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칼럼] 프랑스판 혁신성장의 뚝심

등록 : 2019년 5월 21일 18:00 | 수정 : 2019년 5월 21일 18:17

프랑스 금융감독원(AMF)은 지난달 ‘기업 성장과 변환을 위한 행동 계획’(PACTE)이라는 이름의 법안 문구를 확정했다. 혁신적인 중소기업을 육성해 경제를 혁신하겠다는 ‘프랑스판 혁신성장’ 법안이다. 70개 조항으로 이뤄진 법안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암호화폐에 대한 내용이다. 법안은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금기어처럼 여겨지는 암호화폐 발행(ICO)을 명시했다.

더 놀라운 건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다.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기업들은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암호화폐에 적대적인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한국이 특히 더 어려운 것일 수도 있지만, 미국이나 암호화폐 친화적이라고 알려진 몇몇 나라들에서도 은행의 문턱을 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의 법안은 규제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암호화폐 기업들한테 은행 계좌 개설을 보장하기 위해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만한 조치를 내놓았다. 앞으로 암호화폐 기업을 비롯한 스타트업에 계좌를 개설해주지 않는 은행은 금융감독원이 이유를 물었을 때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서 암호화폐 관련 규제를 총괄하는 도미티유 드세르틴은 “암호화폐 프로젝트와 은행이 체결하는 계약 내용은 정부가 간여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규제 당국의 관리를 받는 기업에 계좌 개설을 거부할 경우, 은행은 금융감독원에 정당한 사유를 밝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법안은 2017년 10월 국회의원들과 기업인들로 구성된 워킹그룹을 통한 의견 수렴으로 첫걸음을 뗐다. 비트코인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암호화폐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던 때였다. 시류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암호화폐를 혁신성장의 한 축으로 포함시킨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달 뒤 거품이 터지면서 암호화폐 가격이 바닥을 모르고 폭락했다.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든 뒤에도 정부와 의회가 1년 반 동안 차분히 논의를 이어가며 이 같은 결과물을 내놓은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리 국회에서도 지난해까지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주제로 한 토론회, 공청회, 세미나가 줄을 이었다. 올해 들어서는 조용하다. 암호화폐 관련 법안들도 여러 건 발의돼 있지만 실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이미 내년 총선을 위한 기싸움이 시작된 것 같다. 거품이 꺼지고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 차분하고 진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스위스와 싱가포르로 향했던 블록체인 기업들의 눈길은 이제 프랑스로 쏠리고 있다.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sjyoo@coindeskkorea.com

## 이 글은 5월9일치 한겨레와 인터넷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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