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 암호화폐, 버지코인의 모든 것

등록 : 2018년 4월 30일 18:45

이미지 출처 : 버지코인 페이스북

“마침내 미래가 왔다(The future has cum).”

눈과 입 부분만 뚫린 복면을 쓰고, 손에는 진짜 암호화폐로 교환할 수 있다는 플라스틱 동전이 가득 든 자루를 쥔 채 지난주 포르노 배우들이 “공짜 돈 받아가세요!”라는 구호를 외치며 월스트리트를 활보했다. 심야 성인 관람가 패러디극장 프로그램 촬영이 아니었다. 암호화폐 버지(verge, XVG)가 성인 포르노 웹사이트 포르노허브(Pornhub)와 제휴를 맺고 사이트 내 결제 수단으로 개발돼 선보일 예정이라는 발표와 함께 진행된 작은 퍼포먼스 행사였다. 영어로 “come”이란 동사 대신 정액을 뜻하는 비속어 “cum”을 써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 행사와 함께 전해진 소식은 어쩌면 올해 지금까지 발표된 암호화폐 소식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루 평균 8100만명이나 찾는 이름 있는 사이트 포르노허브와 제휴를 맺었다는 뉴스는 버지코인을 넘어서 암호화폐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만한 소식이다. 실제로 지난 17일까지만 해도 이른바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암호화폐 가운데서 잘 알려지지 않은 축에 속하던 버지코인의 가격은 포르노허브와의 거래 소식이 알려진 뒤 급등했다.

하지만 버지코인과 포르노허브의 제휴 소식에 비판도 잇따랐다. 버지코인은 우선 시가총액으로 보더라도 크지 않은, 이른바 군소 암호화폐 가운데 하나다. 또한, 버지코인이 프라이버시에 특화돼 있다는 주장은 정작 암호화폐 연구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암호화폐 커뮤니티 전체가 버지코인을 미심쩍은 눈길로 바라보던 때도 있다. 또 다른 프라이버시 기반 암호화폐 모네로 소속 연구원인 사랑 노에더(Sarang Noether)는 코인데스크에 여전히 못 미덥다는 견해를 털어놨다.

“버지코인이 포르노허브 같은 대형 브랜드와 제휴를 맺었다고 호들갑 떨 일이 전혀 아니다. 그 코인이 제대로 된 기술적 토대 없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수백만 달러를 쥐여주면 포르노허브든 어디든 제휴를 맺지 못할 곳이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입증됐을 뿐이다.”

노에더가 지적했듯 이번 버지코인과 포르노허브의 제휴 계약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바로 버지코인 이용자와 지지자들이 거래를 성사하는 데 드는 계약금을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는 점이다. 해시태그 #vergefam으로도 알려진 전 세계 버지코인 이용자들은 불과 몇 주 만에 7,500만 버지를 자발적 기부 형식으로 모았다. 포르노허브와 제휴를 맺는 데 써달라는 것이었다. 7500만 버지는 약 56억 원에 해당한다.

버지 기부 주소로 물밀 듯 코인이 들어왔다. 버지코인의 핵심 개발자 저스틴 수네록 발로(Justin “Sunerok” Valo)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방식의 세계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펴는 데 이 돈을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전체를 아주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버지코인의 홍보 전략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아예 “치기 어린 이들의 서툰 우상 숭배를 보는 것 같다”고 대놓고 깎아내렸고,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기로 유명한 버지코인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선을 넘은 문제 몇 가지는 이참에 해결하고 해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가운데 하나는 보안 개발자로 알려진 존 맥아피(John McAfee)가 받고 있는 이른바 시세조종 사기 혐의다. 맥아피는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온갖 허풍선을 떠벌리며 버지코인 가격을 올려놓은 뒤 시세차익을 챙기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버지코인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맥아피는 버림받은 모습이다.

하지만 안 좋은 소문에 휩싸이고 갖은 구설에 오르면서 인지도가 거의 없던 버지코인이 오히려 어느 정도 유명해지기도 했다. 사랑 노에더는 코인데스크에 이렇게 말했다.

“‘암호화폐계의 악동’ 정도 이미지라면 버지코인은 기꺼이 이를 받아들이고 오히려 활용하려 들 것이다. 실제 결제가 얼마나 원활히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 사람들은 좋든 싫든 세계 최대 포르노 사이트에서 암호화폐로 결제를 받는데, 그 코인이 버지코인이라는 사실은 알게 됐다.”

도지코인다크(Dogecoindark)

꽤 최근까지만 해도 버지코인 가격은 그야말로 하나에 1원도 채 되지 않는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의문스러운 점투성인 암호화폐 버지코인은 2014년 “도지코인다크”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도지코인다크는 플로리다에 있는 거의 알려진 바 없는 저스틴 발로라는 이름의 개발자가 만들었는데, 저스틴 발로는 본인도 인정했듯 앞서 마약과 관련한 법을 어겨 가벼운 처벌을 받은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피어코인(peercoin)이라는 토큰에서 갈라져 나온 도지코인다크는 위치 데이터와 IP주소를 숨겨주는 토르(Tor)와 IP2라는 익명 프로토콜 네트워크로 결제를 처리함으로써 프라이버시를 강화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고 소개됐다. 처음 토르의 이메일 뉴스레터를 통해 알려졌을 때만 해도 도지코인다크를 향한 반응은 싸늘했다. 한 이용자는 “토르 커뮤니티가 저딴 싸구려 알트코인으로 사기 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라며 도지코인다크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알트코인 지지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암호화폐에 관해 여러 의견을 주고받는 가장 오래된 온라인 포럼 비트코인 토크(Bitcoin Talk)에서도 도지코인다크는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런 코인이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날은 암호화폐가 끝장나는 날이라고 봐도 좋겠다.”

이렇게 절망적인 평가를 남긴 이용자도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소수의 지지자를 제외하면 도지코인다크는 계속 무명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버지코인으로 이름을 바꾼 2년 전 몇몇 거래소에서 코인을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잠시 가격이 요동치기도 했다. 발로는 도지코인다크의 결제를 IP2 네트워크에서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를 출시하면서 가격이 움직였다고 설명한다.

“좀 더 제대로 코인을 알리고 평가받기 위해 새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커뮤니티가 동의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불과 며칠 사이에 버지코인 가격은 0.005달러에서 0.25달러로 50배나 올랐다. 가격이 급등한 문제의 며칠 사이 바이러스 퇴치 소프트웨어인 맥아피 소프트웨어를 만든 존 맥아피는 “모네로(monero)나 지캐시(zcash)처럼 프라이버시에 초점을 둔 암호화폐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라는 트윗을 올렸다. 맥아피는 트위터뿐 아니라 온갖 소셜미디어를 다 동원해 프라이버시 암호화폐 가격이 곧 치솟을 거라는 말을 끊임없이 해댔다. 나중에 맥아피는 문제의 계정이 가짜 계정으로 자신은 그런 말을 쓴 적이 없으며, 버지코인 가격도 “비이성적인 이유로 폭등했다”고 말했다.

완벽하지 않은 프라이버시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이른바 소셜미디어에서 맥아피 사건이 터지고 나서 며칠 뒤 이번에는 버지코인을 거래한 위치 정보들이 웹사이트에 공개돼버렸다. 그동안 암호화폐 세계에서 버지코인은 프라이버시를 강화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비판의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무엇보다도 버지코인 거래가 이뤄지는 네트워크 프로토콜은 거래 당사자의 위치 정보가 가릴 뿐 지갑, 결제 정보, 신원 등은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위치를 추적해내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네로의 핵심 개발자 리카르도 스파그니는 트위터에 데이터 뭉치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링크를 올리며 버지코인을 깎아내렸다.

“버지코인이 돈이 된다느니, IP주소를 완벽하게 가린다느니 말이 많은데 이 데이터를 한번 직접 보시라. IP주소 하나도 완전히 가리지도 못하고 그냥 애매하게 가리는 시늉만 해놓고 프라이버시를 강화했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거라면, 버지코인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버지코인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거래 위치 정보를 노출한 웹사이트가 가짜라고 믿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오히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관련 없는 데이터를 억지로 포장해 버지코인을 음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로도 코인데스크에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문제의 주소들은 토르 네트워크에서 노드를 기록해놓은 위치일 뿐이다. 저 가운데 버지코인 이용자의 실제 IP 주소는 하나도 없다.”

버지코인은 최근 레이스 프로토콜(wraith protocol)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출시했다. 이른바 임시주소(stealth addresses)를 생성해 거래 상대방이 내 주소를 알지 못하게 하는 기능이라고 버지는 설명했다. 이어 RingCT로도 불리는 링 서명, 스마트 계약에 아토믹 스왑 기능을 추가한 업그레이드가 예고돼 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프로토콜 출시를 바라보는 암호화폐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도 시큰둥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랑 노에더는 코인데스크에 이렇게 말했다.

“버지코인이 걸어온 발자취를 보면 이들이 약속하는 온갖 프라이버시 특징이 다 허풍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아직 시장이 자정 능력이 부족해 능력 안 되는 업체도 먹여 살려주고 있다는 걸 안타깝게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버지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채굴 공격

프라이버시가 노출되기 전에도 외부의 공격으로 인한 위기가 있었다. 포르노허브와의 제휴 사실이 발표되기 몇 주 전 한 해커가 버지코인 블록체인에 잠입해 초당 하나씩 블록을 캐내며 코인 수백만 개를 채굴해버렸다.

“ocminer”라는 이름을 쓰는 채굴 운영자는 비트코인 토크 게시판에 이 공격은 거래 시각을 기록하는 장치를 조작해 특별히 쉽게 풀 수 있는 해시함수로 된 블록을 한꺼번에 생산한 뒤 코인을 채굴하게 하는 식의 공격이었다고 설명했다. ocminer는 개발자가 이 정도 공격을 막지 못했다는 건 정말 한심하고 끔찍한 일이라며 “버지코인은 한마디로 쓰레기”라며, “존 맥아피는 이런 쓰레기에 거품을 넣으려고 그렇게 안간힘을 썼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ocminer는 발로에게도 메시지를 남겼다.

“제대로 된 개발자를 좀 모아 오시라. 진짜 진지하게 하는 말이다. 정말 당신은 코딩의 ‘코’ 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게 완벽히 증명됐다.”

사랑 노에더는 버지 지지자와 관계자들이 모인 레딧의 버지코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논의 자체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프라이버시 문제를 둘러싼 진지한 토론도 없었다. 오히려 비난이 거세지는데도 버지코인 지지자들의 결속은 더욱 단단해지는 듯했다. 발로는 코인데스크에 말했다.

“언제나 버지코인 커뮤니티의 단합된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끝을 알 수 없는 열정과 전폭적인 지원에 늘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악마와의 서약

하지만 버지 커뮤니티 안에서도 의심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포르노허브와의 제휴 발표 이전에 버지코인 개발자들이 기부받은 돈을 챙겨 잠적할 거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그런 소문이 돌 만도 했던 것이 860만 버지코인이 기부 전용 지갑에서 바이낸스 거래소로 갑자기 이전됐기 때문이다. 명목상 레저(Ledger) 하드웨어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코인이 옮겨진 것인데, 버지코인은 정작 레저와의 제휴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며 이를 부인했다.

버지 커뮤니티 밖에서는 의혹의 눈초리가 훨씬 거세다. 성(性) 산업 블록체인 스타트업인 인티밋(Intimate)의 공동창업자 리아 칼론버틀러는 코인데스크에 포르노허브가 인티밋에도 제휴 의사를 타진했지만, 인티밋은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Intimate.io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제안을 거절했다. 무엇보다 공짜 포르노를 박리다매로 마구 퍼뜨리는 이미지가 강한 브랜드와 손을 잡는 것은 전략적으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스팽크체인(SpankChain)의 CEO 아민 솔레이마니도 트위터를 통해 포르노허브가 제휴를 제의했지만, 윤리적인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는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는 버지코인 가격을 보고 있으면 이거야말로 시세조종 사기의 명백한 근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고 말했다.

수많은 비판과 비난 속에서도 어쨌든 이번 제휴 발표로 인해 버지코인은 드디어 제대로 된 주목을 받게 됐다. 모네로의 개발자 “rehrar”는 개발자 노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어차피 이 세상의 90%는 멍청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멍청이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면 많은 돈을 벌기는 쉽다. 모네로는 오히려 그걸 못 해서 문제다. 모네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자발적인 기부금을 바탕으로 근근이 홍보를 이어오며 내놓는 개발 성과마다 무시당하고 혹평받던 보잘것없던 코인이 어쩌다 보니 업계에서 가장 큰 업체와 제휴를 맺게 됐다. 사랑 노에더는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마케팅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한 셈이다. 그 덕분에 (버지코인이) 여기까지 와서 이런 깜짝 놀랄 소식을 전할 줄 누가 알았을까?”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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