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르네상스,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기념 릴레이 기고_#5] 김종승 SKT 블록체인사업개발Unit Token X Hub TF장

등록 : 2018년 10월 29일 17:30 | 수정 : 2018년 10월 29일 23:49

오는 10월31일이면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백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가 세상에 나온지 꼭 10년이 됩니다. 9페이지 짜리 짧은 논문이 지난 10년 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비트코인 백서 공개 10주년을 기념해 한국 블록체인계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의 글을 모아 연재합니다. 다섯 번째 글은 김종승 SK텔레콤 블록체인사업개발unit Token X Hub TF장이 보내온 글입니다. 서울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김종승 TF장은 국내 대기업 소속 인사로는 드물게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크립토이코노미’ 관련 담론을 이끌고 있습니다.

김종승 SK텔레콤 블록체인사업개발유닛 Token X Hub TF장. 사진=김종승 제공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화폐란 ‘주조(鑄造)된 자유’라 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조화폐에서부터 근대 국정화폐에 이르기까지 화폐의 역사는 거래의 역사이자 커뮤니케이션의 역사, 나아가 인간사회의 역사 전체를 반영한다. 2018년 6월, 런던의 영국 박물관에서 마주친 화폐의 역사, 그리고 “화폐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다(Communicating through Coins)”라는 표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화폐는 부채와 세금과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정치경제 시스템의 하부 요소로 작동하면서 화폐 그 자체로 사회적 관계를 구성한다. 화폐란 채권과 채무라는 사회적 관계로 이루어진 청구권 또는 신용의 물질적/상징적 표상이다.

런던 영국박물관 화폐전시관. 사진=김종승 제공

 

주조(鑄造)된 자유

근대 국가를 기반으로 한 화폐 경제의 도래로 우리는 특정한 사물과 장소, 그리고 종속적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비로소 개인성과 자율성을 얻게 되었다. 즉, 화폐는 일종의 추상적 가치이자 사회적 제도가 된다. 나아가 화폐 경제 시스템은 국가라는 화폐 발행 권력을 통해 과거 인격적 관계 기반의 직접적이고 의존적인 사회적 시스템을 해체하고, 국가 주권에 의한 ‘채권과 채무의 네트워크’를 토대로 한 국가 경제 시스템으로 정착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생활세계의 기본 틀을 구성하는 화폐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까? 화폐를 통해 화폐 보유자에게 신용을 부여한다는 의미는 곧 화폐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자유를 부여하는 힘’을 상징한다. 한 시대의 화폐는 화폐 발행권력과 보유자 사이의 계약이자 지키지 않을 수 없는 법질서를 대표한다. 즉 화폐의 기원은 법에 있으며 화폐의 몰락은 사회의 몰락이 된다.

 

화폐 르네상스

2008년 10월, 세계 금융 위기의 정점에서 비트코인 백서가 탄생했다. 그 시절 나는 연속 하한가를 향해 달리는 주식 차트를 바라보느라 비트코인의 출현을 알 수 없었지만, 그 사이 비트코인은 전통적 화폐 개념에 급진적이고 충격적인 ‘새로움’을 부여하며 금융자본의 권력 앞에 선명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비트코인으로 시작된 암호화폐는 화폐가 가지는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에서 화폐권력 그 자체인 국가라는 존재를 제거하고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화폐의 발행과 유통의 구조를 창조한다. 물론 암호화폐가 추구하는 새로움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가치 체계의 변형에서 시작된다. 기존 가치의 해체와 재구성이 곧 혁신이다. 창조란 이미 ‘있던’ 것을 다시 ‘있게’ 만드는 것, 이미 버린 것을 살려내고 살아있는 것을 내려놓는 것,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하고 익숙해진 것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모든 시대마다 옛 것은 갱신되어야 한다. 화폐 역시 영원 불멸의 개념이 아니다. 화폐의 르네상스, 곧 화폐의 재생(再生, Rebirth)이 만들어내는 권력 관계의 해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포기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암호화폐가 지향하는 화폐는 이제 주조된 자유가 아니라 자유라는 리얼리티 그 자체다. 인류 역사에서 특정 가치의 평가절하와 평가절상이 반복적으로 수행되며 점진적으로 변용될 때마다 시대정신은 우리를 팽창된 미래 세계로 인도한다.

사실 화폐는 제 스스로 아무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화폐는 텅 비어 있으며 명목상으로만 존재한다. 화폐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화폐는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약속이며, 화폐의 가치는 교환 활동의 참여자들로 이루어지는 네트워크의 가치다. 화폐는 교환이라고 하는 마술을 통해 그 무엇을 얻고자 하는 우리들의 바람을 실현한다. 암호화폐도 화폐의 본성 차원에서는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우리가 그토록 꿈꿔왔던 궁극의 자유를 지향한다. 암호화폐는 화폐 발행의 권위라는 기초를 무너뜨린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권력 배분은 전혀 다른 질서로 재구성된다.

수년 전, 생의 첫 암호지갑을 만들어 갓 태어난 토큰을 담고 은행이나 국가의 승인 없이 누군가에게 내가 원하는만큼 토큰을 이체했던 체험은 근원적인 자유의 체험이었다. 우리는 신비의 화폐를 통해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암호화폐는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발생하는 불의를 폭로하고 전지구적인 교환의 보편성을 실현할 수 있다. 암호화폐는 우리 삶을 더 유연하게, 더 유동적으로, 더 역동적으로 만듦으로써 자유의 이상을 점화시켜 나간다.

 

암호경제학(Cryptoeconomics) 시대

암호화폐는 암호학적, 경제학적 설계로 화폐의 사회적 관계와 증권의 유동적 형식을 결합하고 재구조화한다. 화폐와 증권은 한 몸이 되어 끊임없이 부딪히는 자신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이탈하며 실현된 적 없는 희망을 찾아 불굴의 도전을 감행한다. 암호화폐는 탈국가, 탈권력, 탈중앙화를 통해 자유의 가치를 다시 끌어올린다. 중앙화된 조정 권력 없이 충돌하는 개인들의 사익추구는 이제 상호부조와 협력의 메커니즘을 통해 공동의 가치창출 과정으로 작동한다.

암호화폐는 문화적 공동체의 영역에서 사유재가 아니라 공유재를 만들어내는 발명가가 된다. 중앙 권력의 부재 속에서도 ‘사실에 대한 합의’와 ‘결정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내는 프로토콜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21세기 새롭게 재구조화된 정치경제학을 ‘암호경제학(Cryptoeconomics)’이라 부른다. 암호경제학이 바라는 ‘새로움’은 미래를 꿈꾸는 자들에게는 극적인 리얼리즘으로 다시 태어난다.

블록체인이 자유시장 지상주의자 또는 테크노 자유주의자의 기술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근원적 상상력(Radical Imagination)’으로 레버리지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맞이하고 있는 ‘가치 위기(Value Crisis)’ 시대, ‘가치 확보(Value Capture)’와 ‘가치 교환(Value Exchange)’의 메커니즘을 ‘진정한 시장(True Market)’의 원리로 어떻게 재구성하고 재설계할 것인지가 암호경제학의 근간이 된다.

사진=김종승 제공

 

‘자유’와 불확정성

암호화폐 10년 역사 동안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암호화폐라는 경이로운 존재 앞에 넋을 잃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때가있었다. <블록체인노믹스>라는 책을 쓰는 동안 나는 블록체인 세계가 만들어낼 수 있는 ‘자유’의 의미와 탈중앙화의 질서에 매달렸다. 오스트리아 경제학파 미제스(Mises)와 하이에크(Hayek)를 다시 읽었고, 로스바드(Rothbard) 사상의 기원을 추적했다. 게임이론과 메커니즘 디자인(Mechanism Design) 이론을 공부했지만 경제학만으로는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인간 경제와 사회의 의미를 역사적 차원에서 이해하지 못한 채 형식적, 개념적 도구의 틀로는 문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문제를 정의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내 존재를 다시 규정한다. 우리는 ‘자기 해석의 지도’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열린 존재’이기 때문이다. 형식론적인 접근의 유혹을 뿌리치고 인류학적 스토리로 화폐와 자유의 개념을 소환해내며 블록체인이 만들 수 있는 대안적 가치를 그려내야 한다.

온전한 자유를 실현하는 최고의 체제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권력을 탈중앙화하고 ‘비지배(非支配)’로 이루어진 지배구조를 만들 것인가?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모든 것이 불확정적이다. 그리고 그 ‘확정되지 않은’ 틈 사이로 새로운 도전이 반복된다.

르네상스의 발상지 이탈리아 피렌체 단테 생가에서. 사진=김종승 제공

‘잠재적 파괴자’가 만드는 새로운 문명

우리가 ‘새로움’이라는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암호화폐로 촉발된 새로운 암호경제학의 세계는 ‘축적을 위한 축적’이라는 자본주의의 절대 광기를 극복하고 우리의 사회적 관계를 재코드화할 수 있을 것인가? 암호화폐는 권력의 인형에서 벗어나 인간행동의 자유를 재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암호화폐는 자본주의의 기만적인 가면인가, 아니면 진정한 자유의 상징이 될 것인가? 어디까지 괴물이고 어디까지 우상이며 어디까지 희망일까?

역사는 반복적 패턴과 기괴한 궤적의 융합이다. 한 가지 기준으로만 세계와 맞서지 말자. 세계에 대한 해석과 실천은 과장과 누락없이 완벽한 전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초국가적으로 희망하는 새로운 문명이다.

400여 년 전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갈망했다.

“인간이란 참으로 걸작품이 아닌가! 이성은 얼마나 고귀하고, 능력은 얼마나 무한하며, 생김새와 움직임은 얼마나 깔끔하고 놀라우며, 행동은 얼마나 천사 같고, 이해력은 얼마나 신 같은가! 이 지상의 아름다움이요 동물들의 귀감이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테크놀로지의 혁신이 아니다. 물론 순수한 본성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는 인간의 본성에서 피어나는 욕망의 새로움과 그 새로움이 낳는 기회의 창조, 그리고 탈중앙화된 프로토콜을 통해 개진되는 자유의 동적인 실현에 달려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과 사회 질서에 대한 견해에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우리의 ‘생활세계’ 전체를 재구조화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때로는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밀려나거나, 광막한 폭우에 돛대가 부러지고 난파할지라도. 고난과 몰락은 곧 기회이며 우리는 늘 잠재적 파괴자다. 이제 우리는 창조적 파괴, 그리고 파괴적 창조의 힘으로 문명의 규칙을 다시 쓰자.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릴레이 기고]

#1_김진화 코빗 공동창업자: 사토시 페이퍼 10년, 그리고 ‘래디컬 마켓’

#2_김재윤 디사이퍼 회장: 당신의 블록체인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3_정우현 아톰릭스컨설팅 대표: 이처럼 이과적 소양과 문과적 감성 모두 요구하는 게 또 있을까

#4_문영훈 논스 대표: 미래의 혁명가들이여, 논스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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