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카카오, 삼성전자도 뛰어든 암호화폐 시장

텔레그램, 시그널도 암호화폐를 만든다

등록 : 2019년 3월 12일 07:00 | 수정 : 2019년 3월 12일 10:10

2017년 중반부터 2018년 초까지 세계적으로 불었던 암호화폐 투기 열풍이 가격 하락과 함께 잠잠해졌다. 이제 막 생긴 스타트업도 백서(whitepaper)라 불리는 사업 계획서만 공개하면 수백에서 수천억원까지 모을 수 있었던 암호화폐공개(ICO)도 함께 힘을 잃었다.

대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서 기회를 본 기존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면서 산업이 형성되려면 수년이 더 걸릴 수 있다. 하지만 2019년은 블록체인 서비스가 하나씩 나오고 대기업이 암호화폐를 발행하면서 다양한 실험이 펼쳐지는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 홈페이지. 이미지=김병철

페이스북 홈페이지. 이미지=김병철

 

“페이스북, 상반기 암호화폐 발행”

<뉴욕 타임스>는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이 암호화폐를 개발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명 ‘페이스북 코인’은 페이스북이 보유한 메신저 서비스 와츠앱에서 사용될 것이라고 복수의 취재원은 전했다. 이용자들은 와츠앱을 통해 이 암호화폐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도 지난해 말 페이스북이 와츠앱에서 쓸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을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 등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 변동을 줄인 암호화폐를 말한다.

2018년 5월 새로운 블록체인 연구팀을 꾸린 페이스북은 관련 인력을 꾸준히 늘려왔다. 이 팀을 이끄는 데이비드 마커스의 이력을 보면 페이스북 암호화폐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간편송금 서비스의 원조 격인 페이팔의 회장 출신이며,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에서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뉴욕 타임스>는 페이스북이 일부 암호화폐 거래소들에 올해 상반기 안에 자체 암호화폐를 상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도 전했다. 전세계에 25억명의 이용자가 있는 페이스북이 암호화폐를 출시하면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뛰어난 보안 기능 덕분에 국내에서도 정치인, 공무원들이 애용하는 텔레그램, 시그널도 암호화폐를 준비 중이다. 텔레그램은 현재 톤(TON)이라고 불리는 블록체인을 개발 중이며, 자체 암호화폐 그램(Gram)을 발행할 계획이다.

블록체인 매체 <블록 제네시스>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지난 1월 톤의 개발을 90% 완료했고, 3월에 테스트넷을 론칭할 것이라고 투자자들에게 공지했다.

<뉴욕 타임스>는 시그널도 1년 안에 자체 암호화폐를 출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페이스북 코인’처럼 텔레그램과 시그널의 암호화폐도 각 메신저 안에서 송금할 수 있는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간편송금을 넘어 해외송금 시장에도 일대 변화가 올 수 있다.

이미지=JP모건 페이스북 캡처

이미지=JP모건 페이스북 캡처

 

JP모건 코인의 등장

메신저 회사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금융권에서도 암호화폐 실험이 시작됐다. 미국 투자은행 제이피(JP)모건체이스가 지난 2월 스테이블코인과 비슷한 암호화폐를 만들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JPM 코인’이라고 불리는 이 암호화폐는 프라이빗 블록체인(비트코인처럼 누구나 노드가 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과 달리 승인된 노드만 참여하는 블록체인)에서 발행되고, 제이피모건체이스의 고객인 대기업과 기관 간의 내부 거래에서 사용될 예정이다. 제이피모건체이스에서 거래되는 자금은 하루 약 6조달러 규모다.

이 코인은 아직 프로토타입(시제품)이며, 사업에 활용하려면 미국 감독당국의 승인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제이피모건체이스의 내부용이라면 금융기관 간 거래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것일 뿐, 탈중앙화된 암호화폐가 아닌 사실상 미국 달러화와 다를 바 없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시엔비시>(CNBC)에 따르면 제이피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JPM 코인은 은행 내부적인 용도에서 시작해, 언젠가는 일반 소비자도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실험 단계지만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중앙 관리자가 없는 탈중앙화된 암호화폐로 발전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라인. 이미지=라인 글로벌 페이스북 캡처

라인. 이미지=라인 글로벌 페이스북 캡처

 

네이버·카카오의 암호화폐

국내에선 네이버와 카카오가 블록체인 자회사를 만들어 암호화폐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네이버는 일본의 자회사 라인을 통해 링크(Link)라는 암호화폐를 지난해 8월 발행했고, 싱가포르에 비트박스라는 암호화폐 거래소도 만들었다.

라인은 대중이나 투자자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암호화폐공개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용자가 라인의 댑(dapp: 탈중앙형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보상으로 링크를 얻는 구조를 만들었다. 기존의 포인트를 암호화폐로 전환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링크는 여러 라인 서비스 안에서 결제에 사용하거나, 비트박스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다.

라인은 지금까지 일본에서 포캐스트, 위즈볼, 파샤 등 3개의 댑을 출시했고, 올해 2개를 더 내놓을 계획이다. 사용할 만한 블록체인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라인과 네이버 인력까지 포함해 150~200여명의 개발자가 댑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카카오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카카오는 지난해 3월 일본에 블록체인 계열사인 그라운드X를 설립하고, 올해 상반기를 목표로 자체 블록체인 메인넷인 클레이튼(Klaytn)과 암호화폐 클레이(Klay)를 개발 중이다.

적극적인 제휴를 통해 클레이튼 생태계를 넓히는 것이 카카오의 전략이다. 지금까지 게임회사 위메이드의 자회사인 위메이드트리 등 17개 블록체인 서비스 회사와 제휴를 맺었다.

기존 서비스에 암호화폐를 연계하는 실험은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판 넷플릭스’로 불리는 왓챠플레이는 이용자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리뷰를 남기면 자체 암호화폐인 CPT를 제공하고 있다. 숙박 예약 서비스인 야놀자도 암호화폐를 개발 중이다. 기존 야놀자 포인트를 블록체인에 올려 토큰화한 뒤, 다른 암호화폐들과 교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런 실험이 성공하면 많은 기업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포인트를 암호화폐화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 IM 부문장 고동진 사장이 지난 6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갤럭시S10 출시 행사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이미지=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IM 부문장 고동진 사장이 지난 6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갤럭시S10 출시 행사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이미지=삼성전자 제공

 

스마트폰 1위 삼성전자의 진입

소프트웨어 위주였던 블록체인 산업에서 최근 하드웨어 제조사라는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했다. 바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지난 8일 출시한 갤럭시S10에 암호화폐 지갑 기능을 탑재했다. 삼성전자의 보안 기술을 활용해 암호화폐를 보다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곧 엘지(LG)전자 등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뒤따라 암호화폐 지갑 기능을 추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1위(2018년 4분기 기준)인 삼성전자의 이번 행보로 암호화폐 활용 인프라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 회사인 파운데이션X의 황성재 대표는 “지금의 블록체인 기술은 대중들이 활용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었다”며 “삼성전자의 블록체인 키스토어를 통해 블록체인의 대중화가 좀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3월12일치와 인터넷한겨레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