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SF_더파이브_#8] 우리는 하나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제8화: 아버지가 남긴 것

등록 : 2018년 7월 27일 18:30 | 수정 : 2018년 7월 27일 18:51

김태권 그림


<지난 줄거리>

전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이 디지털영주권을 가진 온라인 블록체인 플랫폼의 본거지, 떠다니는 거대한 함선도시 유크로니아호가  미국에 입국 신청을 한다. 백악관에서는 그들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고민한다. 왜냐하면 지난 2년 동안 급격하게 커온 유크로니아 플랫폼은 이제 전 세계 금융, 유통, 엔터테인먼트, 부동산까지 모든 영역을 아우르며 디지털영주권자들에게 그 이익을 골고루 분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실의 기득권층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더 퍼스트의 권유에 따라 청룡, 주작, 백호, 기린 등에 해당하는 세력들은 각각 민(플랫폼 구성), T리(엔터테인먼트), 아성(엔지니어링),  ‘S’(정치), 더 퍼스트(철학)가 만들었다. 유크로니아의 여러 세력들은 과연 내부 분열없이 완벽하게 통합될 수 있을까.

유크로니아 콘서트장에 홀로그램으로 나타난 마리와 현우. 마리는 유크로니아 플랫폼에서 자신만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상당한 재력을 모으고 있었다. 마리와 현우의 애정행각을 바라보던 민은 복잡한 심경에 빠지지만, T리와 공주 사이의 심상치 않은 갈등의 씨앗을 눈치채고 그들의 결혼을 만류하는데 …

 

<유크로니아호 미국 입국 1년 6개월 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두 개의 월드가 통합되면서 메인넷이 정지됐어.”

R이 아성에게 말했다.

“서로 다른 컨센서스 알고리듬으로 돌아가던 2개의 블록체인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그렇게 이론처럼 쉬울 줄 알았습니까?”

아성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유크로니아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다는 한 민의 이야기를 듣고, 퍼스트가 아성에게 해결사 역할을 부탁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유크로니아가 처음 시작될 때 창조한 블루존은 일반적인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아바타들이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작업을 하거나 게임 등을 하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정도였기에 크게 문제없이 확장이 되었지만, 새롭게 탄생시킨 T.리 등의 천재적인 아티스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레드존 월드를 블루존과 융합시키려다가 사달이 난 것이었다. 한 민은 초조한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애시당초 너무 이질적인 두 개 이상의 시스템을 하나의 월드처럼 만든다는 구상이 잘못 되었던 것이었을까? 그냥 따로 따로 돌아가도록 하고 거래소에서 거래만 유크로늄으로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지금이라도 수정해야 될 것 같아”

한 민은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듯이 R에게 메인넷을 복구하기 위해 두 세상의 통합을 포기하자는 의사를 비추었다.

“절대로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유크로니아를 창조하는 의미가 없어요!”

아성이 거칠게 소리쳤다. 그의 고함에 깜짝 놀란 한 민이 말했다.

“알았어 …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몇 시간만 더 메인넷이 동작하지 않는다면 유크로니아 인구의 절반은 떠나가고 말거야. 시간이 없다고 …”

한 민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하면서 아성은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라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잠시 뒤에 다시 연락할게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아성은 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끊었다.

모니터에 현란한 게임 화면을 켜놓고 진정하려고 했지만 게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라니. 이런 기술적인 딜레마를 두고 엔지니어였던 아버지가 떠오른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아성으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의 기억에서 아버지는 강제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핀란드 출신의 젊은 이상주의자였던 아성의 아버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수 많은 언어들을 익히고, 여러 가지 문화를 수용하고 경험하는 것을 좋아했다. 진정한 코스모폴리탄. 그게 그의 정체였다. 아성의 어머니를 만나 베트남에 정착하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아갈 사람이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세상을 돌아다니기 어려워지자, 그는 디지털 세상에서 전 세계 사람들을 연결하고 싶어했다.

아성의 아버지는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평생을 서로 다른 컴퓨터 운영체제와 프로그래밍 언어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다.

특히 그가 집착했던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시스템이었다. 모든 것이 통일되어 가던 상황에서 리눅스를 비롯한 다양한 운영체제들이 같이 공존하고, 프로그래밍 언어도 마치 우리 세상에 다양한 여러 가지 언어가 존재하듯이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 독특한 특색을 가진 소수의 언어들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면서도 모두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 그것이 그가 추구하던 이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만들었던 보석의 이름을 딴 오브(ORB, Object Request Broker) 라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기만 하면 서로 다른 운영체제와 프로그래밍 언어가 자유롭게 소통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컴퓨터 이용자들은 그의 소프트웨어를 외면했다. 저렴하게 보급해서 큰 수익을 바라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자 할 수 없이 그는 보석과도 같은 오브를 공짜로 공급하고, 소스코드를 공개하는 등의 강수를 뒀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오브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가 왜 귀찮게 이런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하죠?”

“그냥 윈도우의 노예로 살래요. 편리하게 대부분의 것을 여기에서 쓸 수 있는데, 다른 것들과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요?”

이런 현실적인 답변에 아성의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자신의 이상이 외면받는 것이 두려웠던 그는 결국 가산을 탕진할 지점까지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한 장의 편지를 남기고 집을 떠났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더 이상 당신과 아성을 볼 면목이 없구려. 내가 더 이상 폐를 끼치는 것보다, 빚쟁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해 두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보리다.”

그 사건 이후 아버지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전 세계의 인터넷 정책과 오픈소스 운동 등을 주도하는 EFF(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라는 곳을 탄생시킨 숨은 조력자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리고, 몇 달에 한 번씩 아성과 그의 어머니가 살아갈 수 있는 생활비가 우편전신환의 형태로 전 세계 각국에서 날아오는 것이 전부였다. 아성은 어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그런 아버지를 저주하기 시작했고, 결국 집을 나가 프리랜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을 했지만 조직 깡패집단이 운영하는 게임 작업장에 반 강제로 갇혀서 프로그래밍 노역을 하다가 간신히 퍼스트의 눈에 띄어 구출된 것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던 인간이 할 법한 이야기를 내가 하고 있군 …지금 내 말투가 꼭 아버지가 하는 말 같잖아.’

아성은 한 민에게 화를 낸 자신에게 놀랐다. 그래도, 정말 그는 이 어려운 작업을 꼭 성공시킬 거였다. 서로 다른 세상이 조화롭게 하나의 세상처럼, 그렇지만 각자의 개성이 넘치고, 자유로운 세상을 꼭 만들고 싶었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세상을 자신은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현재는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성공의 가능성이 있는 이유는 기술이 진보했기 때문이었다. 도박을 한 번 해볼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 순간 모니터에 게임 화면이 뜬 게 보였다. 커다란 보석 오브 반지를 끼고 유크로니아 사냥터에서 마법을 시전해서 슬라임을 잡고 있는 여성 흑마법사 캐릭터의 모습이었다

‘정말 화려한 오브를 구했군 … 오브라 … 오브?

보석이었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었던 소프트웨어의 이름이기도 했던 오브. ORB. 이는 오브젝트 리퀘스트 브로커(Object Request Broker)의 약자로, 서로 다른 운영체제와 프로그래밍 언어와 소통을 위해 만든 일종의 자율적으로 동작하는 에이전트 소프트웨어였다.  

‘어쩌면! 이 방식으로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무리하게 서로 다른 2개의 세계를 하나의 메인넷에 연결하다가 사실상 메인넷이 멈춘 상황. 이를 고집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연결을 포기하고 사용하는 통화나 일원화하는 유럽연합의 방식으로 후퇴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세계의 충돌을 감지하고, 다양한 컨센서스 알고리듬의 소통을 위해 타협과 중재를 담당하는 인공지능 에이전트 소프트웨어를 여러 개 만들어 배치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성은 소리쳤다.

“방법이 하나 생각났어요. 해결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일단 블루존과 레드존 통합은 중지해주세요. 지금부터 이들이 떨어져 있지만, 하나의 세상처럼 움직일 수 있는 에이전트를 프로그래밍 할 거에요. R 도와줄 수 있죠? 그리고 한 민 대표님. 유크로니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지를 해주세요. 레드존과 블루존의 통합은 계속 진행이 됩니다. 그렇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어 예정보다 통합이 며칠 늦어질 수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구요 …”

“잘됐네.”

뭔가 돌파구를 찾았다는 것을 감지한 민이 온라인에서 말했다.

“안돼. 꼬맹이.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너한테 전적으로 맡기기엔 우린 시간이 없어. 사람들이 벌써 많이 빠져나가고 있어. 커뮤니티들에서는 …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어.. 악성 이미지도 올라오고. 물론 대다수는 민을 믿어보자고 하고 있지만 이게 오래갈지.”

R이 말했다.

“저한테 맡겨보려고 일 준 거 아니에요?”

“너한테 맡긴 게 아니고 네 이력서에 맡긴거야. 잊지 마. 넌 아직 너무 어려서 경험이 적어.  이 시점에 에이전트를 새로 프로그래밍하다니. 수많은 돌발 상황들이 있어. 생각으로만 일이 되는 게 아니야.”

“좋아요. 그럼 전 이 모든 일에 손 떼겠어요.”

“이런 경우에 어떤 손해를 입는지 계약서에 명시되어있을텐데?”

R이 말하자 민이 끼어들었다.

“R, 손해는 내가 감수하도록 하지. 아성,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도와주도록 할게. 한번 해봐”

민의 말에 R은 잠자코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성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본 한 민은 마음이 놓였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조화로운 유크로니아 세계가 정말로 탄생할 수 있는 것일까? 아성이 해결하는 것은 이 플랫폼이 가진 프로그래밍 상의 문제일 뿐이야 … 진짜 문제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주에 계속>

<지난화 보기>

7화_ 예술가들의 천국

6화_세라, 유크로니아 16번째 달의 이름

5화_VR과 AR이 조합된 게임월드, 시험운영은 끝났다

4화_민이 낸 수수께끼를 풀어라

3화_살아남은 자들의 아침

2화_더 퍼스트의 속삭임

1화_유크로니아국의 입국 신청


[작가 소개]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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