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암호화폐 리브라, 원대한 혹은 위험한 도전

등록 : 2019년 7월 16일 10:30 | 수정 : 2019년 7월 16일 10:24

“돈을 재발명하고 세계 경제를 탈바꿈해 모든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겠다.”

헐리우드 영화 속 슈퍼히어로 아이언맨의 대사로나 어울릴 법한 이 문장은 페이스북이 지난달 18일 암호화폐 리브라 발행 계획을 공개하며 밝힌 포부다. 아무리 시가총액 5786억9000만달러(약 679조5556억원, 7월10일 종가 기준)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기업이라고 해도 원대한 포부다.

리브라는 즉각 세계 곳곳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반기고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다. 특히 세계 각국 정부와 금융기관, 정책결정권자들이 리브라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미국 상원과 하원은 각각 16, 17일 잇따라 리브라에 대한 청문회를 연다.

리브라의 앞날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반발은 거꾸로 페이스북의 암호화폐가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돈의 재발명

리브라의 목표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세계 통화’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리브라를 통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리브라 프로젝트를 공개하면서 “우리 앱으로 메시지와 사진을 공유하듯이 누구나 쉽게 돈을 보내고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563년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뢰헬이 그린 바벨탑. 구약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인간들이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고, 이에 분노한 신이 원래 하나였던 인간의 언어를 여럿으로 나누는 저주를 내렸다. 페이스북이 지난달 암호화폐 리브라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나라마다 다른 화폐를 하나로 통일시키겠다는 발상이다

 

페이스북의 월간 활성 사용자는 23억명이다. 페이스북이 인수한 메신저 서비스 왓츠앱의 사용자는 15억명, 사진공유 소셜미디어 서비스 인스타그램의 사용자는 10억명이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페이스북 또는 페이스북 계열 서비스를 이미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방대한 사용자를 확보한 메신저 서비스에 송금과 결제 기능이 결합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는 중국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위챗페이와 알리페이로 인해 중국은 순식간에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 중국에서는 노점상들도 현금 대신 위챗페이와 알리페이로 결제를 받는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밥 한 끼 못 먹는 나라가 됐다.

리브라 프로젝트에 함께하는 기업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총 28개 기업과 단체가 각각 1000만달러를 투자하면서 리브라연합(Libra Association)에 참여했는데, 세계 최대 신용카드 서비스 기업인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포함됐다. 리브라연합 대변인을 맡은 단테 디스파르테는 코인데스크에 “비자나 마스터카드 로고가 붙어있는 곳이라면 리브라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비자, 마스터카드 가맹점에서 리브라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곧 세계 어느 나라를 여행하더라도 리브라로 결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온라인쇼핑몰 이베이, 메르카도리브레, 파페치,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와 리프트, 여행예약 서비스 부킹닷컴 등도 리브라연합에 참여했다. 내년 리브라 출시 때까지 참여기업을 100곳까지 늘리겠다는 게 리브라연합의 목표다.

세계 인구 3분의 1이 넘는 페이스북 이용자와 리브라연합에 이미 참여한 기업들의 명단을 보면 세계 통화라는 목표가 허황된 꿈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고결한 명분

경제가 발전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리브라 또는 비트코인 같은 새로운 화폐를 쓸 이유를 찾기 어렵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법정 화폐로 생활하는 데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은행의 다양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쉽게 이용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되는 화폐라면 송금이나 외국으로 여행을 떠날 때 편리할 수는 있겠지만, 외국을 수시로 드나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송금을 할 일은 거의 없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 사람들은 사정이 다르다. 자기 나라에는 일자리가 없어 돈을 벌러 외국으로 나온 이주노동자는 은행 계좌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일해서 번 돈을 고국의 가족에게 보내는 일은 리스크가 크고 수수료가 비싼 과정이다.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고국의 마을이나 도시에는 은행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가족들이 이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이 외국에서 보낸 목돈이 성공적으로 도착해도 예금을 못하고 별로 안전하지 못한 장소에 남몰래 숨겨둬야 한다. 이런 환경은 그 자체로 경제활동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 큰 제약이 된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에서 형편이 상대적으로 좋은 사람들도 문제가 있다. 이 같은 나라의 정부와 중앙은행은 무능하거나 부패한 경우가 많다. 통화정책은 엉망이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빈번히 일어난다. 가만히 있어도 내가 가진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

페이스북은 지난달 리브라 계획을 최초 공개하면서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 17억명의 성인 인구”를 위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만들기 위해 세운 자회사 칼리브라는 “세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기본적인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성인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은행 계좌가 없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그 비율이 더 높고, 여성들에서는 더 높다. 이 같은 금융소외의 대가는 가혹하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 소상공인의 약 70%는 신용이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매년 송금 수수료로 250억 달러를 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브라연합에 ‘포용적 금융’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온 비영리기구 네 곳이 참여했다.

이제껏 은행을 이용하지 못한 인구가 은행 없이도 이용할 수 있는 리브라를 통해 새로이 세계 경제에 편입된다면 그 경제적 효과는 누구도 가늠하지 못할 수준이 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출신으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미디어랩의 ‘디지털통화 이니셔티브’ 수석고문을 맡고 있는 마이클 케이시는 리브라에 대해 “원대하고 고귀한 목표”라며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20억 명을 세계 경제에 편입시키면 나타날 결과는 그야말로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리브라의 적들

금융외서 소외된 이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고결한 목표다. 빈민들에게 소액 대출을 제공한 방글라데시의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유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하나의 새로운 선택지 정도가 아니라 세계 통화라는 방식으로 포용적 금융을 도모하겠다고 나서자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페이스북은 원조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극심한 가치 변동성 때문에 세계 통화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암호화폐를 만들었다. 은행에 법정화폐를 넣어두고, 그에 상응하는 가치 만큼 발행하는 암호화폐다. 언제든지 1달러짜리 암호화폐를 1달러로 돌려받을 수 있다. 페이스북은 특정 국가의 법정화폐에 가치가 고정된 스테이블코인도 세계 통화가 되기엔 충분치 않다고 봤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법정 통화와 국채 등으로 구성된 ‘리저브’를 만들고, 리저브에 가치가 고정된 암호화폐 리브라를 만들기로 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안정적인 자산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은 리브라가 미국 달러를 비롯해 국가가 발행하는 모든 돈을 대체하려는 야심으로 비쳐지고 있다. 리브라의 세계 정복이다.

세계 여러 나라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국 금융위원회도 최근 리브라의 위험에 대해 경고를 내놓았다. 금융위기는 리브라를 통해 해외로 막대한 양의 자금이 이전돼 국제수지가 취약한 신흥 시장에 위협이 될 수 있고, 특히 금융위기나 외환위기 발생 시 법정화폐에서 리브라로 자금이 쏠리는 ‘뱅크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 자본 이동과 관련한 각국 정부의 정책적 대응 능력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리브라가 중앙은행의 통화를 대체하거나 기존 법정 통화와 병행해 사용될 경우 각국 정부 통화정책의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브루노 르메어 프랑스 재무장관은 지난달 18일 “리브라는 독립적인 통화가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된다”며 리브라로 인한 유로존 붕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프랑스는 주요 7개국(G7)의 리브라 문제 전담 태스크포스 구성을 주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셔터스톡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일 트위터를 통해 리브라를 비난하면서 “미국에는 오로지 하나의 통화만 있고, 그것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하고 신뢰할 수 있다. 세계 어디서든 다른 어떤 통화보다도 훨씬 많이 쓰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미국 달러다”라고 말했다. 리브라가 세계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이자놀음

송금과 결제 서비스의 일반적인 수익모델은 수수료다. 하지만 리브라는 송금 수수료가 저렴할 것이라고 이미 밝혔다. 최근 수년 사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간편결제 서비스들도 수수료 장사로는 거의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치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리브라 리저브는 가장 안전한 자산인 주요 국가의 통화와 국채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저위험 저수익이 목표다. 상식적으로 높은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다. 하지만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비밀이 리브라의 구조에 숨겨져 있다.

리브라 리저브의 투자수익은 모든 리브라 사용자가 나눠 갖는 게 아니라 1000만달러를 내고 리브라연합에 참여해 리브라투자토큰(Libra Investment Token)을 받은 기업들만 나눠 갖는다. 현재 리브라연합은 28개 회원으로 시작하고, 내년 100개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100개 회원사가 1000만 달러씩 내서 10억 달러 어치의 리브라가 내년에 최초로 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자들이 리브라를 사용하려면 우선 리브라를 구입해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최초 발행된 10억 달러 어치의 리브라를 구입한다고 가정하면 리브라 리저브에는 20억 달러가 쌓인다. 리브라 리저브의 연간 수익률을 2%(현재 미국 재무부 단기 국채의 연 수익률이 2% 초반이다)로만 잡아도, 일반 사용자들은 수익을 배당받지 못하니 리브라연합 회원사들은 연간 4%의 수익을 챙긴다. 20억에 이르는 페이스북 사용자가 1인당 10달러 어치의 리브라를 구입한다고 가정하면 리저브에는 200억 달러가 쌓인다. 리브라연합 회원사들은 초기에 투자한 1000만 달러 외에 추가 투자 없이 연 40%의 수익을 챙긴다. 사람들이 진짜로 리브라를 법정 화폐처럼 사용하게 된다면 1인당 보유하는 리브라는 10달러보다 훨씬 커질 것이고, 리브라연합 회원사들의 수익률도 천문학적으로 오르게 될 것이다.

 

데이터 독점

페이스북은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이용자 데이터로 세계 최대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이미 페이스북의 데이터 독점으로 인한 폐해에 대해 세계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용자들의 생각과 감정, 위치, 활동, 취향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통해 이용자들의 금융 데이터까지 거머쥐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뉴욕시그니처은행 스캇 셰이 회장은 “은행 및 금융기관들은 고객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대단히 제한돼 있다. 리브라가 출시된다면 페이스북은 경쟁자들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아무런 제약 없이 고객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금융시장에서 엄청난 기회를 독차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이런 힘을 갖고 있어도 국민들이 심각하게 우려할 텐데, 하물며 일개 기업이 이처럼 거대한 권력을 손에 쥔다는 것은 정말로 두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은 지난 10일 하원 청문회에서 리브라에 대해 “자금세탁뿐만 아니라 데이터와 고객 개인정보 보호 등 프라이버시 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고 주의깊게 정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당국이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하원과 상원은 오는 16일과 17일 리브라에 대한 청문회를 잇따라 연다.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로 설계한 것은 뻔히 예상되는 이 같은 반발에 대비한 포석으로 보인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특징은 특정 주체가 네트워크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탈중앙성이다. 페이스북은 리브라연합의 여러 구성원 중 하나일 뿐, 리브라가 곧 페이스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리브라 프로젝트 책임자 데이비드 마커스는 “리브라를 사용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신뢰할 필요가 없다. 페이스북은 리브라 네트워크에 대해 특별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페이스북이 리브라의 금융 데이터를 사용자 동의 없이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도 거듭 확인했다.

 

*이 기사는 7월16일치 한겨레(19면)와 인터넷한겨레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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