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SF_더 파이브_#27] “1년 뒤 봅시다”

27화: 500년 전에 만들어진 장점

등록 : 2019년 4월 26일 05:00 | 수정 : 2019년 4월 22일 16:38

일러스트=김태권

 

지난 줄거리

이 년 전. 게임월드로 출발한 유크로니아 플랫폼은 출시 이후 순항하는 듯 했지만 일 년이 지나면서 이상 신호들이 여기 저기에서 감지된다. 유크로니아 플랫폼을 창시한 원로회 주요 멤버인 마훌은 살해되었고, 여러 가지 갈등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가운데, 거대한 해상도시 유크로니아호가 출항한다. 유크로니아호를 출항시킨 주역이자 레드존의 핵심을 구성하는 베를루스국의 여왕 테스와 그녀의 손녀 세라 사이에 묘한 긴장감과 가치관의 충돌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결국 유크로니아를 이용한 권력 및 경제력 장악의 꿈을 꾸던 테스 여왕의 실각과 함께 베를루스국과 유크로니아에는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다. 잠잠한 듯 보였던 블루존에서도 문제가 터져 나온다. 새롭게 개량된 PoW의 이상을 우회한 중국의 ‘농장’에 갇혀서 학대당하던 현우는 <더 파이브>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다. 예기치 못한 도전에 봉착한 블루존의 상황에 대해 한 민은 하드포크를 이용한 해시전쟁을 통해 유크로니아 사용자들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극복한다. 그리고 마침내 2028년 4월 1일 유크로니아는 독립선언을 하고, 4월 15일 미국에 입항을 요청한다. 더퍼스트의 미국방문에 대해 현재의 미국 대통령 스캇과 부통령 세이무어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이들 사이에도 이미 수상한 과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

1년 6개월 전

-해리를 당신의 보좌관으로 삼는다는 건 잔인한 짓이에요. 그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죠?

-부도덕성 때문에 하야한 대통령 덕분에 윤리성이 트렌드가 되어버렸죠. 미국에서 말이에요. 우선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는 있지만 우리는 이걸 이용해야 해요.

스캇이 말했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도덕성과 동성애는 다릅니다. 도덕윤리는 전통적으로 보수당의 집권 윤리입니다. 우리는 노선을 헷갈리면 안됩니다. 평등을 주장할 수는 있어도 동성애와 도덕성을 같은 선에 놓는 일은 있으면 안됩니다.

스캇 캠프를 이끄는 앤더슨이 말했다.

-아뇨. 이제 도덕의 기준이 바뀌고 있어요. 새 윤리의 패러다임이 나오는 시대죠.
미국의 인구분포도에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아직도 젊은이들이 많지만 그 젊은 좌파들은 점점 윤리적이 되어가고 동시에 보수적이 되어가고 있죠. 도덕이라는 개념은 죄책감을 동반하기 때문에 감정 에너지를 크게 씁니다. 공포와 죄책감은 가장 큰 에너지죠. 우리는 그쪽으로 옮겨타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정치는 감정싸움입니다.

-후보님의 말씀이 저는 이해가 안됩니다.

-이걸 연구해보고 내일 다시 회의하죠. 다른 의견을 가져오길 기대하겠습니다.

스캇은 USB를 놓았다. 퍼스트가 건네 준 선거 정보였다.

-세이무어 상원위원에게서 전화입니다.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전화한다고 해.

스캇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그의 전화를 미루거나 하는 일이 잦은 것은 세이무어를 골탕먹이려는 이유보다는 평정심을 지키기위한 이유였다.

미국의 유수한 가문인 세이무어를 런닝메이트로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그와 소통할때는 떨렸다.

-겨우 인터넷쪽 후발 주자인 거잖아.

세이무어는 스캇과 인터넷 업계를 비웃곤 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산업의 발전으로 크게 대중화된 소셜 미디어 앱과 서비스 등의 성공을 바탕으로 자수성가한 스캇이었다. 특히 그가 만든 모바일 데이팅앱인 ‘Hamburger meets Pudding’은 인공지능 기술과 젊은 남녀의 심리를 잘 파악했을 뿐 아니라, 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어서 쉽게 퍼뜨릴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히트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캇은 결국 자신이 세운 인터넷 회사의 사장직을 그만둬야 했다. 그 이유는 플랫폼에 쌓인 거대한 데이터에 기반한 파워를 기득권과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치권에 들어서면 달라질 줄 알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신이 세운 회사보다 수백 배 큰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 구글 같은 인터넷 기업들도 모두 기득권에 협조해야 했다.

1990년대 초, 인터넷이 처음 생겼을 때, 아니 1980년대에 사이버펑크가 유행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느꼈다. 이제 평등한 분배의 시대가 왔다고 …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플랫폼들이 힘을 잃어가는 것들이 보였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들이 점점 대중의 신뢰를 잃어갔다. 새로운 플랫폼들이 생겼지만 그렇게 또 사라져갔다. 기득권들은 눈 깜짝 하나 하지 않았다. 플랫폼들의 추락을 보며 오락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경제계에서 인터넷이 중심이 된 지금 세상도 백 년 전과 비교해 바뀐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마음속으로 존경의 마음을 보내곤 했던 한민이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무리하게 추진하다 인터넷 업계에서 추락한 사실을 듣고 스캇은 정치권으로 들어온 것을 안도하곤 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지만 기득권인 세이무어 등은 스캇을 여전히 우습게 보았다.

스캇은 이제 포기하려고 했다. 영원히 기득권을 바꿀 힘은 자신에게 없다는 생각이 들려던 무렵이었다.

퍼스트에게서 연락이 온 바로 그날에도 그랬다.

-나는 그럼 점심 약속이 있어서. 나중에 연락하세.

세이무어는 갑자기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스캇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둘러 나갔다. 스캇에게는 늘 무례했다. 스캇이 세이무어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 태도는 바뀌지 않을 거였다.

스캇도 자기 자리 앞에 놓인 회의용 모니터를 끄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화면에 이상한 게 떠있었다.

더 파이브의 멤버로 초대합니다. -더 퍼스트

그리고 곧 전화가 왔다.

-일 년 뒤,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나서 만나죠.

퍼스트의 목소리는 장난으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스캇은 그 내용을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보좌관 중 몇몇이 이미 퍼스트의 수하였고, 그들이 준 정보와 퍼스트가 보내준 익명의 기부금으로 인해 그는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이무어 또한 퍼스트와 혈맹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세이무어조차 런닝메이트로서 대통령 후보자리를 스캇에게 넘겼다.

-제게는 여러가지 장점이 있지만 어떤 장점이 좋으신가요? 그 장점을 더 키워보도록 하죠.

스캇이 물었다. 퍼스트의 속내를 알고 싶었다. 과연 가상현실 게임월드인 유크로니아 플랫폼 하나를 지키기위한 것이 그녀의 야망의 끝일까?

-당신의 장점은 500년 전에 만들어졌죠. 잘 지키도록 해봐요.

-무슨 소리입니까?

스캇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후에 여러가지 경로를 쫓아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스캇은 집무실 안에 잠긴 서랍을 열었다. 장미의 문양이 있는 도장을 하나 꺼냈다. 500백년 전 스캇의 선조가 쓰던 가문의 도장이었다.

뭐든 좋아. 그깟 오백년 된 골동품이나 선조가 나를 미국의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도움을 주겠다면 흔쾌히 허락해야지. 나는 후원자에 대한 편견이 없으니까.

스캇은 생각했다.

다음날 스캇은 특별히 기자회견을 열어서 캠프 위원회 구성 및 보좌관 임명을 알렸다. 그리고 옆에 앉아있는 해리를 향해 말했다.

-해리, 나는 당신이 누구든, 동성애자든, 양성애자든, 아시아인이든 히스패닉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을 만들기위해 나선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도 그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스캇을 보는 해리가 미소지었다. 스캇도 미소를 지었다. 피를 같이한 전우의 미소였다. 그들 앞에 펼쳐질 일년 6개월의 격랑을 같이 해쳐나가야 했다.

<다음주에 계속>

<지난화 보기>

26화_퍼스트의 정체

25화_유크로니아 독립선언서

24화_새로운 정치의 서막

23화_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되는 해시전쟁

22화_집사장의 죽음과 유크로니아의 보물

21화_하드포크 폭풍 전야

20화_테스의 출국

19화_ 마리 이야기, 그리고 현우의 행방

18화_슈테나 성 경매와 현우의 메시지

17화_베를루스국의 슈테나 성은 팔리게 될까

16화_마침내 공개된 퀘스트를 풀어라

15화_제네시스 블록 퀘스트 공개 논쟁

14화_제네시스 블록의 비밀

13화_탈중앙화 거래소의 소스코드

12화_타협할 것과 아닌 것

11화_유크로니아 왕위 계승과 세금 인상 

10화_세이무어와 테스의 회합

9화_블랙존에서 열린 총회 

8화_아버지가 남긴 것

7화_ 예술가들의 천국

6화_세라, 유크로니아 16번째 달의 이름

5화_VR과 AR이 조합된 게임월드, 시험운영은 끝났다

4화_민이 낸 수수께끼를 풀어라

3화_살아남은 자들의 아침

2화_더 퍼스트의 속삭임

1화_유크로니아국의 입국 신청


<작가 소개>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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