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볼일 없던 미국의 지방은행, 암호화폐로 우뚝 서다

캘리포니아 실버게이트은행의 암호화폐 승부수

등록 : 2018년 12월 11일 15:06

실버게이트 은행(Silvergate Bank)의 암호화폐 세계에서의 기나긴 여정은 CEO 앨런 레인(Alan Lane)이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산 2013년 어느 날 시작된다.

당시 캘리포니아주 라호야(La Jolla)에 있는 작은 지방 은행으로 예금 유치 실적이 변변치 못해 고심하던 실버게이트 은행은 암호화폐 거래소 한 곳을 고객으로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린다. 요즘이야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2013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비트코인은 여전히 금융 업계에서 낯선 용어였으며, 금융업 종사자들 가운데 비트코인을 들어본 이들도 기껏해야 반짝하고 말 유행 아니면 사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때다. 그러니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거래소를 고객으로 받아들이고 거래를 튼다는 건 은행의 명운을 건 승부수였던 셈이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앨런 레인은 지난달 30일, 뉴욕에서 열린 블록FS 콘퍼런스에서 그때를 회상했다.

“제가 만난 회사들은 꽤 이름있는 벤처캐피털 회사들의 투자를 받은 곳들이었어요. 법을 어기는 행위는 전혀 하지 않았고, 도덕적으로도 문제 될 만한 일을 전혀 벌이지 않았죠. 그런데도 (비트코인을 향한 편견 탓에) 은행 계좌를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기업을 경영하는 데 치명적인 문제였죠. 고객의 예금이 필요했던 우리 은행과 금융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이용하고 싶어 하던 암호화폐 업체들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거죠.”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실버게이트는 미국 암호화폐 스타트업들에는 단연 1등 은행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코인베이스(Coinbase), 제미니(Gemini), 크라켄(Kraken), 비트플라이어(bitFlyer) 등 내로라하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실버게이트의 고객이다. 이달 초 제출한 실버게이트의 기업공개 예비 신청서를 보면, 2018년 3분기 현재 실버게이트 은행과 거래하는 암호화폐 기업들은 483곳, 실버게이트 은행이 운영하는 고객들의 예금 규모는 17억 달러, 우리돈 1조 9천억 원에 이른다.

여전히 은행들 가운데는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며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 곳이 많다. 레인은 실버게이트 은행이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은행 부문의 규제 당국과 암호화폐 스타트업 창업자, 경영진의 만남을 직접 주선하고 이야기를 통해 오해를 풀게 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레인도 스타트업 가운데 전통적인 금융권에서 잔뼈가 굵은 규제 관련 전문가가 있는 곳을 찾아 헤맸다고 말했다. 엄격한 규제를 철두철미하게 지킬 의지와 준비가 되어있는 곳이 아니면 사업하기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암호화폐 스타트업은 (사실 많은 스타트업이 그렇듯) 경영진 직함을 단 사람이 수많은 일을 동시에 서커스 하듯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은행이나 규제를 지키는 일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원래 규제 담당 책임자는 회사의 다른 업무와 병행해선 안 되는, 병행할 수도 없는 자리거든요.”

 

코인베이스와 거래를 트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레인 옆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은행(Metropolitan Bank)의 IT 책임자 닉 로젠버그도 있었다. 암호화폐 업체와 거래하는 은행의 수는 많지 않은데, 메트로폴리탄 은행은 실버게이트 은행의 몇 안 되는 경쟁사 가운데 한 곳이다. 메트로폴리탄 은행은 후발주자로서 암호화폐 업계 내의 다양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있다.

반면 레인은 실버게이트 은행은 오랫동안 암호화폐 거래소와 장외 거래 플랫폼, 기관투자자만 고객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두 은행의 고객사 가운데 겹치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도 그 가운데 한 곳이다.

“코인베이스는 아마도 암호화폐 업계 안에서 가장 금융 서비스와 기반을 잘 닦아놓은 회사일 겁니다. 코인베이스는 우리 은행뿐 아니라 아마 암호화폐 업체와 거래하는 거의 모든 은행에 계좌를 열어놓고 있을 겁니다.”

레인은 그러면서 이렇게 여러 은행과 거래를 터 두는 것은 암호화폐 업계 초기에 유행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은행 계좌가 어느 날 갑자기 폐쇄되거나 차단될지 모르니 일종의 보험을 들어둔 것이다.

다른 은행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실버게이트 은행은 고객사인 거래소 플랫폼의 인터페이스를 접목한 통합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관투자자들은 실버게이트 은행 계좌만 있으면 은행 영업시간이 아니어도 언제든지 실시간으로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있다. 투자자들은 갑자기 돈이 필요해도 언제든 암호화폐뿐 아니라 신용화폐로도 돈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다고 레인은 말했다.

“은행으로서도 고객과의 거래를 24시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거래소가 해킹당했을 때 발 빠르게 대처해 자산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블록체인 통한 데이터 관리와 검증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에 대중들은 한동안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비도덕적인 일이 다수 연루돼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었다. 실버게이트 은행이 그런 암호화폐 업체들을 고객으로 받아들이고 거래할 수 있었던 데는 암호화폐 데이터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분산원장에 기록되는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실버게이트 은행은 초기에는 거래하는 비트코인에 상응하는 돈이 계좌에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해가며 결제를 처리, 지원해줬다. 레인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이 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실버게이트 은행 직원들이 적어도 분기에 한 번씩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찾아가 은행이 암호화폐 거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놓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거래가 이뤄지면, 그 거래의 양쪽을 다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5만 달러어치 비트코인을 어딘가로 보내면, 그 주소를 은행에 알려달라는 거죠. 그럼 우리는 블록체인 거래를 보고 실제 5만 달러어치 비트코인이 송금된 건지 확인하는 식입니다.”

실버게이트 은행은 거래소들에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하여 외부 감사를 받을 때도 이런 식으로 검증을 받으라고 권장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량 이상의 달러화를 거래소나 발행 업체가 은행에 예치하고 있는지가 관건인데, 실제로 제미니와 코인베이스는 올해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하기도 했다. 레인은 처음에는 암호화폐의 가치를 신용화폐에 연동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실버게이트 은행도 스테이블코인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버게이트 은행이 암호화폐 업체 가운데 새로운 고객을 맞이하는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에 대해 레인은 이렇게 말했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특히 어떤 것을 하든 옳은 것만, 제대로, 정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디서든 법을 어기거나 잘못된 일을 하는 업체를 우리 시스템에 들였다가는 우리 은행의 금융 플랫폼과 사업 전체가 타격을 받게 됩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자세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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