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같은 암호화폐 용어 ‘수탁(커스터디)’

등록 : 2019년 9월 11일 14:00 | 수정 : 2019년 9월 11일 13:58

암호화폐 용어들은 혼란스럽기로 악명이 높다. 도대체 코드의 배열을 왜 ‘코인(coin)’이라 부르고 주소 저장소를 ‘지갑(wallet)’이라 부른단 말인가? 암호화폐 ‘수탁(custody, 커스터디)’ 또한 마찬가지다. 자산을 대신 맡아 관리한다는 뜻의 ‘수탁’이라는 기존 용어를 암호화폐에 그대로 빌려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그 결과는 실로 심각하다. ‘수탁’은 투자자산 보증의 필수 요소일 뿐 아니라 근래 이슈가 되고 있는 규제를 마련하는 기본이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하게 뒤얽힌 암호화폐 자산 관리 개념이 ‘수탁’이란 용어 때문에 더욱 복잡해졌다.

이쯤에서 개념을 명백히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단기간 안에 일관성 있는 제도를 마련하지 못할 것이고, 이는 암호화폐 시장의 리스크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출처=게티이미지스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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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탁(Custody)

‘수탁’은 기술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특정한 의미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법적 관계와 관련해서 사용되기도 하고, 자산 소유권과 관련해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수탁’의 개념은 같은 주 안에서도 다양하게 해석되고 적용된다. 때로는 소유권 이전을 의미하고 때로는 권한 위임을 의미한다. ‘수탁’이 보장되었다고 해서 ‘수탁자 디폴트(custodian default)’ 상황이 발생했을 때 수탁 자산이 반드시 보호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이 ‘수탁’을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실상은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를 관장하는 기관에서조차 ‘수탁’이라는 용어를 뒤죽박죽 사용하고 있다.

다만 ‘수탁’이 자산 소유권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2003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1940년 투자자문업자법(Investment Advisors Act of 1940)을 개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수탁’을 정의했다.

“자문업자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고객의 펀드 또는 주식을 보유하거나 그 소유권을 취득할 권리를 가짐으로 고객의 자산에 대한 ‘수탁’을 가진다.”

하지만 ‘수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하고 혼란스럽다. 우선 위의 정의에서 말하는 ‘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복잡성(Complication)

본 논의의 목적을 위해 암호화폐의 범위를 대표적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으로 국한하겠다.

일반적으로 전통적 자산의 소유권은 원장의 기록에 의존한다. 어딘가에 있는 컴퓨터에 특정 자산의 소유자가 아무개라고 기록되어 있으면 데이터베이스의 주인이 누구냐에 상관없이 소유자를 특정할 수 있다.

반면 비트코인은 소유자를 특정할 수 없는 ‘보유자 중심 자산’이다. 비트코인의 소유자를 밝히려면 ‘주소’와 ‘지갑’이 중요하다. 비트코인 자체는 지갑이나 중앙의 수탁 기관, 발행 기관의 계좌에 보관되지 않으며, 신원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적 분산 네트워크인 비트코인 블록체인상에 존재한다. 비트코인 지갑의 개인 키(Private Key, 암호)를 가진 사람이 비트코인의 ‘소유자’가 되어 비트코인을 움직일 독점적 권리를 지닌다. 비트코인의 소유권을 증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신분증이나 증빙 서류가 아니다. 개인 키를 가지고 있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개인 키를 제공하거나 공유하지 않고 ‘수탁’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이 가능할까? 개인 키를 넘기는 것은 소유권을 넘기는 것과 동일한 일 아닌가? ‘수탁’은 소유자를 위해 소유자의 자산을 보관하고 수탁관리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만약 ‘수탁자’가 소유자와 동일한 개인 키 접근 권한을 가진다면 그는 소유자와 동일한 권리를 가진 셈이 되지 않는가?

출처=게티이미지스뱅크

출처=게티이미지스뱅크

동의(Consent)

비트코인의 ‘다중서명(Multisig)’ 옵션을 사용하면 하나 이상의 개인 키 서명이 있어야 거래가 가능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소유권을 일부 포기해야 가능하다. 수탁자가 소유자의 동의 없이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유자 또한 수탁자의 동의 없이는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수탁자는 수탁자일 뿐, 자산의 소유권은 소유자에게 있다고 계약 조항에 명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신뢰의 문제가 발생한다. 수탁자가 갑자기 잠적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론적으로 수탁자 디폴트가 발생하는 경우 주식 등 전통적 자산은 적법한 소유주에게 반환된다. 그러나 규제 장치가 빈약한 비트코인과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용인되는 기준이 없어서 더 문제다. 암호화폐 시장 표준 제정을 위한 글로벌디지털파이낸스(GDF)와 같은 기관들이 기업체와 협력하여 모범사례를 도출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세부사항까지 협의하여 적용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소비자(Consumer)

지난 7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금융산업감독기구(FINRA)는 브로커딜러(broker-dealer)의 디지털 보안관리와 관련하여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해당 성명은 암호화폐와 관련하여 브로커딜러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고객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소비자보호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소유자는 수탁자에게 개인 키를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수탁자 외에 다른 사람이 해당 암호를 알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탁자가 고객의 자산을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을까? 누군가 고객 정보를 훔쳐볼 가능성은 없을까? 이미 발생한 거래를 되돌리거나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은 비트코인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지만, 수탁자나 규제기관은 잘못된 거래를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커다란 부담이다.

SEC와 FINRA는 혼란스러운 용어 사용으로 인한 한계도 지적했다. 이를테면 실패한 브로커딜러는 증권투자자보호법(Securities Investor Protection Act)에 근거하여 해산될 수 있는데, 이 법에서 언급하는 ‘보안(security)’은 SEC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그 결과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브로커딜러 고객들은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고, SEC는 그러한 상황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아무런 기준이 없는 것보다는 조그마한 기준이라도 있는 것이 낫지만, SEC와 FINRA의 성명은 브로커딜러들이 보유한 디지털 증권에만 적용한다는 점에서도 한계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규제기관은 비트코인이 ‘증권’이 아니라는 사실에 동의하며, 비트코인 보유자들은 거래소를 놔두고 브로커딜러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기관 차원에서 공동의 이해가 부족하고 표준화도 제대로 되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도전(Challenge)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비트코인의 ‘수탁자(Custodian)’는 이름만 같을 뿐, 전통적인 자산의 ‘수탁자’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에 새로 진입하는 사람들은 혼란을 겪는다. ‘수탁’의 개념적 토대가 되는 ‘소유권’과 ‘책임’의 표준적 의미가 통용되지 않는 암호화폐 분야에서 규제기관은 기관대로 일관성 있는 지침을 만들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코인’이나 ‘지갑’과 같은 상징적 용어들을 차용하는 데는 나름의 의도가 있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연결 고리나 관련성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수탁’은 잘못된 비유 때문에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역사적으로 신기술이 발전하면 새로운 개념을 담는 새 용어가 생겨났다. 신기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가 사용되었고, 대부분 효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 빌려온 용어는 점차 새로운 의미로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웹(web)’이나 ‘넷(net)’과 같은 용어들은 기존의 의미보다 새로운 의미로 훨씬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때로는 구체적 용어 정의가 필요한 분야에서마저 이러한 기호학적 비유와 선택이 나타나며 문제가 생긴다. 이를테면 법률 분야가 그렇다. 개인 키를 위임받아 보호하는 것을 ‘수탁’이라 부르고 그 서비스 제공자를 ‘수탁자’라 부르다 보니, 마치 규제상 보호 장치가 마련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차라리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사용 가능한 특정 용어를 개발해서 어떻게 적확한 용어를 사용해 통찰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 모범적인 전례를 남기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지 제도적 장벽이 존재한다. 새로운 용어와 정의를 만드는 일의 주체는 과연 누가 되어야 하는가?

장벽은 극복할 수 있다. 특히 이처럼 중요한 문제가 걸린 경우 합의와 조정을 거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암호화폐 분야는 한 단계 성숙해질 것이다.

전통적 자산의 ‘수탁’과 암호화폐 자산의 ‘수탁’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우리가 새로운 개념을 맞지도 않는 헌 틀에 억지로 끼워 넣은 것이 해결해야 할 문제의 핵심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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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