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SF_더 파이브_#01] “저 여자 뭐야? 로빈 후드야?”

제1화: 유크로니아국의 입국 신청

등록 : 2018년 6월 8일 18:10 | 수정 : 2018년 6월 10일 00:30

김태권 그림

 

“해적선 같은 게 나라로 인정됐다고? 그게 말이 돼?”


“정확하게는 온라인 국가입니다. 전 세계 IT 플랫폼의 상당부분을 점유하고 있죠.”


“그 여자 본명은 뭐야. 그냥 이리로 데려와봐. 잡아넣으면 되지. 유엔 사무총장을 나랑 전화로 연결시켜주게.”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게 불을 선물했다. 인간은 이 강력한 도구를 이용해 다른 동물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인류에게 블록체인을 선물했다. 이제 인간은 다른 인간들로부터의 지배-피지배의 사슬에서 벗어난 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으로의 도약의 기회를 얻었다.
2028년 현재 사토시 나카모토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그 대신 더 파이브가 나타났다.

프롤로그

– 유크로니아국이 입국신청을 해왔습니다. 어떡할까요?

비서관이 미국 대통령, 스캇(Scott)에게 물었다.
대통령 상황실 화면에 보스턴 항구에 입항을 준비하고 있는 배 한 척이 보였다. 항공모함급이었다. 고급 수트를 입은 사람들이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저 배는 유엔에서 인정한 공식 국가이긴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입국 허락은 안됩니다. 유크로니아국에는 미국에서 수배된 수많은 범법자들이 있습니다. 국가 일급 기밀 폭로자인 베루소를 포함해서요.

정보국의 셸(Shell)이 말했다.

-해적선 같은 게 나라로 인정됐다고? 그게 말이 돼?

백발이 성성한 부통령 세이무어(Seymour)가 시가에 불을 붙이며 말하자 주위가 일순간에 조용해했다. 아무도 그에게 프레지던셜 벙커가 금연이라고 지적하지 않았다. 그의 가문의 권력은 미국의 대통령직보다 오래 존재해왔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온라인 국가입니다. 전 세계 IT 플랫폼의 상당부분을 점유하고 있죠. 휴가 다녀오시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비서관의 보고는 확인하고 있으시죠?

스캇 특유의 점잖은 말투였다.

-당연히 하고 있지. 화이트하우스 보고시스템보다 SNS가 더 빠르니 답답하긴 하지만. 게임머니 버는 걸로 돌아가는 나라라니 기가 막히는군.

세이무어가 빈정거렸다.

더 파이브가 세운 온라인 플랫폼으로 지구상의 자금들이 다 옮겨가고 있었다. 검색엔진, SNS, 게임 등과 같은 인터넷 서비스 관련한 것들은 물론 영화, 음악, 웹툰과 같은 콘텐츠 서비스와 유통, 상거래, 금융서비스 등까지. 전 세계 경제시스템이 전부 파이브의 새로운 플랫폼 체제위에 올라갈 게 이제 시간문제로 보였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유토피아의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더 파이브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들은 영토를 기반으로 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온라인상에서의 영원한 ‘유크로니아 게임월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유크로니아 경제, 사회 시스템을 전파했다.

대통령의 비상 벙커 안은 소란스러웠다. 변화의 바람이 코끝을 매섭게 치는 시기, 고급 수트를 입은 사람들이 서로 토론하느라 분주했다. 모두들 단속평형의 예가 정말로 실현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촉을 세우고 있었다. 수트맨들은 머릿속에 계산을 시작했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DHL, 넷플릭스, 전 세계 수백 개의 은행. 이것들을 다 합한 시가 총액이 어떻게 되지?

-로빈 후드야? 우리 자산을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고 있잖아.

세이무어가 말했다.

-그가 아닙니다.

셸이 세이무어의 말을 가로막았다.

-글쎄, 내가 보기에도 더 퍼스트가 하는 행동이 정확히 로빈 후드인데.

스캇이 말했다.

-유크로니아 시민권을 가진 미국 국민들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긴 합니다.

젊은 비서관은 얼굴이 홍조가 되어 유크로니아를 감쌌다.

-그게 아니라 말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말이 꼬이고, 눈이 감기고 있는 셀에게 부하 직원이 재빨리 트리플샷 라떼를 건넸다. 그가 뜨거운 라떼를 홀짝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더 퍼스트는 그가 아니라 그녀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셸은 혼미한 정신으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잠을 잔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주위가 또 한 번 소란스러워졌다.

-그 여자, 본명은 뭐야? 어디 출신이지? 됐어. 그냥 이리로 데려와봐. 강제로든.

세이무어가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국제법에 따르면 저 나라의 배 주위 삼십 킬로미터가 영해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비서관이 말했다.

-하지만 배에서 나오게 한다면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졸린 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셸이 말했다.

-그녀가 미국의 이중국적자라는 것을 고려할 때 본국에서 나온다면 외교관의 권리를 제한한 국제법을 느슨하게 적용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도 유엔에서 허락해야죠.

비서관이 말했다. 주위가 잠시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스캇을 향했다.

-그럼 정중히 모셔와.

스캇이 드디어 입을 떼자 세이무어가 미소를 지었다.

-맞아. 그리고 뭐든 이유를 넣어 잡아넣으면 되지. 이제 유엔사무총장을 나랑 전화로 연결시켜주게. 왜 뭐든 내 손으로 직접 해야 하지?

세이무어는 시가의 불을 껐다. 회의는 끝났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유토피아의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더 파이브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유크로니아호가 미국에 입국 신청을 했습니다. 과연 퍼스트가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낼까요?

백악관의 초청을 받자, 유크로니아호에서 헬기 한 대가 이륙을 준비했다.
방송 헬리콥터와 주위 선박들이 유크로니아호 주위를 맴돌았다. 한 헬기 안에서 리포터가 큰 목소리로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단지 1년이 걸렸습니다. 1년 전 4월 15일 화려하게 등장한 가상현실 게임월드 ‘유크로니아’가 1주년 기념 이벤트로 현실 세계에서의 온라인 공화국을 깜짝 선포한 지난 4월 1일 이후 단 2주 만에 전 세계 30%의 인구가 이들의 전자시민권을 가졌습니다. 만우절 이벤트 정도로 가볍게 치부했던 이들의 선언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동참을 선언하는 커뮤니티들의 등장과 함께 그 수가 가파르게 늘어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공해 상에 거대한 규모의 배, 유크로니아호,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섬과 같은 영토까지 나타난 셈이 되자 이 선언은 인류 역사에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던 새로운 전 세계 연결형 국가를 선포하는 선언이 되었습니다. 게임월드 ‘유크로니아’에서 생활해오던 사람들 중 이중국적이 금지된 국가에 소속된 이들은 유크로니아호가 온라인 공화국을 선포하자 이 나라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 복수국적을 인정해주는 이웃 나라로 이민을 신청하고 있습니다. 이런 숫자가 급속도로 늘면서 헌법을 개정하려는 나라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4월 15일 유엔이 정식 국가로 이들을 인정하던 날 전 세계에서는 축하 공연과, 길거리 행진이 이어졌습니다.

방송 화면에는 4월 15일, 전 세계 곳곳의 녹화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전통의상인 흰 옷을 입고 민속 축제를 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유크로니아 시민임을 표시하는 팔찌를 장식하고 있었고, 해변에 누워있는 아카풀코의 연인들도 유크로니아 마크가 달린 선글라스를 낀 채 서로를 축하했다. 이집트 여성 오백 명은 스핑크스 옆에서 유크로니아 로고를 인간군상의 형태로 만들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중국 공무원들도 유크로니아 로고가 새겨진 텀블벅에 커피를 마셨고, 군복을 입은 영국 군인들도 유크로니아 표식인 승리의 브이를 손가락으로 만들어 보였다.

-이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단체나 나라는 현재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방금 전 유크로니아국의 사령탑인 유크로니아호가 미국에 입국 신청을 했습니다.
화이트 하우스 쪽에서 정식 초청을 했는지 여부를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만, 과연 퍼스트가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낼까요?

전 세계인들은 더 퍼스트가 누구인지 보려고 생방송 화면에 집중했다.

 


 

[작가 소개]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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