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 ‘마켓메이킹’,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

등록 : 2019년 1월 28일 07:00 | 수정 : 2019년 1월 28일 12:23

암호화폐 시장에서 ‘마켓메이킹(Market Making)’만큼 다양한 해석과 오해로 얼룩진 용어도 없을 것입니다.

현재 업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켓메이킹을 ‘암호화폐 가격을 올리는 모든 행위’라고 이해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중 상당수는 이른바 ‘펌프 앤 덤프(Pump and Dump)’로 불리는 시세조작에 해당합니다. 그러다보니 뭔가 떳떳하지는 않은 뉘앙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증권시장에서 마켓메이킹은 아주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불법도 아닙니다. 오히려 시장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제도입니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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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메이킹 제도 설명으로 바로 들어가면 어려우니, 일단 차근차근 용어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마켓메이킹을 한국말로 하면 시장조성입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시장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아주 오래전 시장이 없는 도시를 한 번 상상해보시죠.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수량만큼 구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달걀을 예로 들어볼까요. 결혼식이 있어서 수십명분 요리를 해야 하는데, 시장이 없으니 이웃집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달걀을 사야 했습니다. 달걀을 팔고 싶은 사람도, 누가 언제 살지 모르니 불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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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누군가 도시 광장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달걀을 사고, 필요한 사람에게 파는 일을 업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달걀을 사거나 팔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지 이 사람에게 가면 거래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달걀 시장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시장조성자, 마켓메이커라고 부릅니다.

시장에서 이들이 하는 행위를 조금 어려운 말로 ‘유동성 공급’이라고 합니다. 판매자의 공급과, 구매자의 수요가 항상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시장을 만들어 중간에서 이 불균형을 채워주고 이에 따른 가격을 제시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증권시장의 시장조성자, 유동성 공급자 제도는 좀 더 복잡하지만, 이 개념을 염두하면 이해하기 한결 쉬워질 것입니다. 증권시장의 구조를 차용하려는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어를 알아봤으니 이제 진짜 사례를 살펴볼까요.

 

증권시장의 마켓메이킹이란?

한국 증권시장에는 유동성 공급자(LP: Liquidity Provider) 제도가 있습니다. 증권사가 상장기업과 계약을 맺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증권시장에서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건 매도ㆍ매수 호가가 두텁다는 걸 의미합니다. 거래가 활발하면 해당 증권을 사고팔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만큼 시장 참여자들이 제시한 가격이 다양하고 촘촘하게 많다는 뜻이죠.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에선 빠르게 주식을 살 수도 있고, 팔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저유동성 종목은 거래가 부진해 호가간 가격 차이가 넓습니다. 흔히 ‘호가 스프레드가 얇다’고 표현합니다. 이러면 거래 변동성이 커져 거래 비용도 덩달아 커집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마켓메이커들. 사진=한겨레 자료사진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마켓메이커들. 사진=한겨레 자료사진

 

예를 들어 제가 A주식을 100만원에 50주를 팔고 싶어도, 이를 사려는 매수호가가 2주밖에 없다면 48주가 남게 됩니다. 결국 저는 이 가격에 사려는 매수자를 기다리느라 거래 시간도 늘어나며, 48주를 더 싼 가격에 팔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유동성이 풍부했다면 바로 팔고 나올 수 있었겠지요.

이렇게 유동성은 증권의 환금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시 말해 유동성은 투자자가 거래를 하려고 할 때, 적정한 가격에 낮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매매할 수 있는 정도를 뜻합니다.

유동성이 부족한 종목은 가격 형성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투자 기피 현상이 벌어집니다. LP 제도는 이런 종목에 유동성을 공급합니다.

LP제도는 한국거래소 유가증권 업무규정에 따라 운영됩니다. 한국거래소는 2004년 ETF, 2006년 유가증권, 2008년 코스닥에 LP를 도입했습니다.

업무규정은 LP의 자격요건, 호가제출 의무, 호가수량 등을 매우 상세하게 규정합니다. 상장기업과 계약한 증권사(LP)는 매도ㆍ매수호가간 가격 차이가 일정 범위(유가 3%, 코스닥 2%) 이상 커지면, 5분 내에 이를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호가를 양방향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LP는 상장기업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으며 매매차익도 얻을 수 있습니다.

증권시장의 유동성공급자 제도 구조. 이미지=2016년 주식시장 매매제도의 이해

증권시장의 유동성공급자 제도 구조. 이미지=2016년 주식시장 매매제도의 이해

 

또한 한국거래소에는 LP와 비슷한 시장조성자(MM: Market Making) 제도도 있습니다. 증권사가 유동성 공급을 한다는 점은 같지만, 상장기업 대신 한국거래소와 계약을 맺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LP보다 좀 더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 의무를 부여받습니다. 시장조성자 제도는 자본시장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LP와 시장조성자 제도는 유동성 위험때문에 투자를 기피하는 ‘저유동성의 악순환’ 구조를 깰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거래량이 늘어나 안정적으로 주가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특히 상장사 입장에선 거래부진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이나 상장폐지를 회피하기 위해 자전거래 같은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동성공급 제도를 사용하는 나라는 많습니다. 증권거래소만 10여개가 넘는 미국에선 거래소마다 제도가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양방향으로 매도ㆍ매수 호가를 제출해 스프레드를 좁힌다는 원칙은 동일합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마켓메이킹 제도는 글로벌 표준화된 제도”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소 중에서도 전자거래 시스템을 통해서 모든 거래가 이뤄져 암호화폐 거래소와 가장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나스닥(NASDAQ)의 경우 마켓메이커의 역할은 매우 큽니다. 나스닥에는 300여개 마켓메이커가 등록돼 있는데, 나스닥 오더북에 호가를 내는 건 이들 마켓메이커만 할 수 있습니다. 마켓메이커가 아닌 브로커/딜러는 마켓메이커들이 오더북에 제시한 호가를 수용만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나스닥에서는 한 종목당 평균 14개 마켓메이커들이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이 낸 호가로 거래가 체결되도록 하기 위해 서로 스프레드를 낮추는 경쟁을 하게 되고, 이로써 고객들은 더 유리한 가격에 주식을 사고팔 수 있게 됩니다.

 

암호화폐 시장의 마켓메이킹이란?

‘무법지대’이자 ‘규제프리존’인 암호화폐 시장은 증권시장과 매우 다릅니다. 일단 한국거래소는 하나뿐이지만 암호화폐 거래소는 국내에만 100여개가 넘습니다. 게다가 법에 따라 철저하게 중개 역할만 하는 한국거래소와 달리, 암호화폐 시장에선 거래소가 직접 선수로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직접 선수로 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국내 대형 거래소 업비트 사건입니다. 검찰은 2018년 12월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임직원 3명을 기소했습니다. 기소 내용 중 4조원 규모의 자전거래 등은 제외하고 유동성공급 부분만 살펴보겠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업비트는 법인 계정을 이용해 일반 투자자와 약 1조8817억원 거래를 했고, 체결 가능성이 낮은 가격대에서 약 254조원의 허수주문을 제출했습니다. 이에 대해 업비트는 거래소 오픈 초기 시장 안정화를 위해 유동성을 공급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업비트는 “유동성 공급 규모는 암호화폐 당 2억~3억원 수준이었다”며 “허수주문 254조원은 시장가격 변화에 따라 기존 주문을 취소하고, 신규 주문을 제출하는 유동성 공급의 기본적인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업비트 오픈 초기, 거래량이 적은 코인은 매도ㆍ매수 호가별 가격 차이가 컸습니다. 업비트는 “이때 ‘시장가 주문’을 내면 매수자가 의도하지 않은 금액으로 거래가 체결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며 “현재 체결가보다 상단과 하단의 적정한 범위 내에서 매도 및 매수호가를 제출해, 급격한 가격변동에서 이용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증권시장에선 마켓메이킹의 의미를 양방향 호가를 제출하는 유동성 공급으로 한정합니다. 그러나 암호화폐 시장에선 허수주문, 자전거래, 거래소의 직접참여, 시세조정, 봇 이용 등의 행위를 모두 ‘마켓메이킹’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일했던 한 금융 전문가는 “암호화폐 가격을 상승시키는 걸 마켓메이킹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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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가 직접 유동성 공급?

현재 증권시장과 암호화폐 시장의 마켓메이킹은 목적도 정의도 상당히 다릅니다. 무엇보다 두 시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거래소의 역할입니다. 법에 따라 운영되는 한국거래소는 증권 거래에서 공정한 중개자의 역할만 담당합니다. 그리고 지정된 LP나 시장조성자가 정해진 범위 안에서 유동성 공급을 하는지 감시합니다. 시장 왜곡을 막고 유동성 공급의 좋은 면만 취하기 위해서입니다.

반면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거래소가 직접 거래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일반 투자자와 거래도 하고, 거래량을 부풀리는 자전거래도 합니다.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지는지 감시해야 하는 심판이 선수로도 뛴 셈입니다.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황현철 박사(재미금융기술협회 회장, 아톰릭스컨설팅 파트너)는 “거래소는 거래 쌍방의 주문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볼 수 있어, 정보를 선점할 수 있으며 자신의 거래에 대한 거래비용(수수료 부담)도 없다”며 “자기 의도를 가지고 거래 참여를 하게 되면 가격 조정도 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거래소가 딜러 역할까지 하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이해상충이 일어날 수 있으니 주문매칭 역할만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켓메이킹에 거래소 뿐만 아니라 암호화폐 발행사가 개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혁재 체인파트너스 장외거래 트레이딩 헤드는 “코인 발행사들이 유동성 공급업체와 계약하고 가격 올리는 작업을 한다”면서 “(유동성 공급이) 잘 쓰면 가격이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가치를 반영하는 건데, 감시하는 사람이 없으니 결국 펌프 앤 덤프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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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비트 사건에 대해서는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일단 대형 거래소가 이런 행위를 했다는 것에 실망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지 말라는 법이 없는 상황에서 전통 금융권의 잣대를 대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도 일부 나옵니다.

책 <넥스트머니>를 쓴 이용재씨는 “유동성 공급을 하면 거래량도 늘고 마케팅도 할 수 있다”며 “영리 기업 입장에선 비즈니스 활성화 행위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금처럼 법과 제도 없이 방치한 상태에서 거래소는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면서 “검찰이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자본시장법 관점으로 범법행위처럼 바라보면 안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암호화폐 제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심지어 검찰도 업비트 수사결과 발표 보도자료에서 “가상화폐 거래소에선 상대방의 거래자산 실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투자자 피해가 우려된다”며 “거래소 운영자의 거래참여 금지 등 거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방안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관계자도 “지금은 아무런 규제가 없으니 제도가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동의했습니다.

세줄 요약

-증권시장에서 마켓메이킹은 유동성 공급을 의미
-암호화폐 거래소가 선수로 뛰고 있다
-투자자 보호위해 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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