가 암호화폐도 받는다고 알린 매물의 경우 거래가 더 빨리 성사됐다고 노 대표는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은 외환보다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성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암호화폐 비트코인 가격만 해도 지난 한 주 동안에만 1BTC당 6000달러 선과 4000달러 선 사이를 오갔다. 그런데도 블록체인을 통한 국제 거래에 이점이 있다면 뭘까?

노홍균 대표는 “암호화폐 투자로 수익을 많이 냈지만 현금화가 어려운 경우에도 바로 부동산과 같은 현물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비트코인 투자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정부 당국의 규제로 이를 현금화하지 못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면 이해가 쉽다.

법 제도와의 충돌 피하기 위한 노력

그렇다면 오히려 블록체인상의 부동산 거래가 탈세나 자금세탁 등에 이용될 우려는 없을까? 노홍균 대표는 이와 관련해 “프로피는 블록체인 신원 확인(KYC, Know Your Customer) 전문 기업 ‘시빅(Civic)’과 파트너십을 맺어 고객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 또 현지의 공증인들 역시 거래 당사자들의 신원을 보증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럼 또다시 의문이 생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블록체인에 부동산 거래 기록을 남기는 게 위험하진 않을까? 특히 실거주를 위한 목적의 구매라면, 내 신원 정보와 집 주소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건 아닐까? 노 대표는 “거래 당사자의 신원 정보, 계좌번호, 매물의 주소, 계약서 파일 등은 모두 암호화 처리를 거쳐 별도 서버에 저장된다. 거래 당사자와 공증인 등이 발급받은 프라이빗 키 없이는 민감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ICO 기업 두 곳에 증권법을 적용해 토큰 판매 정지 명령을 내리는 등 각국 정부의 규제가 엄격해지는 상황을 의식한 발언도 있었다. 노 대표는 “프로피는 토큰 세일 당시부터 프로(PRO) 토큰은 시큐리티 토큰이 아닌 거래 플랫폼 이용료 지불을 위한 유틸리티 토큰이라고 강조했다. 토큰 가격 상승으로 수익을 창출할 목적으로 프로 토큰을 쓰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홍균 프로피 한국 대표가 11월 24일 서울 구글캠퍼스에서 열린 밋업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정인선 기자

기존 업계 종사자와 공생 가능할까

이날 열린 밋업 참가자들 가운데는 부동산 중개업 종사자들도 있었다. 스스로 업계 종사자라고 소개한 한 남성은 “프로피가 중개인의 역할을 없앤다고 하는데, 그럼 부동산 관련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라고 물었다. 노 대표는 “절차 간소화로 국제 부동산 거래 시장의 파이가 커진다면 오히려 관련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현재 한 달에 서너 건에 불과한 거래 건수가 열 건, 스무 건으로 늘어난다고 상상해 보라”고 말했다.

노홍균 대표는 “다만 기존 중개인들의 기술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한국의 부동산 공인중개사 관련 이익단체에 업무 협력을 위해 문의했으나, ‘우리에겐 신기술을 도입할 유인이 별로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2020년까지 (기술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를) 먼저 눈치챈 이들이 더 커진 파이의 더 많은 몫을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