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SF_더 파이브_#24] 이 전쟁의 블랙스완은 누구

새로운 정치의 서막

등록 : 2018년 12월 28일 17:37 | 수정 : 2018년 12월 28일 17:42

지난 줄거리

이 년 전. 게임월드로 출발한 유크로니아 플랫폼은 출시 이후 순항하는 듯 했지만 일 년이 지나면서 이상 신호들이 여기 저기에서 감지된다. 유크로니아 플랫폼을 창시한 원로회 주요 멤버인 마훌은 살해되었고, 여러 가지 갈등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가운데, 거대한 해상도시 유크로니아호가 출항한다. 유크로니아호를 출항시킨 주역이자 레드존의 핵심을 구성하는 베를루스국의 여왕 테스와 그녀의 손녀 세라 사이에 묘한 긴장감과 가치관의 충돌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결국 유크로니아를 이용한 권력 및 경제력 장악의 꿈을 꾸던 테스 여왕의 실각과 함께 베를루스국과 유크로니아에는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다. 잠잠한 듯 보였던 블루존에서도 문제가 터져 나온다. 새롭게 개량된 PoW의 이상을 우회한 중국의 ‘작업장’에 갇혀서 학대당하던 현우는 <더 파이브>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다. 예기치 못한 도전에 봉착한 블루존의 상황에 대해 한 민은 하드포크를 이용한 해시전쟁을 진행하고자 하는데 …

 

-마리가 다시 나타났다고? 더 잘 됐네. 경찰에 알려.

R이 말했다.

 

-국적을 바꿨어. 국제법도 잘 통하지 않는 사모아 군도의 작은 섬나라로.

민이 말했다.

 

-어쨌든 지금은 상하이에 있으니 구속은 가능하잖아.

 

-마리는 그곳을 떠났어.

 

-그럼 마리는 어디 있는데?

R이 물었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마리가 주춤하며 섰다.

 

-네 얘기를 한 게 아니야. 마리.

R이 민을 살폈다. 어디서부터 어떤 얘기까지 마리에게 발설해도 좋은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마리라면 나도 알아. 민의 사무실에 있는 깨진 액자속의 여자.

마리가 말했다.

 

-치우라고 했는데 청소담당이 잊은 모양이군.

민은 조금 당황했다.

 

이름은 같지만 뭐랄까 네가 백조라면 그녀는 흑조야. 블랙스완.

R이 민을 도왔다. 민이 마리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은 눈치채고 있었다.

 

-미팅을 방해했다면 미안, 현우 말이 유크로니아호에서 ‘농장’의 책임자들을 본 것 같다고 해서 전해 줘야할 것 같아서 달려왔어. 현우는 지금 너무 놀라서 객실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어.

마리는 흥분했지만 민의 표정은 잠잠했다.

 

-알고 있었던 거야?

R이 물었다.

 

-농장의 임원들이 상하이 도킹 때 합류했어. 정식 미팅을 요구하고 있지.

민이 말했다.

 

-그럼 설마?

 

-마리도 유크로니아호에 있어.

 

* * *

 

-한민은 언제까지 우리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로저 한이 말했다.

 

-놔둬요. 곧 나타날 거에요. 그는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타입이 아니에요. 속전속결을 선호하죠.

오 마리가 말했다.

 

-아, 그래서 그를 위해 이런 섹시한 옷을 입고 있는 거에요?

로저가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아니오. 저 자신을 위해서죠. 여자의 옷은 무기니까요.

로저와 마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했다. 사람들이 과로로 죽어나가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개의치 않을만큼 이기적이었다.

 

-갑옷이 아니고요?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진심을 숨기고 보호하는?

로저가 웃었다. 마리는 찡그렸다.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읽는 듯이 행동하는 그가 얄미웠다. 하지만 또한 그의 지적이 거의 맞는다는 게 불만스럽기도 했다. 둘의 내면은 너무나도 비슷했다.

벨 소리가 들리고 화면에 민의 얼굴이 떴다.

 

-장전해요. 이제 전쟁이에요.

로저가 그녀의 드레스의 한 쪽을 내려서 어깨를 드러냈다. 그리고 문 앞으로 밀었다.

문이 열리자, 민은 갑자기 그녀가 눈앞에 나타나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로저가 갑작스럽게 밀쳐서 당황한 나머지 얼굴이 붉어진 마리는 평소보다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영광입니다. 유크로니아 블루존을 만드신 한민님과 독대하게 되다니.

로저의 말에는 어딘가 비아냥이 있었다. 한 번도 먹잇감을 놓친 적 없는 젊은 맹수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블루존을 한 번에 다 먹으시려는 야심가를 만나뵙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해서요.

민이 말했다.

 

-상상력이 부족한 것은 사업가에게 큰 결함이죠. 저희가 그 결함을 채워드릴게요.

마리가 샴페인을 따르며 말했다.

 

-상상력이 아니라 기억력을 보태드려야지. 해시전쟁으로 어떤 일이 생겼는지 잊으신 모양이니까. 공멸이죠. 블루존의 구조도나 유크로니아화폐는 박물관에 전시되겠죠.

로저가 말했다.

 

-농담은 그만해요. 로저. 해시전쟁 따위는 없어요. 블루존과 우리는 휴전하고 협력할 거니까요. 공생이라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아요. 농장은 지금은 초창기라 인력들의 희생이 있지만 곧 궤도에 오르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사업으로 안정될 거예요. 이러다가 사회사업가로 분류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마리가 웃었다. 민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즐겨마시던 샴페인을 특별히 공수해왔어요. 이미 판매가 중단된 건데 주문 제작했죠.

 

-판매 중단된 이유는 고객이 외면해서겠죠. 저도 더 이상은 안 마시니까요.

민이 말하자 마리와 로저는 크게 웃었다.

 

-고객의 마음을 잃어버리다니다니 샴페인 제조회사가 정말 안됐군요. 사람의 마음을 믿는다는 게 이렇게 위험합니다.

로저가 말했다.

 

-제가 암호화폐 사기에 연루되었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해요. 저도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 저는 국적도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어요. 어떻게보면 제가 가장 큰 피해자에요.

마리가 말했다. 민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마리를 못 믿으시는 군요. 저도 그래요. 사람들 특히 미인들은 못 믿을 종족이죠. 인기가 많아서 어디로 튈지 모르니. 그래서 저는 숫자만을 믿고 일합니다.

로저가 사업계획서를 내밀었다. 그 후 몇 분 동안 종이장이 넘겨지는 소리만 들렸다.

 

-이건 블루존을 나눠 갖자는 얘기 아닙니까?

민이 말했다. 블루존 내에서 ‘농장’이 관여하는 노드에 참견하지 않는다는 조건과 농장은 블루존 내에서 삼분의 일 이상 확장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서약서였다.

 

-어차피 해시전쟁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실 텐데요? 수백만 개의 암호화폐 채굴기가 운영을 종료하고 공멸했죠. 유크로늄도 그런 결과를 맞게되는 건 너무 슬퍼요. 1차 미팅이 마음에 흡족하지 않으셨다면 2차 미팅은 한민 대표님께서 주재하시는 걸로 하죠.

오 마리가 아름다운 미소를 뿌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풍겨왔다. 그녀는 자신이 있는 곳을 쾌적하고 안락하게 만드는 습성이 있었다.

민은 한 때 그녀의 그런 면을 몹시 사랑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치 안전한 유토피아에 있는 기분이었다. 지금에야 확실히 깨달았다. 그녀의 그런 알량한 유토피아야말로 지옥이 보내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

 

-제가 잘은 모르지만 하드포크를 진행해버려요. 그리고 다시 재구성을 하면 어때요?

마리가 말했다.

 

-그건 이미 우리가 시작하고 있어. *블랙스완은 오 마리쪽이 아니라 이쪽이 되는거지.

민이 말했다.

 

유크로니아 내부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 비정상적인 노드 움직임이 간파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업그레이드 요청을 받아주시고 신고에 참여해주십시오. 여러 분이 참여한 노드들의 정확한 위치와 프라이버시는 지켜집니다. 다만 동일한 가상의 집단 노드 클러스터만 인공지능이 파악하고 일정한 점유율 이상을 가진 ‘농장’ 또는 ‘네트워크 농장’에 대해서만 임시정지를 시키고 실제 조사에 착수하게 됩니다.

소수의 ‘농장’들은 불만을 내비쳤지만 곧 참여를 하나둘씩 선언했다. 로저 한이 독자적인 체인을 통해 현재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음을 설득했지만, 대다수의 소규모 농장들은 클러스터의 해체때문에 다소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해시전쟁에서 처참하게 무너진 지난 암호화폐처럼 유크로늄이 골동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자발적인 업그레이드와 감시만이 공평한 시스템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것에 모두 합의해가고 있었다. 유크로니아 공동체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고, 레드존에서도 밝혀졌듯이 사람들에게 적절한 권한과 힘이 주어진다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최악의 경우 하드포크 진행 이후에도 클린 스플릿을 통해 독자적인 체인을 구성해서 살아남으려고 했던 로저는 당황했다. 농장주들에게 장비대여를 무료로까지 권하면서 현재의 체인을 지켜달라고 재빠르게 움직였지만 온라인에서의 단체적 의사 합의의 속도가 로저의 중앙집중적인 대규모 ‘농장’들에 대한 영업력보다 훨씬 크고 빨랐다.

 

-슬슬 이제 공격을 시작해볼까?

 

아성은 노드를 감시하는 에이전트를 움직였다. 비정상적으로 집중화된 움직임을 보이는 노드들이 디스플레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로저의 ‘농장’들도 하나 둘씩 발각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새로운 업그레이드를 받아들였기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니, 이미 로저의 ‘농장’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일부 ‘농장’들은 블루존 운영위원회에 메시지를 보내 48시간 이내에 클러스터와 ‘농장’을 해체할 예정이니 운영중단 노드들로 지정하지는 말아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이미 대세는 결정되고 있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블루존의 암적 존재들이 제거되고 있었다. 마치 우리 몸의 면역세포들이 한 꺼번에 깨어나서 몸 곳곳의 종양들을 잡아먹어 버리듯이 … 이번 업그레이드는 면역증강제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시험되어왔던 유크로니아 내의 합의시스템은 점점 더 세련되지고 있었다. 집단지능처럼 서로의 정보를 내놓고 하나의 통합 의견에 도달하는 과정은 빨랐다. 레드존에서의 사건을 통해 확산된 DEX 기술과 이렇게 수 많은 소규모 노드들의 민주적인 운영을 도와주는 아성의 인공지능 에이전트 기술이 이번 해시전쟁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수천만 명의 의결이 몇 초 만에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임시적인 결정에 이를 수 있었고, 전체의 비준을 받는 과정에 걸리는 시간도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유크로니아는 이제 전세계에서 업계 최고의 장비업체와 자본력을 가진 집단도 순식간에 대규모 의사결정을 통해 망하게 할 수 있는 혁명적 시스템이 된 셈이었다.유크로니아 블루존의 성공은 단지 블루존 뿐만 아니라 현재의 민주주의 대의 정치시스템을 바꿀 직접 합의의 예로서 고무적인 사건으로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자, 이제 미국에 입국하는 일을 시작하면 되겠네요. 화이트존에서는 이미 유력 정치인들의 대부분이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어요.

퍼스트가 블랙존 회의에서 말했다.

 

기존 정치권에 들어서는 건 난 반대야. 귀찮아.

베일에 쌓인 인물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읊조렸다.

 

-유크로니아가 이제 정치권이에요.

퍼스트가 말했다.

 

<다음주에 계속>

<지난화 보기>

23화_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되는 해시전쟁

22화_집사장의 죽음과 유크로니아의 보물

21화_하드포크 폭풍 전야

20화_테스의 출국

19화_ 마리 이야기, 그리고 현우의 행방

18화_슈테나 성 경매와 현우의 메시지

17화_베를루스국의 슈테나 성은 팔리게 될까

16화_마침내 공개된 퀘스트를 풀어라

15화_제네시스 블록 퀘스트 공개 논쟁

14화_제네시스 블록의 비밀

13화_탈중앙화 거래소의 소스코드

12화_타협할 것과 아닌 것

11화_유크로니아 왕위 계승과 세금 인상 

10화_세이무어와 테스의 회합

9화_블랙존에서 열린 총회 

8화_아버지가 남긴 것

7화_ 예술가들의 천국

6화_세라, 유크로니아 16번째 달의 이름

5화_VR과 AR이 조합된 게임월드, 시험운영은 끝났다

4화_민이 낸 수수께끼를 풀어라

3화_살아남은 자들의 아침

2화_더 퍼스트의 속삭임

1화_유크로니아국의 입국 신청


<작가 소개>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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