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SF_더 파이브_#2] 세상 호령하던 플랫폼들의 속절없는 추락

제2화: 더 퍼스트의 속삭임

등록 : 2018년 6월 15일 17:58 | 수정 : 2018년 9월 11일 20:05

김태권 그림

 

온 몸은 불에 지진 듯 화끈거렸다.
코딩을 배운 십대 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그녀를 스카우트한 것은 최첨단 글로벌 기업이라고 속인 글로벌 폭력배들이었다.

“세상을 당장, 한꺼번에, 위아래로 뒤집어서 바꾸고 싶으세요?”

“그건 제 노래 가사일 뿐입니다. 전 아직 열 여섯 살일 뿐이예요.”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들이 점점 대중의 신뢰를 잃어갔다.
새로운 플랫폼들이 생겼지만 그렇게 또 사라져갔다. 
기득권들은 눈 깜짝 하나 하지 않았다.
플랫폼들의 추락을 보며 오락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2년 전

 

제1장. 더 파이브

 

한 사람의 꿈은 꿈일 뿐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다.

A dream you dream alone is only a dream.
A dream you dream together is a reality.

-존 레논-


베트남 외곽, 한 아파트. 새벽 3시.

삭발한 머리의 아성이 침대에 사지가 묶여 있었다. 폭력배가 네 시간 전에 불을 끄고 나간 뒤에도 좀처럼 잠에 들 수 없었다. 팔다리를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온몸은 불에 지진 듯 화끈거렸다. 강간을 당하지 않고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코딩을 배운 십대 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그녀를 스카우트한 것은 최첨단 글로벌 기업이라고 속인 글로벌 폭력배들이었다.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민 온 부모가 사고로 죽고, 스무 살에 속아 들어온 그녀는 일 년 동안 방 안에 갇혀서 사행성 온라인 게임이나 코인을 만들어주었다. 운이 나빠서인지 게임은 세계적인 히트를 쳤고, 폭력배들은 큰 부자가 되었다. 덕분에 도망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잡혀 들어오기를 세 차례. 이번에는 정말로 죽는가 싶었다.

쇠창살이 달린 작은 창문이 달린 방은 깜깜했다. 갑자기 창문 밖에서 빛이 들어와 방 천장을 비췄다. 그러자 천장에 누군가가 쓴 글씨가 보였다.

아성님, 더 파이브의 멤버로 초대합니다. -퍼스트-


프랑스 몽상미셸 성, 패션쇼가 벌어지는 밤. 저녁 7시.

수많은 유명 인사들과 모델들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패션쇼장에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울렸다. 세계 각국의 멤버로 이뤄진 다섯 명의 보이밴드는 몇 분의 짧은 퍼포먼스를 마치고 좌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미성년자는 술은 안돼요.

인종을 알 수 없는 미모의 보이밴드 리더, 트리(T. Ree)가 잡은 와인 잔을 누군가가 뺏었다.

-술 따위 안 마셔요. 목이 말라서 음료인 줄 알았어요.

리가 말했다.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초대한 방문국의 공주로 그와 동갑이었다.

-세상을 당장, 한꺼번에, 위아래로 뒤집어서 바꾸고 싶으세요?

-그건 제 노래 가사일 뿐입니다. 전 아직 열 여섯 살일 뿐이예요.

리는 예의 바르게 미소 지었다.

-글쎄요. 제가 보기엔 진심이 담겨 있던데요.

공주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하지만 종이에는 그가 기대했던 그녀의 연락처 대신 이상한 문구가 써 있었다.

‘T 리’ 님, 더 파이브의 멤버로 초대합니다. -더 퍼스트-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는 이미 뒤돌아 걷고 있었다. 종이에 적힌 글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한강. 한국.

-한민 대표님이시죠? 저희 기억나세요?

젊은이 다섯 명이 민에게 말을 걸었다.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자기의 강연을 들은 수천명의 젊은이 중 하나겠지.

-대표님이 하시지 말라고 했던 거 저희는 다 했어요. 결국은 코인 다단계까지 했죠. 아주 후회하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민은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말했다.

-대표님은 거짓말하시면 너무 티나요. 앞으로는 하지 마세요.

몸집이 작은 여학생이 웃었다. 하지만 민이 술에 취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버리자 그들은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고 뒤돌아 가기 시작했다. 네온사인이 환한 한강 다리였다. 둘씩 셋씩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걷는 모습이 다정해 보였다.

-대표님, 죽으시면 안돼요.

오십 미터쯤 앞서갔던 젊은이들 무리에서 여학생이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남학생이 다리에 올라섰다. 그리고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졌다. 다른 젊은이들도 그 뒤를 따르려 하는 것 같았다.

-안 돼.

민은 벌떡 일어나 그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여학생이 다리에 오를 차례였다. 그녀가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자 마지막 남은 젊은이가 그녀를 안아 올려서 다리 위로 올렸다. 민은 소리를 지르며 뛰었지만 여학생은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한 듯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숨이 턱까지 차 올라 마지막으로 남은 젊은이의 허리를 잡고 함께 미끄러져 넘어졌다. 젊은이가 종이 한 장을 그에게 주더니 순식간에 다리로 올라가 뛰어내렸다.

한민, 더 파이브의 멤버로 초대합니다. -더 퍼스트-

강에 떨어져 한 목숨이 사라지는 소리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작았다.

 

미국, 국회

-아직 시간이 있다면 국회 쪽에서 천천히 해결하는 게 좋겠는데 말입니다.

S가 말했다.

-화이트하우스로 토스하지. 한 번에 끝내 버리게. 없애 버려.

세이무어가 손을 크게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국제적 규모의 SNS 업체가 몰락하는 것은 미국 경제에 큰 위협이 됩니다.

-겨우 IT쪽 후발 주자인 거잖아.

세이무어는 S를 비웃은 거였다. IT쪽에서 큰 성장을 일군 것을 바탕으로 자수성가한 S였다.

S는 결국 자신이 세운 IT 회사의 사장직을 그만둬야 했다. 그 이유는 플랫폼에 쌓인 거대한 데이터에 기반한 파워를 기득권과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치권에 들어서면 달라질 줄 알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신이 세운 회사보다 수백 배 큰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 구글 같은 IT주자들도 모두 기득권에 협조해야 했다.

1990년대 초, 인터넷이 처음 생겼을 때, 아니 1980년대에 사이버펑크가 유행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느꼈다. 이제 평등한 분배의 시대가 왔다고 …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플랫폼들이 힘을 잃어가는 것들이 보였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들이 점점 대중의 신뢰를 잃어갔다. 새로운 플랫폼들이 생겼지만 그렇게 또 사라져갔다. 기득권들은 눈 깜짝 하나 하지 않았다. 플랫폼들의 추락을 보며 오락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경제계에서 IT가 중심이 된 지금 세상도 백 년 전과 비교해 바뀐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럼 점심 약속이 있어서. 나중에 연락하세.

세이무어는 갑자기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S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둘러 나갔다. S한테는 늘 무례했다. S가 세이무어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 태도는 바뀌지 않을 거였다.

S도 자기 자리 앞에 놓인 회의용 모니터를 끄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화면에 이상한 게 떠있었다.

더 파이브의 멤버로 초대합니다. -더 퍼스트

<지난화 보기>
<다음주에 계속>

 


 

[작가 소개]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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