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의 기원_#4: 초국가기업의 인터넷 지배에 대한 반격의 서막

장중혁의 토큰토크

등록 : 2018년 8월 2일 10:00 | 수정 : 2019년 5월 2일 13:14

2007년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공개적으로 페이스북을 비난했다. 핵심은 ‘페이스북이 사용자 데이터를 독점하면서 인터넷의 투명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까지 구글의 서비스들은 이메일을 제외하면 사용자 인증을 요구하는 서비스가 없었다. 그것은 곧 구글이 개별 사용자들에 대한 정보수집을 사업의 핵심적 요소로 생각하지 않았고, 최소한 구글의 슬로건이라 할 수 있는 ‘악해지지 말자’에 비추어 볼때 사용자 정보를 배타적으로 사업에 활용하는 것은 비난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구글의 비난은 오래 가지 않았다. 구글은 페이스북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누구도 페이스북에 대한 자신의 비난에 동참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글은 굳이 자기만 순결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바로 사용자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는 것으로 전략적 방향을 수정했다. 자신들의 서비스를 사용자 정보 수집을 향해 모두 재정렬시켰다. SNS 서비스인 구글 플러스를 중심으로 한 전략과 모바일 플랫폼인 안드로이드 전략은 이런 맥락에서 출발된 것이었다.

구글의 변심이 처음은 아니다. 창업자들은 창업 초기에 ‘왜 광고 기반 검색은 결과가 왜곡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논문에서 주장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글이 얼마나 검색과 광고를 잘 연결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검색 서비스를 통해 대용량 데이터를 모으고 이로부터 ‘의미’를 찾아내는 기술은 이제 ‘사용자’를 향하고 있었다. ‘사용자’야말로 거대하고 가치있는 데이터의 보고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한 것이다. 그들은 이제 국가를 대신해서 개인들을 지배하는 꿈을 꾸고 있다. 온라인 컴퓨팅의 창시자들은 크립토아나키스트 그룹과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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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적 온라인 컴퓨팅의 프로토타입 : 비트코인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는 영어로는 ‘크립토커런시’, 즉 ‘암호화폐’로 불린다. 비트코인의 선조라고 볼 수 있는 디지캐시나 비머니, 비트골드 같은 전자화폐들이 디지털 정보로 기록되는 화폐의 보안 기술로 암호기술을 사용해 왔고, 비트코인도 비대칭키 암호를 사용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 명칭인 듯하다. 이 설명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으며, 나 역시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트코인에서 비대칭키 암호가 사용되는 방식을 자세히 보면 ‘비트코인을 암호화폐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생각을 한 번 쯤 해보게 된다. 왜냐하면 비트코인에서 비대칭키 암호가 사용되는 방식은 우리가 암호에 대해 알고있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논문의 첫 문장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전자화폐를 전자서명의 체인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암호화폐의 창시자로 불리는 데이비드 차움의 그것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물론 그렇다 해도 차움의 위대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차움이 목표로 한 것이,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이중지불’을 배제하는 것이 가능한 전자화폐의 ‘지불 시스템’이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사토시는 전자화폐 자체를 전자서명을 이용하여 ‘찍어내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움의 익명성이 ‘송금’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인 반면, 사토시의 익명성은 ‘발권’ 단계에서 만들어진다. 비트코인은 처음부터 ‘익명’의 채굴자에게 발권된 것이다.(사실은 채굴자가 발권해서 네트워크에 서명을 요구한 것이다.) 채굴자들은 참여자들의 합의를 거쳐 ‘전자서명의 체인’을 블록으로 만듦으로써 체인을 방어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는 ‘비트코인’에 의해 시작된 ‘공개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를 ‘암호화폐’라고 부르기 보다는 ‘전자서명 합의 화폐’라고 불러야 한다.

익명성과 이중지불 방지에 대한 사상이 ‘위대한’ 차움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채굴자 발권’의 사상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바로 b-money의 창시자인 크립토아나키스트 웨이다이로부터 온 것이었다. 웨이다이는 작업증명(PoW)이 채굴자 발권의 기초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관점은 차움의 사이버펑크(cyberpunk) 혹은 사이퍼펑크(cypherpunk)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 사이버펑크는 ‘감시의 거부’라는 수동적 저항의 산물이지만, 크립토아나키즘은 ‘국가의 폐지’라는 능동적 대체의 지향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은 전통적인 무정부주의와도 다른 것이었다.

전통적 무정부주의와 달리, 크립토아나키즘에서는 ‘정부’를 일시적 파괴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구히 금지되어야하며 영원히 쓸모없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누구든지 이전에 해결되지 않은 컴퓨팅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 이를 브로드캐스팅함으로써 돈을 발권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유일한 조건은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컴퓨팅 파워가 소모되는지를 쉽게 결정할 수 있어야하며, 그 답이 실용적으로든 지적으로든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니어야한다는 것이다. (출처 : http://www.weidai.com/bmoney.txt)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사토시의 비트코인은 순수하게 ‘크립토아나키스트 세계의 화폐 이념’을 구현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크립토아나키스트 사회개혁가들은 ‘데이터를 연산하고’, ‘저장하며’, ‘통신하는’ 그것의 다른 정체를 알아채 버렸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온라인 컴퓨팅의 원형이었다.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이 지배하는 온라인 컴퓨팅 세계를 흔들 수 있는 그 작은 싹을 발견한 것은 비탈릭 부테린이었다.


[지난 화 보기]

#1: 데이터 컴퓨팅의 진화와 구글의 시대

#2: 초국가 기업의 탄생과 소셜미디어 

#3: : 암호가 세상을 자유롭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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