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투명한 자본조달 구조 바꿔보자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릴레이 기고_#8] 이준행 고팍스 대표

등록 : 2018년 11월 1일 15:26

2018년 10월31일 ,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백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가 세상에 나온지 꼭 10년이 됐습니다. 9페이지 짜리 짧은 논문이 지난 10년 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비트코인 백서 공개 10주년을 기념해 한국 블록체인계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의 글을 모아 연재합니다. 여덟 번째 글은 이준행 고팍스(Gopax) 대표가 보내온 글입니다. 이 대표는 지난 2015년 6월 비트코인 기반 글로벌 송금 서비스 기업 스트리미를 창업했고, 지난해 11월 가상화폐 거래소 고팍스를 설립했습니다. 

 

이준행 고팍스 대표. 사진=고팍스 제공

 

2014년의 끝자락, 군 복무 시절 가장 친한 선임을 통해 비트코인을 알게 됐다. 2015년 중반에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다니던 회사를 나와 창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빠졌다.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 줄곧 그야말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올인”하고 있다.

당시 내 진로 선택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 했다. 나는 학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전형적인 문과생이다. 대학 졸업 후에도 IT와는 거리가 먼 컨설팅 회사를 다녔다. IT회사의 프로젝트나 인턴을 해 본 경험도 없다. 스마트폰조차 2013년에 처음 구매했을 정도로 얼리 어답터와는 정반대 유형의 소비자다.

그럼에도 당시 비트코인에 강하게 끌린 건 비트코인이 금융에 민주적인 원칙을 불어넣으려는 사회운동이었고, 블록체인은 인터넷에서 수억 명이 컨센서스를 이룰 수 있게 하는 사회적 기술로 보였기 때문이다.

 

저개발 국가에서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에 눈뜨다

왜 비트코인이 내게 이토록 강하게 와닿았는지에 대해 설명하려면 비트코인을 만나기 전 내 개인적 경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때는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이 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이끌 것이라는 담론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모두가 월스트리트의 여름 방학 인턴십을 동경하던 그 시절 나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부분의 시기를 저개발국가에서 보냈다.

봉사활동을 위해 찾은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이건, 배낭여행을 간 티벳이나 네팔이건, 군 시절 파병을 간 이라크건, 저개발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맞딱뜨린 것은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갈등이었다. 물론 당시 주변 몇몇 사람들은 결국 금융이 이끄는 세계화가 세상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20대 대학생이던 내 눈엔 대세 이론과는 다른 저개발국가의 현실이 더 들어왔다.

자본은 굉장히 필요하고 귀한데 반해, 매우 적은 수의 사람들만 그 귀한 자본에 접근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저개발국가 국민들은 고금리 대출을 받기는 커녕 은행계좌조차 없는 경우가 많았다. 왕족 등 소수 사람들에게 자본이 어떻게 들어오고 나가는지도 불투명했다. 그러한 금융 구조에서는 자본의 총량이 증가하더라도 국가 발전에 필수적인 사회적 자본의 형성은 불가능해 보였다.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은 불투명한 자본조달 구조였다.

 

금융기관 없는 금융서비스, 비트코인이면 가능해

비트코인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흥미가 생긴 배경은 위에서 말한 저개발 국가들에서의 경험이었다. 은행계좌가 없는 사람들도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비트코인으로 자본 조달이 가능해 보였다. 누구나 접속할 수 있고 누구나 내역을 추적할 수 있는 인터넷에서 금융기관 없이도 금융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호기심이 생겨 컨퍼런스를 찾아다니고, 알아듣기 힘든 컴퓨터 공학 용어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비트코인이라는 자산과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더욱 매료됐다.

우선 자산 관점에서 비트코인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자산이었다. 국가 및 회사의 자산이나 현금 창출력이 뒷받침하는 자산이 아니라 대중의 컨센서스(합의)가 뒷받침하는 자산이다. 모든 현금이나 증권은 발행자가 있는 반면, 비트코인은 발행자를 특정할 수 없었다. 증권 관련 법은 발행자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는데, 비트코인은 발행자가 없으니 기존 법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다. 오픈소스로 수만 대의 컴퓨터에 분산 관리되니 인터넷을 없애지 않는 이상 권력자가 없앨 수도 없었다. 국가나 금융기관, 회사가 아닌 인터넷이 스스로 발행하는 오픈소스 자산이었다.

14세기, 증권이라는 자산군의 탄생이 결과적으로 국가가 독점하던 금융 권력의 일부를 민간에게 이양시켰다. 비트코인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발적 풀뿌리 공동체에 금융 권력의 일부를 이양하는 결과를 낳게 되리라는 게 불 보듯 뻔해 보였다. 인류의 역사는 개인의 자유도를 점차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존 금융시스템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비판에서 만들어진 비트코인의 가치가 0원에서 불과 몇 년 만에 조 단위로 커졌다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경이로운 현상이었다. 자유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강력했고, 비트코인은 인터넷 대중이 이전까지 깨닫지 못했던 열망을 일깨워 줬다.

 

분산원장보다 더 매혹적인 ‘컨센서스’ 개념

비트코인을 뒷받침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비트코인의 확산을 가능케 했다. 분산원장 개념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나는 ‘대중의 컨센서스’라는 키워드에 더 눈이 갔다. 블록체인 기술은 정말 짧은 기간 동안 암호화폐라는 인센티브를 매개체로 전세계 곳곳에 있는 수백만 명의 컨센서스를 자동화해 주는 기술이었다. 컨설턴트로 일하던 때, 밤을 새워 가며 수백 페이지의 장표를 만들고 발표해야 그나마 서로 다른 주관을 가진 경영진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컨센서스를 얻어낼 수 있었다.

기업이 비용을 들여 컨설팅 회사를 쓰는 이유는 컨센서스가 곧 힘이고, 보다 객관적인 제3자가 그 과정을 담보하기 때문이었다. 10명이 있는 조직에서 효율적으로 컨센서스를 이루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지만, 국가 규모에서 컨센서스를 비용효율적으로 이루긴 매우 어렵다. 시민들이 대규모로 거리에 나와서 집회를 하며 사회적 컨센서스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 의미있는 이유는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인터넷처럼 개방된 환경에서 수억 명에 이르는 불특정 다수의 컨센서스를 가능하게 하는 혁명적인 기술이었다.

어느덧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컨설팅을 하며 접한 어떠한 산업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카리스마 있는 산업이었다. 기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 같이 공부할 동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가격이 130만원에서 20만 원대로 고꾸라진 비트코인에 대해서 주변인들은 모두 냉담했다. 해킹, 돈세탁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언론 보도에서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그러던 중 대학 동창이 한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해, 고문 직함을 갖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메일을 보냈다. “블록체인은 불온하니 너무 관심 갖지 말라”는 조언이 돌아왔다. 심지어 당시 이더리움 동호회에서 함께 백서 번역을 하던 이들 중 일부도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잘 안될 것”이라고 했다. 해외 블록체인 기업에서 일할 수 있을지 문을 두드려보기도 했다. 답이 없었다.

 

기술로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

그러던 와중에 뜻 맞는 사람들을 하나둘 만날 수 있었다. 당시 나와 비트코인에 대해 대화하던 사람들과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를 운영하는 ‘스트리미’라는 블록체인 회사를 함께 창업했다. 창업 이념은 사실 매우 단순했다. “세상을 우리가 바꾸자”라기 보다는 “이 기술이, 이 시점에, 세상 사람들을 위해 이롭게 쓰일 수 있도록, 지금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였다.

스트리미 직원 단체사진. 사진=이준행 제공

 

창업을 한지 4년차인 지금도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엔 변함이 없다. 2016년 개발한 ‘스트림와이어’는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를 합법적이고 깨끗한 방식으로, 그리고 보다 저렴하고 빠르게 송금하기 위해 만든 서비스다.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는 투명한 운영 표준과 보안과 기술에 대한 표준을 업계에 제시할 수 있는 블록체인 핵심 인프라를 지향한다. 스트리미는 암호화폐가 있는 블록체인이 암호화폐가 없는 블록체인보다 인류의 보편 가치를 훨씬 큰 스케일에서 담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블록체인이 제공하게 될 가치는 아마존이나 구글보다 더욱 인간의 근원적인 사회적 욕망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암호화폐가 있는 블록체인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자유주의 세계에서 대중의 선택은 최상의 결과를 낼 수도 있지만, 최악의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수 없이 경험하고, 또 읽어왔다.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스트리미가 산업의 모든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적어도 진정성을 갖고 블록체인을 이용한 선한 혁신을 만들어 보려는 노력, 단기적인 이윤을 추구하기보다 사회의 신뢰를 받기위해서 노력하는 회사로 기억되고 싶다.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릴레이 기고]

#1_김진화 코빗 공동창업자: 사토시 페이퍼 10년, 그리고 ‘래디컬 마켓’

#2_김재윤 디사이퍼 회장: 당신의 블록체인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3_정우현 아톰릭스컨설팅 대표: 이처럼 이과적 소양과 문과적 감성 모두 요구하는 게 또 있을까

#4_문영훈 논스 대표: 미래의 혁명가들이여, 논스로 오라!

#5_김종승 SKT 블록체인사업개발Unit Token X Hub TF장: 화폐 르네상스,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6_이송이 37coins 창업자: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세계평화’의 꿈은 현재진행형

#7_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 사토시, 비탈릭, 그리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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