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의 기원_#6 : 전문가들의 공간 vs 대중들의 공간

장중혁의 토큰토크

등록 : 2018년 8월 23일 14:45 | 수정 : 2019년 5월 2일 13:12

공개 블록체인이 ‘전문가’들에 의해 탄생한 공간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이는 인터넷이 전문가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공간인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의 기술사가인 자넷 어베이트는 인터넷이 어떻게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를 기술(description)해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핵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으로 요약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우연적 계기들이 작동했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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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터넷을 현재의 인터넷으로 만든 것은 전문가들이 아니다. 인터넷은 대중들의 공간이 됨으로써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가 대중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말 할 나위 없고, 인터넷 진화의 초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기술적 혁신’으로 불리는 검색 영역에서도 대중들의 기여는 결정적이다. 자신들이 읽은 웹 문서의 링크를 앵커 텍스트와 함께 남긴 ‘웹 독자’들이 없었다면, 구글의 검색 알고리듬인 페이지랭크는 작동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구글 검색엔진의 성장에 대한 ANT적 분석> 참조) 그리고 대중들이 결합되지 않았다면, ‘온라인 컴퓨팅’ 역시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인터넷과 ‘온라인 컴퓨팅’이 만들어지는 데 대중의 기여가 결정적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로, 공개 블록체인이 질적으로 다른 단계로 진입하는 계기는 대중들이 공개 블록체인 위에서 보여주게 될 ‘전형적 행위’들이 축적됨으로써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공개 블록체인의 역사에서 지금과 같이 날 것의 프로토콜이 주목을 받는 시기는 곧 잊혀지게 될 역사다. 인터넷과 비교를 한다면 지금의 공개 블록체인은, 구글의 탄생 전에 있었던 많은 인터넷 서비스들의 역사나 ARPANET이 Internet이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하지만 지금의 공개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줄 프로젝트가 무엇일지를 가늠하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또 착각 속으로 들어간다. 그 착각이란, 공개 블록체인을 기능적, 성능적 측면에서 한 단계 끌어올린 혁신을 주도하는 프로젝트가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혹은 기대를 말한다.

단기적으로 ‘개발 생태계’를 끌어모은 이더리움이나 TPS를 극적으로 개선하고 사용자 비용을 낮춘 EOS가 주목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직 공개 블록체인은 많은 대중들이 생태계 안으로 들어와 뿜어내는 전형적 행위와 그것의 패턴화를 기초로 한 혁신이 씨를 뿌릴 수 있는 한 줌의 흙도 쌓이지 않은 상태다.

이런 시기에 횡행하는 것이 바로 전문가들의 ‘비전 과잉’이다. 전문가들은 ‘내가 대중들의 욕망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들은 이런 것들을 좋아할 것’이라는 예언을 쏟아낸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유명인이 쏟아낸 그런 예언들은 많은 투자를 몰고 다닌다. 하지만 대개 그들의 예측은 실패한다.

물론 인터넷과 공개 블록체인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네트워크들을 연결하는 TCP/IP를 발명해 주어야 하고, 저렴하면서도 로컬 네트워크의 속도를 극적으로 개선하는 Ethernet을 만들어 주어야 하고, FTP와 같이 파일이 다 다운로드되기 전에는 내용을 볼 수 없는 프로토콜이 아니라 전송된 정보를 부분적으로도 계속 표시해주는 Web을 선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속도를 높이는 이야기(TPS : Transactions per second)나 용량을 늘리는 이야기(스케일링 : 샤딩, 플라즈마, 라이트닝 네트워크 등)가 뜨거운 것은 바로 그 단계를 지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혁신은 딱 거기까지다.

일단 대중들이 생태계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대중들이 제시한 방향을 따라 잡는 혁신은 과거의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그런 점에서 공개 블록체인은 ‘아직은’ 전문가들의 공간이다.

그리고 언젠가 공개 블록체인이 도약을 겪게 된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할 것이다.

 

  • 공개 블록체인을 사용하기 위해 대중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없고
  • 공개 블록체인이 자신이 해결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대중 대부분이 알며,
  • 공개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들의 특성을 활용하지만 공개 블록체인을 굳이 알 필요가 없는 파생적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한다

 

이 말은 공개 블록체인이 사이퍼펑크(Cypherpunk)로부터 태어났지만, 공개 블록체인의 미래는 그것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많은 계기들이 뒤엉키면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태일 것이라는 의미다. 지금은 ‘탈중앙화’가 이데올로기로 존재하지만, 미래의 ‘탈중앙화’는 ‘세력’으로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은 ‘무엇이 작동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된다.

Libertarian 아나키즘과 Cypherpunk라는 근대적 기획은 분명 비트코인과 ‘공개 블록체인 컴퓨팅’이라는 컴퓨팅 프로젝트가 탄생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러나 공개 블록체인의 미래가 그러한 이념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인지를 묻는다면, 나는 ‘알 수 없다’와 같은 모호한 답이 아니라 ‘아니다’를 선택할 것이다. 조만간 대중들이 이 생태계 안에서 자기 행위로써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하면, 공개 블록체인 컴퓨팅은 Cypherpunk와 괴리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 시점에 우리는 다시 한번 새롭게 질문해야 한다.

공개 블록체인 컴퓨팅이란 무엇인가

 

[1] 기술사학자 자넷 어베이트의 저서 <인터넷의 발명>(Abbate, J. (2000). Inventing the internet. MIT press.)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인터넷의 초기 역사를 기술한 가장 정통적 문헌이다.

 

장중혁 iBloc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경영과학을 전공했고, 서울대 과학철학협동과정에서 과학기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IT/통신분야 컨설팅 기업 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에서 일했고, 몇 개의 IT기업을 창업했으며 ,현재는 ㈜인포뱅크의 블록체인 사업부인 iBloc 대표로 블록체인 기반 금융서비스를 준비중이다. 장 대표는 코인데스크코리아 고정칼럼 ‘토큰토크’를 통해 컴퓨팅 역사의 관점에서 블록체인 기술의 기원을 짚어보는 글을 총 7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밖에도 블록체인과 토큰이코노미에 대한 기술사회학적 고찰을 담은 글을 쓸 예정이다.

 

[지난 글 보기]

#1: 데이터 컴퓨팅의 진화와 구글의 시대

#2: 초국가 기업의 탄생과 소셜미디어 

#3: : 암호가 세상을 자유롭게 하리라

#4: 초국가 기업의 인터넷 지배에 대한 반격의 서막

#5: 오픈소스 운동의 강력한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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