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SF_더파이브_#16] 마침내 공개된 퀘스트를 풀어라

제16화: 제네시스 블록 퀘스트, 공개되다

등록 : 2018년 10월 12일 21:53 | 수정 : 2018년 10월 12일 21:56

“인류사는 거꾸로 흐르지 않아요.”

마리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대신 인류사는 반복되지. 민중의 혁명이 곧바로 성공한 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신분과 계급이 없는 나라를 개척해야 했던 미국뿐이야. 민중 혁명은 대부분 초기에는 실패했고 혁명가들은 처단 당했어. 그렇게 많은 피를 크고 작게 흘리고 기득권에 저항하는 역사가 이어지면서후 수백 년에 걸쳐 진행됐지. 물론 프랑스 대혁명처럼 큰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큰 변화가 나타나는 것 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말야. 그나마 수십 년 정도 만에 이것을 이룬 한국이 정말 대단한거라 할 수 있어’

마리에게 민은 그렇게 말했다. 마리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그냥 웃었지. 가상현실 안이라서 실감나는 웃음은 아니었지만 텍스트로 ㅎㅎ를 날리듯 마리는 묘한 웃음을 민에게 보냈다. 비웃음인지 공감인지 물었더니 마리는 또 한 번 웃었다.

‘대표님은 필요 없으실지 모르겠지만, 격려에요. 뜨거운.’

마리가 그렇게 대답했던 것까지 떠올리며 민은 하이볼 대신 모닝커피를 마셨다.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창밖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민은 서울에 있는 집과 똑같은 모양의 집을 한국의 해변과 몽골의 초원, 그리고 유럽과 미국에 지었다. 지역 여건 때문에 외부를 고칠 수 없다면 내부라도 같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출장이 잦은 탓에 쓸모없는 자극을 피하기 위해 어느 곳에서나 자기 집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소품을 같은 것으로 만들어 같은 자리에 놓게 했다.

연인이었던 마리의 사진 액자가 엎어진 채로 거실 장식테이블에 올려져있는 것도 각 나라마다 같았다. 일부러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되었다. 그걸 없애라고 지시한 적도 없어서였다.

-액자를 치워주세요.

민은 하우스키퍼에게 그렇게 전달하고 러닝머신에서 뛰기 시작했다.

-다른 곳도 전부다요?

-아니오. 우선은 여기만.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이미 마음이 떠난 마리의 사진을 굳이 집마다 놓았던 이유는 여자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기 위한 본보기였다. 민의 집에는 여자가 들지 않았지만 유크로니아는 그가 있는 곳이 어디든 찾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유크로니아 안에는 전 연인 마리가 아닌 새로운 마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민에게 자주 떠오르기 시작했다.

 

**

-좋아. 민이 동의했으니 제네시스 블록 퀘스트를 시작하자.

 

T리가 말했다.

곧 레드, 블루 존에 공동 공지가 올라왔다.

 

‘레드와 블루존의 대표자인 T리와 한 민은 전 세계 23억 유크로니아 유저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더 퍼스트가 저희에게 연락했을 때만 해도 몰랐습니다. 수 백년 또는 그 이전에 유크로니아를 기획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바람을 이어 실제 유크로니아가 만들어졌다는 것도요.

 

아직은 아무것도 명확한 점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하얀 도화지에서 새롭게 온라인 유크로니아 미래를 만들자고 여러분에게 주장했던 우리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말할것도 없이 유저들에게도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일로 말미암아 유크로니아 정신 자체를 폄훼할 수는 없다고 여겨서 여러분에게 협조를 구합니다.

과연 누가 유크로니아를 기획했을까요? 그리고 왜,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사이비 종교의 수장일까요, 아니면 인류사의 위대한 영웅들일까요?

만약 조금이라도 자유와 평등의 유크로니아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뿌리를 다시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불순한 자들은 당연히 제거해야겠지요. 어쩌면 유크로니아 플랫폼 자체를 다시 만들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를 여러분과 함께 해쳐 나가려고 합니다.

먼저 <더 파이브> 멤버들에게 주어진 금화의 문양들 중 레드존과 블루존의 T리와 한 민이 가진 금화의 문양을 모두에게 공개합니다. 이 문양이 있는 금화는 원래 <더 파이브> 멤버끼리도 서로 보여주지 않고, 비밀로 가지고 있으라는 당부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를 더 이상 비밀의 영역에 두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합니다. 19일 0시부터 ‘제네시스 블록 퀘스트’를 오픈합니다. 공개된 문양과 관련된 어떤 정보든 찾아서 정보 공시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보 공시 참여를 하는 순서와 공헌도는 에이전트들이 자동으로 계산하며 그에 따라 포인트가 여러분에게 차등 지급됩니다. 또한 공시된 힌트나 지식과 기록 등은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삭제가 변경이 불가능하며, 모두에게 투명하게 공개가 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두 시간 뒤 새로운 공지가 올라왔다.

‘퀘스트 행성 G’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제네시스 블록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최대한 많은 유적의 사진과 그림을 크롤링(crawling) 하고 이미지 패턴인식을 하는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수십 개를 풀었습니다. 이제 퀘스트는 여러분이 풀어갈 차례입니다.

-트래픽이 과부하 될 정도야. 수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올리고 있어.

아성이 말했다.

-퍼스트는 아직도 잠잠해?

민이 물었다.

-아니, 퍼스트는 정보 공시를 올리기 시작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하나야.

아성이 말했다.

-공개적으로?

T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블록체인 시스템 하에서 비공개적으로 가능하겠어?

세라가 웃었다.

-퍼스트의 링크로 들어가 볼까?

아성이 물었다.

-아직은 아니야. 퍼스트는 우리에게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아서 꺼림직해. 퍼스트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올린 것부터 보자.

모두 퀘스트 플래닛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보들을 초공간화하는 작업이 자동적으로 인공지능 에이전트와 수 많은 퀘스트 참여자들의 협력에 의해 이뤄지고 있었다.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공유된 정보를 t-SNE 기법을 이용해 다차원 데이터를 행성의 3D 공간에 뿌리면, 이를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각자의 경험과 직관을 동원해 연결짓기와 무리짓기를 진행했다. 이런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정보를 다시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기존의 데이터와 정보에 연결해 3D 공간을 다시 업데이트했다. 순식간에 행성은 정보로 가득 차 버렸다. 그리고 어수선하기까지 해서 마치 이삿짐이 막 도착한 새집을 연상시켰다.

-이걸 다 보려면 일주일은 걸리겠는데? 게다가 데이터는 계속 올라오고 있고. 우선 사람들이 제일 많이 올린 정보부터 살펴보자.

민이 말했다.

사람들이 유크로니아 문양을 제일 많이 발견한 곳은 1969년이었다. 링크로 들어가보니 사람들이 히피 복장을 하고 우드스탁 콘서트장에 서서 손짓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정보를 올린 사람들의 아바타였는데 수백 명은 넘어 보였다.

아바타들은 한 락 밴드의 공연을 가리켰다. 더 파이브의 금화에 있는 유크로니아 문양이 베이시스트의 기타에 스티커로 붙어있었고 리더의 어깨에 문신으로 새겨져있었다.

 

락밴드 리더의 문신 옆에 링크가 또 하나 떠올랐다. 그 링크는 1440년 조선으로 이어졌다.

모두 그 링크로 들어갔다. 이미 많은 아바타들이 그 곳에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세종대왕의 집무실이었다. 상소문을 읽고 있는 세종의 책상위의 서진이 반짝거렸다. 그리고 서진에 유크로니아 문양이 새겨진 것이 드러났다.

가상현실 안에서는 생생히 새겨진 문양이었지만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서진 위의 문양은 많이 지워져있어서 거의 식별이 불가능했다. 무려 32명의 사람들이 그걸 찾아낸 게 대단할 정도였다.

-저건 정부에 요청해서 정식 감식을 의뢰해봐야겠는데?

 

민이 말했다.

링크를 따라 다니다보니 온 세계를 헤맬 정도였다. 하지만 유크로니아 문양이 왜 공통으로 사용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는 자료는 없었다.

 

세종대왕의 서진과 코지모 디 조반니 데 메디치의 모자에 남은 유크로니아 문양이 같다고 하더라도 왜 그랬는지 이유를 설명해줄 수 없다면 둘이 같은 의미를 가진 문양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였다.

-우리가 아직도 파트너라고 믿는다면 내가 올린 것을 감상할 시간을 가져줬으면 좋겠는데.

퍼스트의 메시지가 도착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퍼스트가 올린 링크였다. 아무도 같은 정보를 올리지 않았다. 그 뜻은 그 정보가 매우 희귀하다는 뜻이었다.

 

 

<다음주에 계속>

<지난화 보기>

15화_제네시스 블록 퀘스트 공개 논쟁

14화_제네시스 블록의 비밀

13화_탈중앙화 거래소의 소스코드

12화_타협할 것과 아닌 것

11화_유크로니아 왕위 계승과 세금 인상 

10화_세이무어와 테스의 회합

9화_블랙존에서 열린 총회 

8화_아버지가 남긴 것

7화_ 예술가들의 천국

6화_세라, 유크로니아 16번째 달의 이름

5화_VR과 AR이 조합된 게임월드, 시험운영은 끝났다

4화_민이 낸 수수께끼를 풀어라

3화_살아남은 자들의 아침

2화_더 퍼스트의 속삭임

1화_유크로니아국의 입국 신청


<작가 소개>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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