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한국 최대 모바일 기업이 블록체인을 수용하는 법

[인터뷰] 카카오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 한재선 대표

등록 : 2018년 5월 24일 11:13 | 수정 : 2018년 5월 25일 23:17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이사. 사진 유신재

처음 등장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지지자이든 비판자이든 간에 다소 극단적인(혹은 낭만적인) 가설을 세워놓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비트코인이 지구상의 모든 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 그랬다. 탈중앙화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등장한 블록체인과 토큰이코노미를 대표적인 중앙권력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이 받아들이는 것이 모순적이라고 느끼는 것도 그런 경향 탓일 수도 있다.

카카오는 한국 모바일 시장을 지배하는 공룡이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94%에 이른다. 이런 점유율을 기반으로 광고, 게임, 인터넷 은행, 택시, 음악 등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카카오는 2017년 기준 매출액 1조9723억원, 영업이익 1653억원, 종업원수 2600명 규모의 공룡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그런 카카오가 블록체인 플랫폼 사업을 선언했다. 한국 모바일 플랫폼을 장악한 대표적인 ‘미들맨’인 카카오가 미들맨을 배제한 채 사용자들끼리 직접 가치를 주고받는 걸 이상으로 하는 블록체인을 받아들인다면, 미들맨으로서 챙기고 있는 막대한 수익은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텔레그램이나 Kik처럼 먼저 ICO를 시작한 메신저 기업들도 있지만, 이들은 메신저 외에 다른 서비스가 없다. 카카오와 같은 수익 모델이 없다는 얘기다.

 

‘미들맨’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전략을 책임지는 자회사 그라운드엑스(X)의 한재선 대표는 “미들맨이 과연 없어질까? 미들맨이 다 나쁜 걸까? 이런 것을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현재 진행중인 무수히 많은 ICO 프로젝트들이 과연 지금 카카오나 아마존과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ICO가 참 희한한 구조다. 돈을 시작할 때 이미 다 벌었다. 2년 동안 처분 못하게 막아놓는다. 2년 금방 간다. 2년 동안 열심히 개발해서 스마트 컨트랙트 잘 돌아가게 해서 오픈한다. 사용자가 1000명 들어온다. 더 오게 하려면 그 이상이 필요하다. 마케팅을 하고 온갖 난리를 쳐야 한다. 그런데 이걸 왜 해야 하지? 돈은 이미 다 벌었는데?”

한 대표는 지난 3월 카카오에 합류하기 전까지 퓨쳐플레이라는 투자회사의 CTO로 투자 대상 기업들의 기술평가를 책임졌다. 그는 “투자를 해 본 경험에서 보면, 스타트업들이 백서에서 구현하겠다고 이론적으로 제시하는 것과 실제 사업 사이에는 엄청나게 큰 갭이 있다”고 말했다. 그 갭은 단순히 스마트 컨트랙트를 잘 개발하고, 토큰 이코노미를 잘 설계한다고 다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업을 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개발 끝났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그 갭을 어떻게 매울지는 비즈니스의 문제다. 작년까지 디앱(Dapp, 분산형 어플리케이션)을 만든다고 할 때 누구도 비즈니스를 얘기하지 않았다. 올해부터는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탈중앙화는 서비스의 핵심 요소가 아니라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토큰을 주는 게 사용자에게 줄 수 있는 가치의 전부가 아니다. 토큰은 가치의 일부일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업의 본질’이다”

 

부분적 혹은 단계적 탈중앙화

카카오가 추진하는 블록체인 플랫폼에 대한 한 대표의 구상은 ‘부분적 혹은 단계적 탈중앙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블록체인이 유행이니까 다 블록체인에 올린다고들 한다. 제발 좀 모든 것을 블록체인에 올리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카오의 여러 서비스 중에 탈중앙화할 수 있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이 있고, 하나의 서비스라고 하더라도 통째로 블록체인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일부 기능을 떼어내 탈중앙화와 토큰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마일리지를 토큰으로 전환시키는 것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기업 입장에서는 어차피 나가는 돈인데, 이걸 토큰 구조로 바꾸는 거다. 이런 경우는 수익을 사용자들과 나눈다기 보다는 마일리지의 쓰임새를 더 높이는 것이다. 본질적인 서비스와 조금 떨어진 부분을 토큰화하면, 기존 수익 모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사용자 유입을 확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말 전향적인 생각으로 토큰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해볼 수 있다. 대신 그렇게 하는 경우 카카오 입장에서도 베네핏(이익)이 있어야 한다”

카카오가 블록체인을 통해 얻으려는 베네핏은 무엇인가? 한 대표는 “토큰이코노미란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카카오는 지금까지 국내용이었다. 블록체인을 통해서 글로벌 시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미들맨으로서 가져가는 수익의 일부분을 사용자들에게 나눠주는 대신 시장을 넓히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카카오가 100이라는 수익을 얻었다면, 시장을 1000으로 키워서 사용자에게 300을 주고 카카오가 700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카카오가 성공한 서비스를 그대로 아시아 시장에 내겠다고 하면 택할 수 있는 전략이 뭐가 있을까? 나라마다 이미 1, 2위 사업자가 있다. 토큰을 통한 인센티브, 블록체인이 아니면 별로 생각나는 방안이 없다. 블록체인을 가지고 가면 기존 문법을 흔들 수 있다.”

 

양쪽의 경쟁자

카카오의 오랜 라이벌 네이버도 자회사 라인플러스를 통해 블록체인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었다. 북미 지역을 기반으로 한 메신저 업체 Kik은 ‘KIN’이라는 이름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추진중이고, 텔레그램은 ICO를 통해 사상 최대 규모인 17억 달러(약 1조8000억원)를 모았다.

한 대표는 “이더리움이나 EOS도 댑을 띄우면 제일 큰 고민이 어떻게 사용자를 끌어올 것인가다. (텔레그램과 같은) 메신저 기반 플랫폼은 이미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 그들이 하는 것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들은 사용자만 있고 다른 서비스가 없다. 카카오는 다양한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수많은 ICO 프로젝트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렇다고 그런 스타트업들이 모두 실패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그는 “20년 전에 누구도 지금의 구글이나 아마존을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 골방에서 열심히 하는 친구들 중에 누군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문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커머스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미친듯이 탈중앙화해서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혁신하는 친구들이 나올 수 있다. 블록체인에서는 20년은 안 걸릴 것 같고, 5년에서 10년 사이에 나올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는 머지 않은 미래에 토큰 이코노미에서 벌어질 경쟁을 광고시장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기존 광고 플랫폼을 배제하고 광고주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소비자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겠다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이미 수없이 많이 나와있다. 처음부터 미들맨을 완전히 배제하는 100% 탈중앙화는 어려울 것이다. 소비자 유치하고 광고주 유치하는 데 돈이 드니까 미들맨이 광고비의 70%를 가져가고 소비자가 30%를 가져갈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미들맨은 소비자에게 한 푼도 주지 않는 기존 광고 사업자들을 상대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다가 누군가 소비자에게 50%를 줄 수 있을 것이고, 나중에는 70%, 100%까지 주는 완전히 탈중앙화된 무언가가 나타날 수 있다.

“블록체인 세상에서 어떤 서비스가 나올지 지금 아무도 모른다. 아직 그 모습을 보여준 곳이 없다. 스팀잇이 조금 보여줬지만, 스팀잇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다가 누군가 새로운 것을 들고 나오면 그땐 이미 늦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전하는 것이 맞다.”

 

기술적인 과제들, 그리고 ICO

라인플러스는 최근 ICON의 플랫폼을 이용해 블록체인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카카오 역시 이미 구축된 블록체인 플랫폼을 차용할 계획이다. 기존 프로젝트들이 대부분 오픈소스인 만큼, 가장 적절한 플랫폼의 소스코드를 가져와서 카카오만의 기능을 더한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이더리움, 텐더민트, 코스모스, 쿠오럼, EOS, 하이퍼레저 등 대부분의 기존 프로젝트들을 모두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완성도는 아무래도 이더리움이 가장 높은 것 같다. 빨리 돌리려면 쿠오럼도 괜찮다. 이더리움을 프라이빗 블록체인 형태로 만든 것인데, 잘만 튜닝하면 적당한 속도가 나올 것 같다. EOS는 아직 메인넷을 공개하지 않은 상황이라서 깊이 분석하기에는 수월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기존 프로젝트들이 성능과 처리 속도 측면에서 문제가 많은데, 한 대표는 이것 말고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일반 사용자들의 기대 수준에 맞는 UX(사용자 경험)가 가장 핵심이다.

“플랫폼의 철학이 굉장히 우아하다고 과연 사용자들이 그 가치를 높이 쳐줄까? 프라이빗키를 따고, 지갑을 깔고, 프라이빗키 잃어버리면 돈 잃고, 만든 사람도 되찾아줄 수 없고, 토큰 사려는데 거래소 계좌는 열리지도 않고… 일반 사용자들이 보기에 황당하다. 성능과 속도는 기본이다. 그게 해결된다고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카카오가 가지고 있는 서비스가 돌아가려면 어때야 하는지, 수백만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쓰는 서비스라면 어때야 하는지가 우리 고민의 출발점이다”

올해 안에 메인넷을 런칭과 함께 유의미한 서비스(댑)를 선보인다는 게 카카오의 계획이다. 댑을 만드는 주체는 우선 카카오와 이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외부 기업들이 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부에서 리버스 ICO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플랫폼을 찾고 있는데, 우리와 궁합이 잘 맞으면 우리 플랫폼에 태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비스가 우선이고 플랫폼은 나중이라는 주의다. 아무 것도 없는데 플랫폼만 있으면 그게 무슨 플랫폼인가. 원래 타깃 서비스가 있고, 그 서비스를 잘 돌려주기 위해 플랫폼이 나오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 (서비스가 없는) 스타트업을 아예 막는 건 아니지만, 우린 서비스 쪽에 포커스를 많이 두고 있다”

한국 정부가 ICO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토큰을 발행하는 것도 민감한 문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3월 카카오가 블록체인 자회사를 설립한다는 발표를 하자마자 ICO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카카오는 이미 자금을 모으기 위한 ICO는 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대표는 “토큰을 발행하는 것과 거래소에 상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토큰 발행을 ICO 형태로 할지, 에어드롭으로 할지, 스팀잇처럼 열심히 참여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줄지, 여러가지 창의적인 방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