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세계평화’의 꿈은 현재진행형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기념 릴레이 기고_#6] 이송이 메타디움 최고전략책임자

등록 : 2018년 10월 30일 14:16 | 수정 : 2018년 10월 30일 14:31

오는 10월31일이면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백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가 세상에 나온지 꼭 10년이 됩니다. 9페이지 짜리 짧은 논문이 지난 10년 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비트코인 백서 공개 10주년을 기념해 한국 블록체인계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의 글을 모아 연재합니다. 여섯 번째 글은 이송이 메타디움 최고전략책임자(CSO)가 보내온 글입니다. 이송이 CSO는 2013년 비트코인 송금 서비스 ’37코인스’를 공동 설립한 비트코인 얼리어답터이자, 현재 업계 최전선에서 블록체인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고 있는 플레이어입니다.

 

비트코인 백서가 나온 지 10년, 그중에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지난 7년을 내 삶의 여정에 빗대어 회고하고자 한다. 이상주의자가 어떻게 꿈꾸는 현실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2014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코인서밋에서 37코인스를 발표하는 이송이 당시 37코인스 공동 설립자의 모습. 사진=이송이 제공

2014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코인서밋에서 37코인스를 발표하는 이송이 당시 37코인스 공동 설립자의 모습. 사진=이송이 제공

블록체인과의 조우

2012년 겨울, 처음 비트코인에 대해 알게 됐다. 한창 들뜬 얼굴로 나에게 비트코인이니, 블록체인이니 떠들어 대던 친구를 나는 차가운 얼굴로 응대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2018년 가을, 나는 블록체인 업계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사회복지를 공부한 철저한 문과생이다. 졸업 후 1년 동안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NGO에 취직했다. NGO에서 일하던 중 서아프리카 말리로 출장을 가게 됐다. 말리는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이 매년 각국의 교육 수준과 국민 소득, 평균 수명 등을 조사해 인간개발성취 정도를 평가해 내놓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에서 189개국 중 182위(2017년 기준)에 자리하고 있는 매우 열악한 나라다.

내가 말리를 찾았던 2013년, 사하라 사막과 이어지는 아름다운 도시 팀북투에서 내전이 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남쪽으로 내려와 살고 있었다. 나는 남쪽의 작은 도시에서 쓰레기로 지은 집에 살고 있는 난민들을 만났다. 내가 했던 일은 주로 취재가 가능한 가족들을 찾아 그들이 겪은 일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 만났던 난민 중 ‘파티마’가 내 주의를 사로잡았다.

파티마는 쓰레기로 지은 집, 모래로 다져진 바닥 위에 4명의 아이과 함께 살고 있었다. 파티마는 동네 사람들의 집에서 빨래나 청소를 해주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이가 있는 아이들은 파티마를 돕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 혹시 남편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남편은 이웃 국가인 ‘코트디부아르’에서 일하며, 가끔 그곳에서 이 동네로 오는 사람들 편에 돈이 든 봉지를 들려 보낸다고 했다.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 송금을 비닐봉지로?!

파티마가 버는 돈만으로는 가족의 생계를 충당하지 못했다. 남편이 비닐봉지에 넣어 보낸 돈이 무사히 전달되지 않으면, 나이가 있는 아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학교 대신 일을 하러 나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아이들은 낮은 교육수준으로 계속해서 낮은 급여, 위험한 직종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빈곤의 악순환이다. 파티마에게 중간에 돈이 사라지는 것이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하고도 절망스러웠다.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돈을 전달받을 기회조차 없어요.”

그렇다. 비닐봉지 해외 송금이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그녀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직도 아프리카에는 많은 사람이 인편을 통해 송금한다. 당시 내가 발견한 문제는 이 사람들이 난민이라는 점이다. 즉, 자신의 신원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주변에 은행이나 그 흔한 웨스턴유니언도 없었을 뿐더러, 있다 하더라도 신원이 불분명한 이들을 상대로 한 높은 수수료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 눈에 띈 게 있다. 난민들은 쓰레기로 지어진 집에 살고 있지만, 손바닥만한 노키아 2g 핸드폰과 태양열 충전기를 가지고 있었다. 케이블이 6개나 달린 태양열 충전기는 딱 봐도 그들이 가진 소유물 중 가장 값져 보이는 물건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말리에서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고픈 마음이 간절했고, 그들이 지금 당장 가진 도구들을 이용해 비트코인을 문자 메시지로 주고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2013년 창업한 37코인스다. 37코인스를 출시하고 얼마 안 돼 29개국에 게이트웨이가 만들어졌다. 문자를 보낼 수 있는 핸드폰만 있으면 인터넷 없이도 비트코인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송이 CSO는 2013년 요한 바비, 조너선 조브로와 함께 37코인스를 공동 창업했다. 사진=이송이 제공

이송이 CSO는 2013년 요한 바비, 조너선 조브로와 함께 37코인스를 공동 창업했다. 사진=이송이 제공

 

37코인스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듯 비트코인을 송금한 모습. 사진=이송이 제공

37코인스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듯 비트코인을 송금한 모습. 사진=이송이 제공

 

세상을 바꾸는 일은 힘든 일이다. 성공은 보장되지 않는다. 어쩌면 한 우물을 계속 파는 데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또 그 끝에서 결국 그 길이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설사 그 길이 맞다 하더라도 이번 생애에는 실현 불가능한, 인류의 능력을 넘어서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로 밝혀질 수도 있다.

어떤 이상주의자들은 이런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이상주의를 포기한다. 충분히 긴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거나 자원이 없을 수도 있다. 혹은 실패 가능성을 감정적으로 감당하지 못하거나. 불확실성이 너무 심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내게 파티마라는 여성의 문제가 그러했다. 처음에는 그 문제가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싫을 정도로 잊고 싶었다. 하지만 그 문제가 내가 살면서 택한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결국 안전한 선택 대신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주변에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했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해결의 고리가 될 비트코인이라는 도구가 있었다.

만약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이 없었더라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수도, 위에 설명한 이유로 인해 내가 그 여정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내가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블록체인이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도구라는 것이다.

이후 37코인스는 신용카드를 발급하지 않는 튀니지 정부를 겁주기 위해 우리를 초대한 안드로이드 개발자 행사 ‘드로이드콘(Droidcon)’에 참석했고, 비트코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처음 나온 임팩트 프로젝트라는 이유로 실리콘밸리에서 훌륭한 업계 사람들과 함께 우리의 꿈을 키워나갈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2014년 블록체인 선구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라이언 싱어 치아네트워크 공동설립자,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시자, 나디네 슈퍼츠 플러그&플레이 액셀러레이터, 제이슨 킹 비트코인 어크로스 아메리카, 이송이 메타디움 CSO(왼쪽부터)의 모습. 가장 오른 쪽은 코니 갈라피 비트기브 재단 설립자다. 사진=이송이 제공

2014년 블록체인 선구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라이언 싱어 치아네트워크 공동설립자,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시자, 나디네 슈퍼츠 플러그&플레이 액셀러레이터, 제이슨 킹 비트코인 어크로스 아메리카, 이송이 메타디움 CSO(왼쪽부터)의 모습. 가장 오른 쪽은 코니 갈라피 비트기브 재단 설립자다. 사진=이송이 제공

 

내가 꿈꾸는 세상, 그리고 이를 위한 기술적 방법론으로서의 블록체인

나는 (미스코리아는 아니지만), 세계평화가 꿈인 사람이다.

세계평화를 위해 내가 풀고 싶었던 여러가지 문제들을 해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이 블록체인에 있었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신뢰를 보장한다는 이유로 존재하는 중간자가 각 파티(party)들의 권리 또는 자원을 빼앗아 발생한다. 블록체인은 이를 해결할 기술적 바탕으로 사용될 수 있다. 문제의 중간자(middle man)를 없애고 탈중앙화를 통해 블록체인이 ‘트러스트리스 시스템(trustless system)’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한다.

나는 지금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서비스로 물러나고, 각 개인이 권리를 갖길 원한다. 분권화, 투명성, 자주성을 가지면서 자신이 가진 권리를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권리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세상. 이런 세상이 온다면 그야말로 세계 평화가 아닐까?

 

삶의 주요 가치로서의 블록체인

나는 탈중앙성, 투명성, 자주성, 커뮤니티 등 블록체인의 주요 키워드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전에는 개념으로만 자리하던 것이 경제, 사회, 철학적으로 적용돼 실제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키워드들은 블록체인 업계를 떠나 있는 동안에도 내 삶에 크게 반영됐다.

탈중앙화. 블록체인을 알게 되면서 내가 경험했던 가장 큰 변화는 탈중앙화를 이해하고 경험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를 영적 활동에 적용한 마음 트레이닝을 통해 그동안 나와 내 본성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던 거짓 가면을 알아차리고 벗겨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함께 나누고자 나는 ‘백 투 베이직스(Back to Basics)’라는 컨퍼런스를 기획하고 ‘(렛 잇) B 살롱’이라는 공간을 열게 됐다. 이같은 철학적 접근으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삶의 기준을 갖게 됐다.

자주성. 자주성은 건강한 탈중앙화의 핵심이다. 나는 자주성을 협업 방법으로 적용해 자주성을 가진 전문가들과 함께 팀을 꾸려 일하고, 각자가 피어(peer)가 돼 책임을 맡고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일하는 데 있어 최고의 문화로 본다. 내가 속한 모든 조직에서 이것들이 가능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커뮤니티. 블록체인의 가치와 철학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믿는다. 2014년 37코인스를 창업했을 때의 블록체인 산업은 ‘업계’라고 불릴 것도 없이 몇몇 작은 팀이 각자가 믿는 것들을 묵묵히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더리움도, ICO도 없던 때 가난한 이들이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만 믿고 신나서 일할 때였다. 우리는 가난했지만, 서로 정보와 솜씨를 공유하며 사이좋게 지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커뮤니티의 힘을 느꼈다. 그 뒤로도 그 중요성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물론 블록체인을 통해 경험한 여러 키워드가 삶의 가치로 자리 잡기 전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 할 일이다.

 

지난 7년과 미래 세대: 나는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올해 봄,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지난 7년간 배운 것들을 다시 블록체인 업계에 적용해보는 실험에 나선 것이다. 37코인스가 대상으로 삼았던 권력 없는 사람들의 권력은 우선 그들이 인지됨으로써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지금 속해 있는 ‘메타디움’에서는 크립토 인구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사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래 세대 대부분의 활동은 온라인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메타디움은 디지털 이코노미 세상에서 각 개인과 조직이 자주성을 갖고, 완전한 주체로 인식될 수 있도록 안전하고 편리한 신원 확인 솔루션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비트코인 백서 발간 10년. 지금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준비한 모든 것을 다 성취하지는 못했을 수 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성취해가는 중이다. 그 안에 손실과 타협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변화의 불꽃이 타오른다. 고작 몇 년 전인 2013년에는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 등 단어를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대중화가 이뤄졌다. 얼리어답터로서 이를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블록체인 이상주의자로서 우리는 전술적 커뮤니케이터가 돼야 한다. 우리는 블록체인을 통해 이상을 실현하는 것에 대해 다른 이들이 이해하고 동참하길 원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말하지 않거나 주위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말을 맞추기도 한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상주의로 동기를 부여받지 못하며, 실제로 그것에 의해 겁먹거나 오히려 의욕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어떤 이는 이상주의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슬퍼하거나 자신의 꿈을 버렸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또 다른 이는 자기 삶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현실을 이야기하는 다른 사람들을 차단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이상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우리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 즉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에게 그 결과는 사회적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것이 곧 대중화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이상주의를 증명해내야 한다. 나는 철학, 기술, 삶을 관통하는 블록체인이라는 키워드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지금 나는 나보다 큰 도전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 나 자신보다 크고 훌륭한 커뮤니티와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계속 모험을 이어갈 것이다. 비트코인 백서 발간 10주년을 기념해 앞으로도 ‘삶으로서의 블록체인’ 즉, 블록체인을 통해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갈 날들을 기대한다.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릴레이 기고]

#1_김진화 코빗 공동창업자: 사토시 페이퍼 10년, 그리고 ‘래디컬 마켓’

#2_김재윤 디사이퍼 회장: 당신의 블록체인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3_정우현 아톰릭스컨설팅 대표: 이처럼 이과적 소양과 문과적 감성 모두 요구하는 게 또 있을까

#4_문영훈 논스 대표: 미래의 혁명가들이여, 논스로 오라!

#5_김종승 SKT 블록체인사업개발Unit Token X Hub TF장: 화폐 르네상스,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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