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냐, 이번엔 암호화폐로 “에너지 독립운동”

등록 : 2018년 6월 6일 23:47 | 수정 : 2018년 6월 6일 23:48

한겨레 자료사진

 

ION 토큰 이용해 태양광 등 마이크로그리드 관리

중앙정부, 공기업 배제…대체 에너지 거래 활성화

스페인에서 중앙에 집중된 권력에 가장 많이, 틈만 나면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이들을 꼽으라면 단연 카탈루냐(Catalonia) 사람들이 떠오를 것이다.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계속해서 중앙 정부와 대립해온 카탈루냐 주정부가 이번에는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중앙이 관리하는 시스템에 대한 도전을 이어간다.

지난해 10월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강행한 카탈루냐 주정부를 중앙정부는 경찰을 앞세워 강력하게 탄압했다. 허나 이에 굴하지 않은 카탈루냐 정부는 스페인 북동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거래하는 데 쓸 수 있는 토큰을 에어드롭으로 나눠줄 계획이다. 스페인 중앙정부의 규제를 우회해 태양광 전력 생산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태양 에너지를 생산하기도 하고 소비하기도 하는 프로슈머들이 사용하고 남은 전력을 국가가 관리하는 전력망에 팔거나 전력망 안에서 다른 이들과 나누려 할 때 전력망 이용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개인간 전력 거래가 제약을 받는다.

이 문제는 스페인의 격동적인 정치적 상황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함의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에너지 시장은 국가와 중앙 정부가 고도로 통제하는 영역이다.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이 재생에너지나 혁신적인 에너지 개발 등 급격히 변하는 상황을 잘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에너지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은 시장에 민주주의 요소가 도입되는 것을 끊임없이 가로막고 있다.

태양광 발전은 사람들의 전기요금을 줄여주고 지구를 더 푸르게 만들 수 있는 친환경 발전이지만, 발전하고 남은 전기를 국가 전력망에 팔 수 없다면, 혹은 팔 때 돈을 내야 해서 타산이 맞지 않는다면 지붕에 태양광 발전판을 설치할 동기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카탈루냐 정부의 카탈루냐 에너지 연구소에서 기술 혁신을 이끌고 있는 유이사 마르살은 자가생산한 에너지를 공유하고 판매하는 과정에 따르는 법적, 경제적 제약을 회피할 수 있는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감독하고 있다.

해결책 중에는 “ION” 암호 토큰을 매개로 커뮤니티가 관리하는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가 있다. 마이크로그리드란 지붕에 설치하는 태양광 발전기와 같은 소규모 에너지원을 모아놓은 것으로, 이 에너지는 국가 전력망에 연결할 수도 있고 이른바 “섬”처럼 독립적으로 쓸 수도 있다.

마르살은 이 토큰이 스페인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것이 아니며, 에너지 거래를 소비자에게 더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이 토큰은 (카탈루냐의) 독립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마이크로그리드를 관리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토큰일 뿐이다.

하지만 마이크로그리드가 그 매력을 반감시키는 기존의 법적, 경제적 제약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마이크로그리드 자체가 스페인의 국가 전력망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전력 공급회사와 에너지를 거래하는 대신 태양광 커뮤니티의 구성원들끼리 거래할 수 있게 된다. ION 토큰은 마이크로그리드 안의 거래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매개 수단인 셈이다.”

민중에게 전력을

마르살은 ION 토큰과 지갑은 완전히 공개된 것으로 이더리움 ERC-20 토큰 표준을 따른다고 설명했다.

ION 토큰은 자금을 모으기 위해 판매되는 ICO 토큰과 달리 사용자들이 프로젝트에 가입하고 ION 지갑을 설치하면 무상으로 지급된다. 흔히 말하는 “에어드롭”을 받는 것이다. 나눠주는 토큰의 양은 가입하는 사람의 수에 따라 달라지는데, 100~5,000 ION 사이가 될 것이다.

지갑은 계속해서 개발 중이며 코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앞으로 약 2개월 뒤 카탈루냐의 다섯 개 시를 중심으로 한 시범 운영이 계획돼 있다.

ION 토큰의 전체 수량은 841만 8천 개로 정해져 있다. 마르살에 따르면 이 숫자는 카탈루냐 핵발전소 전체에서 매년 생산되는 전기의 킬로와트시(kWh)다.

“이런 마이크로그리드가 대량으로 설치되고 태양광 발전 커뮤니티가 곳곳에 형성되고 나면, 태양광 발전소 한 곳에서 생산하는 전력과 맞먹는 양을 마이크로그리드를 모아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ION 토큰 한 개의 가치를 1kWh로 정착시키고 싶다.”

토큰의 쓰임새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태양광 커뮤니티 안에서) 태양광 전력 사용량의 평균치를 측정한 뒤 평균보다 전기를 더 쓰는 사람은 그 초과분을 ION 토큰으로 내야 하고, 반대로 평균보다 전기를 덜 쓰는 사람은 그만큼 ION 토큰으로 보상을 받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전력 사용량을 측정하면 유연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규모가 작은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은 (가전제품을 서로 다른 시간대나 서로 다른 요일에 사용하는 등) 별도로 에너지 소비 일정을 논의하여 조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일정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데 스마트 계약을 활용해 각자 전력 사용 허용치를 관리할 수도 있다.

ION 토큰을 거래하는 시장도 있어야 한다. 마르살은 “전기 가격이 대략 kWh당 0.1유로라는 것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거래하면 된다”고 말한다.

기존 발전소 파산할 수도

사실 에너지를 거래하고 공유하는 시장만큼 온갖 규제와 하면 안 되는 것들, 보조금, 범칙금 등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어떤 식으로든 자유로운 시장 논리를 적용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분야를 찾기도 힘들다. ION 토큰은 이렇게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복잡한 난제를 풀어보려는 야심찬 시도인 셈이다.

영국의 P2P 에너지 장터인 오픈유틸리티의 CEO 제임스 존슨은 암호 토큰이 재생 에너지 기술을 장려하는 데 쓰이는 보조금인 발전차액지원 제도의 흥미로운 대체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는 에너지 관련 보조금을 전기 요금을 부과할 때 정산해 지급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보조금은 새로운 기술을 일찌감치 받아들이고 시험해보는 얼리어답터들에게 돌아가는데, 많은 사람이 토큰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을 받아들이기로 하면, 이 또한 보조금처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얼리어답터들은 특히 전력을 스스로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사실에 큰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존슨은 사회가 더 똑똑하고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발전 방법을 고민함에 따라 에너지 생산자, 발전소, 그리고 송전망으로 이어진 기반 구조 가운데 어딘가는 패자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태양광과 배터리 그리고 전기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체제의 중심부 대신 네트워크의 가장자리에서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몇몇 대형 발전소들은 소규모로 동일한 일을 해내는 전력 생산, 공급, 거래망으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에 파산할 수도 있다.”

다시 카탈루냐로 눈을 돌려보자. 최근 카탈루냐는 새로운 자치정부 수반으로 역시 분리주의자인 킴 토라(Quim Torra)를 선출했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강경 일변도에서 한발 물러서 토라 수반에게 지난해 10월 독립을 주장하며 시위를 조직하다가 감옥에 갔거나 추방된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 시절 인사를 내각에 포함하지 않는다면 새 정부를 구성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래서 지금이 ION 토큰을 에어드롭하기 더없이 좋은 시점일 수도 있다.

카탈루냐 독립운동의 역사는 수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은 1930년대 초에 자치권을 얻었으나 독재자 프랑코 장군 치하에서 자치권이 박탈되었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다른 지역보다 부유한 편이며 최근에는 신기술 허브로 떠 올랐다.

사실 탈중앙화를 구현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카탈루냐에서 디지털 신원(identity) 관리 등을 비롯한 다른 영역에서도 활발히 검토되고 있다. 카탈루냐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다름 아닌 카탈루냐 사람이라는 정체성(identity)이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대개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받아들이는 데 능하다.” 마르살은 이야기 도중에 스페인 중앙정부와 전기 및 수도 등 공기업에 만연한 “회전문 인사와 경영”에 분개하는 모습을 비치기도 했다.

“중앙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항상 전기나 수도 같은 공기업으로 가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이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보다 그저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데만 급급할 뿐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