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증권거래소들이 미쳤나봐?

[편집장 칼럼]

등록 : 2019년 9월 26일 15:44

지난달 국내 한 대형 신용카드사의 요청으로 페이스북이 추진 중인 암호화폐 리브라를 주제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대표이사부터 팀장급까지 50여명이 청중이었다. 2시간 동안 강연을 하고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이 신용카드사가 리브라를 비롯한 암호화폐가 가져올 금융의 변화에 대해 매우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가만히 있다가는 머지않아 파괴적 혁신의 제물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었다. 그동안 주로 블록체인 업계 사람들만 만나다 보니 우리나라 금융기업들이 얼마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둔감했던 것 같다.

외국으로 눈을 돌려 보면 전통적인 금융기관들이 이미 활발하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스위스증권거래소, 독일 슈투트가르트증권거래소, 싱가포르증권거래소 등이 암호화폐 또는 증권형 토큰을 거래할 수 있는 거래소를 이미 설립했거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암호화폐를 비롯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자산이 가져올 변화에 먼저 올라타 세계 금융의 중심이라는 지위를 미국으로부터 빼앗아오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미국이라고 가만히 손을 놓고 있을 리 없다. 세계 최대 증권거래소인 뉴욕증권거래소의 모기업 인터콘티넨털익스체인지(ICE)는 지난 23일 비트코인 선물 거래소 백트(Bakkt)를 열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는 이미 1년여 전에 비트코인 선물 상품을 출시했다. 미국 정부는 아직까지 암호화폐에 대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이러다 미국이 금융패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도 지난 7월 부산을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에서는 데이터의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을 관광, 금융, 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할 예정”이라며 “기존의 지역 금융 인프라와 연계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부사업을 들여다보면 블록체인과 금융을 떼어놓으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부산은행이 사업자로 선정된 지역화폐 서비스가 유일하게 금융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사업이다. 이 지역화폐 서비스를 앞서 언급한 다른 나라들의 ‘진짜 블록체인 금융’ 프로젝트와 어깨를 겨룰 만한 실험이라고 볼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10여년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바다이야기’ 사태를 언급하며 암호화폐를 투기 측면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게 우리 정부의 발걸음을 꼬이게 한 것 같다. 투기를 막고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접근법으로 금융의 거대한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올 것 같지 않다. 더 늦기 전에 세계적인 경쟁 환경을 살펴보고 원점에서 블록체인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 9월26일자와 <인터넷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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