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베네수엘라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

등록 : 2019년 5월 12일 07:00 | 수정 : 2019년 5월 11일 21:48

Bitcoin Can’t Fix Venezuela: I Should Know

베네수엘라 시위 현장. 출처=셔터스톡

 

조국 베네수엘라를 떠나온 지 이제 일주일이 됐다.

오늘은 새벽부터 핸드폰을 손에 쥐고 온종일 뉴스를 보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을 걱정하며 떠나기 전에 뭔가를 더 할 수 있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문다. 하지만 떠나야만 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왔다. 남겨두고 와야 했던 것 가운데는, 지난 몇 년 동안 원격으로 해오던 암호화폐와 관련한 일들도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더는 일도 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회주의 독재가 빚어낸 경제적 참극 속에서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한 도구로 암호화폐를 사용했다. 국제 사회의 원조는 사회 개혁에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국제 사회의 관심은 독이 될 수도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베네수엘라는 줄곧 암호화폐 산업의 주목을 받았다. 정확한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경제, 이민에 관해 이런저런 말을 보탰다. 암호화폐 업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한 면도 없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잘 모르고, 사회 구조에 관해 잘못된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선량한 의도로 혼란을 가중시키거나 수백만 명의 베네수엘라인들이 당면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결과적으로 폄훼하고 있다.

나는 베네수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트코인을 써본 사람으로서 널리 퍼진 오해를 바로잡고자 한다. 비트코인으로는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 비트코인이 베네수엘라를 구하리라는 기대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베네수엘라에 암호화폐 지갑이 몇 개나 있는지는 공식적인 통계가 없다. 각 개인이 몇 개의 지갑을 보유하고 있는지 알 길도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몇몇 사업자와 온라인 거래 플랫폼을 제외하면 베네수엘라에 암호화폐 사용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현금 인출기도 없다. 직불 카드도 없다.

비트코인이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살려낼 것이라는 주장은 베네수엘라가 비트코인을 주요 통화로 채택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췄다는 전제 위에 성립한다. 그러려면 먼저 컴퓨터와 금융에 관한 지식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야 한다. 안정적인 전기 인프라와 인터넷 서비스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디지털 지갑을 보관할 수 있고, 법정화폐에서 디지털 화폐로 안전하게 환전할 수 있는 경제 안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베네수엘라에서 비트코인이 쓰일 수 있다고 해서 베네수엘라의 경제 인프라가 암호화폐를 널리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는 뜻은 아니다.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법정화폐인 볼리바르의 가치는 큰 타격을 입었고, 미화 1달러와 바꾸는 데 드는 볼리바르 비용은 매일같이 뛰고 있다. 따라서 현재 많은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처럼 비트코인을 거쳐 달러를 환전하는 방식은 인플레이션 문제에 취약할 뿐 아니라 다른 기술적인 문제도 적지 않다.

비트코인 채굴에도 걸림돌이 있다. 베네수엘라는 비트코인 거래와 채굴이 활발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애초에 본인 소유의 채굴 시설을 보유해 운영할 정도로 부유하지 않으면 채굴을 통해 수입을 올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대부분 베네수엘라인은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이다.

 

베네수엘라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들

베네수엘라 사람들을 돕고자 해외에서 여러 프로젝트와 모금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대부분 프로젝트는 실제로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봉착했는지 몰라도 너무 모른 채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당연히 원하는 성과를 이루지도 못했다.

2018년에 코인베이스 산하 암호화폐 자선 단체 기브크립토(GiveCrypto)에서 일한 경험을 통해 나는 이러한 수많은 프로젝트의 문제가 무엇인지 똑똑히 깨달았다. 바로 베네수엘라 사람들을 돕는 방식이 기본적으로 잘못 설정됐다는 점이다.

기브크립토는 처음부터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세웠다. 100달러어치 비트코인으로 300명을 먹여 살리자는 목표를 세웠는데, 그러면 한 명당 33센트가량을 나눠 받는다. 베네수엘라의 경제 상황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아무리 초인플레이션이 있다 한들 33센트로 한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계산을 내놓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밖에도 현실적인 전략을 결여한 채 취지만 좋았던 프로젝트들이 부지기수였다.

요즘 대세로 떠오른 것 가운데 하나가 암호화폐를 이용한 기부다. 에어티엠(AirTM)은 메이커다오(MakerDao)와 팀을 꾸려서 100만 달러 성금을 모아 베네수엘라 사용자들에게 인당 10달러씩 나눠주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10달러 정도는 저축이나 투자로 쓰기에는 너무 적다. 생필품을 사면 일주일 정도면 다 써버릴 금액이다. 이밖에 베네수엘라에서 암호화폐를 나눠주려는 이들도 많지만, 지금까지 지속 가능하고 확실한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솔루션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베네수엘라 상황에 블록체인을 아무렇게나 끼워맞추려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한 줄기 희망

상황은 이렇게 열악하기 짝이 없지만, 어쨌든 외부에서 베네수엘라 상황을 보는 시선이 베네수엘라 사람들의 암호화폐 채택에 실제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암호화폐가 생존에 도움이 되는 특정 활동에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이다. 프리랜서가 수입을 올리거나, 적은 수수료로 미국 달러를 송금한다거나, 인터넷과 전기 등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채굴을 통해 추가로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나는 비트코인이 베네수엘라의 금융 시스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다. 현금이 가치를 잃자 국민들은 디지털 화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 국민들이 암호화폐를 널리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를 비트코인의 성공적인 이용 사례로 소개하거나 비트코인의 가치를 입증하는 사례로 포장하는 일은 즉각 멈춰야 한다. 베네수엘라는 경제 위기의 여러 단계를 겪었고, 그러는 동안 금융 인프라와 솔루션에 대해 완전히 다른 인식이 생겨났다.

베네수엘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시험대가 아니다. 암호화폐 산업은 이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나서 베네수엘라를 금융 혁명의 파트너로 진지하게 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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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