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혁명가들이여, 논스로 오라!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릴레이 기고_#4] 문영훈 논스(nonce) 대표

등록 : 2018년 10월 26일 18:35

오는 10월31일이면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백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가 세상에 나온지 꼭 10년이 됩니다. 9페이지 짜리 짧은 논문이 지난 10년 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비트코인 백서 공개 10주년을 기념해 한국 블록체인계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의 글을 모아 연재합니다. 네 번째 글은 논스(nonce) 문영훈 대표가 보내온 글입니다. 문 대표는 2017년 3월  유튜브에 최초의 블록체인 관련 한국어 동영상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블록체인ers’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방송을 보고 블록체인에 관심 높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문씨는 이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공간 ‘논스’를 설립했습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백서를 세상에 공개한지 10년, 비탈릭 부테린이 이더리움을 공개한지 5년이 지났습니다. 검열저항성을 지닌 P2P 전자화폐의 개념은 기존의 화폐 및 정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스마트 컨트랙트를 기반으로 한 분산자율조직은 수백년동안 경제활동의 핵심주체였던 주식회사를 대체하려 하고 있습니다. 암호학, 분산 컴퓨팅, 게임이론 및 메커니즘 디자인 분야 전문가들이 블록체인 업계에 뛰어들며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류하면서 암호경제학(crypto-economics)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국경을 초월한 협업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폭 넓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기술적 한계, 규제의 불확실성, 뚜렷한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로 인해 글로벌 수준의 블록체인 기반 어플리케이션이 상용화되기까지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와 더불어 높은 가치의 변동성과 잦은 해킹문제 또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신뢰 악화에 일조하고 있으며 ICO를 통해 수백억원의 자금을 모집한 프로젝트 중 대부분이 제대로 된 제품 및 서비스는 커녕 이를 개발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아 블록체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은 한없이 낮아져 있는 상황입니다.

과연 많은 이들이 초기에 기대했던 것처럼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누구도 명확히 알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지난 1년 반 동안 경험했던 바를 바탕으로 희망의 메시지와 미래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블록체인 전문 유튜브 콘텐츠 ‘블록체인ers’의 한 장면. 왼쪽이 하시은, 오른쪽이 문영훈 대표. 사진=문영훈 제공

 

저는 하시은씨와 함께 작년 3월에 “블록체인ers”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사람들에게 비트코인 및 블록체인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 6월 비트코인 가격이 급상승함에 따라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게 되신 많은 분들이 저희 채널을 구독해주셨고 저희가 살고 있던 광교의 오피스텔에 놀러오시면서 유기적인 방식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커뮤니티가 지속적으로 커짐에 따라 멤버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큰 공간이 필요하게 되었고, 현재 서울 강남에 위치한 블록체인 전문 코리빙/워킹 스페이스에서 70여명의 멤버들과 함께 생활하며 일하는 커뮤니티 ‘논스(nonce)’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8개월 동안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며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비트코인의 검열저항성과 분산화의 철학에 끌려 블록체인의 세계로 들어온 사상가, 스마트 컨트랙트가 혁신할 분산화된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개발자 및 사업가, 새로운 자산군으로서 암호자산(cryptoasset)을 트레이딩하는 헤지펀드 매니저, 분산화된 P2P 시스템이 좀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믿는 예술가 등 모두 각기 다른 이유로 블록체인 기술에 매료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영훈 논스 대표. 사진=문영훈 제공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저희는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나와 관심사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때 인생이 얼마나 더 풍부해질 수 있는지를 배웠고 뚜렷한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비트코인 10주년을 맞이하여 저희가 생각하는 커뮤니티에 대해서, 크게 사회혁신의 원동력과 인간성의 회복 두 가지 측면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회를 혁신하는 원동력으로서의 커뮤니티

처음 사토시 나카모토가 백서를 공개한 이후 비트코인이 지금처럼 성장하고 블록체인 기술이 전 세계를 뒤흔들게 된 데에는 분산화를 통한 검열저항성과 자기주권을 굳게 믿는 비트코인 커뮤니티가 절대적으로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특히 그 중 가장 주축이 되었던 커뮤니티가 사이퍼펑크 커뮤니티입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하나의 움직임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사이퍼펑크(cypherpunks) 운동은 에릭 휴즈(Eric Hughes)가 1993년 사이퍼펑크 선언문(A Cypherpunk’s Manifesto)에서 말한 것처럼 “전자시대의 열린 사회에서 사생활 보호는 필수적(Privacy is necessary for an open society in the electronic age)”이라 믿고, 코드와 소프트웨어를 통해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 하에 다양한 암호학 연구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수십년 동안 지속해온 커뮤니티입니다. 이와 같은 강력한 신념을 바탕으로 많은 사이퍼펑크들은 비트코인 초기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이를 구현하며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를 발전시켜왔습니다. 언론이 “비트코인은 망했다”를 연달아 외치고 마운트곡스 해킹 사태로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할 때에도 이들은 묵묵히 비트코인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사이퍼펑크 커뮤니티가 없었다면 현재의 비트코인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희는 비트코인의 발전과정에서 확실한 철학과 가치관을 지닌 커뮤니티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주목했습니다. 물론 사이퍼펑크 운동이 시작되고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30여년의 시간이 걸렸고 비트코인 이전에 국가의 권력에서 자유로운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현하고자 하는 특정 규모 이상의 전자화폐 시스템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퍼펑크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며 결국 비트코인의 탄생과 함께 전 세계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불만을 표현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주도적으로 사회를 혁신하는 대신 불합리한 시스템에 순응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갑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다양한 측면에서 현대사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철학과 가치관을 갖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커뮤니티 멤버들이 힘을 합친다면 오르지 못할 산은 없습니다.

논스는 처음 서울 강남의 한 가정집에서 시작됐다. 사진=문영훈 제공

 

커뮤니티란 자신을 깊이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나는 어떠한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의 꿈은 무엇이며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이는 본인이 평소에 관심있던 문제일 수도 있고 매우 추상적이고 현실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은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공유하는 첫 동료를 찾는 일부터 시작입니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다섯 명이 되고 어느새 혼자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동료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난 9월 문을 연 논스 제네시스에서 열린 세미나 모습. 사진=문영훈 제공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합니다. 하지만 비트코인 커뮤니티가 보여준 것처럼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 10주년을 맞아 저희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좀 더 믿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단기적인 안정성이 아닌 꿈을 쫓고 커뮤니티를 만들며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논스 커뮤니티는 다양한 방식으로 미래의 혁명가들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도 세상에 나오기까지 30년이 걸렸잖아요?” 맞습니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인생을 사는 것이 단순히 사회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뿐 아니라 그 과정에 있어서도 더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성을 회복하고 삶을 구성하는 원리로서의 커뮤니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심을 빼곡하게 덮은 아파트 안에서 자신들의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매일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가장 큰 기준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대략적인 소득수준일 것입니다. 비슷한 소득수준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취향, 철학, 가치관과는 전혀 무관하게 아파트에 무작위로 배정되어 일을 마친 후에는 조용히 자신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과연 이렇게 건조하고 닫혀있는 현대인의 삶이 바람직한 것인가? 모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그저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해버리고 매일 생계를 꾸려나가기 바쁩니다.

논스 제네시스의 자랑, 루프탑. 사진=문영훈 제공

 

저희는 삶을 구성하는 원리가 커뮤니티 기반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작위적으로 소득수준에 따라 개인성을 상실한 아파트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와 철학 및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일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꿈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며 일한다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자금의 여유가 없을수도 있고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커뮤니티와 동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이러한 경제적, 물리적 어려움보다 훨씬 값진 만족을 줍니다.

 

커뮤니티의 재발견

많은 분들이 커뮤니티를 동호회, 방과 후 모임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세상에 공개된지 10년이 지난 지금 저희는 새로운 삶의 구성원리이자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서의 커뮤니티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모두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활발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커뮤니티는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십조까지 매우 큰 경제적 가치를 지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의 경우 커뮤니티라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단기적인 가격상승 외에는 관심이 없는 투자자와 트레이더로 가득합니다.

비트코인 10주년을 맞이하여 기존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핵심 가치와 철학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료를 찾음으로써 커뮤니티를 통해 미래를 혁신하고 좀 더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릴레이 기고]

#1_김진화 코빗 공동창업자: 사토시 페이퍼 10년, 그리고 ‘래디컬 마켓’

#2_김재윤 디사이퍼 회장: 당신의 블록체인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3_정우현 아톰릭스컨설팅 대표: 이처럼 이과적 소양과 문과적 감성 모두 요구하는 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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