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SF_더 파이브_#22] 슈테나 성에 울려퍼진 총성

집사장의 죽음과 유크로니아의 보물

등록 : 2018년 12월 9일 21:37

그림=김태권

 

지난 줄거리

 

이 년 전. 게임월드로 출발한 유크로니아 플랫폼은 출시 이후 순항하는 듯 했지만 일 년이 지나면서 이상 신호들이 여기 저기에서 감지된다. 유크로니아 플랫폼을 창시한 원로회 주요 멤버인 마훌은 살해되었고, 여러 가지 갈등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가운데, 거대한 해상도시 유크로니아호가 출항한다. 유크로니아호를 출항시킨 주역이자 레드존의 핵심을 구성하는 베를루스국의 여왕 테스와 그녀의 손녀 세라 사이에 묘한 긴장감과 가치관의 충돌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결국 유크로니아를 이용한 권력 및 경제력 장악의 꿈을 꾸던 테스 여왕의 실각과 함께 베를루스국과 유크로니아에는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다. 잠잠한 듯 보였던 블루존에서도 문제가 터져 나온다. 새롭게 개량된 PoW의 이상을 우회한 중국의 ‘작업장’에 갇혀서 학대당하던 현우는 <더 파이브>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다.

 

-누나는 유크로니아에 사는 거야?

 

현우가 물었다. 마리의 집은 아시안 플로팅 시티에 붙어있는 수많은 해상 가옥 가운데 하나였다.

 

-아니, 당분간은 유크로니아에 붙어 있지만 싱가포르항까지 가서 그 나라 항구에서 떨어져 나와서 육 개월 정도 정박해서 살다가 다음 번에 유크로니아호가 오면 다시 도킹해서 태국으로 가려고.

 

전 세계에서 50여 개국이 유크로니아 가상국가 연합에 가입했다. 유크로니아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은 온라인 여권으로 각국의 항구에 입항할때 비자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직 정식으로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는 않지만, 공해 상의 상업용 리조트 시설의 형태였기에 정치적으로 큰 문제없이 유크로니아 온라인 여권으로 해당 국가에 방문했을 때 이를 탑승하고 다시 그 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무비자로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선진국들에게는 대단한 혜택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소국에 사는 국민들에게는 비록 바다에 국한되지만  여행도 하고 전 세계의 국민들과 유크로니아라는 지구공동체를 같이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이상으로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차에 달린 트레일러 하우스같은 거구나.

-뭐, 사실 그런 거지.

 

마리가 웃었다. 그녀의 넓고 화사한 해상가옥을 둘러싸고 아시안 플로팅 시티와 거대한 유크로니아호는 작은 해상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트레일러하우스 같다는 뜻은 절대 아니야. 집이 너무나 멋져. 누나… 고마워.

 

현우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잠시 고개를 숙였다.

 

-도리어 우리가 고마워. 네가 구호 신호를 보낸 덕분에 유크로니아 시스템의 결함을 고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민이 말했다. ‘우리’라고 표현하는 민의 말에 현우는 마리와 민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보니 두 분, 잘 어울리시네요.

-맙소사. 우린 그런 사이 아니야.

 

마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네.  

 

현우는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말했다. 화사한 집에 화사한 옷을 입은 그녀가 눈부셨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때문인지 옷도, 얼굴도 항상 어두웠던 그녀가 드디어 행복을 찾아간다는 느낌에 안도가 되었다.

 

-어쨌든 그 농장하고의 일이 마무리되기전까지는 너도 유크로니아호에서 내리면 곤란해

 

마리가 말했다. 아직 조사를 더 해봐야 하겠지만, 현우 등이 혹사를 당하며 노예처럼 일하는 ‘작업장’과 이들과 연계된 단체를 ‘농장(farm)’ 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농작물을 기르던 농장을, IT기술이 발전하면서 대형 서버 컴퓨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데이터 센터를 ‘서버 농장(server farm)’ 이라고 불렀는데, 이번에는 컴퓨터와 사람들을 한 꺼번에 강제로 일을 시키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나간 경우다.

 

현우가 마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민은 계속 초조하게 시계를 보았다.

-그럼, 난 이만 가봐야 돼. 농장일은 어떻게든 결론을 내볼테니까 좀 기다려줘

 

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성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하드포크 전쟁이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축하주 한 잔은 하시고 가셔야죠?

 

현우가 민에게 와인을 한 잔 권했다.

 

민은 할 일이 많아. 내가 마실게.

 

마리가 현우가 든 잔을 비웠다. 민이 웃으며 인사하더니 문을 나섰다.

‘잘 어울리는 커플이야.’ 현우는 속으로 생각하며 창밖을 보았다.

 

어느새 태풍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끝도 없이 파랬다.

 

*

 

세이무어와의 전화를 끊고도 비서가 들어오는 것도 못 느낀 채 세라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슈테나성의 집사장입니다.

 

세라의 비서가 말했다.

 

-할 말 없어요. 연결시키지 마요.

-지금 문밖에 있습니다.

-당장 사라지지 않으면 내 손으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고 전해주세요.

 

세라는 배신감에 다시 한 번 치가 떨렸다. 부모의 차에 손상을 입힌 자가 집사장일 수 있다는 첩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밖에서 말싸움 같은 것이 들리더니 조용해졌다. 비서가 서류 한 장을 들고 나타났다.

 

-유크로니아에 대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비서는 책상 위에 밀봉된 봉투를 내려놓고 나갔다. 세라는 더러운 것이라도 만지듯 그 봉투를 뜯었다.

담보문서였다. 스위스 비밀 은행이 슈테나성에 있는 보물들을 담보잡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물은 세라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물품이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유명한 성군이라고 불리던 세종대왕에게서 온 편지라고 설명이 붙어있었다.

 

‘담보 문서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집사장이 쓴 쪽지가 들어 있었다.

세라는 유크로니아로 접속해서 퀘스트 행성에 들어갔다. 세종대왕은 대한민국이 조선이라는 왕조시절이었을 당시 15세기 초중반의 왕이었다. 이제는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쓰이는 ‘한글’을 그가 발명했다는 사실은 이제 세계적인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유럽의 가문과 연락했다는 사실은 역사서 아무 곳에도 없었다.

세라는 세종대왕의 서진에 새겨진 유크로니아 문양을 오랫동안 보았다.

 

-문서들을 다 내게 내놓아요. 만약 당신의 살해 혐의가 인정된다면 제 손에 죽지 않고 재판을 받고 평화롭게 죽게 되는 이득을 드리죠.

 

야성적인 면이 있는 세라였다. 맹수가 먹이를 눈 앞에 둔 듯 잔인하게 놀려가며 거칠게 집사장에게 말했다.

 

-저로서는 한치도 숨길 것이 없고,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다만 수사과정에서 제가 공작님의 명령을 받아 수행한 일들이 밝혀지게 되면 국민들이 놀라게 될 것이 좀 두렵긴 하군요.

 

집사장은 언제나처럼 평온한 말투였다.

 

-지금 저를 협박하는 거에요? 제가 국민들을 지금 당장 놀라게 할 수도 있으니 그 입 이제 다무시죠.

 

세라는 서랍에서 총을 들어 집사장을 겨눴다.

 

-아버지가 죄가 있으시면 아버지의 죄값이죠. 나에게 협박은 안 통해요.

 

세라가 덧붙였다.

 

-제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유크로니아에 관련한 일들입니다. 15세기 정도부터 유크로니아에 관련한 비밀 서신들이 유럽과 아시아, 인도 등의 지도자 사이를 오갔다는 것과 그에 관련한 보물들에 대한 건입니다.

 

집사장이 조그조근한 말투로 말했다. 맹수가 아니라 그 어떤 것이 와도 집사장의 근엄한 표정을 바꿀 수 없을 거였다. 그는 같은 표정으로 몇 십년을 지냈다. 마치 수도사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보물들을 차지하려고 제 부모님을 죽였나요?

 

세라가 여전히 총을 겨눈 채 물었다.

 

어느새 들어온 비서가 세라와 집사장 사이에 섰다.

 

-이러시면 안됩니다.

 

비서가 말했다.

 

-보물들에 대해 처음 안 순간 저도 흔들렸습니다. 사실입니다. 전설 속에만 있던 한글과 관련한 최초의 과학적 해석이 담긴 서책들 아더왕의 검인 엑스칼리버의 조각,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등이 제작한 메디치 가문의 보물들이 숨겨진 장소와 담보문서들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실수였습니다. 재정에 문제가 있었던 세라 공주님의 부모님들은 슈테나성의 유크로니아 관련 비밀문건을 외부로 노출해서 이득을 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냥 차에 약간의 고장을 내서 멈추게 하려고 했던 것일 뿐인데. 죄송합니다.

 

집사장의 목소리가 아주 약간 흔들렸다.

 

-감히, 과실치사를 주장하는 건가요?

 

세라의 손이 떨렸다.

 

-아닙니다. 저희는 집안 대대로 유크로니아 보물을 수호했죠. 저를 수사하시면 슈테나성에 압수수색영장이 들어옵니다. 그것만은 피해야 합니다.

 

집사장이 말했다.

 

-그런 말을 믿을 것 같아요?

 

세라는 곧 정신을 잃을 것 같이 혼란스러웠다.

 

-그만하시죠. 위험한 자입니다.

 

비서가 세라에게 다가왔다.

 

-믿으셔야 합니다. 당장 슈테나성의 압수수색을 멈추게 하세요.

 

집사장이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내가 그런 힘이, 아니 왕실전체가 그런 힘이 있을것 같아요?

 

세라가 말했다.

 

순간 집사장이 세라에게 달려왔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렸다. 경호원들이 몰려왔다. 탕하는 총소리가 두 번 더 울렸다.

경호원들이 문을 열었을 때 이미 집사장은 머리에 총을 맞고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의 손에는 총과 쪽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부디, 제 조카들을 보살펴주십시오. 저를 믿고 따르던 애들이라 충격이 클 겁니다.’

 

‘슈테나성의 집사장 자살로 종결된 수사.

세라 공주의 총으로 자살한 집사장, 결백을 주장하다.’

 

신문들은 세라의 이름을 언급했지만 아무도 유크로니아의 보물에 대한 사실을 기사화 하지는 않았다. 만약 집사장이 죽지 않았다면 아무도 슈테나성의 압수수색을 막지 못했을 거였다.

 

 

<다음주에 계속>

<지난화 보기>

21화_하드포크 폭풍 전야

20화_테스의 출국

19화_ 마리 이야기, 그리고 현우의 행방

18화_슈테나 성 경매와 현우의 메시지

17화_베를루스국의 슈테나 성은 팔리게 될까

16화_마침내 공개된 퀘스트를 풀어라

15화_제네시스 블록 퀘스트 공개 논쟁

14화_제네시스 블록의 비밀

13화_탈중앙화 거래소의 소스코드

12화_타협할 것과 아닌 것

11화_유크로니아 왕위 계승과 세금 인상 

10화_세이무어와 테스의 회합

9화_블랙존에서 열린 총회 

8화_아버지가 남긴 것

7화_ 예술가들의 천국

6화_세라, 유크로니아 16번째 달의 이름

5화_VR과 AR이 조합된 게임월드, 시험운영은 끝났다

4화_민이 낸 수수께끼를 풀어라

3화_살아남은 자들의 아침

2화_더 퍼스트의 속삭임

1화_유크로니아국의 입국 신청


<작가 소개>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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