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SF_더파이브_#11] 불신자들의 도시

제11화: 유크로니아 왕위 계승과 세금 인상

등록 : 2018년 8월 31일 20:49

김태권 그림

 

“자유, 평등 그리고 열정!”

T리의 선언에 맞춰 베를루스 국의 해군들이 포를 쏘았다. 맑은 초봄의 햇살에 해군 모자의 계급표가 반짝였다. 군인들은 모두 무표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서 환한 빛이 흘러나왔다.

“중국, 거기 있나요?”

T리가 묻자 유크로니아 호 안의 사람들이 환호로 답했다.

“미국, 베를루스, 한국, 이탈리아, 모두  소리치세요!”

국가가 호명될 때마다 환호가 커졌다.

타이타닉호 이후에 배의 첫 출항이 이렇게 주목을 받은 적은 없었다. 배 안의 축구경기장에는 무대에 선 T리 앞에 수만 명이 모였고 배 밖에는 베를루스 국의 국민들 수십만 명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보고 있었다.

유크로니아호는 일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전함 규모의 거주선이었다. 헬기 착륙장, 콘서트 장으로 용도가 바뀌는 축구장, 선실이 오천 여개가 있었다.

각국의 주요 정치인들과 세계 최고의 조선사 대표와 에너지 기업들을 포함해 초거대 기업의 대표들도 다수 출항식 귀빈석에 앉아있었다. 전 세계의 관심이 생방송에 쏠렸지만 누구보다도 베를루스 국의 국민들이 가장 열성적이었다.

유크로니아상의 U스타그램과 U튜브에는 3D 사진과 영상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유크로니아호의 출항 상황을 올리면 조회수가 적어도 수백 만은 금방 찍을 수 있었다. 거의 모든 베를루스국의 사람들이 유크로니아에 둥지를 틀고 있었고, 열성적인 국민들은 유크로니아호에 둥지를 틀기 위해 전 재산을 투자하기도 했다. 게다가 여왕이 유크로니아호 출항에 앞서 중대 발표를 한다는 뉴스 보도가 있었기에 모두들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가 나갈 시간이야.”

테스가 세라에게 일렀다.

“왜 제가 발표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다 할머니가 만든 문장들이잖아요.”

세라가 말했다.

“아니, 내가 만든 게 아니야. 인류가 만들었지. 아리스토텔레스, 부다, 토마스 제퍼슨. 존 레논. 그리고 유크로니아는 베를루스의 소유가 아니야. 전 세계인의 소유지.”

그렇게 말하는 여왕은 평소와는 달라보였다. 젊었을 때 이후로 사라졌던 순수한 열정이 보이는 듯했다. 세라는 신기한 표정으로 그런 여왕을 바라 보았다.

“정말로 유크로니아가 베를루스를 그리고 전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세라가 물었다.

“아니, 너와 T리가 바꿔야지.”

세라를 남겨두고 대기실 문을 닫으면서 테스는 헛웃음을 웃었다. 테스 또한 자신에게 속을 뻔했다. 이상은 이뤄지라고 있는 게 아니라 꿈꾸라고 있는 거니까. 세라와 인류가 충분히 꿈꾸게 놔두고 뒤에서 조종하면 되는 거였다. 늘 그래왔듯이.

테스가 마이크 앞에 서자 좌중이 조용해졌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과 지금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전 세계의 시청자 분들에게 인사드립니다. 저는 베를루스국의 여왕입니다. 유크로니아의 다섯 존들이 하나로 통합되었다는 것은 다들 아실겁니다.

이제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상의 주요 정치, 경제, 문화시스템들이 유크로니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는 감히 예견하건데 앞으로 온라인 유크로니아는 오프라인상의 120여 개국이 온라인에서 같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제일 큰  초국가가 될 것입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서두를 길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저의 중대 발표 부분으로 곧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유크로니아 상에서의 모든 권한을 손녀인 세라에게 상속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세라가 이어가겠습니다. 세라 양을 환영의 박수로 맞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테스의 말이 끝나자 카메라 플래쉬들이 터졌다. 세라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청록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사뿐사뿐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시청자들과 참가자들은 놀랐다. 평소에 세라가 입던 캐주얼하고 히피같은 옷이 아니었다. 관중들은 세라가 반항적인 사춘기 소녀의 역할을 벗고 책임감있는 왕족의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는 분위기를 느꼈다. 그녀의 발걸음은 우아해서 아무도 그녀가 인공지능 로봇 지지대를 장착하고 걷는다는 것을 못 느낄 정도였다.

“T리와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유크로니아 상에서 정말 큰 일을 해왔습니다. 바로 여러 가지 게임들이죠.”

그녀가 입을 떼자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많이요. 그리고 저 말고도 또래의 많은 이들과 함께 퀘스트를 이어가며 동지애를 느꼈습니다. 우리는 놀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죠. 유크로니아 행성을 탐험하기도 하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음악과 아이템 등을 만들어 수익을 얻었습니다. 콘서트를 관람하거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수익이 발생했죠. 유통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도 말이죠.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돈을 벌어주고 서로 돕는 일이 생각보다 아주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한 발자국 씩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끔은 그 과정 속에 후퇴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우리가 가려고 하는 방향성은 끝까지 잃지 않았습니다. 바로 자유와 평등을 향해서요. 그리고 숨어있던 우리 안의 열정을 일깨우기 시작했죠.”

그 부분에서 주요 방송사들은 세라를 보고 있는 T리의 표정을 클로즈업했다. 세라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할머니에게 감사하게도 저는 워터밤과 티킷 플랫폼을 양도 받았습니다. 저는  당연히 이 플랫폼의 수익 분할을 아성님이 만드신 AI 에이전트 알고리듬에 맡기겠습니다. 창작자와 시청자간의 평등하고 투명한 분배 시스템을 이 AI 에이전트가 보장하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온라인 플랫폼의 상당수가 이제 유크로니아 월드에 합병되었습니다. 우리는 절대 소수가 이 자원을 독점하게 하지 않고 새로운 AI 알고리듬 합의 시스템과 함께 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하고, 모두의 의견이 언제나 존중되는 통합되었으나 개개인에게 권력이 분산된 유크로니아 시스템을 올바른 궤도에 올려놓는데 온 힘을 쏟겠습니다.

이제 유크로니아가 모두 통합되면서 레드존에서의 수익은 블루존으로도 이어지고 화이트존에서 얻은 선거자금은 레드존으로도 갈 수 있게 됩니다. 초국가적인 이 시스템을 누군가가 독점하려는 시도가 없어졌으면 합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세계의 거대 기업의 총수여러분! 앞으로 그런 일은 없어야 되겠죠?  

자유, 평등, 열정!”

세라가 소리쳤다.

여러 국가의 정치인들과 기업 총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들 중 아무도 세라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랬다면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앞으로도 이런 발언에 아무렇지도 않게 박수를 칠 것이었다.

베를루스 국민들은 환호하며 축제를 이어갔다. 유크로니아호 출항식이 있었던  그 날은 임시 법정공휴일이 되었다. 오래된 중세 마을과 항구 도시들에서 민속 의상을 입은 축제 행렬이 이어졌다.

북유럽의 경제 대국들 사이에서 근근이 개발도상국의 위치를 이어오고 있었던 베를루스 국민들은 유크로니아에 큰 희망을 걸고 있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편한 이웃에 불과했던 국가가 북극해에서 석유가 뿜어 나오기 시작하자 거인들로 변신하기도 하였고, 원래 땅덩어리가 컸던 또 다른 이웃 국가는 커다란 시장을 바탕으로 안정된 성장을 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기업을 유치하고 복지국가 체계를 잘 구축한 이웃나라도 있었다. 이렇게 막강한 경제력과 자원 등으로 무장한 산업체들이 많은 이웃국가들과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베를루스는 과거 수십 년 간의 냉전체제 속에 국가의 역량을 키우지도 못했다. 마치 식민지와도 같은 역사 속에서 간신히 독립을 쟁취했지만, 무한경쟁의 시대로 들어간 세계의 경제시스템 속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기는 어려웠다. 수입도 수출도 여의치 않았다.

새롭게 기회를 얻었기에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는 산업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을 하고 디지털 국가의 건설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이 그들에게는 마치 석유와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더 파이브>의 멤버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고, 오랜동안 베를루스국의 권력자로서 명맥을 유지하던 왕가 입장에서는 이들이 탄생시킨 유크로니아에 커다란 지분을 확보하는 과감한 투자를 하면서 그 꿈을 차근차근 이루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가려면 우리 모두 힘을 합해야 합니다. 기술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해주었지만 기술이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아직 첫 삽을 떴을 뿐입니다.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새 출발의 의지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세라는 단상에 있던 의자에 앉아 드레스를 벗기 시작했다. 좌중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드레스를 벗자 나시티와 반바지 위에 보조기구가 장착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세라는 장치를 모두 떼어냈다. 그리고 유크로니아호 쪽을 보았다. T리가 유크로니아호에서 공중을 나는 기구를 통해 육지로 내려왔다. 그리고 장치를 떼고 단상을 향해 걸어 올라왔다.

T리를 의지하고 세라가 한발자국씩 떼어서 단상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발을 떼는 그녀를 위해 사람들이 길을 만들어주었다.

“이건 예스라는 뜻인 거야?”

T리가 세라의 귀에 속삭였다.

“어쩌면이야. 지금은 걷는데만 신경 쓰자. 우리 앞에는 장애물이 많아.”

세라는 단상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테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 인사해보였다. 그리고 테스의 바로 옆에 앉은 세이무어와 주위의 글로벌 기업의 대표, 주요 국가들의 유력 정치인들에게도 미소를 보냈다.

“할머니를 장애물로 생각하는 거야?”

T리가 나무라듯 말했다.

“아니, 우리 부모님의 살해용의자로 생각해.”

세라가 말했다. 미혼이었던 테스는 사촌 조카인 세라의 아버지를 왕위계승자로 올리고 후계자 수업을 해왔다. 세라의 아버지가 죽은 것은 왕위계승을 하지 않기로 한 선언하기 며칠 전이었다.   

“메인디쉬는 언제 시작할까요? 제 파티에 온 손님들이 제 손녀가 준비한 에피타이저를 드시면서 좀 지루해하시네요. 손녀가 채식주의자라서 메뉴가 좀 심심합니다.”

테스가 귀빈들을 둘러보며 세이무어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가끔은 채식도 좋죠. 제 손님들은 모두 자신의 정글을 지배하는 맹수들이라 육식을 주로하긴 하지만요.”

세이무어가 웃자 테스도 같이 웃었다.

“하지만 안타깝긴 하네요. 파티의 여왕인 테스의 진짜 손녀였다면 손님을 지루하게 할리가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세이무어가 덧붙였다.

“말조심하십시오. 세라는 제게 친손녀와 다름없습니다.”

테스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노여워 마십시오. 메인디쉬가 이미 나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정찬의 묘미는 역시 메인디쉬죠. 신선한 피와 육즙이 흐르는 생고기를 우리의 손님들은 매우 좋아하실 겁니다.”

세이무어가 말했다.

“손님들을 기뻐하게 할 메인디쉬는 2% 인상 정도로 시작할까요?”

세이무어가 물었다. 그가 손님이라고 칭하는 귀빈석에 있는 많은 이들을 둘러보았다. 세이무어의 ‘손님’들은 이미 수많은 자산을 유크로니아 레드 플랫폼에 투자했다. 그들은 기뻐할 거였다. 유저들에게 부당하게 많은 수수료를 걷는 일은 공정한 유크로니아 시스템 자체를 흔드는 일이었지만 바로 그게 그들이 바라는 일이기도 했다. 오프라인에서의 수익분배 구조를 그대로 온라인에 옮겨오면 되는 거였다.

“3%로 가죠.”

테스가 말했다.

“힘이 너무 들어가셨군요. 아시다시피 세금 인상은 2%를 넘기면 저항이 세집니다.”

“유크로니아 레드존의 에이전트 수수료는 세금이라기보다는 기부니까요. 주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기만 하면 되죠.”

“그렇게만 홍보가 되면 좋겠죠. 세금이 아니라 기부라. 그런데 과연 T리 와 세라 커플이 그렇게 홍보 해줄까요?”

세이무어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T리는 이미 오케이했어요.”

테스가  T리와 함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는 세라를 보며 말했다.

 

<다음주에 계속>

<지난화 보기>

10화_세이무어와 테스의 회합

9화_블랙존에서 열린 총회 

8화_아버지가 남긴 것

7화_ 예술가들의 천국

6화_세라, 유크로니아 16번째 달의 이름

5화_VR과 AR이 조합된 게임월드, 시험운영은 끝났다

4화_민이 낸 수수께끼를 풀어라

3화_살아남은 자들의 아침

2화_더 퍼스트의 속삭임

1화_유크로니아국의 입국 신청


[작가 소개]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각종 제보 및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