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더 사태: 스테이블코인이 견뎌내야 할 ‘스트레스 테스트’

등록 : 2018년 10월 31일 15:50 | 수정 : 2018년 11월 2일 11:08

이미지=Getty Images Bank

연휴만 되면 미국 TV에서 틀어주는 고전 영화 가운데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 1946년 작)”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 초반에는 은행이 늘 씨름하는 핵심적인 난제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난제란 바로 고객의 신뢰를 유지하는 문제다.

배우 지미 스튜어트가 연기하는 극중 인물 조지 베일리는 자신이 소유한 소규모 대부업체가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로 무너지지 않게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고객들은 맡겨놓은 돈을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고객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베일리는 결국 사업체의 부도를 막기 위해 수표책을 꺼내 들고는 신혼여행에 쓰려고 마련해 둔 돈까지 빼 와 고객들에게 대출을 제공한다.

이 장면을 보다 미국 달러화에 가치를 1:1로 연동한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무너지던 지난 며칠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동안 여러 의혹에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하던 테더의 가치가 떨어지자 다른 스테이블코인들 사이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미국 달러나 금과 같은 다른 자산으로 정해진 비율로 교환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토큰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고안된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자산은 암호화폐 커뮤니티와 시장 전반에서 좀처럼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베일리는 고객의 신뢰를 얻는 일이 과학보다는 예술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자본을 융통해주는 은행 소유주의 이익이 고객의 이익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자본을 걸어야 했다. 이 고전 영화 속 한 장면을 통해 우리는 금융에서 신뢰란 단지 규정이나 기술적인 사양만 가지고 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 “신뢰받는 브랜드”라는 말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면적인 요소가 포함돼 있다.

테더의 신뢰 문제는 영화에서 본 전통적인 예금이나 대출의 신뢰 문제와는 조금 달라 보인다. 후자는 상업은행이 전통적으로 채택해온 부분지급준비제(fractional reserve banking)에 따라 고객이 맡긴 돈을 은행이 전부 보관하지 않고, 일부는 다른 곳에 대출해줄 수 있게 허용한 제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경우다. 반면 테더를 비롯한 스테이블코인 운영자들은 발행한 코인을 모두 바꿔줄 수 있는 자산을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고객이 이 주장을 신뢰하지 못한 경우다. 예를 들어 테더 토큰 한 개는 미화 1달러와 언제든 바꿀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고객들과 시장이 과연 테더 토큰을 발행, 운영하는 테더 측이 발행한 토큰에 맞먹는 달러화를 지금 이 순간 은행에 보유하고 있는지 믿지 못한 것이다.

두 가지 다른 신뢰의 위기에는 공통으로 겹치는 요인도 있다. 원할 때 언제든 연동 자산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바꿔주는 건 지금 토큰을 보유한 이들뿐 아니라 앞으로 토큰을 사려는 이들에게도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증명하려면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 코인을 발행하고 관리하는 운영자는 스테이블코인이 정해진 가격에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계속해서 입증해야만 미래의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시장에는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시장 심리라는 것이 있으므로 스테이블코인을 향한 신뢰를 영원히 굳건히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베일리는 뜬소문이나 개인이 관여할 수 없는 거시적인 경제 조정의 영향으로 두려움에 빠진 이들의 집단행동 때문에 대부업체의 신뢰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을 겪었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관리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신뢰를 쌓고 잃는 데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소는 정말 많다. 월스트리트에서 쓰는 용어를 빌려 말하면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시장 심리

테더가 겪은 고초를 같이 한 번 짚어보자. 테더가 의심받은 것은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그러나 끝내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 달러화 예금 잔액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테더를 비롯한 스테이블코인은 시장 환경이 변해도 과연 약속한 대로 연동 자산을 정해진 가격에 교환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신뢰를 끝내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테더 토큰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한때 개당 0.9253달러까지 내려 공식 교환 가격인 1달러보다 7센트나 더 낮았던 지난달 15일은 월스트리트가 7개월 만에 최악의 한 주를 보낸 직후였다. (테더를 달러화로 직접 바꿔주는 거래소 크라켄에서는 테더 토큰 가격이 개당 0.85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는 물론 우연이 아니다.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돈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돈을 벌려는 욕심을 앞지른 상황에서 (테더 토큰을 발행하는 회사 테더(Tether Ltd.)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거래소 비트파이넥스(Bitfinex)가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특정 법정화폐 출금을 중단한 것은 그야말로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다.

또 테더의 은행 잔고를 둘러싼 의혹에 더해 테더와 은행 간의 관계에 대한 소문과 의혹도 불어났다. 투자자들은 스테이블코인에 투자하는 것이 결국엔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연동한 자산의 위험, 그리고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관리하는 주체가 지급준비금을 맡겨둔 은행의 위험을 고려한 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런저런 소문과 예금 잔고를 둘러싼 의혹, 시장 상황 등 모든 것이 이른바 ‘팔자’ 심리를 자극하고도 남을 만한 상황이었다.

테더의 시장점유율이 낮아지는 상황을 기회로 보고 점유율을 높이려는 새로운 달러화 연동 스테이블코인들은 테더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이들은 주변 상황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고객과 투자자들에게 기본적으로 더 넓은 개념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이는 테더처럼 발행한 토큰을 모두 달러화로 바꿔줄 수 있도록 잔고를 유지한 채 스테이블코인을 운영하는 모델을 채택한 제미니(Gemini)의 제미니 달러(GUSD), 팩소스(Paxos)가 발행한 팩소스 표준 달러(PAX), 트러스트토큰(TrustToken)이 발행한 트루US달러(TUSD)는 물론이고, 토큰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알고리듬 기반 모델을 채택한 베이스코인(Basecoin)도 마찬가지다. 특히 현란한 수학 공식을 내세운 베이스코인은 가치 연동 알고리듬을 정교하게 공략하는 봇들의 공격을 막지 못하면 절대로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또한, 지금의 상황은 스테이블코인이 진정한 신뢰를 얻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히 해둬야 한다. 지금은 일단 테더는 믿지 못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의 가능성은 좀 더 지켜보려는 사람들이 테더를 팔고 새로운 스테이블코인을 사들이고 있다. 때때로 새로운 스테이블코인이 시장가격보다 높게 거래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본적인 신뢰의 위기가 두드러질 때 스테이블코인은 진짜 스트레스 테스트를 치를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심각한 경제적 재앙을 겪은 후 2001년에야 10년 동안 고집해 온 자국 통화 페소화의 달러화 가치 연동제를 폐기했다. 마찬가지로 화폐나 토큰의 가치를 다른 자산에 고정하는 것에 대한 궁극적인 시험은 시장 심리가 두려움과 불신으로 팽배한 순간에도 시스템이 살아남느냐에 달렸다. (같은 논리를 은행 시스템에 대한 신뢰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멋진 인생”의 조지 베일리가 했던 일을 정부 차원에서 실천에 옮긴 적이 있다. 대공황 이후 연방 예금보험공사(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를 설립해 한번 발동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금융 시스템을 향한 대중의 두려움을 억제하고 신뢰를 지키려 했다.)

 

신뢰를 얻기 위한 다양한 선택지

그렇다면 스테이블코인은 어떻게 해야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까? 먼저 지속적인 브랜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다양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며 투명성이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

발행량에 맞춰 달러화 등 교환해줄 자산을 마련해둔 방식으로 가치를 안정시키는 스테이블코인이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은행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사용자들이 누가 자산을 관리하는지 이른바 거래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을 평가할 수 있게 하고, 기반이 되는 코드에 독립적인 보안 감사를 시행해서 토큰을 연동 자산으로 교환하면 해당 토큰은 파괴된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신뢰받는 제삼자를 감사 기관으로 지정해 정기적으로 회사의 잔액을 확인한 감사 결과를 공개할 수도 있다. (단, 이는 그 자체로 완전한 “감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테더를 감사한다는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암호화폐 시스템의 거래 기록을 감사할 방법은 없다. 대신 특정 시점에 회사가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잔액이 회사의 주장과 같은지를 검증할 수는 있다.)

새로 생긴 블록체인 기업들이 채택하는 방법들은 훨씬 다양하다. 철저하게 투명성을 확보하고, 상환 능력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제미니와 팩소스는 뉴욕주 재무부의 사업 승인을 받은 신탁 기관으로 등록했다. 제미니 거래소와 마찬가지로 윙클보스 형제가 세운 제미니 신탁회사는 백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성공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컴퓨터 과학만큼이나 신뢰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방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신뢰를 쌓기는 어렵지만, 잃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신뢰에 관한 문제의 핵심은 토큰을 발행하는 이나 토큰 발행 회사를 소유한 이의 이익과 토큰에 투자하는 이의 이익이 본질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는 브랜드 신뢰에 대한 지속적이면서 때로는 지나칠 정도의 관심이 필요하다. 베일리가 자기 수표책을 꺼내 든 것도 결국 이를 몸소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스테이블코인은 테더를 덮친 악재를 대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보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자신들이 테더보다 왜 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테더의 실패와 차별화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테더의 실패를 발판 삼아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이득을 취하는 데만 혈안이 돼 트위터나 소셜미디어에서 이 문제를 너무 크게 부각하려 하다가는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스테이블코인을 향한 신뢰는 뿌리가 튼튼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시도에 찬물을 끼얹고 악담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의 성공을 바라는 모든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마음과 나도 같다. 스테이블코인이 성공을 거두면 테더가 그랬듯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한 토큰으로 실시간 디지털 결제를 하기가 훨씬 수월해져 암호화폐 거래소의 운영에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공급망 관리나 국제 송금과 같은 다양한 블록체인 관련 사례에 활용될 수 있다.

문제는 스테이블코인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까지 넘어야 할 신뢰의 위기와 치러야 할 스트레스 테스트가 절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