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SF_더파이브_#20] 영혼의 허기를 채우려면

제20화: 테스의 출국

등록 : 2018년 11월 9일 18:22 | 수정 : 2018년 11월 9일 18:27

지난 줄거리

전 세계 인구의 삼 분의 일이 디지털 영주권을 가진 온라인 블록체인 플랫폼의 본거지 거대한 떠다니는 함선 도시 유크로니아호가 미국에 입국 신청을 한다. 백악관에서는 그들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고민한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 게임 월드는 과연 통합되어 운영될 수 있을까? 유크로니아 가상현실 게임월드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그 제네시스 블록의 조합에 비밀이 숨겨져있다니. 수백 년 전부터 전 세계에 곳곳에서 나타나는 제네시스 조합 문양만 풀면 유크로니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일까? 유크로니아의 탄생의 비밀에 대한 의혹과 함께 게임과 창의성을 중심으로 창작자들이 주인공인 레드존에서는 베를루스국의 여왕의 거래 플랫폼 장악시도에 따른 갈등이 폭발단계에 이르고 왕가는 몰락 직전의 위기에 이른다. 인간과 기계의 조화로운 협력을 통한 가치를 중시하는 블루존에서도 수상한 사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

그림=김태권

 

사람들이 먹기 위해서 일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됐지만  T리를 보면 그건 정말일지도 몰랐다. 그는 정말 많이 먹었다. 당연했다. 그렇게 노래하고 춤추고 뛰는데 에너지 소비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T리는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더 더욱 일을 잘했다. 음식이 그를 일하게 하는 것을 보고 세라는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점점 그 모습이 건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이 오르는 음식 앞에서 경건해지는 그의 눈빛은 아름다웠다. 음식은 삶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루스국의 국민들 중에서도 배를 곯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녀를 혼란하게 했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축복받을 권리를 부당하게 뺏긴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세라는 맛있는 음식을 나눠주는 일들에 많은 노력을 했다.

음식 뿐만이 아니었다. 블록체인 플랫폼을 이용해서 교육, 의료 등으로 케어했다. 건강정보가 실시간으로 체크되고 보험의 적용이 자동으로 이뤄졌다. 사람들이 아프거나 배가 고프거나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사라지고 있었다.   

소외된 사람들, 즉 고아원과 양로원, 그리고 사회복지시설, 국내에 마련된 난민촌 등도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자국의 전쟁으로 베를루스국의 난민촌에 들어온 아이들은 사람과의 교류와 음식을 거부하고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사례가 이백 건 정도 보고되었다.  그들에게는 교육도 건강보험도 필요없었다. 삶이 필요없었다. 영혼의 허기가 그들을 죽였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해하고, 죽어가는 전쟁의 참상을 보고 절망하여 삶에 대한 희망을 잃은 정신의 허기.

세라는 그 허기를 잘 알았다. 정신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부모가 죽고 나서 세라는 거식증에 걸렸다. 음식 냄새도 맡기 싫었던 적이 있었다. 극단적으로 음식을 피하고 죽음에 가까워졌다. 삶의 의지를 잃은 이유는 부모가 갑자기 죽은 사건에 대한 무력감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벼랑에 걸려있던 자동차는 한시간을 버텼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부모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세라는 그들에게서 온 마지막 전화조차도 스키를 타느라 받지 못했다.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을 그렇게 어이없이 보냈다. 다시는 소중한 사람을 잊어버리고 저버리는 일을 만들지 않을 거였다.    

 

고아원과 양로원과 장애인 시설 등에서도 세라는 영혼의 허기를 그들의 눈에서 보았다. 희망을 잃은 눈빛들. 현 사회에서는 부자가 되지도, 의미있는 결과를 성취할 수도 없는 현실을 자각한 허기. 온 세계가 화려한 크리스마스나 명절이면 더더욱 그랬다.

인간은 빵으로만 살 수 없었다. 육체의 욕구는 한정되고 통제 가능했지만 정신의 욕망은 한계가 없었다. 욕심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였다.   

 

인간은 꿈꾸는 존재였다. T리처럼 활발하게 에너지를 뿜어야 할 이들. 사지가 멀쩡한 평범한 젊은 사람들의 눈에서도 그 허기를 보았다. 욕망을 저당잡히고 연명하는 세대. 영혼이 배고픈 세대였다.  

계급사회나 다름없는 베를루스 국에서 부도 명예도 자신의 목소리도, 평범한 가정이나 행복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력감.

 

그건 베를루스 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계 어느나라 젊은이들이든 다 정신적으로 허기가 졌다. 텔레비전이나 SNS 등에서 보는 화려한 현실에서 유리된 자신들의 삶. 마이다스왕이 걸린 저주에 걸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주위에 보는 것마다 화려하게 금처럼 반짝이지만 절대 먹어서 마음껏 배부를 수는 없는 그런 현실. 그 영혼의 허기는 난민촌의 아이들처럼 실제로 죽는 경우까지는 아니었어도 좀비처럼 젊은이들을 점점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 어떤 맛있는 음식도 그들의 에너지를 밖으로 표출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건 소울푸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유크로니아 플랫폼이 바로 그런 소울푸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세라는 생각했다. 현재의 온라인 플랫폼처럼 국지적으로 한정되고 유통망에 걸러져서 대부분의 보수를 뺏기는 곳이 아니라 직거래가 가능한 곳.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공감 받고,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 정당하게 제 몫의 돈을 벌수 있는 공간. 전쟁에서 절망을 본 사람들이 분노를 얘기하고 공정한 사회를 꿈꾸며 희망을 다시 발굴할 수 있는 곳. 그런 다채로운 정신의 허기를 달래줄 디저트와 정찬이 차려진 유크로니아 테이블.

그 음식들을 차지하기 위한 정신의 허기가 그들의 에너지를 뿜어 올릴 것이었다. 영혼이 배부르기 위해서.

 

세라는 다채로운 영혼의 먹을거리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동시에 전세계에서 공감을 받게 하기 위해 번역 프로그램 활성화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번역 프로그램에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하였다. 그녀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번역 데이터가 쌓이자 번역어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런 식으로 다행히도 많은 베를루스인들이 유크로니아 플랫폼에서 이름을 내고 공감을 받고 빛을 발했다.

 

그렇게 해서 받은 유크로늄으로 베를루스인들은 자신들만의 힘으로 슈테나성을 다시 사들였던 것이었다.

-제가 조합원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당신들이 이제 슈테나 성의 소유자입니다. 베를루스 가문이 몇 백 년 동안 소유했고 베를루스국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슈테나 성. 그 소유자는 베를루스 국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라는 슈테나성을 낙찰 받은 청년조합 모임에서 연설했다.

 

-저는 이제 왕위계승자로서 모든 권리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조합원의 일원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갈 것입니다. 조합원으로서 첫 번째 제안을 드립니다. 베를루스 가문, 그러니까 우리 베를루스 인들이 오랫동안 비밀리에 관여해왔던 유크로니아 설립 건에 대해서 입니다. 슈테나 성 내의 비밀 문건들을 연구하여 선조들의 유크로니아 정신에 대해 탐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라의 연설은 TV로 생중계 되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왕위포기선언은 베를루스 왕실의 정권 퇴진 및 정계 은퇴가 가까워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심에서는 매일같이 시위가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나라의 국보들을 자신의 소유물이라도 되는 듯 입찰한 테스 여왕에 대한 분노였다.

베를루스 왕실은 공식 대변인을 통해서 몇 번이나 공식 사과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매각했다는 말도 변명으로 들렸다. 국민적으로 적절한 합의없이 왕실이 일을 벌이는 것을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였다.  

*

테스는 랜스를 안았다. 값비싼 값의 이 귀한 고양이만이 그녀를 따스히 대해주었다. 그녀도 세이무어에게 랜스와 같은 신분일지 몰랐다. 값비싼 값을 지불한 애완동물. 필요 없으면 팔 수도 있는. 과연 누구에게 팔았느냐가 문제였다.

 

-내가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한가지입니다. 바하마 군도의 프라우랜드. 그곳으로 간 것은 당분간 비밀로 하지요.

세이무어가 말했다.

 

-잠시만 가 있도록 하지요.

테스가 말했다.

 

-그러도록 하시지요. 그리고…전세기는 이용하지 말고 두시에 있는 일반 비행기를 이용하셔야 합니다.

-일반 비행기라뇨?

-전세기 쪽의 담당들이 시위에 가담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만약 국외로 도피하다가 잡히면 저도 더 이상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내 나라에서 내가 도피한다고요?

테스의 목소리가 분노에 흔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당신의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역적들이.

-역적은 이제 당신이 되어버렸습니다. 테스. 차분히 현실을 보시고 숨을 고르세요. 그럼 저는 일정이 있어서 이만.

세이무어가 전화를 끊자 그날 내내 연락이 되지 않았다.

 

테스는 밤 비행기를 시도했다.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던 테스와 동갑인 육십 대의 공항직원이 눈물을 보였다.

 

-꼭 돌아오십시오. 여왕님.

-고맙네.

-빨리 가십시오.

 

공항직원은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테스는 머리에 둘러쓴 두건을 깊이 눌러쓰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뒤를 돌아보자 그녀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수행원 둘이 양쪽에서 그녀의 팔짱을 끼었다.

 

-여기서부터 비행기 내부로 진입 성공하기 전까지는 위험하니 주위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그들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랐던 나라, 그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대대손손, 자랑스럽게 지켜온 그 나라가 이제는 그녀를 버리고 있었다. 테스는 어지러워서 비틀거렸다.  

 

*

 

-우리 정보국에서는 공주의 부모의 살해에는 슈테나 성의 집사가 관여된 것은 분명하고, 여왕은 관계가 없다고 하네요.

세이무어는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요. 유크로니아 정보국에서도 같은 결론을 내렸어요.

세라가 말했다.

 

-그렇다면 굳이 국외도피를 하게 하지 말고 공주와 여왕은 국내에서 서로 경쟁해야 할텐데요.

세이무어가 말했다.

 

-할머니는 쉬게 놔두세요.

세라가 말했다.

 

-완전히 세력을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할텐데. 최소한 감옥에라도 가야하죠.

세이무어가 말했다.

 

-할머니는 그러면 돌아가실 거에요. 그렇게 강한 사람이 못 돼요.

-왠지 공주가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 같군요.

세이무어가 말했다.   

 

-이미 후회하고 있어요.

세라는 털을 잔뜩 곤두세운 랜스를 진정시키며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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