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SF_더파이브_#15] 역사는 반복돼, 달라질 건 없어

제15화: 제네시스 블록 퀘스트 공개 논쟁

등록 : 2018년 10월 5일 19:50

<지난 줄거리>

전세계 인구의 삼 분의 일이 디지털 영주권을 가진 온라인 블록체인 플랫폼의 본거지, 떠다니는 거대 함선 도시 유크로니아호가 미국에 입국 신청을 한다. 백악관에서는 그들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고민한다. 왜냐하면 지난 이 년 동안 급격하게 커온 유크로니아 플랫폼은 이제 전세계 금융, 유통, 엔터테인먼트, 부동산까지 모든 영역을 아우르며 디지털 영주권자들에게 그 이익을 골고루 분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실의 기득권층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 게임 월드는 과연 통합되어 운영될 수 있을까?

유크로니아 가상현실 게임월드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그 제네시스 블록의 조합에 비밀이 숨겨져있다니. 수백 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제네시스 조합 문양만 풀면 유크로니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일까? 유크로니아를 차지하려는 집단은 이 비밀을 알고 마훌을 암살한 것일까? 

 

“그럼 우리 식으로 하자.”

세라가 말했다.

“좋아. 레드존식의 게임으로?”

T리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민이 기가 막혀 했다.

“대중에게 제네시스 블록 퀘스트를 오픈하는 거야.”

세라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게 뭔데?”

언제나 냉정함을 잃지 않는 민이 물었다.

“유크로니아를 전부 잃는다 해도 우리는 대중의 신뢰를 얻을 수 있어. 다시 시작할 수도 있겠지. 못할 수도 있고. 하지만 신뢰를 잃는 건 모든 것을 잃는 거야. 그게 바로 마훌의 암살자들이 바라는 일일 수도 있고.”

세라가 말했다.

“먼저 선방을 치자는 말이지?”

아성이 말했다.

“위험해. 블루존은 절대 그런 리스크를 질수 없어.”

민이 고개를 저었다.

“블루존은 빠지겠다는 거야?”

세라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자 보조 의수가 덜컥거렸다. T리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세라는 뒤로 넘어졌을 거였다.

“블루존이 빠지면 당연히 화이트존도 그쪽으로 갈 거고. 레드존만 남게 될 거야. 그러면 그냥 다른 가상현실 게임플랫폼과 다를 게 없잖아.”

세라가 말했지만 민은 들은 척도 안했다.

“좋아.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헤어지자.”

T리가 세라를 다독이며 말했다.

“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거야. 너희가 타협안을 생각해주는 방향으로 해줬으면 정말 좋겠어.”

민이 말했다.

“나도 알아. 너랑 싸우자는 게 아니야. 네가 유크로니아를 다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하지만 진짜 유크로니아 정신을 잊지 말았으면 해.”

세라가 말했다.

민은 그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무례하게 접속을 끊었다. 예의바르고 단정한 민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었다.

단호해야 했다. 다시는 플랫폼을 사기당하거나 뺏기는 일은 없어야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민은 악몽을 꾸면서 잠꼬대를 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꿈속에서 경찰이 민의 집 앞으로 찾아왔다. 마리가 죽었으니 얼굴을 확인해달라고 관을 열었다. 관을 여니 죽음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핏빛이 사라진 창백한 죽은 마리의 보랏빛 얼굴이 너무나 생생했다. 미동도 하지 않는 얼굴. 숨도 쉬지 않는 얼굴.

“사인이 뭐죠?”

민이 힘이 빠져서 물었다.

“한강에 빠졌습니다. 자살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강이라니. 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빠지지 않게 해줬는걸요.”

민은 말했다.

“그때는 실패했는지 몰라도 이번에는 성공했습니다. 유크로니아에 전 재산을 투자했다가 다 뺏긴 젊은이들이 이렇게 계속 죽어가고 있습니다.”

경찰이 말했다.

민은 계속 그럴 리가 없다고 소리쳤다. 외침은 곧 통곡으로 바뀌었다. 어느새 깨어나 보니 베개가 젖어 있었다.

그림=김태권

 

민은 레드존에 접속해서 마리를 검색했다. 그녀는 이제 꽤 알려진 배경화면앱 아티스트로 지내고 있었다.

“잘 있었어?”

민이 마리에게 말을 걸었다. 답은 없었다. 시계를 보니 당연했다. 그리고 새벽 3시니까 오해할 만 했다. 시차 때문에 잠깐 착각했다. 아차 싶었다. 정신을 차린 뒤 시차를 확인하고 연락했어야 했는데.

민은 커피머신 쪽을 한 번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카페인으로 더 이상 흥분하기 싫었다.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서랍을 열고 각종 티 콜렉션이 담긴 가죽 티 캐리어를 꺼냈다. 물을 끓이고 티를 마시려다가 말았다. 결국은 하이볼을 만들어서 위스키를 3잔째 붓고 있을 때였다. 답장이 왔다.

마리에게서 온 유크로니아 접속신호였다.

유크로니아에서는 민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는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매만졌다.

레드존에서 다시 본 마리는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스키 타던 중이었어?”

스키복에 마스크,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그녀를 보고 민이 말했다.

“앗, 미안해요. 연락을 받자마자 답장하는 바람에.”

마리는 곧바로 스키 복장을 평상복으로 바꿨다. 그리고 얼굴도 자신의 얼굴로 바꿨다.

“무슨 일이 생긴 거죠? 얼마나 큰일이에요?”

마리의 말에 민은 가슴이 덜컥했다. 그녀는 전에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는 듯 했다.

“무슨 일이 있어야 연락하는 건 아니지. 그냥 궁금해서 연락했어.”

“새벽 세시에요?”

“그러니까.”

“글쎄요. 제가 아는 대표님은 새벽 세시에 여자에게 잘 있냐는 연락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자기 여자 친구에게도 안 그럴 분이시죠.”

“나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마.”

“저 말고도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걸요. 미안해요.”

민의 말에 마리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혹시 저한테 돈 버는 고급정보 주실 거면 환영입니다.”

마리가 즐겁게 말했지만 그냥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거였다.

“레드존에서 그만 자본을 철수하는 건 어때?”

민이 말했다.

“고급정보이긴 한데 하나도 안 반가운 정보네요.”

마리가 말했다.

“미안.”

“미안하실 일 안 하시면 되잖아요.”

“내가 모든 걸 다 좌지우지할 수는 없어. 아무리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유크로니아에 다 모였다고 해도 그건 유크로니아일 뿐이지. 난 나야. 난 신이 아니야. 유크로니아를 통제할 수 없어.”

“지금 말씀하신 거 녹화해서 전 유크로니아에 다 뿌려도 돼요?”

마리의 말에 민이 피식 웃었다.

“나하고의 대화는 보안상 녹화가 안 돼.”

“제 눈과 귀로 들었지만 믿을 수가 없어서요. 그리고 다들 안 믿을 거에요. 제가 조작했다고 생각할 걸요. 다들 한민 대표님을 대단하게 생각하니까요.”

“미안. 난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민은 접속한 채로 하이볼을 들이켰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대단한 사람이 돼야하는 거잖아요.”

마리가 말했다.

“왜?”

“그렇지 않고는 모두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전 다시는 한강에 빠지고 싶지 않아요. 후퇴는 없어요. 이번에는 전 세계 거의 대부분이 한강에 빠져야할텐데 과연 한강에 그럴 자리가 있을까요?”

마리가 물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단지 소유권만 예전처럼 소수에게 넘어가는 거야. 인류사는 반복돼.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모든 게 달라졌어요. 저는 이 삶을 포기 못해요. 직거래와 오픈소스, 그리고 자유와 무한한 힘. 그건 한민 대표님이 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인류사는 거꾸로 흐르지 않아요.”

마리가 말했다.

 

<다음주에 계속>

<지난화 보기>

14화_제네시스 블록의 비밀

13화_탈중앙화 거래소의 소스코드

12화_타협할 것과 아닌 것

11화_유크로니아 왕위 계승과 세금 인상 

10화_세이무어와 테스의 회합

9화_블랙존에서 열린 총회 

8화_아버지가 남긴 것

7화_ 예술가들의 천국

6화_세라, 유크로니아 16번째 달의 이름

5화_VR과 AR이 조합된 게임월드, 시험운영은 끝났다

4화_민이 낸 수수께끼를 풀어라

3화_살아남은 자들의 아침

2화_더 퍼스트의 속삭임

1화_유크로니아국의 입국 신청


<작가 소개>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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