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SF_더 파이브_#26] “당신을 잘 아는 사람이죠”

26화: 퍼스트의 정체

등록 : 2019년 3월 11일 16:31

일러스트=김태권

 

지난 줄거리

이 년 전. 게임월드로 출발한 유크로니아 플랫폼은 출시 이후 순항하는 듯 했지만 일 년이 지나면서 이상 신호들이 여기저기에서 감지된다. 유크로니아 플랫폼을 창시한 원로회 주요 멤버인 마훌은 살해됐고, 여러 가지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가운데, 거대한 해상도시 유크로니아호가 출항한다. 유크로니아호를 출항시킨 주역이자 레드존의 핵심을 구성하는 베를루스국의 여왕 테스와 그녀의 손녀 세라 사이에 묘한 긴장감과 가치관의 충돌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결국 유크로니아를 이용한 권력 및 경제력 장악의 꿈을 꾸던 테스 여왕의 실각과 함께 베를루스국과 유크로니아에는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다. 잠잠한 듯 보였던 블루존에서도 문제가 터져 나온다. 새롭게 개량된 PoW의 이상을 우회한 중국의 ‘농장’에 갇혀서 학대당하던 현우는 <더 파이브>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다. 예기치 못한 도전에 봉착한 블루존의 상황에 대해 한 민은 하드포크를 이용한 해시전쟁을 통해 유크로니아 사용자들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극복한다. 그리고 마침내 2028년 4월 1일 유크로니아는 독립선언을 하였는데 …

 

-미국에 입국하겠다고? 유크로니아가 정치권에 들어서는 건 난 반대야. 귀찮아.

실내가 어두운 가운데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남자가 시가를 피워 물며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읍조렸다. 불을 피우는 순간 얼굴이 보였다. 세이무어였다.

-유크로니아가 이제 정치권이에요.

퍼스트가 말했다.

-유크로니아가 외교를 시작하면 결국 미국의 정치놀음에 낄 수밖에 없어. 미국을 이길 나라는 없어. 유크로니아는 망국에 이를 거야.

-그렇지 않아요. 우리의 비밀 카드를 잊었어요? 당신과 혈맹을 맺고, 스캇을 미국 대통령으로 만든 게 다 이 때를 위해서죠.

퍼스트가 말했다.

-스캇 따위를 믿고 이러는 건가?

세이무어가 헛웃음을 웃었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입국하는 즉시 구금이겠죠.

-내가 꺼내줄 수 없다는 것도 알겠군.

-절대로 그러면 안 되죠. 저를 직접 집어 넣으셔야 해요.

-그렇게 원한다면.

세이무어가 시가를 껐다.

***

해리는 스캇이 잠시 벗어놓은 넥타이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향기라도 맡듯 고개를 묻었다.

-그런 짓은 이제 안 하기로 했지 않나?

스캇이 말했다.

-앞으로는 안 할게요. 미안합니다.

스캇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본 해리는 울상이 되었다.

-대통령 선거 때 제가 얼마나 헌신했는지 기억하시죠? 그걸 기억하신다면 이번 한 번 만 용서해주십시오.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러겠습니다.

스캇을 따라 해리가 걸어갔다.

-그게 문제야. 당신의 그런 행동때문에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거. 당신은 해고야.

스캇이 말했다.

-하지만 오늘까지만 있어. 오늘 같은 일을 관전하려고 지난 일 년을 함께 보낸 거니까.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해리가 물었다.

-보고는 내가 받는 거 아니었나?

-죄송하지만 정식보고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이 시간 부로 저는 보좌관 업무를 종료하겠습니다.

해리가 까닥 고개를 숙였다.

-그러든지. 종종 연락하게.

스캇은 해리를 한 번 보더니 무심히 말하고 프레지덴셜 벙커로 들어갔다.

한시간 후 보좌관 대리가 미국 대통령, 스캇에게 보고했다.

-유크로니아국이 입국신청을 해왔습니다. 어떡할까요?

대통령 상황실 화면에 보스턴 항구에 입항을 준비하고 있는 배 한 척이 보였다. 항공모함급이었다. 고급 수트를 입은 사람들이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해적선 같은 게 나라로 인정됐다고? 그게 말이 돼?

백발이 성성한 부통령 세이무어(Seymour)가 시가에 불을 붙이며 말하자 주위가 일순간에 조용해했다. 아무도 그에게 프레지던셜 벙커가 금연이라고 지적하지 않았다. 그의 가문의 권력은 미국의 대통령직보다 오래 존재해왔기 때문이었다.

더 파이브가 세운 온라인 플랫폼으로 지구상의 자금들이 다 옮겨가고 있었다. 검색엔진, SNS, 게임 등과 같은 인터넷 서비스 관련한 것들은 물론 영화, 음악, 웹툰과 같은 콘텐츠 서비스와 유통, 상거래, 금융서비스 등까지. 전 세계 경제시스템이 전부 파이브의 새로운 플랫폼 체제위에 올라갈 게 이제 시간문제로 보였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유토피아의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더 파이브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들은 영토를 기반으로 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온라인상에서의 영원한 ‘유크로니아 게임월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유크로니아 경제, 사회 시스템을 전파했다.

-그 여자, 본명은 뭐야? 어디 출신이지? 됐어. 그냥 이리로 데려와봐. 강제로든.

세이무어는 시가의 불을 껐다. 벙커 안에서 자신의 쇼는 끝났다. 이제는 퍼스트가 등장하는 본격적인 쇼가 시작될 거였다.

백악관의 초청을 받자, 유크로니아호에서 헬기 한 대가 이륙을 준비했다.
방송 헬리콥터와 주위 선박들이 유크로니아호 주위를 맴돌았다. 한 헬기 안에서 리포터가 큰 목소리로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단지 1년이 걸렸습니다. 1년 전 4월 15일 가상현실 게임월드 ‘유크로니아’가 유크로니아호라는 거대한 움직이는 섬의 형태로 출항한 지 1주년 기념 이벤트로 현실 세계에서의 온라인 공화국을 깜짝 선포한 지난 4월 1일 이후 단 2주 만에 전 세계 30%의 인구가 이들의 전자시민권을 가졌습니다. 만우절 이벤트 정도로 가볍게 치부했던 이들의 선언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동참을 선언하는 커뮤니티들의 등장과 함께 그 수가 가파르게 늘어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공해 상에 거대한 규모의 배, 유크로니아호,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섬과 같은 영토를 중심으로 전 세계의 커뮤니티가 연결이 되자 이 선언은 인류 역사에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던 새로운 연결형 국가를 선포하는 선언이 되었습니다.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에서는 이들이 온라인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게임월드 ‘유크로니아’에서 생활을 해오던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의 시민이 되기 위해 복수국적이 인정되는 이웃 나라로 이민을 급속도로 신청하면서 , 헌법을 개정하려는 나라들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4월 15일 유엔이 정식 국가로 이들을 인정하던 날 전 세계에서는 축하 공연과, 길거리 행진이 이어졌습니다.

방송 화면에는 4월 15일, 전 세계 곳곳의 녹화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전통의상인 흰 옷을 입고 민속 축제를 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유크로니아 시민임을 표시하는 팔찌를 장식하고 있었고, 해변에 누워있는 아카풀코의 연인들도 유크로니아 마크가 달린 선글라스를 낀 채 서로를 축하했다. 이집트 여성 오백 명은 스핑크스 옆에서 유크로니아 로고를 인간군상의 형태로 만들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중국 공무원들도 유크로니아 로고가 새겨진 텀블벅에 커피를 마셨고, 군복을 입은 영국 군인들도 유크로니아 표식인 승리의 브이를 손가락으로 만들어 보였다.

-이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단체나 나라는 현재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방금 전 유크로니아국의 사령탑인 유크로니아호가 미국에 입국 신청을 했습니다.
화이트 하우스 쪽에서 정식 초청을 했는지 여부를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만, 과연 퍼스트가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낼까요?

전 세계인들은 더 퍼스트가 누구인지 보려고 생방송 화면에 집중했다.

**

스캇은 화면을 보았다. 퍼스트가 헬기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 것은 그도 처음이었다. 아몬드모양의 검은 눈과 갈색 머리. 인종을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만 알고 있었다.

-설마

스캇이 어지러운 듯 책상을 붙잡았다. 보좌관 대리가 그의 팔을 잡았다.

-자네 저 얼굴 보았나?

스캇이 물었다.

-네, 아름다운 분이네요.

-아니, 그런뜻이 아니야. 제대로 보았냐고?

-아, 네.

보좌관 대리는 스캇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해리, 해리는 어디있나?

-한 시간전에 떠나셨습니다.

-어디로?

-모릅니다.

-당장 찾아와.

스캇이 부르르 떨었다. ‘그럴리 없었다. . 그래서는 안됐다. 해리가 퍼스트일 수는 없었다. 해리의 여리여리한 몸매와 수염도 나지 않는 매끈한 턱, 동그란 눈동자가 떠올랐다.

2년 전이었다. 정확히는 2년하고도 2달 전인 2026년 2월 12일의 일이다.

-안녕하세요. 스캇.

전화기 너머로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죠?

-당신을 잘 아는 사람이죠.

-저랑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스캇이 물었다.

-아뇨. 하지만 만날 거예요. 일년 뒤, 당신이 대통령이 된 후에. 아니, 우리가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뒤에요.

퍼스트가 대답했다.

*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해리. 날 하야라도 시킬 셈인가?’

스캇은 해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해리는 죽었습니다. 누구도 당신을 하야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이 제대로만 한다면요,’

답신이 왔다. 스캇이 곧 다시 전화를 했지만 없는 번호라는 안내만 들려왔다.

‘당신은 대통령이 될 겁니다. 제대로만 따라오신다면요.’

해리가 일년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스캇은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 그의 능력은 스캇의 모든 것을 잃게 할 수도 있었다.

‘절대 그렇게는 되지 않아.’

스캇은 주먹을 쥐었다.

 

<다음주에 계속>

<지난화 보기>

25화_유크로니아 독립선언서

24화_새로운 정치의 서막

23화_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되는 해시전쟁

22화_집사장의 죽음과 유크로니아의 보물

21화_하드포크 폭풍 전야

20화_테스의 출국

19화_ 마리 이야기, 그리고 현우의 행방

18화_슈테나 성 경매와 현우의 메시지

17화_베를루스국의 슈테나 성은 팔리게 될까

16화_마침내 공개된 퀘스트를 풀어라

15화_제네시스 블록 퀘스트 공개 논쟁

14화_제네시스 블록의 비밀

13화_탈중앙화 거래소의 소스코드

12화_타협할 것과 아닌 것

11화_유크로니아 왕위 계승과 세금 인상 

10화_세이무어와 테스의 회합

9화_블랙존에서 열린 총회 

8화_아버지가 남긴 것

7화_ 예술가들의 천국

6화_세라, 유크로니아 16번째 달의 이름

5화_VR과 AR이 조합된 게임월드, 시험운영은 끝났다

4화_민이 낸 수수께끼를 풀어라

3화_살아남은 자들의 아침

2화_더 퍼스트의 속삭임

1화_유크로니아국의 입국 신청


<작가 소개>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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