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블록체인 게임, 등급분류제에 막히다

등록 : 2019년 8월 6일 17:00 | 수정 : 2019년 8월 6일 17:09

규제 공백으로 국내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는 블록체인 게임이 늘어나고 있다. 암호화폐 관련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아, 게임에 암호화폐를 접목해도 되는지 여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국내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 아이텀게임즈(ITAM Games)는 지난 7월11일 블록체인 기반 RPG 게임 ‘다크타운’을 베타 런칭했다. 그러나 7월28일 출시한 지 20일을 못 채우고 국내 서비스를 중단했다. 현재 국내 이용자의 다크타운 접속은 불가능한 상태다.

아이텀게임즈는 지난 22일 ‘다크타운’등 게임의 국내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출처=ITAM Games 공식 텔레그램 커뮤니티

 

아이텀게임즈는 이용자 대상 공지를 통해 “최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한국 내에서의 블록체인 게임에 대한 적법성 이슈를 발견했다. 당분간 국내 시장 대신 해외 시장에서 이용자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이텀게임즈 관계자는 “암호화폐를 이용한 아이템 거래 기능이 사행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들이 국내 서비스를 주저하는 것은 ‘게임물 등급분류제도’ 탓이 크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1조에 따르면 PC·모바일 게임 서비스 업체는 국내에서 게임을 제작하고 배포하기에 앞서 게임물관리위원회로부터 전체이용가·12세이용가·15세이용가·청소년이용불가 등 등급 분류를 받아야 한다. 등급 분류 없이 게임을 출시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다만, 모바일게임은 ‘선출시 후심사’ 형태로, 사실상 제3자가 게임위 심사를 대체하는 제도가 있다. 2017년 시행된 게임물 자체등급분류제도에 따라, 게임위가 등급 부여 권한을 위임한 ‘자체등급분류 사업자’가 등급을 대신 분류할 수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사후 모니터링에 따라 필요할 경우에 한해 사후 심사를 통해 등급을 재분류한다. 현재 게임위로부터 등급분류 권한을 위임받은 사업자는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와 구글, 원스토어, 오큘러스, 애플코리아와 삼성전자, 카카오게임즈 등 7곳이다.

하지만 게임위 등급 분류를 받았다 해도 암호화폐가 도입되면 서비스는 불투명해진다. 블록체인 게임 가운데 지금까지 게임위의 등급 분류 심사를 받은 것은 플레로게임즈의 ‘유나의 옷장 for kakao(이하 유나의 옷장)’가 유일하다. 2017년 8월 출시한 게임으로, 지난해 5월 업그레이드를 통해 이더리움 기반 암호화폐 ‘픽시코인(PXC, Pixiecoin)’이 도입됐다. 게임에 암호화폐가 쓰인 국내 첫 사례였다.

그러나 플레로게임즈는 암호화폐 도입 8개월만인 지난해 12월 유나의 옷장 서비스를 종료했다. 앞서 게임위는 2018년 6월 암호화폐를 통한 아이템 거래 기능이 청소년도 이용 가능한 기존 등급 분류와 맞지 않다고 보고, 유나의 옷장에 대한 등급 재분류를 결정했다. 당시 게임위는 픽시코인을 외부 거래소에서 현금화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사행성이 있다고 판단해,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변경 혹은 등급 거부를 예고했다. 그러나 등급 재분류 심사는 수개월간 이뤄지지 않았고, 플레로게임즈는 끝내 서비스 중단을 결정했다.

게임위 쪽은 재분류 결정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2017년 12월 내놓은 가상통화 관련 긴급 대책에 따라) 미성년자의 암호화폐 거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등급 재분류가 불가피했다. 이후 개발사들 사이에 암호화폐 요소가 있으면 등급 거부를 당한다는 오해가 퍼져서인지, 정식으로 등급 분류 신청을 해 온 블록체인 게임이 한 건도 없었다. 유나의 옷장은 청소년이용가 등급에 맞지 않는 사행성이 보여서 등급재분류 결정을 한 것이지, 꼭 암호화폐 때문만은 아니다. 등급 분류 신청도 없는데 게임위가 블록체인 게임 관련 입장을 밝히기도 곤란한 상황이다.” – 익명의 게임위 관계자, 7월30일 코인데스크코리아 인터뷰

출처=플레로게임즈

게임물관리위의 등급분류 규정을 보면, 유료 재화를 이용해 이용자 간 아이템 거래가 가능한 시스템이 있는 경우 사행성이 짙다고 간주해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분류한다. 해당 규정은 ‘유료 재화’를 ‘유료 결제를 통해 얻은 가상재화 등 현금과 유사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암호화폐를 돈과 유사한 재화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암호화폐 적용 게임의 사행성 수준에 대한 판단 역시 갈릴 수 있다.

유나의 옷장이 남긴 전례 탓에 정면 돌파를 망설이게 된 업계에서는, 게임위원회가 암호화폐 적용 게임의 사행성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나의 옷장 등급 재분류 심사가 계속해서 미뤄진 선례가 있어 다른 업체들이 섣불리 등급 분류 신청을 하기 어렵다. 게임위가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라도 분류를 해 준다면 그에 맞게 게임을 유통할 수 있는데, 그조차 이뤄지지 않아 국내 기업들이 해외 시장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 황성익 한국블록체인콘텐츠협회장 겸 한국모바일게임협회장

다만, 국내 게임사들이 한국 시장을 완전히 포기하거나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퍼트리는 올초 블록체인 기반 웹게임 ‘크립토도저’를 런칭했지만 한국은 서비스 지역에서 제외시켰다. 웹게임은 출시에 앞서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사전 등급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통과가 어렵다고 봤다. 최근에야 갤럭시S10 등에 탑재된 ‘삼성 블록체인 월릿’을 통해 모바일 버전 게임을 런칭했지만, 사후 심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나름대로 규제가 허용하는 길을 찾아 우회로를 꾀한 흔적이 엿보인다.

보다 과감한 사례도 있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아무 사전 등급 분류를 거치지 않고 설치파일 배포 형태로 게임을 국내에 출시한 한국 업체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당국의 제재를 받을 지 모른다는 위험을 뒤늦게 인지하고, 출시 직후부터 복수의 자체등급분류사업자를 통해 등급 분류 절차를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위 관계자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나오기 전까지는 게임위도 블록체인 게임 등급 기준 등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일부 국내 매체는 게임위가 오는 10월 중에 블록체인 게임 등급 기준안 마련을 위한 내부 검토를 마무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게임위 측은 “블록체인 게임 산업 동향을 파악할 필요성 때문에 외부 연구 용역을 검토중인 것은 사실이나, 등급 기준 마련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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