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리브라의 부고를 쓰기엔 너무 이르다

등록 : 2019년 10월 26일 10:00 | 수정 : 2019년 10월 25일 17:57

It’s Too Soon to Write Libra’s Crypto Obituary

이미지=셔터스톡

 

마크 트웨인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주권국가의 종말이 머지않았다는 평가는 대단히 과장됐다.”

이달 들어 일어난 일만 나열해보면 이렇다.

마스터카드, 비자, 페이팔을 포함한 7개 회사가 리브라연합에서 탈퇴하면서 리브라연합은 ‘반쪽 출범’했다. 프랑스와 독일 정부는 (사실상 리브라를 겨냥해)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스테이블코인을 지금 같은 상황에선 유럽연합에 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의회와 규제 당국이 리브라의 목표와 성격을 파악할 때까지 리브라 개발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하던 의회는 마침내 페이스북의 CEO 저커버그를 청문회 증인석에 앉혀 6시간 넘게 강도 높은 질문 공세를 폈다.

다시 창립회원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이던 회사 7곳이 리브라연합을 탈퇴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페이스북에 적잖은 타격을 입힌 회원사들의 탈퇴 이면에는 정부와 의회의 줄기찬 압박이 있었다. 여전히 규제라는 칼을 쥔 정부의 힘은 공고하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국가의 화폐 독점 또한,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리브라의 부고를 쓰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반쪽 출범’에 그쳤지만, 어쨌든 리브라의 의사결정과 개발을 맡을 컨소시엄인 리브라연합은 닻을 올렸다. 설사 리브라가 무산되더라도 페이스북보다 논란이 덜한 기업이나 기관이 또 다른 스테이블코인 계획을 들고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실패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에겐 비트코인이 있다.

물론 규제의 저항은 실제로 대단히 강력했다. 지난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국제결제은행(BIS)은 리브라와 같은 스테이블코인이 자금세탁방지 노력과 금융 안정성, 통화정책에 큰 위협이 된다는 보고서를 펴냈다. 또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게리 겐슬러 전 위원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리브라를 증권으로 분류해 철저히 규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규제 기관이 강력하게 반발한다고 스테이블코인의 성공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모멘텀이 세계 경제 상황, 지정학적 변화와 맞물리다 보면 결국 각국 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을 포용할지, 아니면 스테이블코인과 경쟁할지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지난주 미국 댈러스 연준은행의 로버트 카플란 총재가 말한 것처럼 “리브라는 잠시 주춤하는 것일 뿐 누군가는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낼 것”이다.

리브라는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세계적인 논의에 불을 지폈고, 계속해서 논의를 이끌어오고 있다. 리브라 이전에는 물론 비트코인의 공이 가장 컸다. 세상에 처음 선보인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완전히 독립된 법정화폐의 대체 화폐로 성공하지 못했다면, 사실 위에 언급한 일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척 혼란스러운 초기 단계를 지나고 있는 스테이블코인을 향해 어떠한 해결책이 나온다 하더라도 정부와 직접적인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리브라 같은 바스켓 연동형 암호화폐나 제미니달러(GUSD), 유에스달러코인(USDC)과 같은 단일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하는 예치금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메이커다오(Maker DAO)의 DAI과 같은 스마트계약 기반 암호자산 담보 토큰은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의 주체들이 규제 기관 책임자와 마주 앉아 기술 사양, 규제 환경 등에 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개발자들은 규제 기관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는 어느 정도 양보를 하고, 반대로 규제 기관도 이미 기술과 혁신이 저만치 앞서나간 부분이 있다면 낡은 틀을 고집하며 금지하려고만 하지 말아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계속 전진하고 있다

일단, 리브라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진단부터 정확하지 않다.

리브라연합은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FINMA)의 승인을 받고 프로젝트를 개발할 근거지를 확보했다. 덕분에 리브라는 규제 준수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마스터카드와 비자가 합류했더라면 리브라연합이 가지는 자원과 로비의 힘이 더 커졌겠지만, 현재의 자금력으로도 여러 국가의 금융 당국과 건설적인 협상을 하는 데 부족하지 않다.

리브라에 우호적인 규제를 펴는 나라에서 먼저 출시할 수도 있다. 사용자의 위치를 토대로 어느 규제 당국의 소관인지 확인하는 가상울타리(geofencing) 기술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기 때문에 리브라를 승인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리브라에 접근하지 못하게 차단하면서 선별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리브라가 국가 간 거래 비용을 낮추고 금융소외계층이 더 안전하고 저렴하게 거래할 수 있는 스마트계약 기반 상업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면 리브라를 금지하는 나라들은 규제 완화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역자 주: 이 칼럼은 저커버그가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기 전에 다른 나라에서 리브라가 섣불리 먼저 출시되면 페이스북이 리브라연합에서 탈퇴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쓴 칼럼이다.)

리브라를 공개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힌 영향력 있는 인사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전자기기 제조 분야의 거인 폭스콘(Foxconn)을 창업한 대만 최대 부호 테리 궈(Terry Gou)도 그중 한 사람이다. 궈 전 회장은 “리브라와 중국 인민은행이 개발하고 있는 CBDC 디지털 위안화라는 두 가지 다른 시스템이 만나 공존하고 융합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바로 대만”이라며, 다른 나라 규제 당국이 리브라를 견제하고 배척할 때 대만이 앞장서서 리브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궈 전 회장은 대만 총통에 출마하겠다며 폭스콘 회장직을 내려놓았다가 출마 계획을 접은 상태다.

인도처럼 리브라를 비롯한 암호화폐 전반에 적대적인 개발도상국도 있지만, 자국민이 겪는 금융 제도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암호화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국가들도 있다.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카리브해 연안 소국들의 지역 은행은 대부분 주로 미국 은행들과 외국환 거래 서비스 협약(correspondent banking relationship)을 체결하고 영업한다. 그런데 미국이 금융 관련 각종 규제를 강화할수록 은행들은 규제를 지키기 위해 자금세탁 등 위험이 아무래도 더 큰 지역 은행들과의 관계를 끊게 된다. 가뜩이나 높던 수수료 등 금융 거래 비용은 더 오르게 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카리브해 연안에 사는 고객들에게 돌아간다.

최근 버뮤다 정부는 스테이블코인 USDC로 세금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카리브해 연안 9개 나라의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동카리브 중앙은행은 블록체인 기반 CBDC를 실험하고 있다.

물론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의 경제 규모는 인도보다 작다. 그러나 금융 분야로 한정해서 보면 이 지역의 성취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수년 전부터 이 지역 국가들은 세금 우대 등을 미끼로 전 세계 거대 은행과 보험회사, 뮤추얼펀드 및 헤지펀드를 꾸준히 유치해왔고, 총 1조 달러에 육박하는 금융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게다가 인구가 적기 때문에 금융과 관련한 실험을 진행하기에 이상적인 무대가 되었다.

리브라가 영국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인 금융 업계는 핀테크 개발을 브렉시트(Brexit) 이후 생존의 열쇠로 생각하고 있다. 내년 1월 퇴임하는 잉글랜드은행의 마크 카니 총재가 암호화폐와 관련해 상당히 진보적인 발언을 잇달아 내놓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 6월 카니 총재는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종류의 금융 기관이나 결제 업체가 중앙은행의 지급준비금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이 리브라 백서를 출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발언이었다.

 

혁신을 향한 질주

만약 영국이 스테이블코인 혁신에 앞장선다면 뉴욕과 홍콩 같은 다른 금융 허브들은 어떻게 될까? 월스트리트에서는 미국 정부의 규제가 너무 강경 일변도로 흐르면, 금융 부문의 혁신가들이 미국을 등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마이크 라운즈(공화, 사우스다코타) 상원의원은 리브라연합 창립회원인 수탁업체 앵커리지(Anchorage)에 편지를 보내 리브라를 규탄하는 의회와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리브라연합 참여를 독려한 라운즈 의원은 지나친 규제가 미국의 혁신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정학적 긴장과 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각국 정부는 결국 화폐에 대한 기존의 접근법을 대체할 만한 정책을 찾을 것이다. 중국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하려는 것도 중국의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것을 넘어 미국 달러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한 가지 요인이 또 있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 수조 달러에 이르는 개인 및 공공 부채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에 심각한 위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이 달러를 사들이고 그 결과 다른 법정화폐들의 가치가 폭락하게 된다. 투자 전략가 라울 팔은 히든포스(Hidden Forces) 팟캐스트에 출연해 리브라와 같은 민간의 디지털 바스켓 기반 통화는 국가 간 통화전쟁의 피해를 상쇄하고, 채무 면제 협상 중에도 국가 간 무역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을 결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리브라의 계승자들?

해답이 바스켓 기반 솔루션에 있든, 단일 법정화폐 연동 토큰이나 아예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한 디지털 통화에 있든,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약속을 내세워 사업을 벌이려는 회사가 페이스북과 리브라연합 회원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처럼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대신 페이스북처럼 과거에 한 잘못도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회사들 가운데 각국 금융 당국과 협상하기 유리한 위치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많다.

리브라와 비슷한 프로젝트를 시험하고 있는 헤비급 기업으로 유통 업계의 공룡 월마트를 들 수 있다. 고용한 직원 수를 놓고 보면 미국에서 가장 큰 기업인 월마트는 폭스콘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 거대 공급 체인망의 정점에 있다.

마스터카드 또한 리브라연합에서 탈퇴했다고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서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최근 블록체인 전문가를 추가로 영입한 마스터카드는 카드 및 결제 네트워크 제공자로서 스스로 신생 스테이블코인 산업의 핵심 기업으로 발돋움할 준비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더군다나 마스터카드는 전 세계 각국 정부, 기관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 순간에 리브라를 탈퇴한 일에 관해 물었을 때 마스터카드의 디지털 솔루션 부문 부사장 존 램버트는 필자에게 마스터카드는 리브라의 비전은 여전히 잠재력이 커 보인다고 답했다.

“리브라의 장기적인 가치에 회의가 들거나 잠재력에 대한 평가가 바뀐 것은 전혀 아니다. 리브라연합이 요청한 대로 원래 계획은 리브라연합 헌장에 서명하고 정식으로 창립회원사가 되는 것이었다. 문제는 여전히 너무나 불확실한 규제 체계였다. 또한, 리브라연합의 회원의 권한과 의미를 확실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기 전에 먼저 규제 체계가 명확하게 공표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램버트 부사장은 또 마스터카드가 앞으로 ‘민관 협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심지어 중앙은행이 디지털 통화를 발행해 공급하고 공급이 과잉일 때 폐기하는 통화량 조절에만 집중하고, 유통과 결제, 통화 흐름 관리 및 소비자 보호 업무를 마스터카드와 같이 고객 관리 경험이 있는 민간 결제 기업이 담당하는 다소 급진적인 시나리오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램버트 부사장은 말했다.

정부와 제휴를 맺는다는 아이디어 자체에 거부 반응을 보일 암호화폐 지지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들에게 분명 좋은 소식이다. 법정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통화를 만들면 정치적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핵심 안전자산으로서 비트코인의 지위는 금을 뛰어넘을 것이다.

다만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를 도입하려면, 먼저 기존 암호화폐들이 안정성과 확장성을 갖춰 더 널리 보급돼야 하고, 그때까지 안정적 가치를 지니면서 유동성이 높은 통화가 통화정책의 수단으로 필요하다. 리브라와 같은 스테이블코인도 얼마든지 정부와 손을 잡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리브라에 관해 우리 모두 새겨야 할 교훈일 것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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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