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SF_더 파이브_#21] 걱정마, 태풍은 곧 지나갈 거야.

제 21화: 하드포크 폭풍 전야

등록 : 2018년 12월 3일 00:03 | 수정 : 2018년 12월 3일 10:07

지난 줄거리

 

이 년 전. 게임월드로 출발한 유크로니아 플랫폼은 출시 이후 순항하는 듯 했지만 일 년이 지나면서 이상 신호들이 여기 저기에서 감지된다. 유크로니아 플랫폼을 창시한 원로회 주요 멤버인 마훌은 살해되었고, 여러 가지 갈등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가운데, 거대한 해상도시 유크로니아호가 출항한다. 유크로니아호를 출항시킨 주역이자 레드존의 핵심을 구성하는 베를루스국의 여왕 테스와 그녀의 손녀 세라 사이에 묘한 긴장감과 가치관의 충돌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결국 유크로니아를 이용한 권력 및 경제력 장악의 꿈을 꾸던 테스 여왕의 실각과 함께 베를루스국과 유크로니아에는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다. 이 과정에서 천재적인 젊은이들이 순수하게 모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으로 보였던 유크로니아의 성립과 시작에 묘한 역사적인 수수께끼가 있다는 힌트가 곳곳에서 드러나게 되고, 일부 <더파이브> 멤버들이 이를 추적해 나가기 시작한다. 또한 잠잠한 듯 보였던 블루존에서도 문제가 터져 나온다. 과연 유크로니아 세계는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커다란 거품이었던 것인가?

그림=김태권

 

소녀들이 단체로 비명을 질러댔다. T리가 지나간 모양이었다. 베를루스 국의 민중들이 왕가를 버리다 싶이 했는데도 세라 공주와 연인 T리의 인기는 점점 높아졌다.

민은 갑자기 뜨거워진 햇살에 고개를 숙이고 유크로니아 갑판 위를 내려와서 플로팅 시티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유크로니아호는 움직이는 거대한 도시연합을 목표로 설계된 배답게 상당한 규모의 부속 플로팅 시티를 도킹을 통해 합체를 해서 이들의 예인선 역할을 하며 바다를 운항할 수 있었다.

한달 전 로테르담 항구에서 유크로니아호에 합체된 ‘유러피안 플로팅’ 시티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건물들이었다. 한가운데 위치한 청사를 중심으로 여섯 개의 거리가 눈꽃처럼 퍼지는 모양이었는데 한쪽 거리에는 개인 주택들이 있었고 다른 쪽 거리에는 미술관과 도서관. 상업거리에는 전 세계의 자유로운 유흥가가 자리잡을 수 있었는데, 프랑스식 노천카페, 영국식 맥주펍들이 새로 들어왔다.

 

-바람 한 점 없어서 해상 스포츠센터도 개점휴업이고. 선탠이나 해야 하나?

 

펍으로 들어온 민이 마리에게 말하며 맥주를 한 잔 시켰다. 세계 여러 나라의 술과 기호품들이 면세된 채로 진열되어있었다.

 

-선탠은 꿈도 꾸지 마. 우린 지금 태풍의 눈 안에 들어와 있으니까. 곧 비바람이 거세질 거야.

 

마리가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알콜이 아닌 것 같은데? 이럴 거면 왜 펍에서 만나자고 했어?

 

-어두우니까.

 

민은 그제야 마리의 눈이 젖어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리는 블록체인 코인사기로 자살한 류의 기억을 떠올렸다. 류의 동생인 현우도 블루존의 PoW 체계의 약점을 용케 찾아낸 중국의 거대 블록체인 팜(blockchain farm)에 의해  비슷한 처지에 처한 것이 마음이 아팠다.

 

-걱정 마. 태풍은 곧 지나갈 거야. 우리는 그 정도로는 항로를 바꾸지 않을 거야. 홍콩항 근처에서 아시안 플로팅 시티와 합체할 거고. 현우도 거기서 합류하겠지.

 

-그렇게만 되면 다행이고.

 

마리가 희미하게 웃었다.

 

-약간의 행운만 있다면. 그럼 행운을 위해 건배.

 

민은 맥주잔을 그녀의 레모네이드 잔에 부딪혔다.

 

-개인의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을 받는다는 게 현실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

 

마리가 물었다.

 

현우가 속한 집단은, 민이 설계한 PoW를 왜곡했다. 원래 민의 뜻은, 컴퓨팅 파워에만 의존하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들만 해낼 수 있는 다양한 작업을 적절하게 조합해야만 인센티브가 주어질 확률이 높아지는 진짜 PoW였다. 이는 기존의 PoW가 기계만 많이 있고, 에너지만 쉽게 확보할 수 있으면 손쉽게 중앙집중화된 풀을 만들 수 있다는 약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인간의 실제 노동과 연관되어 마이닝을 하기에 탈중앙화의 특성을 가지면서도 노동의 신성함을 같이 추구할 수 있는 매우 획기적인 시도였다.

하지만 중국에 본거지를 둔 한 집단이 일자리를 찾는 수많은 전 세계의 젊은이와 아이들의 심리를 이용해 양질의 일자리를 줄 것처럼 속여서 이들에게 반 강제노역을 부과해 동시다발적으로 PoW 마이닝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자율적인 개인의 노동이라고 주장했지만, 초기에 약간의 선지급금을 주고 높은 이자를 부과한 후, 이를 갚아나가기 위해 노역을 부과하는 사실 상의 노예처럼 부린다는 것이  민이 면밀히 조사한 결과 밝혀낸 사실이었다. 민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최선의 시스템으로 설계하고 구현했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이렇게 왜곡시킬 수 있는 인간의 영악함에 치를 떨었다.

 

-노력하고 있어.

 

민이 말했다.

 

-노력을 멈추지 않길 바라며 건배. 이번 같은 시행착오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마지막은 아닐 테니까.

 

마리가 건배를 요청했다.

 

-그럼 현우는 언제 볼 수 있는 거야?

 

-유크로니아호가 홍콩항 근처에 정박해 있을 사흘 안에 현우를 구해와야 해.

 

민은 사실, 걱정이었다. 아까부터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광저우 근처에서 다발적으로 오던 구호신호들이 모두 멈춰버렸기 때문이었다.

 

*

-유크로니아호의 체류 허가 시간이 지났어. 배는 곧 홍콩항을 떠날거야.

 

민이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그럼 포드를 사용해야 하는 거야?

 

아성이 말했다. 포드란 특공작전을 위한 작은 배였다.

 

-아무리 압력을 넣어봐도 현지 경찰은 제대로 된 수사를 시작하려고 하지 않아.

 

민은 아성에게 말했다.

 

그들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유크로니아 정보국에서 노력하고 있었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동 없이 한곳에 있다는 것은 그들이 강제로 감금되어있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었다. 분명히 큰 배후가 있어 보였다.

 

-우리가 새로운 하드포크를 만들기 전에 노동자들을 될 수 있는데로 많이 빼와야 해.

 

아성이 말했다.

 

-하긴 하드포크 전쟁이 시작되면 노동자들을 빼내 오기가 불가능하겠지. 치안 수준을 높일테니까.

 

-압력의 선을 높여야겠어.

 

-어디까지?

 

-중앙정부 쪽의 끈을 가져와야지. 불법감금, 배임, 세금포탈. 우선은 이 정도로 발목을 잡아두자.

 

-언제까지 가능할까?

 

-규모로봐서 저쪽도 더 큰 끈이 있겠지. 그래도 아마 하루 정도는 옴짝달싹 못할 거야.

 

민이 말했다.

*

 

현우는 작은 방에서 이십 명의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에어컨을 켜고 있었지만 컴퓨터의 열기와 사람들의 열기가 더해져서 불쾌하기 이를 데 없는 환경이었다. 이런 곳에서 지난 4개월 간 20시간씩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작업했다. 이곳에는 이런 방이 적어도 수십 개는 있었다.

 

현우는 자신의 형 류처럼 공장, 집, 학교만 알고 살다가 죽은 삶이 너무나 처참했고, 그렇게되지 않기 위해 그는 발버둥을 쳤다. 절대로 한 곳에 오래있지 않았다. 집을 나와 일 년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다. 유크로니아 덕분에 온라인에서 번 돈으로 오프라인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잠시 광저우로 향했다가 한 작은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유크로니아 온라인 작업을 했다. 어느날 회식을 한 뒤 술을 딱 한 잔 마셨는데 곧바로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면제를 탄 술을 마신 거였다. 그리고 깬 곳이 바로 이 곳 이었다. 그들은 이 곳을 ‘작업장’이라고 불렀다. 현우가 아직 비몽사몽간이었을 때 누군가가 억지로 노동계약서에 지장을 찍게 했다.

 

그 후 넉달 동안 외부로의 소통도 안 되고 노예처럼 하루 20시간 작업을 해야했다. 주위에는 남녀노소, 인종에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자판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아직 인공지능이 답하기 어려운 인간 만이 풀 수 있는 다양한 문제나 창작과 관련한 작업들이 올라오고 있었고, 이런 작업을 열심히 하면 이것이 유크로늄을 마이닝할 확률을 높여주었다. 물론 그렇게 채굴된 유크로늄은 작업장을 운영하는 중국계 대형 팜에 귀속되었고, 그 중 아주 일부가 노예계약서의 기록된 선지급 임금을 갚거나 생활비로 지급되었다. 작업을 게을리하면 생활비가 모자라거나, 임금을 갚을 수 없었기에 노예같은 삶이 더욱 길어졌다. 장기적으로 계약을 완수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음식이 제공되지 않거나 폭력이 가해지기도 했다.

 

현우의 개인계정은 이미 작업장에서 통제하고 있었기에 그는 유크로니아 온라인에 접속해서 일반계정을 해킹한 뒤 간신히 마리에게 구조요청을 보낼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요청만이 가능했고 현우는 그 비상카드를 마리에게 썼다. 마리는 류의 장례식에 온 단 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마리에게 요청을 보내고 나서도 한달 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자판을 치는 손이 떨리고 허리가 저려왔다. 같은 자리에서 오랫동안 작업을 해서 오는 부작용이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너무나 오랜시간 작업을 하는 바람에 쇼크로 쓰러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우도 자신의 건강을 더 이상 자신할 수 없었다.

 

-모두 일어나.

 

중국어였지만 현우는 곧바로 알아들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영문을 알수 없이 모두 방 밖으로 향했다. 폐공장 건물 안에 칸막이로만 방을 만들어놓은 곳이었다.

모두들 처음으로 공장건물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밖에는 군용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모두 스무 대였다. 아무런 설명 없이 모두 그 트럭에 탔다.

 

두시간 정도 달렸을까. 앞의 차량 열대 정도가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현우가 탄 차가 방향을 바꿨다. 현우 뒤에 오던 차들도 방향을 바꿨다. 두어시간을 더 달려서 항구에 도착했다.

약식으로 여권검사가 진행되었고 사람들은 소란스러웠다. 중국 밖으로 옮겨지는 모양이었다.

 

줄지워서 한 작은 배에 타게했을 때, 현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도망가야 하나?

 

그때였다. 그들을 줄지우고 있는 한 남자의 소매깃에 유크로니아 뱃지가 보였다. 현우는 한 번만 사람을 믿어보기로 했다. 마리가 그를 구하려고 사람을 보냈다고,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싶었다. 류의 장례식에 왔던 그녀를 보고 느꼈던 작은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배는 한 시간여를 더 달렸다. 그리고 멀리 하얀 배가 보였다. 아시안 플로팅 시티와 유러피안 플로팅 시티를 양쪽 날개처럼 단 흰 천사같은 거대한 배였다.

 

현우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다음주에 계속>

<지난화 보기>

20화_테스의 출국

19화_ 마리 이야기, 그리고 현우의 행방

18화_슈테나 성 경매와 현우의 메시지

17화_베를루스국의 슈테나 성은 팔리게 될까

16화_마침내 공개된 퀘스트를 풀어라

15화_제네시스 블록 퀘스트 공개 논쟁

14화_제네시스 블록의 비밀

13화_탈중앙화 거래소의 소스코드

12화_타협할 것과 아닌 것

11화_유크로니아 왕위 계승과 세금 인상 

10화_세이무어와 테스의 회합

9화_블랙존에서 열린 총회 

8화_아버지가 남긴 것

7화_ 예술가들의 천국

6화_세라, 유크로니아 16번째 달의 이름

5화_VR과 AR이 조합된 게임월드, 시험운영은 끝났다

4화_민이 낸 수수께끼를 풀어라

3화_살아남은 자들의 아침

2화_더 퍼스트의 속삭임

1화_유크로니아국의 입국 신청


<작가 소개>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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